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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35화 (35/300)

# 35

35화

날씨가 점차 추워짐에 따라, 진흙탕이었던 땅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전차가 기동할 수 있는 전장이 마련된 것이다. 아직은 11월이기에 보병이 움직이기에도 과도하기 춥지는 않은 바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되었다.

가장 거대한 격돌이 예정된 남서전선군. 사령관 키르포노스는 스탈린 서기장과의 통화를 곱씹고 있었다.

"공세를 펼침에 있어 지극히 주의하여야 하네. 남부집단군의 상대 사령관이 교체됐고, 자네 상대가 바로 독일군 최고 명장이야! 섣불리 공세를 취하다간 우리 병사들을 상대 고기분쇄기에 던져주는 꼴이 될 수도 있네!"

서기장은 상대 사령관, 모델이라는 자를 극히 경계했다. 몇 번이고 공세를 치름에 있어 주의해야 함을 강조할 정도로. 신중하기로 정평난 키르포노스 역시 함부로 적의 아가리에 병사들을 밀어넣을 생각은 없었다.

200만에 이르는 병력 중 알맹이라 할 수 있는 다수는 주코프의 지휘 하에 남부전선으로 이동했다. 소련군은 머릿수는 많기는 하여도 숙련도에서는 지극히 뒤떨어지는 바, 잘못하면 대대적인 손실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서기장 동지, 포위 섬멸보다는 적의 전투력을 거세시키는 정도로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교전중 파손되어 기동중지된 전차는 적이 후퇴하는 경우 버리고 가야 하기에 적이 후퇴할 경우에 한정해서는 격파한 것과 똑같은 손실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기갑부대라면 이런 방식으로 전투력을 깎아낼 수는 있고.. 보병부대의 경우 교전에서 손실하는 비율이 한정적이기에 포위섬멸만큼 효과적이지는 못합니다."

"자네 뜻대로 하게, 판단을 존중하겠네. 하지만... 굳이 고기분쇄기에 우리 병사들을 갈아버리라고 던져 줄 필요는 없어."

"잘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더 할 말씀 있으십니까?"

"이만 하겠네. 전장에 있는 장수가 전장은 가장 잘 아는 법."

사실 싸우기도 전에 독일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점령한 땅덩이를 내주고, 진흙탕 속에서 굴러가지도 못하는 전차는 버리고 도망쳐야 하는 것을 패배 아니면 뭐라 부를까?

전투가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파쇼들을 어머니 조국의 대지에 묻어버리냐, 이것이었다. 스탈린 서기장은 병사들에게는 자비롭게도, 너무 많은 피해를 감수하며 전과 확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예정대로 공세를 개시한다!"

"10시 방향에 적 전차! 신형 전차들 포함 4대!"

니콜라이의 부대는 진군을 명령받았으나 전혀 그 명령을 수행하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압도적인 듯한 적의 군대에 밀려 후퇴할 뿐.

아군의 진격을 든든하게 받쳐 주던 포병의 포격은 훨씬 줄어든 듯 했다. 한동안 하늘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슈투카들은 다시 돌아와 아군의 대열을 헤집고 다녔다. 기관총이 햘퀴고 지나가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파편만 남은 아군 병사들이나 차량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니콜라이는 볼로쟈 병장을 바라보았다. 분대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볼로쟈 병장은 새로 배급된 로켓포의 사수로 지정되었다.

포탄 구덩이를 조금 더 깊게 판 임시 참호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분대원들은 볼로쟈 병장이 언제 로켓을 발사할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군의 무기들 중에서 파쇼들이 끌고 온 신형 전차를 상대로 이빨이나 먹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신무기인 로켓포나 카베 전차의 76mm 39구경장포, 혹은 그 이상가는 중포들을 동원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소대장이 한탄하면서 말한 것처럼, 포병들은 자기네들끼리 싸우느라 바빴고 전차 전력들은 주코프의 공세를 위해 더 남쪽으로 차출되었다는 것이다.

남겨진 보병들에게는 로켓포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수류탄 한 무더기도. 중대장은 이 수류탄 무더기를 놓고 이야기했다.

"우리 중대의 병사들 중 누군가가 이걸 가지고 돌격해서 전차를 파괴하는데 성공한다면 인민 영웅이 될 것이네! 남은 유가족들은 꼭 잘 대우받고 살 수 있을 것임을 내 보장하네!!"

정치위원 세묜은 그 말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은 충분히 합리적인 곳이라 병사들에게 불가능한 용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면 영웅이 되겠지만 불필요한··· 개죽.. 죽음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들릴듯 말듯하게 덧붙였다. 그렇게 영웅이 되고 싶으면, 본인이 하던가.

"병장님..?"

볼로쟈 병장은 무서우리만치 집중하고 있었다.

로켓포의 단점이라면, 후폭풍이 심해 참호 안에서는 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뒤가 뻥 뚫린 곳에서 쏴야 했는데 그러자면 보병을 엄폐해주는 참호 안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전차들이 부무장으로 장비한 기관총에 찢겨 버릴 수도 있었다. 2분대의 분대장이었던 이반 미하일로비치 병장이 그랬던 것처럼.

볼로쟈 병장은 아무튼 달라져 있었다. 학살당한 민간인들을 보고 나서, 그 질척거리는 계절을 지나온 후 그는 지랄맞은 선임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악귀로 변해 있었다. 평소에는 잠잠했지만, 지금처럼 전투가 다가온 시점에는...

"셋을 센 후 돌격이다, 조금만 시간을 끌어 보라고."

"예? 예, 예.."

가장 위험한 임무를 그는 항상 자청했다. 파쇼 놈들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그저 소총으로 무장했을 뿐인 알보병들보다는 당연히 위험한 로켓포를 가진 병사들을 집중적으로 사격했다.

볼로쟈 병장은 그 임무를 네 번 수행했고, 네 번 다 살아남았다. 니콜라이는 그의 옆에서 여분의 탄두를 들고 병장을 엄호해야 했고 파쇼들의 총탄에 오른쪽 귀의 절반을 잃어버렸다.

"하나, 둘... 셋!"

매복해 있던 분대가 구덩이에서 기어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적 전차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동안 볼로쟈 병장은 로켓포를 발사했다.

"니콜라이, 하나 더 내놔!"

재촉하는 볼로쟈에게 로켓 탄두를 넘기고, 니콜라이는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한 파쇼 놈들에게 총질을 시작했다.

"우라! 우라아아아!"

아뿔싸, 신형 전차들 대신 구형 경전차가 맞았다. 내부에서 유폭이 일어났는지 전차는 곧 굉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나 신형 전차들의 기관총이 이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분대는 전차의 파괴를 보며 환호하는 겸, 다른 분대들의 호응도 요청할 겸 함성을 외치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전차를 파괴했다! 붉은 군대 만세!!"

그러나 볼로쟈 병장이 차탄을 준비하는 동안 분대원들은 기관총 사격 앞에 곤죽이 되고 있었다.

다른 분대의 로켓포는 신형 전차를 대부분 맞추지 못했고, 맞춘 로켓포 역시 제대로 타격을 입히지는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아냐고? 멀쩡하게 이쪽을 향해 총질을 해댔으니까!

설상가상으로 파쇼들의 하프트랙 장갑차에 탄 보병들이 전차들과 같이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니콜라이! 볼로쟈!"

아스라히 어디선가 그와 병장을 부르는 듯한 소리에 니콜라이는 차탄을 조준하던 병장의 목덜미를 확 부여잡고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병장은 고함을 쳤지만 뒤에서 분명히 누군가가 부르고 있었다. 멈출 수 없었다. 다른 분대원들처럼 그저 죽어버릴 수는 없었다. 이윽고 볼로쟈 병장 역시 그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너... 돌아가면 보자."

원래라면 그 말에 벌벌 떨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제기랄, 죽이려면 죽여 보라지! 지금은 후퇴해야 했다. 전차의 출현 보고를 받고 출동했는지 아군 전차가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제발, 제발... 성모님, 하느님··· 서기장님··· 어머니··· 엄마!’

그의 희망도 무색하게 아군의 전차들 중 한 대는 하늘에서 꾸에에엑 소리를 내며 날아온 슈투카의 기관총에 상부를 두들겨 맞고 연기를 뿜으며 정지했다.

나머지 세 대는 몇 발인가 포를 발사하는가 했더니 반격으로 날아온 적군의 전차포 두 방째에 한 대가 관통당해 버렸다. 아군 전차들도 두 발을 맞췄지만 적군의 신형 전차는 그런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깡 하는 금속음과 함께 두 발 모두를 튕겨내었다.

"후퇴! 후퇴!"

중대장인 것 같았다. 저만치에서 토카레프 권총을 들고 파시스트 전차들에게 의미없는 권총질이나 해대던 그는 얼굴이 새햐얗게 질려 있었다.

알보병으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다, 후퇴하라! 그에게서 또 얼마간 떨어진 곳에는 폭탄 뭉치가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핏자국과 병사였던 시신들이 어지러이 함께 널려 있었다. 정말 돌격을 시킨 건가? 저렇게 죽었다고?

"니콜라이, 이리로!"

볼로쟈 병장은 장전된 로켓포를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움켜쥐고 달렸다.

그는 아군의 격파된 전차 뒤편으로 달려 들어갔다. 연기를 여전히 모락모락 뿜어내는 전차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파쇼 전차들 역시 완전 격파라고 생각했는지 이쪽에는 그다지 관심을 주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병장님! 뭐 하는 겁니까! 후퇴해야 한다면서요!"

볼로쟈는 전차의 뒤편에 숨어 로켓포로 적 전차를 겨누다 그를 흘깃 바라보았다.

‘저 새끼는 공포란 게 없나?’

니콜라이가 보기에 그는 분명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럼 탄두는 놓고 가던가. 니 수류탄이랑. 내가 지난번에 준 거 있지?"

니콜라이는 혹여라도 볼로쟈 병장이 남으라고 할 까봐 예전에 볼로쟈 병장이 준 것뿐만 아니라 자기 몫으로 보급받은 수류탄까지 탈탈 털어 여전히 로켓탄을 조준하는 그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이걸로 어쩌시려고요? 저 쇳덩어리 괴물딱지들을..."

"쉿!"

하나, 둘, 셋. 그의 입모양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씨발! 씨발! 서기장님 살려주세요... 저 새끼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정말 씨발이에요. 저 살려주세요!’

알고 있던 성인들이 기억이 나질 않아 서기장님의 이름을 주워섬기던 니콜라이는 로켓포 발사의 폭음이 들리자 빼꼼하니 눈을 뜨고 탄두의 궤적을 보았다.

발사된 로켓은 신형 전차의 궤도를 맞췄고, 그 전차는 결국 멈춰섰다.

"한발, 한발 더..."

"아니 병장님 진짜 미친 겁니까? 우리 지금 도망가야 돼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뭐, 뒈진다고?"

니콜라이는 그를 만류하려 했지만 볼로쟈의 눈빛은 무섭게 그를 쏘아보았다. 네 뒈져요. 씨발, 그러면 살아남을 것 같으세요? 다른 분대원들처럼 피떡이 되겠지! 차마 말로는 할 수 없어서 니콜라이는 가급적 눈빛으로 그의 심경을 전하려 했다.

"씨발, 그럼 너나 도망가던가. 난 어차피 이미 뒈진 놈이야."

"그러지 마시고..."

"꺼질거면 꺼져!"

볼로쟈는 벌써 다음 탄두를 조준하고 있었다. 표적은 궤도가 파괴되어 멈춰선 전차.

로켓포는 저 괴물딱지 쇳덩어리의 전면 장갑도 잘 맞추면 파괴할 수 있었다. 최소한 상부는 그렇게 알려주었다. 맞출 수 있어야 말이지...

전차는 멈춰섰어도 쇳덩어리 전차였고 병사들은 소총을 들고 있건 로켓포를 들고 있건 피와 살로 된 인간이었다. 전차는 튼튼했고 인간은 기관총에 맞으면 죽었다. 니콜라이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수류탄 하나를 집어들었다.

"엄마···"

볼로쟈가 발사한 세 번째 로켓포는 결국 신형 전차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로켓탄을 발사하고 조준기를 휙 던져 버린 병장은 소총을 잡고 총질을 시작했다. 광기에 들린 듯 고함을 지르며 소총을 발사하던 그는 니콜라이에게 손을 확 내밀었다.

"탄창! 탄창 내놔!"

드럼 탄창 하나를 주자 그는 다시 총에 탄창을 우겨넣고 총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파쇼들의 총격이 이쪽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볼로쟈 병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으로 반격했다. 수류탄 하나, 둘...

어느 순간 탄약이 다 떨어졌다. 수류탄은 각각 한 발 남았을 뿐. 니콜라이는 몸이 벌벌 떨려 아직 수류탄을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볼로쟈 병장은 씨익 웃으며 니콜라이의 손에 들린 수류탄을 빼앗아 들었다.

"야, 뒈지는게 무섭냐?"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네, 무서워요. 살아 돌아가고 싶어요. 제발!’

눈빛으로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관심이 없었는지 볼로쟈 병장은 그의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가 들고 있던 수류탄을 힘껏 던진 볼로쟈는 마지막 수류탄 하나만을 들고 저만치에 놓인 폭탄 뭉치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서우면 뒈진척 하던가-!"

차마 볼 수 없었다. 니콜라이는 그 말을 듣고 엎어져 죽은 척 하기 시작했다. 전차의 아래에 있는 공간 속으로 몸을 숨기면, 그러면 괜찮겠지.

볼로쟈 병장은 어떻게 됐을까? 고개를 드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어머니, 어머니...'

폭음과 굉음이 천지 사방을 진동시키는 가운데 니콜라이는 벌벌 떨며 숨어 있었다. 죽어 있는 척 최대한 연기하려다 진짜로 정신을 잃어버릴 때까지.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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