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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31화 (31/300)

# 31

31화

늑대굴의 상황은 극과 극으로 갈려 있었다.

한쪽은 연전연승 끝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대승을 거둔 해군과 공군이 있었다. H전단과 지브롤터 기지를 '지진폭탄' 그로서 융에를 동원한 공습 한 번으로 박살내버리고, 지중해에서의 함대결전으로 영국 지중해 함대를 지중해 밑바닥으로 보내버렸다.

아직도 아득바득 버티는 몰타의 잔존 영국군 특수부대 병력만 소탕하면 지중해는 독일의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 내해)이 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롬멜 원수는 토브룩을 넘어 메르사마트루를 점령했다. 영국 지중해 함대의 모항인 알렉산드리아를 단 300km 남겨둔 중간 기점 도시에서 추축 연합함대와 아프리카 군단이 만났다.

양 부대의 사령관인 '아프리카의 폭풍' 롬멜과 '대서양의 황제' 뤼첸스가 악수를 하는 장면은 온 유럽의 신문 1면에 당당하게 박혔다.

이집트 주둔 영국군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몰린 채 삐라를 뿌리며 항복을 종용하는 독일 공군기들에게 대공포를 날릴 뿐이었고, 그나마도 보급선이 끊겨 지금 날아오는 것이 항공폭탄이 아닌 것에 감지덕지 하는 처지가 되었다.

비록 공군이 동부전선에서는 같이 죽을 쑤고 있었어도 최소한 대서양과 지중해의 전선에서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기에, 괴링은 여전히 꺼드럭대며 육군 장성단의 속을 긁고 있었다.

육군은 유일하게 아프리카에서는 선전했지만 그것은 해군과 공군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이거 괴벨스 박사 아니십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는 원래 괴링을 극히 싫어했지만 오늘만큼은 괴링이 거들먹거리며 회의실에 들어오자 만면에 함박웃음을 띄고 그를 맞았다. 그러나 뜬금없이 괴링을 보고 괴벨스라고 하자 배석자들의 표정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이구, 이거 그만. 살이 쪽 빠지셔서 그만 괴벨스 선생인 줄 알았습니다. 이리 보니 정말 훤칠해지셨군요? 제국원수 각하인 줄 몰랐습니다"

"으잉? 허허허허, 아니 레더 대제독께서 그런 농담도 할 줄 아셨소?"

해공군 장성들이 일제히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괴링은 요 얼마간 살이 쭉 빠져서 1차 대전의 전투기 에이스 시절의 그 미남 조종사로 되돌아와 있었다.

총통의 강력한 ‘권고’로 모르핀 중독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 괴팍한 성질도 반쯤 죽었고 부하들을 아끼고 자율권을 존중해 주는, 부하들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상관이 되어 있었다. 물론 허영심 많은 성격과 욕심은 여전했지만, 제 3제국의 자원이며 권한을 모조리 틀어쥐고 공군에 몰아주고 있는데 그게 문젠가?

괴링은 공군에 관해 여전히 고집을 부리기는 했어도, 베르너 묄더스 같은 젊은 전투기 에이스를 전투기대 총감으로 전격 발탁해 중임하고 그가 제시하는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총통에 이은 제3제국의 2인자로 있는 사람이 자신의 전권을 발휘해 자원을 밀어주고, 젊고 혁신적인 현장파 인사들이 장성으로 쾌속 승진해 채워간 공군 장성단은 괴링을 다시 공군의 1인자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군 입장에서, 역시 총통의 강력한 권고가 있었다지만 그동안 고집을 부리던 것을 접어놓고 항공모함을 위한 해군항공대 창설에 동의해준 괴링에게는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제국원수 각하의 각별한 배려 하에 지브롤터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 감사드리며... 저희 항공모함 두 척의 진수식에 제국원수 각하께서 참석해 주시길 꼭 부탁드립니다."

레더는 해군을 위해서인지 괴링에게 지극히 저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괴링이 명목상 다른 원수들보다 상위에 있는 '제국원수' 라 할지라도 공군의 1인자 자리인 만큼 해군의 1인자인 에리히 레더가 이렇게 굽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숙원인 해군항공대 창설을 이뤄준 것은 이뤄준 것이다. 괴링이 발탁한 젊은 전투기대 총감 역시 해군의 계획을 지지하며 해군항공대를 이룰 기간요원으로 독일군의 최고 에이스 중 하나인 아돌프 갈란트를 추천해 주기까지 했다.

갈란트가 이끄는 비행단은 새로 취역할 항모 2척, 그라프 체펠린과 제국원수 헤르만 괴링-자이들리츠를 개명한-에서 이미 시험비행까지 마치고 그라프 체펠린의 진수와 맞추어 해군항공대 창설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뭐 그 정도를 가지고! 하하하. 내 바쁘지만 꼭 항공모함 진수식에는 참석하겠소. 레더 대제독이 우리 독일을 위해 얼마나 큰 공을 세우셨는데!"

해공군이 이렇게 단란하게 짝짜꿍을 하는 동안 육군 장성들은 그야말로 얼굴이 바위처럼 굳은 채 정좌하고 있었다.

최고위층은 쉬쉬하며 파란이 더 커지지 않게 하고 넘어가려 하려 한 듯 하지만 육군의 최고위층이 싹 물갈이될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었다.

육군 총사령관 브라우히치, 총참모장 할더, 북부집단군의 레프, 중부집단군의 보크, 남부집단군의 룬트슈테트같은 최고위 지휘관부터 시작해서 일개 사단장까지.

동부전선의 모든 장성 지휘관들은 사표를 제출할 것을 강요당했다. 총통과 몇몇 인사들이 얼마나 물갈이를 해야 할 지 쑥덕대고 있다는 소문은 어린 당번병들도 알고 있는 듯 했다.

육군 총사령관으로는 당연히 롬멜 원수가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동부전선에서 다같이 싸질러 놓은 거대한 똥덩어리를 아프리카에 파견나가서 혼자 싹 피해간 롬멜은 그 '운' 덕분인지 전공이 퇴색될 정도였다.

육군의 고위급들은 천박한 배신자라고 그를 근거 없이 비난했지만 이제 곧 끈이 떨어질 그들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롬멜과 그의 휘하 장군들-참모장 바이엘라인, 15사단장 쿤이나 21사단장 라벤스타인-같은 이들이 고속승진해 최고위직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측된 바였다.

좀 더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은 이탈리아 아리에테 기갑사단장 라파엘 카도라가 독일에서 발탁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자존심 강한 독일군,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부터 내려온’ 독일군의 전통을 아는 자라면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혹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동부전선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총통 각하 드십니다!"

"하일 히틀러!! 지크 하일!!"

SS 친위대원이 낭랑한 목소리로 총통의 행차를 알렸다.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고, 총통은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의 뒤에서 당황한듯 한 힘러가 잰걸음으로 총총거리며 들어와 총통의 왼편에 앉았다. 괴링은 당연한 듯 총통 우측의 차상석에 앉았고, 육군 장성들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삐질삐질 땀만 흘리고 있었다.

"보고는 받았네."

그게 대체 무슨 보고일까, 해군이나 공군은 그다지 쫄릴 게 없으니 여유만만했지만 육군 장성들의 고개는 점점 더 숙여져만 갔다.

"인사 개편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더군?"

"크흠... 총통 각하, 승패라는 것이 꼭 장군들의 지휘에만 달린 것이 아니고 여러 요소들이 개입하는데 초전의 패배를 이유로 지나친 징계를 하는 것은.."

괴링이 은근히 육군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가 딱히 자비롭거나 이해심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후 육군의 편을 들어준 데에 대한 대가로 '선물'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욕심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 괴링에게 총통의 서늘한 눈빛이 내려앉자 괴링은 나몰라라 하는 표정으로 위를 쳐다볼 뿐이었다.

"육군 총사령관은 본인이 총통직과 함께 겸임하는 것으로 한다."

짧은 탄식과 한숨들이 터져나왔다가 쏙 들어갔다. 프로이센 장교단 출신의 융커 장군들은 '보헤미아의 상병' 이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부터 내려온 장군단의 명예를 흙발로 짓밟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감히 지금의 삽질을 두고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총참모장 프란츠 할더는 해임, OKW 작전부장 알프레드 요들 대장을 그 자리에 임명한다. 할더, 자네는 예비역 편입이니 이 자리에서 즉시 나가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준비하게."

"예, 총통 각하."

가장 먼저 지적당한 할더는 무섭게 굳어진 얼굴로 일어났다. 입술을 꽉 깨물고, 혹시나 감정이 보일까 눈까지 꽉 감은 그는 짧은 경례를 한 후 달리는 듯한 걸음으로 회의실에서 퇴장했다. 총통은 결코 패배자들에게 다정한 상관으로 남으려 하지 않았다.

아직 대놓고 욕설을 퍼붓고 모욕하지는 않아도, 군문에 대대로 평생 몸담아온 이들을 단 한마디로 날려버리고 계급 칭호조차 붙이지 않고 쫓아내 버렸다.

다른 장군들은 아득해졌다. 그나마 기존 OKH 장성단과 친하고 바른말을 할 줄 아는 요들은 할더에 대한 태도만큼 파격적인 인사가 아니라 다행일까?

"룬트슈테트."

백발의 노원수는 열네 살 어린 보헤미아의 상병에게 천천히 경례를 붙였다. 총통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노원수의 회색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늙다리, 자네는 해임일세. 예비역 편입이 아니라 즉시 해임이다. 할더와 마찬가지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 한 후 집에 가서 손주나 보게."

참석자들이 모두 굳어졌다. 육군의 최고참이오, 총통도 얼마 전까지 협상을 통해 달래야 했던 노원수에게 총통은 지극히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다.

룬트슈테트의 얼굴이 굳어지고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러더니, 그는 책상 앞의 서류를 쥐어 총통을 향해 내팽개쳤다.

"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어떻게 내게 그런 소릴 당당히 지껄이는가! 네가 소련과의 개전을 시켰어! 다 네 잘..."

총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좌측에 앉은 힘러는 씩 웃었고, 회의장을 지키던 SS 친위대원들이 즉각 노원수에게 달려들었다.

키가 크고 잘생긴 자들만 골라 뽑았다는 SS 대원들은 머리는 나빴을지도 모르나 노원수의 팔을 꺾어 책상에 패대기치는 것은 극히 쉽게 해냈다. 발악하며 고함치는 룬트슈테트의 입 속으로 친위대원의 차가운 총구가 틀어박혔다.

"컥, 커컥···"

"키예프조차 점령하지 못하고, 총사령관에게 항명하는가? 그대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친 졸전을 두고 변명할 여지는 있었나보군."

"끌고 나가 취조하게. 총통 각하를 암살하려 한 혐의네."

힘러는 여전히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지만 애써 평온을 가장하며 친위대원에게 명령했다.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총통은 룬트슈테트를 향해 조소했다. 그러고는 계속 발표를 이어갔다.

"요약하지. 중부집단군 사령관은 하인츠 구데리안, 남부집단군 사령관은 발터 모델. 북부집단군 사령관에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을 임명한다. 셋 모두 휘하 상급대장 지휘관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원수로 승진시킨다."

잠시 말을 쉬며 주위를 돌아본 총통은 물을 한 모금 꿀꺽 마셨다. 모두들 물이 넘어가는 것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각 전선의 작전목표는 알고 있겠지? 승리하는 자는 동부전선 총사령관, 패배하는 자는 예비역 편입이다. 알겠나?"

그야말로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는 인사였다. 육군의 최고참, 아니 짬밥만으로 보면 전군의 최고참이라고 할 수 있는 룬트슈테트는 하루아침에 개망신을 당하고 친위대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게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군단장, 대장급이던 인사들이 원수들이 맡던 집단군 사령관이 되었다. 발터 모델? 그게 누구지? 몇몇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은 프랑스 침공에서 스스로를 증명한 바 있었지만 모델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유명하지는 않았다. 물론, 동부전선 총사령관이라는 단어가 더 충격적이었기에 그의 이름은 금방 뒤로 들어가 버렸다.

"예 총통 각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하일 히틀러!!"

만슈타인은 벌떡 일어나 히틀러에게 경례를 붙였다. 소련군 전차부대 앞에서 북부전선군의 유일한 기갑집단인 4기갑집단이 박살났지만, 그는 어쩐 일인지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

다음 보직은 동부전선 총사령관이다..! 그로서 융에 폭탄 몇 발이면 소련군의 방어진지 정도는 갈아엎을 수 있다. 그는 문득 괴링을 쳐다보았다. 총통의 최측근인 괴링 역시 경악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네들이 기대하던 롬멜 장군은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대로 서부전선 총사령관에 임명한다. 되니츠 제독! 자네는 부사령관이야. 롬멜 원수와 협력하여 영국을 최종적으로 무너트리도록 하게."

"예?! 예! 총통 각하!"

되니츠부터 시작해서 모두들 얼떨떨해 보였다. 그동안 폭탄 발언들이 너무나 많이 터져 모두가 잊고 있었던 롬멜이 이제서야 언급되었다. 아프리카 군단이 영국 상륙의 주역이 되리라는 총통의 이전 계획을 몇몇 사람들은 그제서야 떠올려 냈다.

요지는 이러했다. 서부전선 총사령관은 대 영국 전선, 동부전선 총사령관은 대 소련 전선을 각자 담당하고 양측을 총괄하는 육군 총사령관에는 총통이 직접 재임.

세세한 사항들에 간섭하면서도-요새는 거의 그렇지 않고 방임 수준으로 떠넘기지만-어떤 일은 대충 부하들에게 버리는 총통의 성향을 보면 롬멜과 향후 생겨날 동부전선 총사령관은 엄청난 권한을 부여받을 것으로 보였다.

회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모두들 뒤숭숭해 있었다. 지중해 작전의 공로를 치하받을까 했던 해공군 인사들조차 표정이 떫어 보였다.

괴링은 총통을 쫓아 후다닥 달려갔고, 남은 사람들은 서넛씩 모여 이번 사건에 대해 수군대고 있었다.

그중 단연 화제는 모델 대장이었다.

"일개 군단장에서 순식간에 집단군 사령관이라니?"

"대장에서 원수면··· 2계급 특진 아닌가?"

모델은 상급대장을 건너뛴 전례없는 2계급 특진을 했다. 무슨 대단한 무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그저 총통이 손짓 한번에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게 대체 누구야? 남부집단군 꼴이 엉망인데···"

문제는 그가 부임할 자리가 남부집단군이라는 것이었다. 소련군의 명장, 주코프가 지휘하는 수백만 병력에 밀려 주력이 다 습지로 밀려 들어간 남부집단군. 사실상 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웬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올라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무운을 빌었다. 아니라면 독일 국가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될 테니.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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