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30화 (30/300)

# 30

30화

히틀러, 너 미쳤냐?

가능만 하면 당장 히틀러에게 전화라도 해서 따지고 싶었다. 무슨 생각으로 주민학살을 명령했는지.

공세작전을 통해 독일군을 밀어냄에 따라, 독일 점령 하에 있었던 영토들이 일부 해방되었다. 점령지였던 곳에서 나치 놈들이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정보들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현재까지 확인된 촌락들만 해도 46개에 이른다는 보고입니다···"

"미쳤군, 다들 미쳐 있어."

선봉 부대들이 해방시킨 지역의 마을들은 다수가 초토화되어 있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처절한 실패로 혈전을 치르며 진격해야 했던 독일군은 잔혹한 복수심에 불타며 마을들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모두 학살했다.

탈출한 몇몇은 파르티잔이 되어 '해방군' 이 되어 돌아온 우리 군대에게 안겨 눈물로 그동안의 일들을 호소했다. 이 장면은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담겨 포스터와 선전 자료가 되었다.

"저들이 제 동생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다들 나무에 매달려... 크흑... 저만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죽고 가족 중 저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파르티잔이 된 중년의 남자는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그는 독일군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었다.

소련 당국은 사건을 조작할 필요도 없었다. 베리야는 자기 입맛대로 대본을 써서 배우들에게 내준 후 독일의 악랄함을 선전하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 나도 읽어본 바 베리야의 대본은 상당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가득 담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한 측면이 있었다. 지금 영화에 나오는 저 남자는 진짜 파르티잔이었고, 자기가 겪은 일을 가감없이 말하고 있었다.

"하··· 저게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명령하신 대로 오직 사실만을 말하게 했습니다."

베리야도 기가 찬지 평소의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대국민 방송, 선전 영화, 포스터 등을 통해서 독일의 악랄함은 널리 퍼져나갔다. 이제 파시스트 침략자들이 저지른 잔혹한 짓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소련 국민은 없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로실로프, 자네는 자막과 번역 작업을 맡기로 했지?"

"옙!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로실로프는 겨울전쟁 이후 국방장관에서 쫓겨나 한직인 문화부에 있었기에 소일거리나 던져주는 셈 이 작업을 맡겼다. 이제 독일의 학살에 관한 영상물들은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전 세계에 퍼질 것이다.

이미 미국의 언론사들에 피 같은 달러 뭉치를 뿌려 두었다. 이 전쟁을 저기 멀리 유럽의 깡패들이 서로 치고받는 전쟁이 아니라 반인륜 범죄자들을 징벌하는 신성한 인류의 전쟁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핀치에 몰린 처칠은 내가 던져주는 떡밥을 덥썩 물어서 자체적으로 영어 번역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자기가 꽉 잡고 있는 언론사들에게 하나씩 풀어주겠지?

"후···"

하지만 입맛이 썼다. 소련이 저지른 학살도 있었으니까.

소련은 독일과 함께 짝짜꿍해서 폴란드를 분할해 집어삼켰다. 그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폴란드인들 중 민족주의, 군국주의자들은 따로 분류해 학살했다. 노동자 농민 출신들은 회유했지만 ‘계급 성분’을 가지고 나누어 죽여버린 것이다.

이렇게 학살당한 폴란드인들이 발견된 곳이 스몰렌스크 인근의 카틴 숲이었기에 ‘카틴 학살’ 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이지. 아무튼 2만여명에 이르는 폴란드 장교-지식인들은 대대적으로 학살당했다.

물론 독일도 끌고간 폴란드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폴란드 인구의 1/6이 2차대전 기간 양측에게 학살당해 사라졌다.

인간백정들 사이에 니가 많이 죽였니, 내가 많이 죽였니 따지는 것 자체가 별 의미는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독일의 학살을 뻔뻔하게 알리라 명령하는 내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학살을 인정한다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그것 때문에 렌드리스가 줄어들면? 내 명령에 따르는 소련 병사들이 나 하나 편하자고 내린 지시때문에 더 많이 죽게 된다면?

‘내’ 가 스탈린의 몸에 들어와있으니, 이전 인격? 내 안의 인격? 이 저지른 일에 무슨 책임이 있겠냐 잡아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사후적인 조치일 뿐이니.

"서기장 동지, 지금 같은 전시에 불순한 이들을 사회에 다시 방면하는 것은 사보타주와 스파이질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디 반려 바랍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자네는 무슨 사보타주 타령을 하는가? NKVD가 버스를 납치해서 끌고간 다음에 지각이라고 굴라그에 쳐넣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자네 조직에서 벌어지는 얼간이짓 하나 통제를 못 해?"

굴라그에 갇힌 ‘죄수’ 들을 단계에 따라 풀어주라는 명령에 대해 베리야는 반발했다. 하지만 지가 반발하면 어쩔 건가. 서기장은 나인데.

굴라그에는 분명 명백히 죄를 지은 사람도 있었지만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단순한 경범죄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고, NKVD가 스파이로 몰아 끌고간 사람이나 심지어는 죄수 할당량을 채우려 멀쩡한 이들을 죄인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진짜 중범죄자나 전쟁포로들 정도라면 모를까··· 인구 1억 6천만 중 10% 가까이 굴라그를 거쳐갔다는 게 정상인가?

"아 그리고 하는김에 굴라그 죄수들 대우도 좀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려놓게. 우리는 이제 세계 앞에 ‘정상 국가’로 인정받을 다시 없을 기회를 얻었네. 그런데 사소한 문제에 붙들려 괜히 문제를 일으켜서야 되겠나?"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베리야는 하얗게 질린 얼굴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으음, 자기가 숙청당할거라 생각한 건가? 전임자인 니콜라이 예조프의 조치를 비난하고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이 지금의 NKVD 국장 베리야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본인이 한 조치들을 과하다는 것처럼 서기장이 지시하는 것을 보면··· 아마 소름이 끼칠 수도 있겠지.

"걱정 말게, 자네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감사합니다!"

나가는 그의 뒤에 부드럽게 이야기하자 베리야는 나가다말고 고개를 팍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음, 음, 얼른 나가게. 손짓을 하자 조금은 나아진 듯한 느낌으로 베리야는 내 집무실을 떠났다.

실제로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당분간은 말이지.

남부의 공세는 순조로웠다. 작전 초기의 기습효과와 소련군이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우세한 공군력의 조합은 6군의 정예 병력이라고 해도 쉬이 견딜 수 있는게 아닌 듯 했다.

독일군은 자신들이 전차를 가지고 적군을 밀어버리는 데에는 익숙한 것 같았지만 전차를 끌고 공격해오는 소련군을 막는데는 아직 서투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폴란드 침공에서나 프랑스 침공에서나, 독일군은 항상 공격자의 입장이었다. 방어자가 된 자신들의 모습은 상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와하하하! 그런 걸로는 안된다고, 더러운 파쇼 돼지들아!"

깡! 37mm 전차포를 카베 전차는 여유롭게 튕겨냈다. 무장도 T-34와 동급인 76mm에, 구동계도 엉망 조향장치도 엉망인 느림보 전차였지만 단 하나만은 지극히 우수하다 할 수 있었다.

바로 장갑. 그 떡장갑을 믿고 카베 전차는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앞장섰다.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로는 도무지 소련군의 중전차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한 체급 낮은 T-34도 마찬가지였다.

8,8cm Flak 56구경장 같은 포로는 당연히 잡을 수 있었지만 아직 독일군은 그런걸 유연하게 대전차전에 땡겨올 정도로 베테랑은 아니었다.

또, 지금의 상황에 한정한다면 대공포를 대공임무에서 돌리기도 어려웠다. 자칫하다간 그동안 무시해온 소련 공군에게 박살날 상황이었기에. 이런 점을 틈타 소련군 기갑부대는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후··· 이거 피해가 작지는 않구만?"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것까지야··· 아직은 우리 병사들의 숙련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은가 보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리 장교들은 결코 뛰어나지 않았다. 이들이 저지른 삽질들이 전투보고서에서 낱낱이 드러났고, 베리야는 내가 은밀하게 이 장교들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 지를 묻기도 했다.

나야 당연히 기각했지만 장교들은 갑자기 주어진 풍부한 보급과 포병 화력, 그리고 제병협동 전술에 대한 몰이해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경험을 쌓다 보면 나아지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아마 전장에서 죽을테니까.

다행히도 독일군의 대응 역시 기대 이하였기에 남부의 공세작전 자체는 순조로웠다.

남부 사령관 주코프, 우리의 대장군 주코프는 큰소리를 떵떵 쳤다.

"이대로라면 파쇼들을 몰아내고 베를린에 깃발을 꽂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고는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아무리 오만한 그라도 투하쳅스키의 숙청을 본 이상 감히 날뛸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은 다 서기장 동지 덕분입니다. 이 승리의 영광을 서기장 동지께 돌립니다!"

"아직 승리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지? 으하하핫."

1기갑집단과 6군은 허둥지둥하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소련군은 일단 많았다.

나는 일단 일선 장군들에게 그냥 많이 징병해서 많은 병사들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주코프는 엄청난 규모의 예비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비밀리에 언질을 준 바, 숙청당한 투하쳅스키가 제안했던 ‘종심작전’ 역시 간단하게나마 펼쳐볼 수 있었다.

다른 전선군의 사령관들은 아마 주코프의 작전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소련 작전술의 미래가 여기 있었으니까.

적군의 1기갑집단과 6군 역시 반격을 펼치기는 했지만 주코프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둔 방어선에 걸려 갈려나갔다고 한다.

다른 방면의 독일군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독일 17군의 공세는 말리놉스키가 이끄는 26군 등의 필사적인 저항 앞에 멈추어 버렸다. 애초에 이들의 공세가 그다지 무섭지도 않았다. 응 전차도 없는 찐따라서 안들리거든?

"독일군의 전차 생산량은 아직 월 500대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저희는 대략··· 1800대 가량입니다!"

"아주 좋소!"

짝짝짝짝짝! 다들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저중 많은 수가 경전차지만 그 경전차도 부족한 건 어디의 누구더라?

트럭 생산량, 전차 생산량부터 시작해서 군수물자의 생산은 그야말로 끝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3교대로 일하며 영웅적인 노동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지금 소련은 최소한 세 배는 많은 전차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17군의 반격이 쉽게 막힌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독일은 유보트를 뽑고 함대를 재건하는 데 너무 많은 역량을 쓰고 있었다. 대서양에서는 영국을 압도할 수 있어도 전차와 항공기가 맞부딫히는 동부전선에는 당연히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생산한 5천 대가 넘는 전차 중 4천대 가까이를 배치받은 남부전구에게는 질량에 압살당할 뿐이고.

여기에, 민수물자와 군수물자를 조율하고 민간 기업들을 동원하는 독일의 체제적 단점까지 겹쳐졌다. 우리 소련은 미국으로부터 수만 톤의 물자를 렌드리스로 쪽쪽 빨아먹으며 군수물자 생산에만 올인하지만, 독일은 어디 그런 것이 가능한가?

미국제 무전기로 포병대에게 연락해 포격을 요청하고, 신뢰성 높은 미제 트럭을 타고 거기에 실린 기관총이나 박격포, 로켓포의 화력 지원을 받으며 적진을 돌파하고. 독일 전차가 나타나면 미제 바주카포를 쏴 대는 것이 일선의 상황이었다.

전차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독일은 참 서러울 것도 같았다. 으하하하하하!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