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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6화 (2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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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공중전은 펼쳐질 여지도 없었다. 영국이 점유한 지브롤터 반도는 면적이 극히 좁았고, 지브롤터 암벽으로 인해 항공기가 뜨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다만 이를 대비해 구축한 대공포 진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을 뿐.

대공포 진지가 하나하나 박살나며 보내는 마지막 통신의 단말마들이 지휘실을 울렸다.

[아아아아아악....]

"..."

지휘실은 죽음같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몰타에서는 지원이 올 수 없었다. 항속거리의 문제도 있거니와, 숫적으로 이미 압도당하는 중이었기에. 루프트바페와 레지오 에어로노티카는 쉴 새 없이 몰타를 공격했고, 그들은 이미 몇 대 일의 열세에 처한 채 싸워야 했다.

독일군 공수부대가 강하중이다, 전투에 나서야 한다는 전신 이후 지브롤터의 지휘부는 몰타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지중해 함대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항진하고 있다는 것만이 희망으로 남았다. 본국함대가 온다, 지중해 함대가 온다. 그 말만이 병사들의 사이에서 울리며 퍼져나갔다.

승리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소머빌 제독 스스로도 그 말을 되뇌였다.

요새가 점거당하지 않는다면 포위망은 언제든 타개할 수 있었다. 시간은 영국에게 유리했다. 여전히 본국함대와 H전단, 지중해 함대를 모두 합치면 추축국의 전체 함대와 비등했다. 이탈리아 함대는 지중해에 갇힌 바, 저들은 전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고 영국은 가능할 뿐.

요새 안에 있으면서 시간까지 이쪽 편에 있다면, 가장 든든한 두 아군을 편에 둔 셈이었다.

"수병들을 무장시키게. 스페인 육군이 진군한다는 보고는 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스페인 군대를 목격했다는 보고는 아직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본국에서 수신한 바에 따르면 저들은 아직 병력을 소집중이라고 합니다."

"으음... 굳이 이곳을 공격했다면 속전속결로 끝내야 할텐데.. 저들의 노림수는 무엇이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항공기들은 대공 진지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이 요새를 점거하려면 기본적으로 지상병력을 투입해 요새 내부의 인원을 제거하던가, 혹은 요새를 포위하고 말려죽여야 했다.

비밀리에 요원을 침투시켜 보급창을 폭파했다면 후자 쪽이겠지만 영국 함대가 그 전에 도착한다면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것은 수병들을 무장시키고 저들과의 교전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가스를 사용하는 화학전을 펼칠 가능성에 대비해 제독장치를 준비하도록 했다. 방독면의 수량은 부족했지만 임시적으로 방독마스크를 만들게 하는 등 최대한의 대비까지 해 두었다.

우릴 여기서 몰아내려면 너희들도 꽤 많은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소머빌 제독은 홀스터의 권총을 꽉 쥐었다.

"휘유... 우리가 이 폭탄을 실전에서 처음 써 보는 거라고?"

"수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험을 했을 때에는 5m 정도의 철근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 폭격기는 꽤 마음에 드는데? 이런 폭탄을 싣고 다닐 수 있다는 것 만 해도 대단하잖아! 이런걸로 영국 놈들의 기지 활주로를 쾅! 하고 날려버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폭격대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날아올라 스페인 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로서 융에’ 폭탄을 실은 이 폭격대는 Fw200을 마개조해 5톤짜리 폭탄을 실을 수 있도록 만든 기체를 끌고 지브롤터로 향했다. 지브롤터의 암반 아래 있는 기지와 함대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도록.

한스-울리히 루델 중령이 이끄는 제1 특임전략폭격편대 16대는 각자 그로서 융에 한 발씩을 싣고 있었다.

총통은 세비야로 향해 출발하기 전 그와 편대원들 모두를 불러 일일이 일계급 승진시키며 계급장을 직접 달아 주었다. 살아서 돌아오면 한번 더 승진이다. 죽으면 승진은 못 해. 총통은 짧게 말하고는 나가버렸지만 총통의 흐뭇한 웃음만은 명백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가자! 살아 돌아가면 특진이다!"

"와! 특진!"

끼얏호! 대원들은 무선망에다 대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들을 막아설 영국 전투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상상 이상으로 쉬운 임무였다.

편대원들은 최소 수십 대의 영국 전투기들을 피해 거대 폭탄을 떨어트리는 임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렀으며 적은 없었다. 그저 허수아비를 때리는 임무나 다름없었다.

저만치에 흰 점이 보이는 듯 했다. 지브롤터 암벽.

폭격기 편대는 숙지한 지도를 다시금 떠올렸다. 열여섯 발의 폭탄 중 몇 발은 항구의 전함들을, 몇 발은 지하의 기지를 제거해야 했다.

조종간을 잡은 손에 땀이 잡혔다. 긴장이라기보다는 타이밍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대공포대들은 이미 다 제거되었다고 했다. 위험은 없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정확하게 맞추기만 하면 된다. 돌아가면.. 돌아가면 대령이다. 스물 다섯살에 대령이라니. 꽤나 괜찮지 않은가?

이미 그와 함께 입대한 동기들 중 몇몇은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입맞추어 주었고, 그는 이제 여기까지 와 있었다. 지금은 중령, 내일은 대령!

약혼녀가 생각났다. 살아 돌아가면 최대한 빨리 안네와 결혼해야지. 그녀의 풍성한 금발이, 희고 여린 목덜미가, 하얗고 가는 손목이 생각이 났다.

행운의 여신님, 당신의 입맞춤도 좋지만 저는 안네와 꼭 키스는 해 봐야겠습니다. 아직 손밖에 못 잡아봤다고. 여신을 그렇게 깎아내렸으면서도, 그는 허공에 쪽, 하고 짧은 키스를 날렸다. 행운의 여신이 승리의 여신에게 그를 인도하리라!

"각자 판단에 따라 투하!"

일단 돌아가는 생각만 하자. 돌아가자. 어떻게든.

열차역에서 내리면 나를 기다려주는 안네가 있겠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스페인의 날씨는 아직도 화창했지만 베를린은 꽤 추워졌을 것이다. 아마 그 위에 도타운 스웨터를 입었거나 목도리를 둘렀을 것이다.

내 이름을 그녀가 부르면... 대령 계급장을 최대한 주변에 잘 보이게 하면서 천천히 내려야 하나? 아니면 그녀에게 달려가 꽉 끌어 안아야 할까?

폭탄은 투하되었다. 무선을 통해 부하 편대원들의 보고가 하나하나 들어왔다. 명중, 혹은 빗나감. 그는 이제 그런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착륙지는 멜리야. 스페인령 모로코 식민도시였다. 지브롤터를 점령하는 대로 제해권과 제공권이 확보되면 그의 편대원들은 다시 독일로 돌아갈 것이다.

고향 집의 페인트가 말라 벗겨진 데가 많다는 것이 문득 기억났다. 그녀와의 신혼집에는 페인트를 다시 칠해야 할텐데. 넓고 푸른 잔디밭이 있는 빨간 지붕의 집. 신혼집의 지붕은 빨간 색으로 칠할 것이다. 푸른 잔디와 대비되는 빨간색으로.

편대원들이 무선망으로 환호하며 떠드는 와중에도 그는 입을 다문 채 안네와의 달콤한 신혼생활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오..."

폭격 이후 전과를 파악하기 위해 출격한 루프트바페의 관측장교는 결과물을 바라보고 낮은 감탄사를 냈다. 열여섯 발의 그로서 융에 중 반수 정도나 목표물에 명중했고, 반 정도는 다른데 가서 박혔다. 그러나 빗맞은 폭탄 한 발은 지브롤터 암벽의 날카로운 끝을 절반 정도 날려버리기도 했고, 또 다른 빗맞은 폭탄은 해일같은 파도를 일으켜 영국 전함들을 기울게 했다.

그리고 기울어진 영국 전함들을 정확히 명중시킨 폭탄 한발은 거대한 유폭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항공모함-아마 일러스트리어스-이 그 파편에 맞아 피해를 입는 것 같았다. 전함은 아마... 리나운?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전함 1척 대파, 항공모함 1척 중파.

지하에 있는 기지의 피해 상황은 그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대략 네 발 정도가 기지가 있을 만한 자리의 위로 들어가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높이 있는 비행기 안에서도 소리가 들릴 정도니 저 안에서는 말 그대로 지진을 일으켰을 것이다.

"전함 1척 대파, 항공모함 1척 중파, 순양함의 피해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H전단의 대형함들은 대부분 모래톱에 좌초하거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관측 이후 추가적인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보고를 받은 지브롤터 공략군 사령부에서는 환성이 터져나왔다. 요새의 피해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것은 스페인군 2개 군단이 확인해줄 것이다. 대서양에 나가 있는 추축 연합함대는 지브롤터의 붕괴를 확인하는 대로 바로 지중해 안으로 들어가 몰타 공략을 지원할 것이다.

몰타에 강하한 공수부대들 역시 낭보를 보내왔다. 몰타 섬의 비행장을 둔 교전에서 제7공수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활주로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지중해의 불침항모는 활주로를 상실했고 병마개는 이제 뚜껑을 따였다. 이제는 병마개를 우리가 닫을 차례다.

"그... 대형 포대들의 준비는 모두 끝났나?"

"예 각하. 구스타프 포는 세비야 역을 통과하여 지브롤터 인근까지 이미 부설된 철로선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외 중포들은 부품 단위로 분해되어 수송중입니다. 카우디요가 이에 필요한 운송수단과 노동인력을 전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계획은 간단했다. 항공폭탄으로 정리한 요새를 각종 대요새 중포들을 이용하여 정리한다. 이후, 요새 공략에는 구형이 된-그로서 융에 폭탄이 있으니-중포들은 새로 지어질 지브롤터 요새의 요새포로 전용한다.

실제 역사에서라면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동원되었겠지만 독일 남부집단군은 아직 세바스토폴은 커녕 오데사도 뚫지 못하고 있었고, 총통은 마지노선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이 중포들을 모조리 지브롤터에 박아버릴 것을 명령했다.

"가지고 있어봐야 고철밖에 되지 않는 것."

총통은 중포들을 그렇게 평했다. 전함에 실을 수도 없고, 육상에서는 쓸모가 없지. 몇 마디 코멘트를 덧붙이며 총통은 요새를 무장시키는데라도 쓰라고 명령을 내렸다.

영국에서 독일의 손으로 들어온 후 거대하고 아름다운 거포들로 무장한 채 '마레 노스트룸'의 관문으로 위엄을 떨치는 지브롤터. 제독들은 그런 미래를 꿈꾸었다.

혹여나, 만약에 ‘그로서 융에’로 지브롤터를 파괴하는데 실패했다면 예비 전력으로 사용하고.

"요새를 점령하고 나면 최대한 빨리 아군의 방어태세를 갖춰야 하네. 이쪽으로 지중해 함대나 본국함대가 오기 전에. 북대서양의 아군 함대는 언제쯤 도착한다는가?"

"대략 12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측됩니다."

몰타에서 지브롤터까지 1800km 정도. 30노트로 달린다 해도 32시간. 실제 함대 이동속도가 그 정도일수는 없으니 충분하다. 본국함대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지만 최소한 아군 함대가 몰려와 지중해 함대를 격파하는 동안 지중해 함대를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진격이다!"

롬멜은 그의 지휘차량, 맘모스 위에서 부하 장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작열하는 사막의 태양 아래 검게 탄 병사들의 얼굴에는 환희가 서려 있었다. 그 스스로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저들은 어떠할까?

"주말 저녁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먹는다. 진격하라!"

"와아아아아!!!"

그동안 진격을 위해 비축한 물자를 아낌없이 풀었다. 병사들은 각기 페르비틴 몇 알씩을 소지하고 필요시에 복용할 것을 명령받았다.

지중해 함대가 꽁지가 빠지게 달려 지브롤터와 몰타로 가는 동안 함대와 항공대의 엄호가 사라진 알렉산드리아는 손쉽게 함락당할 것이다. 20만에 이르는 추축 연합국은 보급에 쪼들려 온 15만 영국군을 짓밟을 수 있다.

우리의 승리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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