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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5화 (2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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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뚱뚱보 처칠이 내게 핫라인을 쳤다고 몰로토프가 알려왔다. 무슨 큰 일이 터진것같다는 그의 굳어진 얼굴에 나도 바짝 긴장이 되었다.

처칠은 내가 전화통 앞에 도착했다고 듣자마자 따따따따 쏘아붙였다. 통역사는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내용을 알려주었다.

[나치 놈들이 지브롤터를 공격했소. 우리 함대는 비스마르크를 추격한답시고 나가 있다가 저들에게 제대로 허를 찔리게 됐소.]

뭐...? 지브롤터?

"아니, 그게 무슨.."

[우리 정보부에서는 저들의 암호를 해독하는데 성공했고, 해독한 암호를 바탕으로 통신을 감청하며 저들이 상륙작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 수 있...]

아, 망했다. 독일에 미래인이 있다면, 그것도 2차대전사에 관심이 있는 미래인이 있었다면 앨런 튜링과 에니그마의 해독을 모를 리 없었다. 나도 뻔히 알고 있었고.

그러나 처칠은 지금까지 '나'에게, 동맹에게 자기네들이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것을 단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독소전쟁에 신경쓰기에도 바쁜 나머지 까맣게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독일은 저들이 에니그마를 해독했단 걸 알고 있었고, 단순히 암호체계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역정보를 흘리는데 사용한 것이다..!

"에니그마를 뚫기는 한 거요? 저들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오. 못해도 작년부터는."

[...]

"기존 에니그마는 5개의 로터 중 3개를 선택해 암호화를 한다면 강화 에니그마는 8개 중 4개, 혹은 그 이상을 사용하는 방식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 구조에는 차이가 없고, 각 알파벳은 자기 자신으로는 바뀌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어 블레츨리 파크의 튜링 같은 천재 수학자라면 충분히 다시 해독할 수 있을 것이오. 암호화 봄베를 개량해서 자동 연산장치를 만든다면... 흡!"

[...서기장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소?]

도와준답시고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줄줄 말하다 나를 보고 있던 통역사와 몰로토프를 보고 식겁했다.

나야 당연히 책이며 영화를 보고-이미테이션 게임은 꽤 재밌었다-알게 된 내용이지만 이걸 우리 정치국원이나 첩보부한테가 아니라 가상 적국이 될 지도 모르는 영국한테 줄줄 말해버렸다니···

그것도 독일 암호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앨런 튜링이나 블레츨리 파크 같은 영국 정보부의 최고 기밀 사항까지 처칠 앞에서 말해버렸다..!

"아니 그..."

[아무래도 좋소. 우리 정보부에 당연히 소련 스파이들도 있었을 테고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선 우리 정보 역시 필요했으리라 믿소. 알아낸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유감을 표하오.]

뭔가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울부짖는 것 같은 처칠의 욕설도.

곧 담담한 목소리로 처칠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첩보원을 통해 빼낸 정보는 아닌데 우리 첩보원이 혹시나 잡혀서 털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이거 어떡하지?

[원한다면 구식이지만 암호 해독기는 공유할 수 있소. 하지만 소련이 먼저 암호 해독에 성공한다면 그 정보는 최대한 빠르게 공유해주기를 바라오. ]

[우리는 지금 지중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소이다. 곧 동유럽 전역이 진흙탕이 되는 계절이 도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소만, 혹시 공세를 어떻게든 할 수는 없겠소?]

이게 본론이다. 소련이 영국의 정보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는 것을 아는 이상 영국이 독일과 강화하면서 우리 통수를 칠 수도 있겠지만 지중해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면 말이 다르다. 지중해를 상실하면 중동과 아시아 전역을 잃으니.

[지브롤터에 저들의 공세가 시작되었소. 우리 본국함대와 지중해 함대가 지브롤터를 구원하기 위해 가고 있지만 전황은 불명확하오.

만약 지중해가 함락된다면 우리는 이집트, 이라크와 인도를 상실하게 되오. 그리고 중립을 지키는 이란과 터키마저 저들 편을 들게 될 수 있고. 소련으로 가는 우리와 미국의 원조 물자 루트가 다 끊길 수 있소이다.]

아··· 망했다···

이란은 친독 성향의 팔레비 샤가 통치하고 있다. 영국과 소련은 19세기부터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싸움을 벌여 왔고, 이렇게 지역에 개입해 온 두 열강에 대해 이란 국민의 민족감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 쪽으로 기울면 기울었지.

실제 역사에서는 루즈벨트가 협박하고 영소가 이란을 침공해 팔레비 샤를 몰아내고 그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고 나서 이란 문제를 접어둘 수 있었다. 지금은? 아프리카 전선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이란에는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고자 했다.

"알겠소이다. 비가 내리기 전 추계공세를 통해 독일군을 후퇴시킬 계획은 우리도 하고 있었소. 지브롤터에서는... 무운을 바라오."

[고맙소이다.]

탈력감이 찾아왔다. 렌드리스의 북극해 루트는 독일 수상함대에 의해 끊길 수 있다. 태평양 루트는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 효율이 급감할 예정이다. 페르시아만 루트마저 끊기면 소련은 사방에 적만 남게 된다.

"일단 회의실로 가세나."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브롤터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어디까지 갈까?

유럽 대륙 저편에서 시작된 변화는 지중해와 중동을 지나며 증폭되어 폭풍이 되어 소련으로 밀려올 것은 뻔해 보였다.

이 시대의 중동은 그야말로 화약고라 할 수 있었다. 허약하지만 아무튼 제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붕괴는 수많은 아랍계 국가들을 만들어냈다. 각 국가를 구성하는 부족에 기반한 세력들은 자주와 패권을 위해 분쟁을 거듭했다.

그리고 패전국 오스만을 민족자결주의라는 칼을 들이 대 갈가리 찢어버린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는 제각기 중동에서 먹음직스러운 몫을 하나씩 차지했다. 영국은 괴뢰국인 이라크 왕국과 트랜스요르단 식민지를,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을 꿀꺽 삼켜버렸다.

이 안에서 일부 세력은 독일의 힘을 빌려 영국과 프랑스라는 외세를 몰아내고 아랍인들의 자주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또 일부는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알라의 왕국을 세우고 싶어 했다.

문제는 소련이 이 지역에 힘을 투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극히 적다는 것이었다.

"파시스트 놈들에게 중동이 아예 넘어가면... 우리는 제 2전선을 여는 꼴이 되오."

영국은 본토와 북아프리카, 지중해에서 독일군과 싸우느라 군사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처칠에게 중동, 즉 비시 프랑스를 지지하는 프랑스령 시리아-레바논을 함께 공격하자고 한 제안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은 승승장구, 파죽지세로 영국 지중해 함대의 모항인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진격했다. 롬멜을 막기 위해서도 부족한 병력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라? 잘못하면 지중해에 15만 병력이 갇혀버릴 수도 있는데?

무리한 부탁인 것을 알았기에 거절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러면 방법이 없었다.

"정 안된다면 카프카스에서 방어전을 펼치는 것은 어떨지..."

"그것은 안 될 말이네. 카프카스에서 한 발짝만 밀려나면 바로 바쿠가 있네. 석유 없이 전쟁을 치를 셈인가?"

의견을 내놓았던 장군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험준한 카프카스 산맥을 끼고 방어전을 펼칠 수는 있다. 산맥 이남 소련 영토, 스탈린이 태어난 조지아 등을 포기하고.

하지만 여기서 말 그대로 한치만 더 물러서면 바쿠가 나온다. 42년, 독일이 그렇게나 갈망했던 도시이자 소련의 최대 석유 산지. 히틀러는 바쿠의 유전을 모스크바보다도 더 탐내어 카프카스로 진격을 시도했다.

"우리에겐 공세작전이 필요하네. 적극적인 공세가! 중립국인 터키와 이란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어. 최소한 한 곳이라도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야!"

"..."

대부분의 장군들은 이런 문제에 무지했다. 애초에 '나', 스탈린이 카프카스와 그 인근 지역 문제의 전문가라면 전문가였지. 내가 명령을 내리면 수행할 수 있을지언정 주도적으로 국가의 대계를 짜는 능력은 저들에겐 부족했다.

"...이란은 제가 처리해 보겠습니다."

"오! 몰로토프 동지!"

몰로토프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이미 한번 이란에 렌드리스 관련해 협조를 구해 보았기에 자신하는 것일까? 물론 확신에 가득찬 표정은 아니었다.

"이란의 팔레비 황제는 지금 편을 갈아탈 지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독일이 지중해를 지배한다면 중동, 그리고 이란까지 연쇄적으로 그들의 영향력이 미칠 테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국토에 멋대로 들어와 석유를 캐 가는 영국과 미국의 행태를 결코 기껍게 여기지 않습니다. 독일은 영미보다 더 '신사적'일 것이라 기대하겠지요. 실상이 어떠하든 간에..."

몰로토프는 비교적 정확하게 이란의 정세를 꿰뚫고 있었다. 서구화-근대화를 지향하는 세력, 영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민족주의 세력, 그리고 전통 이슬람주의자들. 이 세 집단이 만들어내는 대립과 협력이 바로 중동 정치였다.

물론 셋 모두 소련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서구화를 지향하는 이들은 공산주의의 대두를 경계했다. 민족주의자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페르시아를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러시아를 싫어했다. 그리고 이슬람주의자들은 이교도보다 무신론자인 우리 소련을 증오했다.

"...설득이 가능하겠는가?"

"예. 서기장께서 일전 말씀하신 석유개발과 관련해 전폭적인 협력을 선언하겠습니다. '자원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본 바 그들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대지가 주는 축복, 석유. 시대의 흐름은 이미 석탄보다 석유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골고루 분포한 석탄에 비해, 석유는 일부 지역에서만 채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열강 국가들은 현지 정부를 무력으로 압박해 지극히 헐값에 석유를 갈취해 갔다.

소위 '칠공주' 라고 불리는 회사들. 스탠다드 오일, BP, 로열 더치 쉘 같은 회사들은 사실상 식민지화된 산유국에서 마구 석유를 캐냈다. 이후 OPEC(석유 수출국 기구)이 창설되며 열강이 조종하는 석유회사의 영향력을 축출해 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일. 아직 식민지 민족주의자들은 수탈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팔레비 황제는 석유를 국유화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그 과정의 후폭풍이 두려울 뿐이지요. 우리는 같은 산유국으로서 이들과 연대할 수 있습니다. 서기장 동지가 명령만 하시면..."

"좋아! 뜻대로 해 보게. 전권을 일임하겠네!"

실제 역사에서 팔레비 샤는 1941년 영-소의 이란 침공에 의해 축출당한다. 그 이후 즉위한 아들,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는 석유 국유화를 시도하는 수상 모하메드 모사데크를 영미와 합심해 몰아낸다.

물론, 결국 79년의 이슬람 혁명으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는 퇴위하고 망명길에 오르게 되고, 호메이니의 신정 이란이 세워진다. 석유도 국유화하는 데 성공하고. 우리는 이런 역사의 흐름을 조금 빨리 돌릴 뿐이다. 서아시아의 지역 강국, 이란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

"이란을 우리 편으로 돌릴 수 있다면... 터키에겐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겠군?"

"맡겨만 주십시오!"

뜬금없이 보로실로프가 그렇게 외쳤다. 앗... 아앗... 형이 거기서 왜...

보로실로프는 이미 핀란드에서 한번 죽을 쑤고 1년 전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던 국방장관 직에서 밀려났다. 그 자리는 티모셴코가 가지고 있다가 지금은 내가 겸임중이다.

하지만 보로실로프는 여전히 국방장관 자리를 다시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 부됸늬의 중부집단군 배후타격 작전을 입안할 때도 열심히 끼어들었고,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뤄 보세나."

시무룩한 보로실로프를 보고 있자니 땀이 삐질 흘렀다. 터키가 아무리 만만한 상대라지만, 보로실로프는... 절레절레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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