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23화
늙은 처칠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나치 독일이 '우리 시대의 평화'를 깨고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가 잡소리나 해대는 귀찮은 늙은이가 아니라 혜안을 지닌 예언자라고 생각했다. 독일이 전쟁을 다시는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체임벌린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처칠은 화려하게 전시수상에 등극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그를 고집불통에 싸움닭이지만 정작 전쟁이 났다 하면 얻어 터지고 돌아오는 바보 천치라고 생각했다.
"갈리폴리의 승리자이자 아랍의 정복자인 윈스턴 처칠 경 만만세!"
작년에 해산된 영국 파시스트 연합의 제복을 살짝 개조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다니곤 했다. 처칠과 영국 정부는 제복 착용 금지령을 통해 이들을 탄압하기는 했다.
그러나 처칠은 이미 정치적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영국 육군의 절반을 고집을 부려 프랑스에 털어넣었다가 모조리 털렸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런던이 상시적으로 폭격에 두들겨 맞기 시작했을 때부터일까?
기마경관과 헌병대를 투입해 거리에서 나타나는 불만 분자들을 마구 구타하고 체포해 끌고갈 수는 있었지만 시민들 사이에서 퍼지는 불만은 결코 제압되지 않았다.
오히려 군사 훈련이라며 열심히 뺑이치고 돌아오니, 집에 있는 것은 맛대가리 없는 배급 빵인 상황을 몇 번이나 겪은 시민들만 늘어났을 뿐. 경찰봉이 매서워도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나치 독일의 상륙에 대비한다며 차출되어 해안가에 요새를 구축하는 데 동원된 남부 해안 도시 시민들에게서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전우들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행진하니, 함께 노래를 부르라!"
"잡아라! 저놈 잡아!"
사람들은 점점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나간 몇몇은 독일이 승리하여 우랄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광활한 유럽 대륙을 지배할 수 있게 되리라고 진심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승리자가 될 독일과 함께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군림하기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협상을 통해 전쟁을 멈추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토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필요한 군대를 보존해야 한다고 몇몇 극렬 친독파들은 주장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동부전선에서 우리의 동맹인 소련이 얼마나 독일군을 잘 막아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선전했다. 정치가들은 나치가 얼마나 잔혹하고 악랄한 이들인지에 대해 끝없이 열변을 토해냈지만 시민들은 지쳐 있었다.
깡패 같고 무뢰배인 처칠이 수상 겸 국방장관으로 독설과 야유를 날리는 것에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면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날아와 삐라를 뿌리고 가는 독일 항공기들 때문일까? 아니면 히틀러가 주장하는 위대한 게르만 족의 이데올로기 때문이었을까?
히틀러는 결코 영국을 하등인종으로 깔아내려보지 않았다. 오히려 형제나 다름 없는 국가라며 협상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물론 삐라에서만.
옹고집 처칠이 장악한 공식 방송은 그런 시도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전해주지 않았으니.
"수상 각하,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비스마르크를 추격 중인 함대를 불러들이는게 어떻겠습니까?"
"국민들에게는 전과가 필요하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무리 작아도 승리, 그리고 희망일세. 침몰당한 전함의 복수, 그리고 독일의 최강 전함을 격침했다는 전과. 이 정도면 희망을 찾기에 충분하지 않겠나?"
각료들은 처칠의 응답에 침묵했다. 아무리 반대해봐야 처칠은 완강하게 고집을 부리며 비스마르크를 반드시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몇 번이나 그 꼴을 봤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처칠에겐 승리가 간절했다. 물론 각료들에게도 그랬지만, 온 국민의 욕을 혼자서 다 처먹고 있는 처칠은 특히 ‘결정적인 승리’에 집착했다.
독일이 브리튼 섬 남부 해안에 일제히 상륙하려 한다는 첩보를 봤으면서도 끝까지 본국함대의 전함과 순양함을 몇 척이나 떼어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키라 한다면... 격침시키면 어쩔 것인가?
저들이 브리튼 섬 본토를 밟았다는 것 만큼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이 있을까? 처칠에게 그나마 말이 먹히는 애틀리와 이든마저도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체크메이트에 몰리기는 했습니다. 신께서 국왕 폐하와 우리를 보우하사, 지금의 전력만으로도 어떻게든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키고 본토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래야겠습니다. 나치 놈들도 아프리카와 동부전선에서 발이 묶여 있으니..."
영국의 거대한 함대와 식민지 주둔군은 다 각자의 자리에서 발이 묶여 있었다. 이 모든 군대를 유럽으로 끌고 온다면 프랑스의 해방과 독일의 격퇴는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독일 놈들이 동부전선에 묶여 있는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군대가 있지만, 인도에 처박혀 있어 써먹지도 못하는 데 무슨 쓸모인가?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합니다만, 저들이 아일랜드의 반란분자들과 연계를 시도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혹은 인도 독립주의자들과 연계한다면.."
이든이 말을 흐리자 처칠은 얼굴을 팍 찡그렸다. 아일랜드 놈들, 오인 오'더피가 이끄는 친파시스트, 반공주의 단체인 모나건 여단은 북아일랜드와 브리튼 섬에서 테러공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홈가드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비축한 지역 경찰서의 무기고와 탄약고를 털어 무장을 확보한 이들은 북아일랜드의 국왕 충성파들을 살해하고, 런던이나 포츠머스, 맨체스터 등 중요 도시들에 기어들어와 관공서에 폭탄을 던지는 등 과격한 테러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처칠은 북아일랜드인들을 무장시키고 싶어 했지만 내각의 다른 모든 각료들이 기함하며 반대하는 바람에 그 안건은 무산되었다. 충성파 아일랜드인들을 무장시킨다면 '자체 방어'는 가능하겠지만 그들을 통제할 수 있을까?
아예 제 2차 아일랜드 내전으로 번지겠지. 이번엔 IRA-신페인 내부의 조약찬반을 둔 그들끼리의 내전이 아니라, 분노에 찬 아일랜드인들이 대동단결해 얼스터인들을 공격하는 내전.
아일랜드 전토를 회복하고자 하는 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친영-민족반역자 내지는 식민주의자인 북아일랜드인들을 증오했다. 북아일랜드인들은 더러운 반역자들인 아일랜드인들을 똑같이 증오했다.
이 상황에서 영국의 압도적인 국력으로 북아일랜드인들을 무장시켜 선제공격을 부추기는 것은 학살을 불러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면... 학살을 원하는 것인가? 독가스를 뿌려 쿠르드인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인도에 이르면 더 할말도 없었다. 인도의 독립 지도자인 네루와 간디를 감옥에 쳐넣은 것은 인도 내의 반영 여론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는데만 기여했다. 인도 독립운동의 거두인 찬드라 보스는 아예 독일에 붙어 영국을 몰아내자고 선동을 일삼았다.
"아일랜드의 반역자든 인도의 반란분자든! 모조리 짓밟아 버리라고 해!"
처칠은 늙고 이빨빠진 사자가 스스로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려 하는것처럼 포효했다. 각료들은 그 사자후의 뒤에 숨어 있는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삼류 전쟁 지휘가이자 잘 쳐줘야 이류나 될까 하는 전시 수상. 강경책, 직구밖에 던질 줄 모르는 머저리 투수.
"인도는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인도를 포기한다면 대영제국이 대영제국이 아니게 되네. 우리가 거기에 이동안 투자한 게 얼마인지 아는가? 자네도 알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지?"
"아 그렇지, 투자야 엄청나게 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우리 자제들 중 가장 똑똑하고 재기발랄한 이들을 식민지를 개발하기 위해 보내고, 우리 병사들의 피를 뿌리고, 꼴아박은건 도저히 회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지요.
인도에 주둔중인 함대를 끌어오고, 인도인들과 협상해 징병하는 대가로 독립을 약속한다면 반쯤 붕괴된 육군 역시 재건할 수 있습니다. 웨이벌 장군은 끝없이 물자를 요구하지만 독립시킨다면 우리가 그 물자를 지금 허리가 휘어가면서 댈 필요가 있겠습니까?"
처칠의 고함에 차분한 애틀리 역시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도 주둔군 사령관 아치볼드 웨이벌은 본국의 사정에는 관심도 없는 듯 끝없이 물자를 졸라대는 보고서를 보냈다. 본국이 목이 졸려 죽어가는데도.
인도는 현재 전쟁 수행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광활한 인도 대륙의 여러 소군주들은 영국의 전쟁에 딱히 협력하고 싶지 않아 했다. 쥐똥만한 세금이나 미적대면서 지불하며 치안 소요에 대해서는 영국의 전면적인 개입과 협조를 원하는 도움도 안 되는 작자들.
시크교도나 구르카족 용병들을 영국군의 인원을 채우기 위해서 쓸 수는 있어도 광활한 인도아대륙을 커버하는 데에도 부족했다.
인도 일대와 동남아의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함대는 이쯤 되면 덤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인도, 인도를 지키기 위한 수에즈, 수에즈를 지키기 위한 지중해와 지브롤터 함대까지. 오대양 육대주에 골고루 뿌린 순양함들만 있어도 당장 한 숨 돌릴만 하겠는데···
"아무튼 안 돼! 잽스 놈들이 안 그래도 중국을 혼자 다 먹어치우고 동남아에까지 손을 뻗는다면 그놈들을 누가 견제하겠나? 서태평양을 저놈들에게 다 넘겨줄 수는 없어! 열등한 황인종들이 세상을 장악하는 꼴을 보고 싶나?"
애초에 그게 안 필요하다니까... 우리가 인도를 경영하는 꼬라지를 보면 모르나? 그거 다 처먹겠다고 하다가 배 터지겠지! 애틀리는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그와 처칠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일지언정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끝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는 것으로 하고... 전투기 생산에 관해서 말입니다."
비버브룩 경 맥스 아이킨, 처칠의 정실주의 인사 중 하나로 언론재벌 출신인 주제에 전쟁물자 생산의 총책임을 맡은 군수장관이 되었지만 의외로 이 분야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그가 항공기 생산을 총괄했던 기간 동안 전투기 생산은 20% 가까이 증가했고, 야간에 가해지는 공습에도 불구하고 수치들을 꿋꿋이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툴롱과 포츠머스에서 배신당한 프랑스 정부가 독일에 전면 협력하는 바람에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었지만.
장관들은 다시 열띤 토론에 들어갔다. 전투기, 구축함, 수송선 중 어느 것을 생산해야 하겠는가? 영국은 슬슬 물자 부족 현상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유보트 격침량은 수송선이 늘어갈수록 함께 늘어갔고, 해군성은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브리튼 섬의 숨통을 붙이기 위해 물자를 수송할 수송선을 건조할 것인가, 아니면 유보트들을 잡아내기 위해 구축함을 건조할 것인가. 혹은 이 생산능력을 깎아먹는 독일 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전투기를 더 만들어야 하나?
루즈벨트는 카리브해의 해군기지를 받고 50척이나 되는 구축함들을 내주었지만, 이 구축함들은 워낙 구식이었기에 노르웨이부터 프랑스의 해안까지 위치해 있는 기지들에서 출격하는 수백 대의 유보트들을 저지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성능 부족 때문인지, 암호를 해독하면서도 유보트를 격침시키지 못하다니··· 처칠은 해군에게도 무능한 놈들이라며 툴툴댔다. 제1해군경 더들리 파운드는 너만 하겠냐? 는 표정으로 처칠을 쳐다보았지만 다들 애써 모른척 해 주었다.
독일의 에니그마는 블레츨리 파크의 수학자들이 이미 해독하고 있던 지 오래였기에 나치의 작전은 영국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밀리는 것은 사실 굴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반공주의자였던 처칠의 견제로 영국 정보국은 소련에게 독일의 암호 해독에 대한 내용을 일절 기밀로 유지한 채 전달하지 않았다.
"모르면서도 잘 막는데 왜?"
내각의 가장 과격한 일부-즉 처칠-는 이렇게 주장하며 완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이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아직도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사실 안다면 진짜 굴욕이었다. 자기네들은 모르면서도 막는데, 알면서도 못 막냐? 니들 병신이냐?
이 정보를 알려준다면 스탈린 역시 꽤나 중요한 것을 주지 않을까. 애틀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반소주의자였으며, 스탈린 식의 전체주의는 혐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좋은 파트너였다. 하나를 받는다면 반드시 하나 이상을 돌려주는.
독일의 암호체계를 통째로 알려준다면 스탈린이 무엇을 줄 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지만··· 또 흥분해 고함치는 처칠에게 굳이 그를 자극하는 빨갱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기에 애틀리는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대체 그 함대를 가지고 지나? 이걸 가지고 져?"
처칠은 여전히 떵떵 소리만 치고 있었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