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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1화 (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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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소련에는 충분히 인재들이 많았다. 물론 어디나 기회가 오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한 인재들이야 있겠지만 대숙청의 와중에 정치력이 부족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지금 시점에는 아직 발탁되지 못한 사람들은 충분히 많았다.

방금 내 집무실을 나간 코롤료프나 유전자론을 주장했으나 숙청당한 바빌로프가 전자의 대표라 할 만 했다.

그리고 후자는? 아직 스물두살 밖에 안 된 젊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같은 사람이 후자였다.

칼라시니코프가 누구냐면 바로 AK 소총의 개발자,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를 만든 그 사람이다.

1919년생으로 이제 스물한 살. 칼라시니코프는 방금까지는 전차병으로 브랸스크 전선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아직 젊은 병사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전차포 발사탄수 계측기를 발명해 표창장까지 받은 적이 있었기에 그를 찾아내는 것은 쉬웠다.

그리고 역시, 젊음은 좋은가. 내가 기억을 뒤지고 뒤져 그려내는 AK-47의 설계안을 정신놓고 탐구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자기 목숨 정도는 가볍게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절대권력자란 사실을 몰라서 저러는 것일까?

몸의 나이로만 보면 손자뻘이고, 정신연령으로는 또래라 그가 그렇게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뒤에서 도끼눈을 뜨고 그를 보는 내 경호원들에게 손을 내저어 퇴장시킨 후 그에게 의자를 하나 집어 주었다.

"아.. 감사합... 헉! 서기장 동지!"

"뭘 그렇게 놀라나? 앉아서 보게."

손수 의자를 집어다 주었단 사실에 그는 감격한 듯 했지만, 나는 애써 무관심한 척 설계안에만 집중했다. 아직 AK-47 개발을 유발한 StG44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43년에나 개발되어 49년에 채용될 7.62*39mm 탄약 역시 없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PPsh 기관총은 토카레프가 발명한 7.62*22mm 권총탄을 사용했으니 이에 대해서도 개량이 필요했다.

일단 이 과정을 단축하기 위해서라도 칼라시니코프 같은 천재적인 개발자들이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빠르게 실현시켜주어야 했다. 그리고 수많은 일선에서의 요청을 통해 개량된 과정에 대해서도 나는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었다.

그 지식들을 나는 최대한 빨리 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했다. 더 많은 젊은 군인들의 피로 대가를 치르기 전에.

"가스 피스톤 방식을 도입했으면 좋겠네만... 할 수 있겠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소총탄보다는 약간 약해서 반동을 억제할 수 있으며, 자동권총보다는 높은 탄도 신뢰성을 가지는 것을, 경기관총보다 가벼운 총에서 발사하는 것이네. 그 중간의 어딘가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가지는 자동, 말하자면 '돌격 소총' 이네."

"예? 말씀하신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렇다면 기관총보다 화력은 약하고 권총보다는 무거운 어중간한 무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 빙의한 이래 내게 말대답 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 나는 이 젊은 패기가 점점 귀여워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관총은 지금 분대나 소대 단위로 배치되는 무기가 아닌가? 기관총보다는 확실히 못하겠지만, 모든 병사가 휴대할 수 있는 준-기관총이라고 생각해 보게. 당연히 조금 무거울지라도 기관총을 모든 병사가 가지는게 화력의 상승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나?"

전장을 겪어본 병사 입장에서 그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행군할 때야 무겁고 귀찮지만 자동화기, 기관총이 있다는 게 전투할때는 얼마나 든든한지.

"그리고 기존의 설계에 집착할 필요는 없네. 우리가 지금까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소총은 굳이 600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질 필요가 없네.

실제로 보병간의 의미 있는 교전이 일어나는 거리, 대강 250m 전후의 유효사거리를 가지면 되니 개인화기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중량 제한을 맞추는 데 도움은 될 것일세. 무작정 강한 소총은 굳이 필요하지 않네."

칼라시니코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생각해낸 것이 있는지 벌써부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나는 또 이것저것 몇 가지를 주문했다. 굳이 장인이 한 땀 한땀 만드는 최고 성능의 병기가 아니라 신뢰성 높고 값싸게 양산할 수 있을것.

가급적 공간이 남도록 설계해 극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할 것. 탄의 구경은 7.62*39mm 정도가 될 것이니 반동의 수준을 상정할 때 유념하라는 것. 미래의 발전방향을 꿰고 있었기에 제시한 사실들은 개발자 입장에서 개발방향을 생각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칼라시니코프는 씨익 웃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서기장 동지. 인민들과 제 형제같은 병사들을 위해 최대한 빠르게 맡기신 임무, 달성해내겠습니다."

젊음은 좋았다. 내 앞에서 주먹을 쥐어보는 이 패기넘치는 병사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관료제의 정점으로서의 역할에 더불어 나는 내가 가진 미래 지식들을 전수해주는 역할 까지 해야했다.

개발자들이나 엔지니어들은 차라리 낫겠다. 내가 준 임무를 그들은 풍족한 지원 하에서 이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을 신뢰했기에 내가 몰아준 지원 덕분에 그들은 원 역사보다 훨씬 편하게, 어쩌면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일은 가중되고 중첩될 뿐이었다.

예컨대, 전차를 보자. 떼삼사의 개량안인 85mm 주포를 장착한 T-34/85 전차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안을 내려 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85mm 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1939형 85mm 대공포 52-K의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에 생산 라인을 조정해야 한다.

생산라인의 증설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 넓은 나라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군수물자를 총괄 관리하는 내 머리는 터질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시험단계에 불과해 당장 양산에 기여할 수 없는 85mm포를 양산하는데 공장 설비를 마구 투자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 교체되겠지만 76mm포를 당장 주지 않으면 전차 생산이 올스톱인데? 그랬다간 전선이 무너진다.

그나마 가장 명확하게 개발방향이 잡혀 있고, 많은 공장에서 생산되기에 일부를 차출해 시험해보기 편한 떼삼사도 이러한데 다른 화기들은 어떠할까.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과 첼랴빈스크에서 차체를 생산하고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172호 야포공장에서 포를 생산하고, 기관총은 또 다른 수많은 곳에서 생산하고... 이것들이 결국 모여 KV-2 전차가 된다.

그러면 어디를 돌려서 새로운 중전차-IS 전차를 개량한-를 개발해야 할까? 한 곳이라도 멈추면 지금 당장 전선에 공급할 전차의 수량이 부족해지는데?

라스푸티차라는 소강기는 곧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비전투 소모가 커지는 만큼 전선의 수요는 그다지 줄지 않을 것이다.

다만 라스푸티차 동안 그 시간을 빌어 후방의 보급을 정비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소강기가 찾아오기 전에 기획을 끝마쳐야 했고 이 작업이 내 업무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고 있었다.

"...해서 프랫&휘트니 사와의 계약은 미 국무성과 미군 참모부의 협조 하에 원만하게 예측한 범위 내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틀 전, 블라디보스토크에 미국에서 출발한 가공기계들이 도착했습니다. 저들이 요구한 원재료는 마그니토고르스크에서 원활히 준비되고 있으나 몰리브데넘강이 일부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 조치하도록 하지. 몰리브데넘강을 추가적으로 수입할 경로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나?"

"예, 각하. 그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첨부하였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다. 나는 총책임자였다. 그래서 모든 물자를 돌릴 권한이 있었으며, 동시에 필요한 데 우선순위를 내 머리로 일일이 지정해 주어야 했다.

'내' 업무 스타일을 아는 하급자들은 미리 내가 요구할 정보들을 보고서에서 찾아주기는 했으나 우선순위마저 모두 알 수는 없었다. 내가 그 모든 품목을 알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불확실성이었다.

빙틀러, 누군지 모르겠지만 히틀러로 추정되는 '미래인' 은 이미 영국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미국으로부터 물자가 도착하는 루트들 중 무르만스크로 들어오는 북방루트는 아직 바다를 질주하는 크릭스마리네 수상함대에 의해 얼마든지 잘려먹힐 수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일본이 전쟁에 돌입하면 소련으로 오는 수송선들은 격침될 수도 있었으니 지금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은 물자들을 땡겨둬야 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안 그래도 부족한 용량이 꽉꽉 들어차도록.

그나마 안정적인 페르시아만-볼가강 루트는 일단 너무 길었다. 미국에서 출발해 수에즈로 갔다가 이란으로 들어오는 루트이니 한바퀴 빙 돌아서 오는 셈이다.

또, 불확실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친독성향인 이란의 팔레비 1세를 실제 역사에선 영국과 소련이 힘을 합해 몰아냈다. 하지만 지금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정신 못 차리고 두들겨 맞고 있었다. 이란 쪽으로 병력을 돌리라는 요구는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외교관들을 보내어 이란을 달래는 한편, 일본과의 비밀 불가침조약을 어떻게든 끌고 가며 극동항로의 안전을 꾀해야 했다.

우리가 퍼주는 미국의 내부정보와 극동의 전력을 블러핑 치는 것을 믿은 일본은 소련 극동지역을 공격할 생각을 어느 정도 접어두는 듯 했지만... 아직 모른다. 히틀러, 그 자가 어떻게 개입할 지 모르니.

군수물자의 확보를 위해 다른 물자의 생산부터 철도의 수송용량, 공장 노동자의 배치에서 수입루트와 그를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조율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물론 그만큼 소련군은 착실히 강해져 가고 있었다.

또, 중요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소련군은 베를린 직전까지도 제공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연합군이 서쪽에서 꾸준히 공격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숙련된 파일럿은 부족했고 기체의 성능 역시 열등했다.

나치 독일이 끝없는 소모를 겪는 데에는 소련의 압도적인 물량이 기여하기는 했어도 그것은 훨씬 더 많은 소모를 그저 감당할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술 선진국인 미국의 협조를 받아 소련 영토에 미국제 엔진을 아예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미국 국무성에게 꽤나 많은 양의 황금을 일시불로 꽂아 준 후에야 저들은 엔진 제작사를 움직여 주었다.

물론, 그만한 가치는 할 것이라 나는 믿었다. 프랫&휘트니 사가 개발한 2250마력 18기통 R-2800 성형엔진은 미국의 걸작 항공기들이 모두 쓰던 엔진이었다.

P-47썬더볼트나 헬캣, 커세어 등 2차대전을 풍미한 미국 전투기들이 모두 이 엔진을 사용했고, 우리 역시 독일에 대항할 항공기를 만들려면 이 엔진이 필요했다.

저들에게 황금 한 더미를 꽂아주고, 전후에 시베리아의 천연가스전 개발에 대한 권리까지 약속하며 얻어낸 이 엔진으로 우리는 썬더볼트를 일부 베껴온 튼튼한 전투기를 만들기로 했다.

실제 역사에서 대전기간 소련이 사용한 엔진들은 구렸다. 아니, 그냥 비행기들이 다 구렸다. 많이 만들어서 그냥 많이 만들기는 했지만··· 전기를 무진장 잡아먹는 알루미늄 생산량이 부족해 목재로 땜빵하질 않나, 터보차저를 달려다가 폭발하질 않나.

항공산업만큼은 영미와의 전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영미와 비슷한 비행기를 생산한다면, 저쪽에서 그냥 생산 설비를 가져오고 공정을 베끼면 된다. 이렇게 단순화시킨 생산경로를 통해 총 비용과 업무량을 절감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내 업무도 하는 김에 좀 줄이고...

소련군은 철저히 소품종 대량 생산을 추구했다. 뭐, 내 한계도 있지만···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은 숫적 우위와 성능의 우위로 찍어누를 수 있다. 또, 보급 측면에서도 그쪽이 훨씬 보급소요를 줄여줄 수 있었다.

나치 독일이 했던 것처럼 별 잡스러운 무기를 종류만 여러가지 만들면 어디에 써먹나? 군수장교 머리만 터지지.

솔직히 나는 소련 장군들을 믿지 않았다. 배신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저들의 역량을. 그러니까 더 좋고 강한 무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설마, 이걸 가지고 지겠냐?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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