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19화
"...로 사료됩니다."
"좋네. 이 다음 보고는.. 몰로토프, 즈다노프. 자네 둘만 남고 모두 나가도록 하게."
정치국 회의가 끝나갈때쯤, 뚱딴지처럼 정치국원들을 내보내는 나의 지시에 배석해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보로실로프, 아무리 '나' 하고 니가 친한 친구라지만 나이도 먹을 만치 먹어놓고 그렇게 물기어린 애처로운 눈으로 날 보지 말아줄래? 그렇게 보면.. 흔들릴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흐루쇼프?"
"예 서기장 동지?"
"나가는 김에 주코프와 바실렙스키, 베리야더러 들어오도록 하게. 아마 지금 밖에 대기중일 것이네."
나가던 참석자들의 얼굴이 팍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주코프는 오만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 이후부터 계속 가장 중요한 자리들에 기용되었고, 군부를 기존에 통솔하던 보로실로프, 부됸늬, 티모셴코, 포포프 같은 사람들은 한직 혹은 아예 무보직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공공연히 주코프와 독대하고 상의해 소련군의 지휘를 결정했고. 이런 권력 균형의 급격한 변화를 기존 정치인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몰로토프와 즈다노프는 그래도 최고참 볼셰비키로 다른 당원들에게 '급' 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전선에 나가있는 주코프를 불러와 밀실 회담에 배석시키는 것은... '내' 절대적 권력이 주코프에게 쏠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총참모장 샤포슈니코프도 배제하고 바실렙스키를 불러온데다가··· 하물며 베리야까지? 정보권력을 틀어쥔 베리야?
당장 베리야가 내 귀에 날조된 반역의 음모를 속삭이기만 해도 일가친척들까지 모조리 굴라그에 끌려가고 처형당할 수 있는데 누가 베리야와 내가 가까워지는것을 반길 것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육중한 회의실 문이 닫혔다. 나가기 전까지 NKVD 요원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도청장치를 찾아 샅샅이 방을 뒤졌다.
입실하며 몸을 철저히 수색당하기까지 한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어쩐지 얼떨떨해보였다. 사실 몰로토프와 즈다노프도 그러했다.
오직 베리야만이 그 둥근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띄고 명랑한 표정으로 깍지를 끼고 차분하게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비밀스러운' 사업을 진행시키고 싶었다면 베리야가 아무래도 최적이었으니.
그 점에서, 베리야는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마치,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라고 믿는 것처럼. 정보기관장이라면 그런 당근이라도 던져 주는게 좋겠지. 나는 굳이 그 인식을 고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여기 남긴 정치국의 두 사람, 몰로토프와 즈다노프는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가 주도한 스탈린 격하 운동에서도 끝까지 '내' 편을 든 충신들이었다.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명백하게 소련군의 최고 두뇌들이었고. 베리야가 여기 낀 이유는 베리야를 통해 ‘공장’ 건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지, 인간적인 신뢰때문은 아니었다. 역사에서의 그는 권력욕에 가득 찬 새디스트였으며, 어쨌든 내 자리에 욕심은 내고 있었다.
"동지들, 그대들은...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급 지도자들이자, 내가 가장 신뢰하는 이들일세."
운을 떼자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지금부터 여기서 다뤄지는 주제들은 결코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될것이네. 결코, 결코 어떤 일이 있어도. 메모하지 말게, 쓰지 말게. 그저 머리로 생각하기만 하고, 나가서는 잊도록 하게."
참석자들은 다들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잊지 않는다면? 유출된다면? 그것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결과는 명백히 죽음 혹은 그 이상이었으니.
"나는 자네들의 '의견' 을 묻고자 하는데, 먼저... 주코프. 자네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장군이지."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하문하시지요."
명백히 그는 긴장되어 보였다. 서문이 길었기에 그런 것일까? ‘가장 신뢰하는’ 장군이라고 하자 나머지 참석자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바실렙스키는 작게 끄덕거렸고, 베리야는 그 명랑한 미소에 금이 갔다. 뭐,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지만.
"만약, 만약이지만... 우리가 흠... 엄청난 폭탄이 있다고 하지."
"예? 엄청난 폭탄 말이십니까?"
모든 참석자들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 되었다. 엄청난 폭탄? 폭탄 한 발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세르비아인 청년의 손에 들린 권총탄 한 발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것을 똑똑히 지켜본 이상, 폭탄 하나에 그런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베리야 역시 ‘공장’ 건설에 대한 내용은 자기가 진행했기에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폭탄을 만들기 위한 공정이었다는 것은 몰랐는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엄청난 폭탄이지. 위력은... 중간 규모의 도시 하나를 한 방에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위력이라고 하세. 우리의 폭격기 한 대가 쭉 날아가, 이 폭탄 한 발을 떨어트리면 파쇼 놈들의 도시 하나를 아예 몇 년간은 쓰지도 못하게 날려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나. 그렇다면 자네는 이걸 어떻게 활용하겠나?"
주코프는 내 질문에 즉답을 회피하고 눈을 감고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다들 필사적으로 생각을 짜내는 듯 했다.
"서기장 동지,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 엄청난 폭탄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몇 개쯤 있는 것입니까?"
주코프가 질문했다. 흠, 이렇게 이야기 해주어도 되려나?
"그 폭탄을 보유하는 시점으로부터... 1년, 못해도 6개월 정도는 우리만이 그 폭탄을 가지고 있을 걸세. 1년이 지나면 미국 역시 그 폭탄을 가지게 될 테고. 독일은.. 독일은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우리가 '폭탄 우위' 를 가지는 것은 최소한 6개월이네. 6개월동안 5~6개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자신이 상상한 이상으로 구체적인 답변이 돌아오자 참석자들의 머리가 굴러가는 속도가 들리는 듯 하도록 그들은 답변을 생각해내는 듯 했다.
"제가 만약 그 폭탄의 용처를 결정할 수 있다면, 서기장 동지. 그렇다면 저는 참수 작전에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참수 작전이라?"
바실렙스키가 마침내 답변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두들 흥미롭게 그의 제안을 듣기 시작했다.
"예 각하. 현재 붉은 군대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나치 독일의 파쇼 군대입니다. 도시 정도 규모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고 하셨으니, 그들의 야전 군을 날려버리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인 작전이 아닐 듯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중추이자 신경이나 다름 없는 최고 수뇌부를 일격에 폭탄 한 발로 날려버리고 남은 군대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항복하겠는가? 수뇌부가 없어졌다고?"
이번엔 주코프가 대답했다. 사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바실렙스키가 내놓은 의견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아마, 그럴 공산은 있습니다. 일단 저들의 정치적 수뇌가 위치한 베를린과 군사적 수뇌들이 위치한 쾨니히스베르크, 이 둘은 모두 저들의 핵심 산업 도시입니다. 이 핵심 산업도시를 폭탄 단 한 발로 폐허로 만든다면... 전쟁을 수행할 역량과 인력, 그리고 의지를 모두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주코프 장군의 의견이 옳습니다. 만약 베를린과 쾨니히스베르크로 안 된다면, 영국을 거쳐 루르 지역이나 라인란트 일대의 대도시들을 폭격할 수 있습니다.
그 도시들에게 기존 폭탄들로 전략폭격을 가하는 것은 아군의 폭격기들로는 역부족이지만, 서기장 동지께서 말씀하시는 '엄청난 폭탄' 이라면 이것을 가지고 전투기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고도를 날아 폭탄만 떨어트리고 탈출하는 방식을 사용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호오? 역시 명장들은 명장들인가.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실제 역사에서 원자폭탄이 쓰인 방식을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생각해내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미국만한 생산력이나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그만한 폭격기를 만드는 것은 아직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도 그 점을 지적해낼 수 있었다. 사실 내 생각에는 그냥 미국에서 곧 개발될 B-29를 몇 대 얻어오면 될 것 같았지만···
아무튼 B-29는 아직 없다. 그게 나올 것이니 그거 쓰면 돼! 하고 끝맺을 수도 없고.
"한 가지는 유념해야 할 것이네. 그 폭탄은 사용할 수는 있지만, 사용한 이후에 꽤 큰... 후유증이 남을 것이네. 세대를 넘어, 태 속에 든 아이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어린아이들마저 그 영향을 받을 수 있지. 도덕적 지탄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네."
"서기장 동지, 저들의 기습 공격 역시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만한 행위였습니다. 아측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가혹행위까지 하는 저들이 우리를 도덕적으로 규탄이 가능하겠습니까?"
"일단, 일단 이것을 가정에 두고 진행해보도록 하게."
이번엔 몰로토프 차례였다. 베테랑 외교관 답게 전쟁에서의 활용보다는 그 이후, 국제 질서의 재편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했다.
"그 폭탄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특수한... 희소한 재료가 필요한 것입니까?"
"음, 희소한 재료가 필요하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일세."
"그렇다면 그 폭탄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세계 만방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하신 폭탄은.. 그 재료의 가격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나 도시 하나보다 비싸지는 않겠지요.
아무튼 그 폭탄 하나로 도시 하나의 인구와, 산업 능력을 모조리 증발시킬 수 있다면 폭탄이 없는 나라는 결코 전쟁에 돌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제적으로 폭탄 공격 능력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일방적인 공격에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방어선을 건설하려 해도 폭탄 한 방에 제거당할 수 있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지요.
군인들은 몰로토프의 의견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렇다, 단순한 비행기와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폭탄 한 방으로 수만 명의 군인들을 다 제거할 수 있다면 군인의 가치는 결국 그 폭탄의 몇만 분의 일이 될 뿐이다.
아무리 강병을 조련하고, 위대한 군대를 조직해도 폭탄 한 발에?
"또한 그 '재료'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문제입니다만... 재료의 산지? 가 따로 있습니까? 서기장 동지? 아니라면 종국에는 모든 나라들이 그 폭탄으로 무장하여 무장의 우위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한정되어 있다면, 특히 우리 소련의 영토 안에 많은 부분이 있다면 가장 좋겠습니다만.."
"재료의 원료 획득은 쉬우나, 그 원료를 가공하는 과정이 꽤 복잡하오. 우리 영토 안에는 그 원료의 산지는 충분히 있소.
지금 우리는 그 폭탄 원료를 가공하는.. '공장' 을 시베리아에 짓고 있고, 몰로토프 동지의 활약으로 미국에서 공장 설비에 들어가는 많은 물건들을 얻어올 수 있었지. 내가 말했던 최 중요 사안이라는 것이 이 폭탄과 관련된 것이었소."
몰로토프는 그제야 이해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듣도 보도 못한 금속들과 무슨 연필심에나 쓰는 흑연을 그렇게 많이 구해오라는 내 지시가 당연히 이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확 눈을 부릅떴다.
"아니 서기장 동지, 그렇다면 미국인들도 이 폭탄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아까 말한 것은 어떻게 들었소? 우리는 아마 미국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찍 개발할 수 있을 것이오. 첩보망에 따르면 저들은 아직 몇몇 중요한 수치들을 알아내지 못했네. 그리고... 그만한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지도 않고."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제껏 이 세상에 없었던 강력한 무기에 대한 단꿈으로 부풀어 있다가, 갑자기 그 무기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니.
마치 큼지막한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모두 약간은 시무룩해져 있었다.
"그 6개월동안 얼마만큼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네. 파쇼 놈들은 서유럽을 모두 틀어쥐었지. 원래 국경 서쪽에 있는 모든 땅이 저들의 패권 하에 들어 왔네. 그러나 주코프 장군이 말한 것처럼 참수 작전을 통해 저들을 일거에 항복시킨다면 그 모든 것을 우리 손에 넣을 수 있지 않겠나?"
가만히 있던 즈다노프가 갑자기 자기 의견을 제시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나치 파쇼들의 도시 한두개를 때려부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적대하지 않은 국가들에게 그런.. 서기장 동지의 말씀대로라면 '잔혹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미국처럼 곧 폭탄을 손에 넣은 국가들이 용납하겠습니까?"
"즈다노프 동지의 말 역시 일리가 있습니다. 비시 프랑스가 사실상 독일의 괴뢰국이라 한들 프랑스인들이 독일의 항복 이후에 또 다른 점령군일 뿐인 우리의 명령을 들으려 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무기에 대한 공포가 크다 한들, 그들에겐 뒤를 봐줄 미국이라는 아군이 곧 생길테니 말입니다.
동맹국인 영국이나 중립국인 스페인 역시 제하고, 그러고 나면 이탈리아나 발칸의 국가들 뿐인데 이들은 결국 우리의 동맹국들과 지분을 나눠야 할 수 있습니다. 발칸에 대한 소련의 수위권은 영국이나 미국이 인정할테니, 이탈리아 정도가 남습니다만..."
"결정적으로, 그 수많은 나라들의 도시들을 모조리 때려부수기엔 말씀하신 것처럼 폭탄이 충분히 많지 않습니다. 도시 하나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 쳐도, 거대 도시를 모조리 파괴하기에는 부족할 것이고...
독일 동부의 대도시만 해도 베를린, 쾨니히스베르크, 점령 하의 바르샤바, 프라하, 드레스덴, 빈,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와 부쿠레슈티에 한 방씩만 떨어트린다 하여도... 말씀하신 5~6개로는 부족할 듯 합니다."
몰로토프와 바실렙스키도 연이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베리야는 메스꺼운 그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만지작거리다 바실렙스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기 의견을 덧붙였다.
"바실렙스키 동지의 우려는 이해합니다만, 꼭 그러란 법은 없습니다."
뭐? 그렇다면 폭탄을 더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가능은 하다. 꼭 우라늄-플루토늄을 이용한 리틀보이/팻맨 식의 폭탄이 아니더라도 코발트-60을 이용한 더러운 폭탄을 온 도시에 뿌리고 다니는 방법은 있다.
언젠가 그런 것이 고안되겠지만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간인 머리 위에 핵폭탄을 떨어트리면서 방사능 물질은 안된다는 것은 지독하게 얄팍한 위선이겠지만, 실제 역사에서 쓰인 핵폭탄과 달리 더러운 폭탄은... 좀 그랬다. 아무튼.
"우리가 그 폭탄을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는 저들이 알 수 없습니다. 안다 하더라도 그걸 자기들의 도시 하나와 폭탄 하나를 맞바꾸어 가며 셀 수 있는 용기가 있겠습니까? 히틀러, 그 미치광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미 첫 공격에 죽어 없어졌을테니 말이지요."
아... 기만작전, 우리가 최소한 열 개 정도는 만들수 있다고 하면 꼭 대도시 뿐만 아니라 중견 규모 도시나 소도시들도 한 방 정도는 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자기네 도시가, 자기네들이 한번에 증발해버릴지 모르게 된 국민들이 항복을 원하게 되겠지. 나치가 패망 직전에 몰려 말했던 <승리냐 시베리아냐>... 시베리아가 불지옥보다는 낫지 않겠어?
"베를린에 한 발, 쾨니히스베르크에 한 발. 이렇게 잠시간의 간격을 주며 하나하나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항복을 종용하는 것입니다.
일시에 다수의 도시를 전 역량을 동원해 파괴할 경우 필사의 항전을 할 수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저들의 산업 시설들을 우리 손으로 망가트리는 꼴이 됩니다. 하나하나 도시를 파괴시켜 나가며 항전하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선택권만을 주면 될 것입니다. 다음 파괴될 도시는 어디냐."
베리야의 얼굴이 만면에 가득한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이 역겨운 새디스트는 '그저 가정' 일 뿐일지라도 독일 국민들 수십, 수백만이 불타 죽고 도시들이 초토화된다는 상상을 즐기는 듯 했다.
물론 나도 일본에 몇 발 정도 떨어트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죄책감을 가지지 않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즐기는 티는 차마 낼 수 없었다.
"저들에게 통보하시지요. 자, 베를린과 쾨니히스베르크는 불타 없어졌으니 다음은 어디냐? 쾰른?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뮌헨? 저들 손으로 자기들이 죽일 도시를 선택하게 하시지요.
서로 싸우다 자멸하게 될 테니. 흐흣, 흐흐흐흣, 아이쿠... 웃음이 나와버렸군요. 당장 항복하고 함대를 우리에게 인도하지 않으면 스투트가르트를 파괴하겠다! 자결하라! 아니면 후방의 너희 가족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겠다! 흐하하하하하하!"
모두들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지금쯤 한 명 정도는 깨달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에서 이미 핵전쟁의 위협에 대한 이야기들을 지긋지긋하게 들어와 바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인류를 핵전쟁에서 구출한 것은 바로 공포였다.
우리가 저들을 파괴시킬 수 있어도 나와 내 가족들 역시 같이 파멸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독일을 그야말로 갈아버릴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들 역시 우리에게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다.
상호 확증 파괴의 공포. 그 공포는 인간들을 구원했다. 하지만 공포를 모르는 자라면..?
나는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