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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5화 (15/300)

# 15

15화

주코프는 오래간만에 돌아온 드넓은 우크라이나 평원을 바라보았다.

키예프 군관구에서 극동으로 갔다가 할힌골 전투를 겪고,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책임지게 되다니.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의 앞에는 남부전구의 수많은 장교들이 도열해 있었다.

최상석에 앉아 좌중을 둘러보던 주코프의 눈이 몇몇 장군들에게 잠시 머물렀다.

남부전구에는 전 전선으로 가야 할 예비병력의 6할 이상이 집중되어 왔다. 이 지원을 바탕으로 주코프와 키르포노스는 대담한 반격 작전을 준비했다.

독일 남부집단군의 창끝, 1기갑집단을 쳐부술 반격 작전을.

서기장은 이 반격작전을 이끌 인재들로 두 명의 장군을 추천했다. 주코프는 그들과 얼마간 작전을 함께해본 바, 서기장의 안목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말리놉스키 중장! 톨부힌 중장!"

"예 각하!"

서기장은 둘을 반드시 지휘관으로 기용할 것을 요구했다. 둘은 각자 남서전선군과 남부전선군의 직할 군단장으로 보임되었고, 주코프의 기준에 따르면 기대 이상으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 주었다.

톨부힌은 땅딸하고 무뚝뚝한 인상이었으나 생긴 것과 다르게 세심하고 부하들에게 사랑받는 지휘관이었다. 주코프 그 자신이 오른팔 겸 참모로 쓰고 싶을 정도로.

루마니아와의 국경선 일대, 베사라비아 방어선의 핵심인 키시네프에서 톨부힌은 여덟 번의 독일군 대공세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공세를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예비대를 쥐어 짜내어 공세 방향으로 적확하게 투입하여 크고 작은 교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군의 우회 침투를 차단하고, 보급로를 철저하게 확보하며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솜씨는 일품이라 할 만했다.

빈약하지만 아무튼 존재하기는 하는 항공 정찰기들을 끊임없이 투입하며 적의 동태를 편집증적일 정도로 관찰하는 그의 꼼꼼함을 주코프는 높이 평가했다.

"톨부힌 중장, 그대는 새로 창설되는 제1충격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하도록 하겠소! 충격군 사령부는 현재 자포로제에서 기간 요원들을 배치한 정도이니 하급 제대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그대의 인선을 철저히 존중하도록 하겠네. 남부전구에서는 특히 내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차출하는 것을 돕겠소."

"예 각하!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후방 멀리에 그를 보내는 것은 아쉬웠다. 당장 일선에는 뛰어난 지휘관들이 부족했지만 어쩌겠는가?

주코프가 생각하기에 종심돌파의 제 1선 제대를 가장 잘 맡아줄 만한 이는 바로 톨부힌이었다. 남부전구의 2인자 키르포노스도 주코프의 이런 의견에 동의했다.

종심작전에서 1선 제대는 작전 이전 적의 공세를 견뎌내면서도 제파 돌격의 선봉으로 투입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정확한 타이밍과 위치에 과감하게 예비대를 투입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톨부힌의 1충격군은 선봉 제대로서 아직은 이론의 단계인 종심작전을 전장에 구현시켜나가야 했다. 그만큼 지휘관의 역량이 중요했다.

"좋소이다. 그 다음은.. 말리놉스키 중장!"

"예! 사령관 동지!"

"그대는 26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오. 26군은 적군의 가장 맹렬한 공세에 노출될 것이오. 미안하지만... 잘 버텨주시게."

26군은 소련 방어선의 가장 돌출된 지점이었다. 구릉과 산악지대를 끼고 있기에 방어에 적절한 지형이었지만 세 방향으로 적의 공세에 노출되어 언제라도 방어선이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기동성이 좋기는 하지만, 경무장한 산악사단들이 집중 배치되어 있어 화력 면에서도 다른 소련군 부대들보다는 열세에 있었다.

이제 말리놉스키는 이들을 데리고 방어전을 수행해야 했다. 다부진 어깨가 떨렸다. 하지만 소련 군인에게 후퇴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각하!"

말리놉스키는 방어전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적군의 공세를 파쇄하는 반격을 통해 공세를 돈좌시키고, 그때 보이는 찰나의 공백을 이용해 아군의 손상이 많은 부대를 후퇴시켜 재편하는 '기동방어' 에 그는 자질을 보여주었다.

"1충격군이 망치라면, 26군은 모루라고 할 수 있네. 적군의 1기갑집단을 상대로 1충격군과 2충격군이 공세를 펼치는 동안, 26군은 아군의 좌익을 사수해야 하는 것이지."

"반드시 방어선을 사수하겠습니다!"

클라이스트가 이끄는 1기갑집단은 키예프로 쇄도하려 했으나 소련군의 완강한 공세에 좌초되고 말았다. 지토미르라는 작은 도시와 그를 끼고 흐르는 강을 두고 독일군과 소련군은 일진 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남부집단군의 후속부대들은 그마저도 어려워 아직 200km 정도는 떨어진 채 선두부대를 후속해 진군하고 있었다. 1기갑집단의 야들야들한 옆구리를 한껏 노출시킨 채.

말리놉스키가 이끌 26군은 이제 이렇게 후속하는 부대들이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했다. 전선군 예비대를 모조리 쏟아부어서라도 지금의 방어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되었다.

26군이 후퇴하면, 1기갑집단의 옆구리를 찌르러 들어가는 1충격군과 2충격군이 오히려 측면을 공격당할테니. 아무튼 잘 무장되고 훈련받은 2개 야전군을 꽂아넣으면 틈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두 충격군이 만들어준 틈으로 가장 높은 비율로 기계화된 9군을 집어넣어 프리퍄티 습지까지 전진, 부됸늬 원수의 제1 근위기병군과 만나는 거대한 포위망을 만드는 것이 주코프가 생각한 반격 작전의 골자였다.

"마지막으로... 2충격군 사령관에는 블라소프 소장!"

"예! 사령관 각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블라소프 소장, 아니, 이제는 중장으로 승진시키도록 하겠네. 2충격군은 앞으로의 반격작전에서 아군 영토 깊숙히 진군해올 적군을 역포위하고, 섬멸하는 1.5파 역할을 할 것이오."

역포위라는 말에 블라소프의 눈이 빛났다. 블라소프는 소련 육군의 총아로 중국 국민당 군사교관을 지내고 현 북서전선군 소속 99사단을 최고의 사단으로 조련해 티모셴코 원수에게 표창장까지 받은 경력이 있었다.

주코프는 그를 불러들여 반격작전의 창끝제대를 갈고 닦는 역할을 맡기고자 했다.

블라소프는 야전부대를 조련하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국 국민당의 독일 출신 군사교관인 젝트와 팔켄하우젠이 육성해낸 최정예에 못지 않는 부대가 바로 그가 훈련시킨 부대였다. 장개석은 그를 극찬하는 편지를 소련군 총사령부에 보냈다.

스타브카의 고급 장성들은 그가 차세대 소련 육군의 지도적인 지위에 오를 것이라 예측했다. 추이코프나 바투틴처럼 중국 군사고문단 출신의 장군들은 쾌속 승진해서 고위직에 올랐기에.

물론 서기장은 그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왜일까?

주코프는 한두번 정도 그런 고민을 했다. 블라소프는 유능하고 섬세한 지휘능력을 보여주었고, 또 부하들에게 인망도 얻었다. 설마 부대를 사병화하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것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부됸늬 원수가 중부집단군을 멈추었고, 로트미스트로프는 북부집단군의 선봉을 박살냈다.

이제는 남부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어휴... 남의 전쟁에 끌려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재수 없는 헝가리 놈들도 그렇고..."

루마니아군 병사들은 툴툴대며 보초를 섰다. 저 멀리에서 소련군이 얼쩡대는 것 같았지만 총질을 몇 번 하니 금방 사라졌다. 그렇게라도 해야 혹시나 장교들에게 걸렸을 때 사주경계를 안 한다고 조인트를 까이는 일이 없지.

몇 번 쏴본적도 없는 총이라 그다지 잘 맞지는 않았다. 병사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기네들이 정예병이 아니란 것을

루마니아 군대는 내정에 개입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면서도 강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토네스쿠 장군은 실정 끝에 민심을 잃고 몰락한 카롤 2세를 몰아냈다. 그러고서는 자기의 지지세력인 철위대를 동원해 '국민 군단 국가' 를 선포했다.

물론 이런 군국화를 일반 국민들이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군대에 끌려와야 한 병사들은 더더욱.

"소련 놈들이나, 헝가리 놈들이나 똑같은 도둑놈이지. 안 그래?"

"낄낄, 너도 그러다 잡혀간다."

안토네스쿠가 집권할 수 있던 원동력은 '대 루마니아'를 국민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주변국들과의 분쟁에서 루마니아는 상당한 영토를 상실했다. 지금 루마니아 군대가 진군해 들어가는 베사라비아라던가, 불가리아에겐 도브루자, 헝가리에겐 트란실바니아 등.

독일은 안토네스쿠 정권을 지원하고, 또 소련이 빼앗아간 베사라비아를 돌려줄 것을 약속했다. 지지기반이 빈약한 안토네스쿠는 그 말에 좋다고 수십만 군대를 소련과의 전쟁에 투입했다.

급작스러운 참전으로 병사들은 대거 징병되고, 별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장으로 끌려나와야 했다.

무엇 하나 똑바로 하는 것 없으면서도 명령은 열심히 내리고 권위의식에 가득찬 빌어먹을 장교들. 우리가 그래도 가장 많은 병력을 차출한 동맹국인데 은근히 무시하는 독일 놈들. 정당한 루마니아 영토를 빼앗아간 주제에 '동맹' 이라 건드릴 수도 없는 헝가리 놈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난 그냥 이 전쟁에서 우린 빠졌으면 좋겠는데..."

"에헤이, 그래도 대세는 따라 가야지."

"쩝, 그 말도 맞네."

발칸에는 이미 추축군의 막강한 군대가 진주해 있었다. 북쪽의 헝가리와 남쪽의 불가리아는 추축국에 합류했고, 그걸 거부한 유고슬라비아는 침공당해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

크로아티아가 뜯겨나가 괴뢰국이 되었고, 세르비아인들을 주축으로 한 파르티잔들이 저항은 하고 있었지만 자기네들끼리 내분을 일으키고 있다나? 아무튼 이미 사방이 독일과 그 일당들이었다.

"이쪽으로만 안 오면 좋겠는데... 이런."

"적이다! 적이다!"

어쩐지 소련군이 얼쩡거리더니, 어느 새 수십 명의 소련군이 근처까지 와 있었다. 빌어먹을, 호각을 불자 기관총탄이 쏟아졌다.

아마 가장 가까운 초소는 헝가리군이 지키는 초소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도와줄까? 사실 남들이 보기에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굉장히 비슷했다. 국왕을 뒤로 몰아내고 군인들이 권력을 잡고 독재 정치를 펼치는 곳.

그러나 발칸 국가들은 끝없는 분쟁 속에서 서로 땅과 인구를 뺏고 뺏기느라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헝가리는 독일을 등에 업고 루마니아의 정당한 판도인 트란실바니아를 강탈했다.

루마니아가 그 땅을 돌려받기 위해 추축국에 가입했어도 아직 반환받지 못했으니 감정이 좋을 수가 있을까?

소련군은 기관총으로 참호 속에서 응사하는 두 병사를 견제하며 천천히 참호로 다가왔다.

"빌어먹을, 헝가리 새끼들은..."

"...개새끼들.."

저만치에서 헝가리군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쪽으로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그냥 소련군에게 위협사격만을 가하고 있었다. 땅을 두고 경쟁하는 루마니아는 사실상 '적국'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십수 미터 앞까지 소련군이 전진했지만, 빈약한 무장으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저들과 싸워볼 수가 없었다.

수류탄 핀을 뽑으려 손에 힘을 주었다. 한 방이라도 먹이고 가야...

"야, 그냥 그거 치워."

"뭐?"

"항복! 항복한다!"

한 병사가 초소에서 항복이라 외치며 손을 들고 일어서자 소련군은 총격을 멈췄다. 수류탄을 던지려던 병사 역시 폭탄을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헝가리군은 놀랐는지 이쪽에 총격을 가해 곧 다시 엎드려야 했지만.

"항복! 도와줘!"

"도움도 안 되는..."

두 병사는 아예 재수없는 헝가리 군에게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의아한 것 같았지만 아무튼 초소로 포복해 오더니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저기, 훙가리, 헝가리, 맞지?"

"맞아! 저 개새끼들..!"

"흐흐, 도와준다. 항복?"

항복한다고 다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소련군 병사들이 헝가리 측을 향해 기관총탄을 갈겨 대자 그들은 기겁하고 도망쳤다.

교전이 끝나자 두 루마니아 병사들은 털썩 주저앉았다. 이젠 이놈들한테 끌려가겠지. 아마 저 놈들이 우리가 탈영했다고 일러바칠 것이고. 아마 시베리아로 가려나? 억울함이 치밀었다.

"가자, 루마니아 사람, 우리 잘해준다."

"뭐?"

생각해보니 이 소련군은 더듬더듬 어눌하게나마 루마니아어로 말하고 있었다. 씩 웃는 표정이 어쩐지... 믿어보고 싶어졌다. 손을 내미는 그 병사를 붙들고 일어섰다.

"와라, 우리 좋은 사람. 노동자 만세!"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사람이란다. 빌어먹을, 캇 퉷.

초소 바닥에 침을 뱉고 병사는 일어났다. 그래, 설마 이렇게 해놓고 죽이기야 하겠어?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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