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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2화 (12/300)

# 12

12화(1941.7.21)

나치 놈들이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나는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어떻게 이겼냐? 영국인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먹었나? 아니면 독일이 뭘 더 잘 했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나는 독일군의 행동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분명 역사에 기록된 대로...

문득 뭔가가 생각났다.

"하, 왜 찾으려니까 안 보이나? 파쇼 군대... 직제... "

허겁지겁 서류를 찾으려 서류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씨, 뭐가 이렇게 많아! 이 시대는 전자문서는 커녕 컴퓨터와 핸드폰도 없는 미개한 시대였다. Ctrl+F만 해도 찾을 수 있어야 할 걸 찾으려 이 난리를 피우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급한 손짓 때문에 책상 가득 쌓여 있던 서류더미가 하나 무너져 온 집무실이 엉망이 되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발터.. 발터 모델.. 엠.. "

있었다. 그의 이름이.

방어의 사자, 총통의 소방수, 마법사의 제자, 동부전선 최고의 명장. 그를 수식할 만한 별명들은 하고 많았다. 주코프, 코네프, 로코솝스키 등 소련군의 최고 명장들이 그를 상대로 최소한 한 번씩은 패배하며 그의 수많은 별명에 한 자 더하는데 기여한 바 있기도 했다.

모스크바 앞 르제프에서 1년간 돌출부를 사수하며 230만 명에 달하는 소련군을 말 그대로 고기분쇄기처럼 갈아버렸고, 상승장군 주코프에게 인생 최대의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잘 싸우다가 신출귀몰하게 들소 작전으로 후퇴해 소련군을 끝까지 농락한 것은 그야말로 '마법사의 제자' 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독일의 몰락이 시작된 이후 중부집단군 사령관을 맡아서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시작된 소련군의 대공세를 방어해내며 독일의 패망을 몇 달이나 지연시켰다. 서부전선 총사령관으로 전임된 이후에는 마켓 가든 작전으로 공세를 거는 연합군에게 빅 엿을 먹이기도 했다.

한국에는 이름이 덜 알려졌지만 발터 모델은 그야말로 국방군 최고의 명장이었다. 히틀러가 인정한 '나의 최고 야전원수'.

그러나 분명 이 시점에는 3기갑사단장이어야 할 그는 24기갑군단장이 되어 있었다. 계급도 대장으로 원래 이 시점보다 한 계급 더 높았다.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내친 김에 다른 독일군 장군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롬멜.. 롬멜은 벌써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전역을 지휘하고 있었다. 얼씨구? 벌써 원수봉을 쥐어줬다고? 아프리카에서 대체 뭔 일이 일어난거지?

만슈타인은 실제 역사대로 56차량화군단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계급은 모델처럼 한 계급 높아져 있었다. 페르디난트 쇠르너, 로타르 렌둘릭, 파울 하우서 등 독일의 명장으로 유명했던 이들이 대부분 최일선의 핵심 군단장으로, 한 계급씩은 높아진 상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의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크게 벗어난 인사는 아니었다. 여전히 노장 룬트슈테트나 보크 같은 이들이 집단군 사령관을 맡고 최고 핵심 보직인 기갑집단 사령관 역시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내가 눈치를 못 챘지...

하지만 대전 초반기부터 공적을 세워 쾌속진급한 이들이 훨씬 더 빨리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는 포지션에 임명된 만큼-내가 소련군의 명장들에게 한 것처럼-최고위 지휘관으로도 금방 승진할 것이다!

1차 대전때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10만 명 바이마르 공화국군에도 잔류했고 그 이후도 승진을 거듭한 독일의 최정예 장교단과, 1차대전 말기에나 병사나 하급장교로 시작해 대숙청으로 고속승진해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소련군 장성단은... 그 능력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저들은 이제 날개를 달았고.. 우리는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수준이다.

"으.. 큰일났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노우볼' 은 이미 굴러가고 있었다. 41년, 42년에 걸쳐 소련은 독일에 별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 백만 단위의 병력을 상실했다. 비알리스톡과 민스크에서, 스몰렌스크에서, 키예프에서, 언급 된 네 곳에서 1백만 명에 가까운 병력이 스탈린의 사수 명령에 의해 의미없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바르바로사 직전 소련이 전선에 배치한 병력은 대략 290만. 하지만 개전 이후 6개월인 41년동안 500만을 손실한다. 기존에 있던 군대를 다 잃어버리고 새로 편성한 병력도 몇백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지금 내가 빙의해 있는 이 세계선에서는... 개전 첫 며칠간을 제외하면-그때는 사수명령과 무관한, 기습의 효과에 더 가깝다-그런 대승이 전혀 없었다!

비알리스톡과 민스크에서 30만이면... 이건 독소전쟁의 전체 사상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나 다름없다.

독일의 정예 장교단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여전히 소련의 인구는 독일보다 세 배는 많았다. 공업 능력 역시 초반에 핵심 산업지대를 눈뜨고 상실한 것도 아니고, 그걸 다 파다가 우랄에 가져다 박는 일도 없었다. 여전히 공장들은 제 위치에서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2천만 인구가 사는 서부 우크라이나도 아직 절반 넘게 지키고 있었다! 눈뜨고 뺏긴 발트, 벨라루스를 합쳐봐야 인구 1천만 수준. 우크라이나 SSR이 3천만인데 벨라루스 SSR 500만,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합쳐서 또 500만. 인력 측면에서 둘은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이에 비해 독일군의 산업 능력은.. 그다지 발전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추정되는 병력 규모는 첩보원이나 일선 병사들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감안해도 실제 역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이제서야 내가 눈치챌 정도라면... 초강력 중전차 따위나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헛짓거리는 전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노획되어 분석을 위해 올라온 3호나 4호 전차는 이 시점 독일군이 굴리고 있어야 하는 바로 그 양식이었다.

히틀러가 나처럼 빙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리한 건 내 쪽이었다. 최소한 동부전선만 놓고 본다면.

빙틀러, 꼭 빙의자가 히틀러 라는 법은 없지만.. 아무튼 빙틀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영국을 두들겨 패는 데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나' 로 인해 달라진 소련은 그가 예측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었을 것이다. 내 미래 지식들은 이미 소련을 강화하고 있었다.

자동소총이나 유탄발사기처럼 소형 보병화기부터 IS 중전차에 대한 설계개념안 같은 것들은 이미 소련 과학자들에게 주어졌다. 2차 대전에서 수천만명의 피를 흘리고서 얻었던 귀중한 군사학적, 공학적 개념들은 내가 그냥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던 방대한 밀리터리와 과학 지식들은 우랄의 비밀도시에서, '통조림' 당한 채 연구에 매진하는 수만 명의 엔지니어들과 과학자들에게 넘어갔다. 서기장의 지엄한 명령과 함께.

"여러분이 일하는 한 시간이 우리 장병들이 흘릴 피를 줄이는 데 쓰일 것이오. 연구에 더욱 매진하시오!"

이제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이제 내가 제시한 설계안을 가다듬고 실현가능하게 만들어 올 것이다..! 안 그러면 과학자용 특수 굴라그에서 그냥 일반 굴라그로 가리라는 공포에 시달릴테니. 둘이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흐흐흐.

스탈린이 만들어둔 절대 권력을 쥐고, 군부와 기술개발진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나' 와 달리 히틀러는 독일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도 못했다. 또, 자기네들끼리 충성경쟁, 영역 다툼을 벌이는 나치당의 고위급들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했다. 나처럼 빙의한 미래인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냥 일반인' 주제에 그 복잡한 역학관계를 깨고 당을 휘어잡는게 가능할까?

파벌싸움과 권력투쟁은 독일군은 비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오타쿠 돼지 괴링은 모든 날개달린 것은 자기 휘하에 있어야 한다며 해군항공대 창설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크릭스마리네의 조커가 되었을 수도 있던 그라프 체펠린은 그렇게 건선거에 처박혀 종전을 맞았다.

SS를 틀어쥔 힘러는 국방군에 대응하는 무장 세력을 가지겠다고 무장친위대를 십만 단위로 확대했다. 군대도 아닌, 준군사조직인데 군대같은 편제를 가지고 군대같은 일을 하는 조직이 생긴 것이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행정체계와 보급망이 필요했고. 육군, 무장친위대, 공군까지 기갑사단을 돌리는 군대를 상상해보라! 그놈들이 바로 독일군이다.

나치의 수뇌부는 그딴 짓이나 하면서 정작 또 현대전의 필수 요소인 총력전 태세로의 돌입은 거부했다. 43년에 가서나 괴벨스가 '총력전' 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히틀러 본인부터가 총력전의 악몽을 겪은 1차 대전 참전용사였고 1차 대전을 기억하는 독일의 대다수가 그런 전쟁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 그 자신은 42년에 소련의 산업 역량이 집중된 우크라이나와 석유가 나는 카프카스를 노리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로, 군부의 싸움밖에 모르는 장군들보다는 총력전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 자신의 한계에선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또 역사는 이미 조금 바뀌어 버렸다 한들 세상이 아예 뒤집어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히틀러가 총력전 태세를 명령하고 독일을 전쟁의 불구덩이를 질주하는 살인기계로 만들려 하여도... 독일 국민들이 그걸 순순히 따라갈 리 없었다. 1차 대전의 악몽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갑자기 3교대를 명령하는 독일 정부에 순종할까? 아니면 정권에 불만을 품을까?

대독일의 위대한 승리가 아니라 끔찍한 패전의 소식만이 동부전선에서 들려올 때에도 독일 국민들은 무익한 전쟁에 소모되고자 할까? 결코 그럴 리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독일의 패망이 가까워 오자 독일인들은 철권 통치에 짓눌리다가도 하나 둘씩 반기를 들었다.

백장미단,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모의, 고백교회와 카톨릭 저항세력들... 수백만 명이 죽고 불구가 되고 돌아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히틀러를 추종했던 이들은 돌아섰다. 독일 정권은 그들을 일일이 다 짓밟아야 했고, 발악을 통해 패배가 가까웠음을 스스로 알렸다.

소련은 그저 싸워 이기면 된다. 실제 역사의 참혹함 속에서도 우리는 승리했으니.

히틀러가 생각보다 제 정신이라 협상을 하자고 제안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전쟁의 아름다움은 오직 빠른 종전에만 있는 법. 수백만의 피가 덜 흐른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서기장 동지? 베리야 국장이 서기장 동지를 뵙고자 합니다."

"아, 들어오라 하게."

베리야는 끔찍하게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깊이 허리숙여 인사했다. 으, 편견 때문인지 나는 베리야가 정말 싫었다.

페도필리아니 새디스트니, 아내를 강간해서 결혼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항상 베리야를 따라다녔다. 아내를 강간했다는 것은 결국 공식적으로 반박이 되었으나... 나머지는 글쎄. 그런 걸 빼놓고 보더라도 잔혹한 대숙청을 이끌었다는 점은 명백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스탈린 사후의 권력투쟁에서 베리야는 정보기관의 수뇌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고, 말렌코프-흐루쇼프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룬다. 이 과두정체에서 베리야는 인기를 끌기 위해 서방과의 유화책, 내부적인 해빙 기조를 주장한다.

자기가 명령해 서방의 스파이니, 자유주의자니 혐의를 씌워 탄압할 때는 언제고 권력이 눈앞에 오니 입장을 싹 뒤집나? 권력욕에 불타는, 권력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태도가 내 경계심에 기여했다. 스탈린은 그를 꽤 믿은 듯 하지만...

"서기장 동지, 말씀하신 시설이 착공에 들어가 보고하기 위하여 방문하였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베리야는 굽실거리며 이야기했다. 이러나 저러나, 베리야는 유능했다. 카운터파트라고 할 만한 힘러보다는 확실히. 소련의 정보망을 책임지고 각종 유용한 정보를 빼오며, 전쟁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또, 지금도... 내가 명령한 일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잘 됐군. 기술자들과 죄수노동자들을 반드시 잘 단속해야 하네. 우리가 이 시설을 짓고 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되네."

"예!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구리'는 몰로토프가 미국에서 구하는 것이 거의 확정되었으니... '은' 을 생산하고 정제하는 과정이 최대한 빨리 이루어져야 하네."

"그 역시 몸과 마음을 바쳐 준비하겠습니다!"

니 몸이 아니라 죄수노동자들의 몸이겠지. 어디서 약을 팔아? 아무튼 이 정도로 빨리 준비될 줄은 몰랐다. 우랄 산맥에 공장 단위로 뜯어다 붙이는 작업은 그야말로 대 역사였겠지만... 사람과 설비 정도라면 할 만 한건가?

초반의 참패가 없었기에, 소련은 실제 역사에서처럼 있는 물자 없는 물자 다 긁어 전선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딴 짓을 할 여유가 남았다.

그 여력은 대부분 병기 개량과 증산을 위해 투입되었다. T-34의 업건, IS 중전차의 빠른 도입, 쓸만한 전투기/공격기의 개발 등등. 국방인민위가 그 분야은 전담하여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면 항상 방첩국이 제일 뛰어난 법.

'은' 만큼은 저들이 알아서는 안 되었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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