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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화 (11/300)

# 11

11화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탱크와 기름을 싣고서~

어렸을 적 부르던 동요가 절로 흘러나와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서류를 다시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억지로 기분을 업 시켜야 스탈린 그 워커홀릭 놈이 하던 일을 감당할수나 있지. 다시 뭣같아지려는 기분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이런걸 어떻게 매일 하냐..?

기분이 좋아지려고 내가 분석을 명령한 렌드리스 관련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몰로토프가 미국으로 가서 따 올수 있는 액수가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능은 할 것이다. 루즈벨트는 충분히 반독-친소적인 사람이었고 대륙에서 독일과 맞서는 소련의 가치를 잘 알았다.

우리 소련도 민주'집중'제지만 아무튼 민주주의 국가니까! 민주주의의 병기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히히힛. 내가 생산 관리 안 하고 남이 보내주는 물자를 넙죽넙죽 받아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사실 유럽 최고 깡패는 독일이었다. 소련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 대립되는 집단이고, 트로츠키같은 모험주의자들은 세계혁명을 외치고 다녔다만 스탈린 집권 이후로는 일국 사회주의를 천명하고 조용히 혼자 잘 놀았단 말이다.

폴란드를 독일과 함께 갈라먹기는 했어도 그건 폴란드가 주위 국가들은 다 패고 다니던 깡패여서 그렇고. 솔직히 소-폴 전쟁으로 내전기에 선빵까지 맞았는데 가만 둘 수 있겠는가? 그런것만 빼면 소련의 대외전략은 철저히 전쟁을 피하고 팽창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이 시대에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를 침공해서 학살하고 다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감히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를 위협? 제3세계의 민중이 압제자를 타도하게 하는 것도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러시던가.

아무튼 렌드리스 보고서는 술술 읽혔다. 전쟁 물자 생산같은 것은 일개 대학생인 내가 전혀 손대본 적도 없는 분야지만 렌드리스는 그래도 조금 알았다. 주로 외교적인 내용이고, 세세한 숫자보다는 큰 흐름이 중요했으니.

보고서는 내가 분석을 명령한 항로들을 다루고 있었다. 북극해의 무르만스크로 들어오는 루트,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을 가로질러오는 인도양 루트,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오는 태평양 루트까지. 각 항구와 이어진 철도가 얼마나 물동량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쓰고 있는데...

"당장.. 당장 쿠즈네초프 데려와! 빨리!!! 샤포슈니코프랑 바실렙스키도!"

발광하듯이 부르짖는 내 모습을 본 비서진들은 황급히 달려나가 비상 연락을 때리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서류나 보던 저 사람이 왜 갑자기 저러는 거지? 자기네 목숨줄 정도는 얼마든지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인간이 저러고 있으니 누군들 안심할까.

대놓고 눈치를 보며 나가고 싶은 티를 팍팍 내는 비서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축객령을 받은 그들은 후다닥 도망쳐 나갔다.

서류가 휘날리는 집무실에서 나는 내 의자에 푹 파묻혔다.

왜.. 왜 내가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아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쿠즈네초프, 샤포슈니코프, 바실렙스키 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앞에 공손히 시립했다.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을 대충 정리한 채 나는 쿠즈네초프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자신을 쳐다보자 당황했는지 쿠즈네초프는 꿈지럭거리며 뒷머리를 긁었다.

"자네, 비스마르크를 아는가?"

"예?"

얼빠진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직접 질문을 받지 않은 샤포슈니코프와 바실렙스키도 이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날 쳐다보았다. 쿠즈네초프는 머리를 다시 벅벅 긁더니 대답했다.

"어느.. 비스마르크 말씀이십니까? 프로이센의 수상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전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후자네. 전함 비스마르크는 언제 침몰했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여전히 쿠즈네초프는 얼빠진 대답만을 내놓고 있었다. 답답해진 내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자네는 해군 총사령관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 대체 뭐 하는 건가!"

서류뭉치 하나가 바닥에 펄럭이며 떨어졌다. 세 장군 모두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샤포슈니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서로를 바라보다 날 쳐다보았다. 바실렙스키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서기장 각하, 제가 알고 있는 한, 전함 비스마르크는 침몰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어디서 비스마르크가 침몰했다고 보고를 들으셨는지요?"

"뭐?"

입을 다물다 혀를 깨물 뻔 했다.

"전함 비스마르크는 올해 5월에 영국 놈들이 침몰시켰지 않나? 대서양에서? HMS 후드가 격침된 데 제대로 열받은 영국 놈들이 본국함대를 모조리 끌고 가서 두드려 패 침몰시킨게 아닌가?"

"올해 5월이라 하시면... 비스마르크가 그때 침몰했다뇨? 크릭스마리네의 프린츠 오이겐 함이 그때 침몰하긴 했습니다만... 그것이 아니면 영국 전함 킹 조지 5세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침몰당한 것과 헷갈리신 것이 아닙니까?"

그날. 늦은 밤까지 나는 내 집무실에서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러나 이 서류들은 조금 다른 서류들이었다. 소련의 전쟁 수행이 아니라, 나치 독일의 전쟁과 그 상세한 결과들이 모조리 기록된, 내가 아까 명령해서 만들어져 올라온 것들이었다. 연도별로 발생했던 사건들과 상세한 연표들이 대략 10년 전 것들부터 기록되어 있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쳐박혀 있던 상세한 숫자들을 어떻게든 건져 올리려고 해 보았지만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내 관심은 항상 독소전쟁, 동부전선이었지 서부전선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나는 독빠도 아니고 소빠였다. 소련의 맞수였던 히틀러의 실책에 대해서는 약간 관심이 있었어도 프랑스 '6주' 놈들이나 영국 제국주의자 놈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든 중요한 사건들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아니야... 아니야... 이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는 숫자들과 다른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덩케르크에서 안전하게 철수했어야 할 30만 명의 영국군은 기록에 따르면 3만 명도 영국으로 귀환하지 못했다.

포츠머스에서, 메르 엘 케비르에서, 툴롱에서 영국군에게 넘어가거나 자침했어야 할 프랑스 전함들은 크릭스마리네가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 은 독일군의 대공세가 아니라 소규모 견제 작전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일 공군은 대규모 피해를 입지 않고 열심히 영국 전투기들과 지금도 계속 공중전을 벌리고 있었다. 어쩐지! 우리 쪽에 공군이 너무 많더라니...

노르웨이 침공에서도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도 독일 해군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적은 손실만을 입고 영국 해군을 격파했다.

실제 역사의 노르웨이 침공에서 영국군은 항공모함 1척과 순양함 2척, 독일군은 순양함 3척이 침몰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수상함 전력을 맞교환한 독일의 전략적 패배였다.

그러나 노르웨이 침공에 대한 보고서는 영국군이 전함 1척, 항공모함 1척, 순양함 5척을 상실했고 독일군은 순양함 2척만을 잃었다고 쓰여 있었다. 이게 뭐야!

"워스파이트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HMS 워스파이트는 꽤 오래 살아남아 2차대전 최고의 수훈함이 될 정도로 잘 싸웠다. 그리고... 47년에 유지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퇴역했다. 즉, 전쟁을 모조리 살아서 버텼어야 할 최고 수훈함이 벌써 침몰했다는 것이다.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도 양상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전함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이 통상 파괴 임무를 위해 출격하는 것 까지는 비슷했지만, 여기에 호위세력들이 여럿 붙어있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후드만이 격침당하고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무사히 도망쳤어야 하지만 독일 유보트들의 어뢰 공격에 의해 프린스 오브 웨일즈마저 격침당했다. 열받은 영국 해군은 본토함대를 모조리 끌고 가 비스마르크에게 복수하려 했으나 이번엔 킹 조지 5세를 비롯한 본토함대의 주력함들을 다수 상실해버렸다.

정작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는 여기서 침몰했어야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비스마르크는 무사히 비시 프랑스의 항구인 브레스트로 귀환해 정비에 들어갔다고 쓰여 있었다.

어쩐지, 처칠의 태도가 이해가기 시작했다.

"그런 빌어먹을 소리는 입에도 꺼내지 말라고 하쇼. 아, 통역은 적절히 하시게나."

"...그렇단 말이지?"

기분나쁜 노친네 같으니라고.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으면 스피킹은 안 돼도 어설프게 영어를 알아들을 수준은 된다. 처칠이 내뱉는 'Bloody shit' 정도는 알아들었다는 말이다. 우리 통역사는 우물쭈물하며 처칠의 말을 곱게 번역해 주었다.

아마 내가 영어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겠지? 영국에서 보내주는 물자를 받아먹기 위해서 저자세를 유지했는데 갑자기 확 혈압이 치솟았다.

독일군은 북서 우크라이나에서 진격했을지언정, 남서쪽에서는 거의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어이 치고 들어와 키예프 앞에서 위협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길게 돌출부만을 형성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나 세바스토폴 같은 흑해 연안의 주요 항구들은 그래서 아직 쌩쌩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흑해 함대의 모항인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에 이르면 독일군은 이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이에 따라 우리 해군은 흑해 안에서는 깡패인 흑해함대의 전력을 이용해 루마니아의 항구인 콘스탄차를 타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여기에 혹시 쓸 수 있을까 싶어 처칠에게 황금으로 가격을 지불할테니 전함을 '임대' 해줄수 없겠느냐고 물었을 때 처칠은 발작적으로 거부했었다. 내게 쌍욕을 할 정도로.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영국 식민지와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한다면 당연히 더 소중해질 함대를 나중에 받아오느니 지금 받아오는게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한번 찔러본 나는 무안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함대가 탈탈 털렸을 줄이야..!

"영국의 해군 전력은 다음과 같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요 거점들로는 브리튼 섬의 런던과 포츠머스, 지중해의 지브롤터..."

'대영 제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였던 만큼 영국의 함대는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있는 식민지들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은 해군력을 전 세계에 투사했었다.

그 중, 영국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을 가장 먼저 포기했다. 유지할 건덕지도 별로 없는 이 섬들을 미국에 넘겨주고 독일의 잠수함을 잡아낼 구축함을 50척이나 받아 왔었다.

그러고도 영국 함대는 크게 네 개로 나눌 수 있었다. 본국과 대서양을 관할하는 본국함대, 지브롤터와 수에즈를 지키는 지중해 함대, 인도 식민지를 지키는 인도양 함대와 태평양에 배치된 극동함대까지.

이는 영국의 세계지배 전략을 그대로 반영했다. 영국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는 왕실의 진주라던 인도였다. 영국 본국을 지킬 함대인 본국함대, 인도를 지킬 인도양 함대, 둘 사이를 이어줄-수에즈 운하로-지중해 함대는 그래서 꼭 필요했다. 태평양 식민지들을 지킬 극동함대는 덤이고.

쿠즈네초프는 이런 분야에는 무지한 육군 땅개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파쇼 독일이 지금 국지적으로는 우위라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영국 왕립함대가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크릭스마리네가 프랑스 함대를 손에 넣고, 몇 번의 대승을 거두는 바람에..."

처칠은 완고한 제국주의자답게 결코 식민지들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함대를 각지에 처박아 두었고, 결코 독일이 영불해협을 넘어올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 독일은 영국 본국함대에 몇 방 강펀치를 먹였고, 여기에 더해 비시 프랑스의 해군까지 고스란히 흡수해 버렸다. 프랑스는 6주 만에 독일에게 짓밟히기는 했어도 꼴에 세계 4위의(영미일 다음으로) 해군강국이었으며 이 막대한 전력은 절치부심하고 해군을 재건하던 크릭스마리네가 꿀꺽 먹어치웠다.

그 와중에 이탈리아 해군-레지오 마리네-까지 독일 옆에 붙어있었다. 물론 이탈리아 해군은 지브롤터와 수에즈에 배치된 영국 지중해 함대에 의해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탈리아 해군을 박살내버린 타란토 공습이 이제 보니 실패해 있었다. 지중해의 격전지였던 몰타에서 영국 지중해 함대와 치고박고 개싸움을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음... 그렇다면 3대 1인 것이로군요...?"

"예, 바로 그렇습니다. 영국은 본국과 지중해의 함대만으로 세 나라의 함대와 맞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잠수함으로나 깔짝대던 독일 해군, 크릭스마리네가 본격적인 수상함 전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소련에게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개중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렌드리스였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대륙에 떨어져 있었기에 반드시 해상 수송을 통해서만 물자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항로를 독일이 마구 두들겨 팰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보트만 해도 공포스러웠는데 이젠 수상함 통상파괴까지!

지중해와 북대서양이 격전지가 된다면 렌드리스의 두 루트가 막히게 된다. 북대서양에서 스칸디나비아를 돌아 무르만스크로 들어오는 길은 이제 독일 함대가 판치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지중해를 뚫고 수에즈로 나와 남쪽에서 올라오는 인도양 루트는 지중해의 이탈리아 함대 때문에 막힐 것이고.

"이를 어찌해야 하겠는가..?"

처음으로 탄식이 나왔다. 하... 소련의 해군 전력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끽해야 1차대전 시기의 구식 전함 몇 척뿐. 그마저도 핀란드만과 흑해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는 절름발이 함대였다.

미국 해군에게 진 일본 해군에게 진 영국 해군에게 진 독일 해군에게 질 소련 해군은 도무지 뭘 해볼 수도 없었다. 앉아서 해안포대 노릇이나 할까?

"블라디보스토크로 수송해오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서기장 동지.."

"그렇겠군.."

블라디보스토크 루트는 아직 태평양 전쟁은 한참 남았기에 안전했다. 더럽게 멀어서 그렇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을 가로질러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인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오는 것이다. 아.... 내 렌드리스..!

모처럼 일찍 받아먹나 했더니.. 왜 렌드리스가 있어도 먹지를 못해! 왜!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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