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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0화 (10/300)

# 10

10화

56차량화군단장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유태-볼셰비키 놈들의 함정에 걸려버렸다. 그것도 귀중한 전차부대가!

그는 독일군이 최대한 빨리 레닌그라드로 갈 것을 주장했었다. 총통은 레닌그라드를 짓밟고, 도시의 이름을 아돌프스부르크로 개명하고 싶어했다.

"레닌그라드는 저들의 옛 수도이며, 혁명의 시작점이고 그 주위 도시구역은 빨갱이 놈들의 공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 곳에서 왜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주위 공장의 노동자들을 빨갱이들이 선동한 게 아니겠습니까?"

만슈타인은 그렇게 주장했던 것이 약간 후회가 되었다.

발트 3국의 민중은 소련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군이 소련 땅에 발을 들이자 무장 봉기를 일으켜 속속 독일군에 합류했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지역을 석권한 독일군은 오히려 발트계 자원입대자들로 인해 손실된 병력보다 더 많은 인원을 보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가장 북방에 있는 에스토니아만 남았다. 이미 독일군이 전멸시켰다 생각한 소련군 부대의 잔해들은 지연전을 펼치며 탈린으로 올라가는 독일군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4기갑집단 사령관 회프너는 에스토니아를 석권하고 최북단 항구도시인 탈린으로 갈 지, 아니면 프스코프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주력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만슈타인은 후자를 지지했고, 41기갑군단장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도 후자에 방점을 두었다.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는 것은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 있는 수입니다."

라인하르트는 회프너를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회프너는 휘하의 두 장군을 신뢰했다. 프랑스 침공에서 만슈타인의 작전에 따라 기갑군단장으로 활약했던 그는 만슈타인의 전략적 안목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혹은 총통의 말대로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려 한 것이던가.

"빨갱이들의 전쟁 수행 의지를 박살내기 위해선 레닌그라드를 함락해야 합니다.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고 혁명의 수도, 그리고 제놈들 두목의 이름이 붙어 있으니 여기를 함락시키는 것은 단순히 도시 하나 이상의 효과를 가질 것입니다.

"또한, 저들의 전쟁 수행 역량도 부수어 버릴 수 있습니다. 레닌그라드에 숨어버린 빨갱이들의 발트함대와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을 취하는 것, 이것이 레닌그라드로 진격해야 할 이유입니다!"

"습지와 프스코프 사이에는 보병으로 이루어진 조공을 투입. 습지와 삼림 사이로는 기갑으로 이루어진 주공을 투입해 후방으로 돌파하여 저들을 포위한다. 우리의 기동을 제약하는 저 호수는 역으로 저들이 기동, 탈출할 수 없도록 발목을 붙들어 줄 것이다!"

"예!"

만슈타인은 소련군의 군사적 역량을 얕잡아본 스스로를 자책했다. 개전 첫 1~2주 간 소련군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저들의 방어 전술은 졸렬했고, 지휘관들은 허둥대다가 전선에 배치된 귀중한 전력들을 줄줄 흘리듯 잃어버렸다.

그러나 몇 주만에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노련한 군인인 만슈타인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대전차포를 양익으로 펼쳐 배치하라! 궤도를 노려 기동을 멈춰!"

소련군의 전력은 결코 독일군의 그것에 비해 열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선 병사들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강력했다. Pak36 대전차포는 적군의 중전차를 저지할 수 없었다. 3호 전차도 마찬가지. 4호 전차의 7,5cm 24구경장 전차포도 근접 거리가 아니면 저들을 관통해 격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차는 통짜 쇳덩어리가 아닌 바, 저 막강한 전차들도 약점은 있었다. 전차의 무한궤도처럼 취약한 부위들은 '상냥한 도어노커'로도 때려부숴 저들을 멈춰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 전차부대에겐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삐이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익!

"슈투카다!"

하늘에서 급강하 폭격기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지상으로 쇄도했다. 한두대씩 멈춰서기 시작했던 소련군 전차들은 슈투카의 기관포탄을 피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기동했지만 카베 전차의 뻑뻑하기 이를 데 없는 조향장치로는 섬세한 기동은 불가능했다.

기관포탄은 전차의 상부 장갑을 꿰뚫고 들어가 승무원들을 학살했다. 운수가 조금 좋은 전차라면 엔진룸을 박살내고 불타는 관이 되었다. 운수가 아주 좋은 한두 명 정도는 탈출했다.

소련군 포병대의 포화는 거의 멈춰가고 있었다. 숙련도 측면에서 훨씬 우월한 독일군 포병과의 교전은 막대한 피해를 강요했다. 아군과 적군이 뒤섞인 지역에 독일군 역시 포화를 퍼붓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었지만.

5기갑사단의 전차들은 그렇게 전장에 홀로 버려져버리고 말았다. 양떼처럼 곰 앞에서 도망치던 독일군은 대오를 정비하고 양익에서 대전차포 포화를 퍼부었고, 그들이 멈춘 전차들은 슈투카들이 내려와 도살했다.

숙련된 사냥꾼이 그물을 던지고, 창질로 곰을 사냥하는 것처럼. 독일군은 침착하게 반격을 시작했다.

"파쇼 *새끼들! 2시 방향, 적 전차로 쏴!"

"사단장님! 퇴각 명령입니다!"

로트미스트로프는 이를 박박 갈았다. 가지고 있던 마지막 수류탄을 던진 그는 슈투카들이 내려꽂히는 하늘에 대고 기관총을 쏴갈겼다. 푸짐한 욕설도 함께.

"*새끼들! *미 뒈진 *년들!"

5기갑집단의 상급 제대인 북서집단군 사령부가 내린 명령은 신속하게 전파되었다. 소련군의 전차 제대는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후퇴해야만 했다.

한 대, 또 한대. 후퇴하는 와중 피해는 급증했다. 북서집단군의 가장 강력한 주먹이어야 할 5기갑사단은 이제 반쯤 부서져 버렸다. 불타는 양군의 전차들이 널려 있는 평야에는 다시 정적이 돌아왔다.

"자네는 충분히 잘 했네."

"예.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바투틴은 전과를 집계한 보고서를 읽으며 로트미스트로프를 치하했다. 대체 뭘 하고 다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깨에 흰 붕대를 둘둘 감은 그는 활활 불타는 눈을 숨기지 못했다.

"독일군이 프스코프를 우회하려는 시도는 5기갑사단의 분투로 좌절되었지. 벌어준 시간 동안 에스토니아 방면, 나르바 방면의 아군은 방어선을 정비할 수 있었네."

"희망적인 소식이로군요."

독일군은 소련군이 얼마나 더 많은 전차 전력을 숨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5기갑사단에 제대로 물려 피를 본 56차량화군단과 41기갑군단은 더 이상 피해를 감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승리한 이후에도 진격하기를 포기했다.

프스코프는 포위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가용한 전차 전력의 거의 전부를 상실하기는 했지만.

"전차는 더 생산하면 되네. 거점을 상실한다면 되찾는 데 막대한 피가 흐르겠지만. 전공은 스타브카로 보고하겠네. 잘 했어!"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이제는 전공을 보여주며 전력 보충을 요구할 때다. 서기장은 일선 사령관들에게 시간을 벌어달라고 했다. 시간이 있으면 소련군은 강해진다.

수십, 수백만 명이 징병되고 있었다. 천 단위의 전차와 만 단위의 화포가 생산되어 배치되기 시작했다. 신병들이 훈련을 받고 병기 운용을 숙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먼저 배치된 부대들의 몫.

바투틴은 북서전선군이 그 역할은 충분히 잘 했다고 평가했다. 독일군이 가진 병력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저들은 다시 한번 프스코프를 우회해 찌르려는 시도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타자수에게 스타브카로 올릴 보고서를 천천히 구술했다.

'포병간의 교전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아군의 전술 제대장들의 지휘 역시 독일군만큼 세련되지 못했고.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라지만 그 동안 흘려야 할 피가 너무 크다.'

달칵, 달칵.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젊은 사령관은 냉철하게 소련군의 약점을 분석했다. 소련군은 장비와 병력 측면에서는 독일군보다 훨씬 우월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독일군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피가 흘러야 하고.

독일군은 섬세하게 병력과 차량, 화기들을 조율해 소련군의 약점에다가 정확히 공세를 꽂아넣었다. 저들은 가용한 전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가진 것 이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빌어먹을 공군 같으니..."

"예?"

"아, 아니. 그건 쓰지 말게."

빌어먹을 공군 놈들. 아군의 파일럿들은 기량 면에서나 장비 면에서나 형편없었다. 독일군은 몇 대씩 소련기를 격추하며 에이스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탄생하고 있다고 하고 아군 비행대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만 갔다. 텅 빈 하늘에는 독일군 항공기들만이 유유히 활보했다.

제공권의 상실은 지상군의 작전 역량을 현저히 저해했다. 포격에 비하면 몇 배나 정확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어주는 슈투카들은 전장의 무게추를 독일군 편으로 돌려놓았다.

보고서를 대강 마친 그는 딱딱한 야전 의자에 깊이 기대었다. 아마 대부분의 야전지휘관들이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공포에 대해. 상부 역시 대공화기와 중대구경 대공포를 대거 생산해 배치해 주겠다고는 했지만 대공포만으론 부족했다.

지상병기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만약 대공포가 밀집한 구역이 있다면, 공군은 그저 그곳을 피해 지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모든 구역에 빽빽하게 대공포를 박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들은 약한 지점만을 골라 타격하고 유유히 귀환했다.

이것을 막으려면 전투기가 필요했다. 독일군 전투기와 비등하게 교전을 해볼 수 있는 고성능 전투기가. 전투기가 올 때까지는 아마 대공포와 병사들의 피로 저들을 막아내야 하리라.

"공군이라..."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전선에서 공군력의 열세가 큰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듯 독일군은 '전격전' 을 위해 지상공격기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었다. 일종의 공중 포병과도 같은 개념이었다. 포병의 포격이 일일이 다 가기 어려운 곳에 슈투카 같은 공격기를 투입해 쾌속 진격을 보조하는 것. 제공권이 독일 측에 있는 한 소련군은 가만히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소련은 공업력의 체급을 빠르게 불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고급 기술력의 결정체인 항공산업에 이르면 고속성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2만 대의 항공기를 배치하기는 했지만 전금속제 항공기는 소수였고, 오히려 전체가 목재로 된 항공기들까지 날아다닐 정도로.

과급기를 붙여서 고출력을 뽑아내는 기술도 연구중이었으나 아직 제대로 된 물건을 개발하지 못했다. 알루미늄같은 경금속 제련 시설도 부족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실제 역사의 독소전쟁에서 소련은 베를린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공군력에서 열세를 보여 왔다. 박박 긁어모은 자원은 직접적으로 피를 흘리는 지상군을 보조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서부전선에서 연합국이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독일을 두들겨 패 주어 그쪽으로 루프트바페가 차출되었기에 그나마 한숨 덜 수 있었을 뿐.

"들었나? 몰로토프?"

"예. 서기장 동지. 반드시 성공해 돌아오겠습니다."

몰로토프는 곧 협상단을 이끌고 떠날 예정이었다.

그의 목적지는 미국. 루즈벨트를 만나 파시스트 군대에 대항할 렌드-리스(Lend-Lease) 를 얻어내기 위해 몰로토프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워싱턴으로 향할 것이다.

루즈벨트는 친소적인 인물이었다. 다른 많은 자유세계의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그는 일찍부터 파시즘의 발호를 경계했으며,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파시즘을 견제할 것을 주장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국가 개입주의를 주창했으며, '민주주의의 병기창(Arsenal of democracy)'을 자임했다.

독소전쟁에서 미국이 지원해준 물자들은 전쟁의 흐름을 뒤집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고옥탄가 항공유와 폭격기 엔진부터 두툼한 겨울양말, 스팸까지. 소련이 주요 공업지대를 상실하고서도 독일과 끝까지 맞서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소련 인민들의 엄청난 희생에도 있었지만 미국의 지원도 한 몫을 담당했다.

실제 역사의 렌드리스는 42년, 43년에나 본격적으로 소련으로 오기 시작했지만 몰로토프는 한 시라도 빨리 지원이 주어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한 시라도 지원을 일찍 받아야 한 명의 피가 덜 흐른다. 아직 미국이 전시지원 체제에 익숙해져서 뭘 줘도 되고, 뭘 주면 안될지 깨닫기 전에 빨리 야바위를 쳐서 땡겨와야 한다.

소련이 자체 개발하지 못했던 정밀 절삭가공 기계들, 극도로 부족했던 이런 기계들은 함부로 타국에게 넘겨줘서는 안되겠지만 미국이 벌써 그걸 알고 있겠는가? 차량을 굴릴 기름을 생산할 정유 플랜트 시설, 아직은개발단계인 제트 엔진들, 전방 부대들 간의 소통을 위한 무전기와 전신선을 만들 구리, 그리고 인민들을 먹여살릴 곡식과 가축의 종자들까지!

우리가 미국에서 얻어올 수 있는 것은 끝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피를 덜 흘리게 만들 '그것' 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었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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