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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8화 (8/300)

# 8

8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의 공격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직 여름은 그 절정을 구가하고 있었고, 라스푸티차, 그리고 겨울까지는 영겁과도 같은 세월이 남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소식으론, 독일군 세 집단군의 예봉은 프스코프, 스몰렌스크, 지토미르와 키시네프라는 방어선에 막혀서 점점 꺾여고 있다고 했다. 또, 부됸늬가 지휘하는 제1근위기병군에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중부집단군의 보급라인을 한번 휘저어 놓는 데 성공했다.

"서기장 동지! 저희 기병군은 이제 민스크를 사수하는 아군을 구원하기 위해 출진하고자 합니다!"

"음... 좋소. 원수의 승리에 대한 보고는 받았소. 부디 또 한번 승리하고 돌아오시게."

"예! 서기장 동지!"

전화통 저편에서 들려오는 부됸늬의 목소리는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호탕했다. 그동안 흐리멍덩했던 그를 도저히 연상할 수 없도록. 내 옆에서 헤헤 웃으며 실없이 웃는 보로실로프를 문득 보자 그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부됸늬 원수의 영웅적인 투쟁에 대해 어떻게든 치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승리는 좋은 것이다. 더 적은 소련인들이 피를 흘리고 전쟁을 끝내는 것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 하지만 내 안의 스탈린은 약간 다른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됸늬는 적백내전시기부터 사실상 기병군을 조직해낸 인물이었다. '부됸늬 원수 찬가' 가 기병대의 비공식 군가처럼 사용되었을 정도로. 그리고 정치국은 이런 군대의 사병화, 파벌화를 극도로 혐오했다. 내 안의 스탈린 역시 걱정하듯 속삭이고 있었다. 그가 나폴레옹이 되려 한다면 어쩔 것인가?

환청을 듣는 듯한 그 목소리는 부됸늬의 전과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토론하는 자리에서 끝없이 내게 속살거렸다.

부됸늬가 민스크를 구원하려 하는 것은 스스로를 영웅적으로 포장하기 위해서야. 민스크에 고립된 아군을 구해내고 도시를 해방시킨 해방자, 기병군의 영웅이자 소비에트 연방의 대원수 세묜 부됸늬!

"민스크에 고립된 병력들을 유지하기 위해선 야밤중에 항공 수송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그렇기는 합니다. 간이 비행장을 습지대 안의 철도역 근처에 설치하고 야음을 틈타 보급에만 전념한다면... 비행장이 공격당하기 전까지는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 봐. 부됸늬는 전공과 스스로의 영광을 탐하고 있는 거잖아! 진짜 옳은 판단은... 1기갑집단이지. 남부집단군의 창끝을 꺾어야 하는데 도시에 기병대를 꼴아박겠다고?

속삭임은 '내 안의 스탈린' 이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 의심이 만들어낸 것일까. 나는 스스로가 누굴 의심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얼마간 누군가를 의심하는 내 자신을 몇 번이나 발견하면서 그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략적으로도 1기갑집단의 후방을 노리는 판단이 맞을 것 같기는 했다. 독일군의 명장 클라이스트의 1기갑집단은 지토미르와 키예프의 전면을 압박하고 있으면서 여차하면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향해 아군의 남부전선군을 삼면에서 압박해 포위, 붕괴시킬 수 있었다.

이를 견제하는 것이 여차하면 1기갑집단의 신장된 왼쪽 옆구리를 찌르고 로브노에서 이어지는 독일군의 보급 철도망을 끊을 수 있는 부됸늬의 근위기병군인데 이 근위기병군이 민스크에서 붙들리거나, 혹은 소모되어 더 이상 전략적 변수로 기능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도 부됸늬가 개인적인 공명심 때문에 그랬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숙청감이다. 지휘관이 대의가 아닌 사익을 위해 병력을 무의미하게 소진시킨 것은 중범죄라고 할 수 있었다.

부됸늬는 분명 기병 지휘관으로 뛰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시대는 기병의 시대가 아니고, 그는 면적에 비해 사람이 극히 적은 평원에서 기동전을 펼치는 데는 뛰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옥 같은 참호전에서 단련된 독일군 장교들이 축조한 방어선을 뚫는다..?

그만한 능력을 그에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니, 부됸늬가 문제가 아니라 기병이라는 병과의 문제였다. 그에게는 차량도, 중포도, 항공 지원도 부족했고 독일군 보급대가 아닌 전투부대는 셋 모두 가지고 있었다.

물론 머리로는 괜찮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주코프와 상의했을 때에도 주코프는 부됸늬의 판단-민스크를 구하러 가는-을 그렇게 박하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남부전구는 전략 예비대의 거의 대부분을 지원받은 결과 독일군의 총 공세 앞에서도 서기장 동지께서 우려하신 만큼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스몰렌스크입니다. 총참모부에서 이미 논의하였듯 파쇼군의 2기갑집단과 3기갑집단이 드네프르를 도하하기 위한 총공세를 준비하며 도하 공병인력과 장비들을 그쪽에 집중시킨다는 징후를 포착하였습니다"

음... 그런가. 하긴, 독일군의 41년 전략 목표는 이제나 저제나 모스크바였다. 그리고 모스크바 앞의 관문인 스몰렌스크가 아직 열리지 않은 이상, 스몰렌스크 공략에 더 많은 공을 들일 것 같기는 했다.

"중부 방면으로 드네프르를 도하한다 치면 남부에서는 그만한 공세를 펼칠 여력이 없게 됩니다. 드네프르만큼은 아니라 하나 드네'스트르' 역시 넓은 강이고, 남부에 지형지물이 적다 해도 수많은 하천들이 이 땅을 흐르고 있습니다. 남부전구 지휘부에서는 기갑과 병력의 기동이 가능한 교량에 대해 이미 조사하여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지역의 당 조직과 민사지원대를 통하여 적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 교량 폭파를 준비하였습니다."

역시 주코프가 이렇게 확언을 하는 것을 보니 믿음직해졌다. 도하장비라는 것을 그렇게 쉽게 많이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오, 그게 중부로 갔다면 남부의 방어선은 아직 버텨볼 만 하다.

단일 야전군으로는 가장 거대한 9군이 루마니아와의 국경선을 철통같이 점거하고 요새화했다. 산악 구릉지를 끼고, 소련군에 몇 없는 산악사단들을 배속받은 9군은 국경 근처의 큰 강인 드네스트르 강을 끼고 방어전을 펼치고 있었다. 주코프는 확신에 찬 어조로 장담했다.

"서기장 동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윽씨 주코프 대장군님! 장군님만 믿습니다! 충성 충성

'내 안의 스탈린' 도 주코프는 믿어볼 만 하다고 생각하는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마 그것조차 내가 생각해낸 것일 수도 있지만.. 독소전쟁을 사실상 총지휘해온 소련 최고의 에이스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내 옆에서 헤헤 웃으면서 비위나 맞추는 보로실로프?

아무튼 민스크를 친다는 선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아 이 팔랑이는 남자의 마음이여...

민스크는 스몰렌스크로 가기 위한 보급 거점이었다. 그리고 스몰렌스크는 모스크바로 가기 위한 거점이었다. 조국전쟁, 즉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에도 나폴레옹은 스몰렌스크를 불태워 버린 적이 있을 정도로 오래되고 중요한 도시. 스몰렌스크를 돌파하고 난 다음은 모스크바로 가는 마지막 거점이라 할 수 있는 르제프. 모델의 기동방어와 '고기분쇄기' 로 유명한 르제프였다.

스몰렌스크의 방어선을 걷어내지 못하면 모스크바로 진격해야 하는 기갑부대는 한 가닥 철도망에 의존하는 거대한 돌출부가 된다. 물론 이 도시를 가지고 있다면 그 다음 도시의 공략을 위한 보급창 노릇을 하겠지만. 그걸 못 하게 하기 위해서도 도시를 지켜내야 했다!

진격해온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해선 보급이 필요했다. 가장 효율적인 보급의 수단이 철도였던 바, 철도망을 끊어 놓는 것으로 일선 부대의 보급을 줄일 수 있었다. 부됸늬의 애초 작전 역시 그런 것이었다.

민스크를 계속 견제한다면, 혹은 오랫동안 민스크 철도망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독일의 보급선을 졸라 버릴 수 있다.

스몰렌스크를 공략하는 최소 2개 야전군 가까이 되는 병력이 산 넘고 강 건너 삥 돌아오는 철도선 하나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 보면 어느샌가 라스푸티차, 진흙탕의 계절이 오고 보급은 더욱 어려워지고 소련군은 더욱 강해져 있을 것이다.

"발사! 발사!"

"소총병은 돌격하라!"

전 전선에서 대규모 병력이 끊임없이 맞붙는 회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지금 가장 전투가 뜨거운 곳은 중부전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독소 양측의 군인들, 전략가들은 중부를 가장 핵심적인 전장으로 서슴없이 꼽았다.

"먼저, 드네프르 강을 넘는 것은 중부집단군 쪽이 더 용이합니다."

그렇다. 중부집단군은 창끝부대라고 할 수 있는 기갑집단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양적으로 본다면 대략 독일 기갑부대의 절반 가량. 그리고 드네프르 강의 상류 쪽에 가까워짐에 따라 강폭 역시 좁아 도하에 용이했다.

또한 중부를 돌파했을 때 얻는 이득 역시 더 많았다. 역사가 증명하듯.

"만약 드네프르가 도하당하고 스몰렌스크가 함락당할 경우, 독일군의 선택지는 몇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건 또 무엇인가?"

"자 일단..."

바실렙스키는 정치국원들 앞에서 지도를 펴놓고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정치국과 참모부에서 생산과 자원 분배 등의 문제가 결정되는 바, 결국 전략적 결단은 이쪽까지 올라와야 했다.

"스몰렌스크의 우익인 비텝스크는 이미 함락당했고, 이에 스몰렌스크까지 더해준다면 파시스트 군대가 모스크바로 진격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립니다. 파시스트들은 이렇게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거나..."

검은 딱지가 몇 개씩 칠판에 붙었다. 스몰렌스크 다음에는 비야즈마. 그리고 르제프.

"이렇게 중부집단군은 목표인 모스크바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일부 기갑병력을 차출해 북상하여..."

"벨리키에 류키?"

"바로 그렇습니다."

벨리키에 류키 역시 철도 거점이라 할 만한 도시였다. 이 도시의 특징이라면 북부 레닌그라드의 관문인 프스코프로 이어지는 보급망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

"벨리키에 류키가 점령당할 경우 프스코프를 막아내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북부집단군은 중부집단군의 조공일 뿐, 오히려 북부가 중부의 진격로를 열어주어야 하겠지만..."

"그건 맞는 말 같군."

그렇다. 사실 실제 역사라면 이미 프스코프는 파죽지세로 돌파당하고 레닌그라드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북부집단군은 전략 목표, 레닌그라드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중부집단군이 일분 일초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 레닌그라드로 갈 지... 아닐 것 같았다.

"나머지 선택지는 남부입니다. 드네프르 강의 교두보를 이용하여 전면의 서부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을 압박하고, 최종적으로 남하해 지토미르-키예프에서 버티는 아군을 포위할 수 있습니다."

바실렙스키의 지휘봉이 쭉 긴 호선을 그렸다. 그렇지, 그게 바로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스몰렌스크는 맥없이 돌파당해 버렸고, 히틀러는 국방군을 찍어누르고 총통 명령으로 구데리안의 2기갑집단을 남하시켰다. 이에 대해선 모스크바 점령을 지체시킨 패착이라는 주장과 소련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는 주장이 엇갈렸지만 최소한 후자는 맞는 말이었다.

기갑전의 명장 구데리안이 이끄는 병력은 쾌속하게 남하해 키예프에서 버티는 소련군을 포위 섬멸해 버렸다. 그 이후로도 키예프 포위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병력-60만 명!-이 포위당한 전투로 남아 있을 정도로 소련군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스탈린의 사수 명령과 히틀러의 진격 명령이 절묘하게 엇갈린 것이다.

나는 스탈린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장군들에게도 전략적 후퇴의 자율성을 인정해 주고, 작전에도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

"가능하겠소?"

"예! 서기장 동지!"

내가 질문하자 파블로프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정치국과 '내' 가 이미 한번 봐 준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개전 초반의 참패로 실제 역사에선 처형당했을 그는 아직까지 전선군의 사령관으로 자리를 부지하고 있었다.

물론 쿨리크의 처형을 본 바, 또 한번 패한다면 스스로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부전선군 역시 그의 명령에 따라 필사적으로 분투하고 있었고. 일단은 믿어 보는 수 밖에.

또 한번 기대를 저버린다면...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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