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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7화 (7/300)

# 7

7화

"부됸늬 원수 만세! 어머니 조국 만세!"

부됸늬가 지휘하는 1근위기병군 휘하의 12개 사단 중 정확히 절반은 부됸니 원수의 직접 지휘 하에 바라노비치의 철도 교차점과 야전 비행장을 기습했다. 나머지 절반은 민스크의 아군을 구원하기 위해 민스크로 향했다.

독일군의 정찰기들은 이미 이 지역이 후방이라고 생각했는지 쌩 하니 전방으로 날아간 지 오래였고, 후방 보급부대는 전투부대들이 자기네들을 두고 갔으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보급품의 철도와 차량간 이적에만 신경쓰고 있었다. 경비병들 역시 연이은 승리에 취했는지 안이한 태도로 사주경계에 소홀한 채 멀뚱하니 밖을 내다보다 흙바람을 말아올리며 달려오는 기병대에 대해 비명 섞인 보고를 올렸다.

"기습이다! 기습!"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소련군 기병들의 손에서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카자크 출신의 몇몇은 아예 기병도를 뽑아 들고 임시 막사들 안으로 수류탄을 던져넣은 후 화들짝 놀라 도망나온 독일 병사들의 목줄기를 베어버렸다. 최전방에 가 있는 정예 병력들과 달리 이들은 제대로 된 전쟁을 경험해본적도 없는 예비역들이나 신병들이 대다수였으며, 혹독한 훈련을 통해 단련된 소련군의 기병대와 근접전을 벌여 살아남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사방의 경계가 허술한 만큼, 정면에서 주력군이 들이치는 동안 양익으로 나머지 기병부대가 우회하여 포위, 섬멸한다. 단 몇 시간만에 독일군의 보급창은 기병사단과의 교전에서 녹아내렸고, 포위당했고, 또 섬멸당했다.

"3중대! 3중대! 응답하라!"

야전비행장과 보급소를 경비하던 경비연대의 연대장은 지휘소의 무전기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휘하 부대들에게 무전을 넣고 있었다. 이미 1중대가 주둔하던 구역에서 시뻘건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라오고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연대본부의 참모요원들과 행정병들에게까지 명령을 내려 전방 부대로 갈 보급품을 뜯어 무장시키고 내보냈다. 지금 구석에서 열심히 문서를 파쇄하고 있는 어린 당번병들 둘을 제외한다면 연대본부 안에는 그 자신밖에 없었다.

폭음과 총성이 진지를 진동했다. 포탄이 지휘소 근처에 떨어졌는지 바닥이 요동치자 문서를 파쇄하던 어린 당번병 하나는 휘청거리며 주저앉아 울먹이기 시작했다.

연대장은 받지도 않는 무전기로 통신을 시도하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괜찮다. 스몰렌스크로 가는 철도선의 절반 가량은 발트 지역의 표준궤 철도기에 아직 비텝스크 방면에 철도망이 열려 있다면 조금 더 힘들어질수는 있어도 치명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현재 아군의 상황이 적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보급품의 수량과 목적지는 부대의 현황 및 구성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중부집단군의 대강 절반 정도는 이 보급창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는 만큼, 이 부대의 보급내역이 털릴 경우 일급 군사기밀을 고스란히 내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병사! 일어서게. 관등성명은?"

"이... 이등병 프리츠 요하네스!"

"이등병 오이겐 리터!"

"빨리! 정신을 차리게. 우리가 지금 이 문서를 얼른 파기해야 더러운 슬라브 것들에게 우리의 기밀들을 넘겨주지 않을 수 있네. 빨리!"

연대장은 그렇게 병사들을 독려하고는 재빨리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장전했다. 야전비행장에 있던 항공기는 대략 수십 대 수준. 이미 개전 직후 적 비행장을 폭격해 수천 대 단위의 전과를 올린 것을 생각하면 그리 대단치 않은 손실이다. 파일럿들은 어떻게든 비행장 경비부대들이 빼돌릴 수 있겠지. 보급품을 잃고 기지를 일시적으로 손실하는 것은 독일이 지금까지 올린 승리와 비교한다면 작은 손실에 불과하다. 그는 애써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지금 이곳을 공격한 적의 규모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규모 미상, 아군 보다 수십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들은 들어왔지만 기습당한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적군을 훨씬 많게 볼 수 밖에 없다.

입술에서 비릿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경계에 소홀하여 대독일의 아들들에게 무의미한 손실을 강요했다. 상부에 이미 보고는 했지만 사령부에서도 즉시 지원할 수 있는 지원병력은 극히 소수였다. 민스크에서 시가전을 치르는 중인 중부집단군 휘하 예비 사단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들은 수십 km 밖에 있었다. 기갑병력들은 선두에서 진군해 스몰렌스크의 목전에 이르렀을테니 수백 km 밖. 어느 쪽이나 본격적인 전투사단들을 불러오려면 며칠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우라! 우라!"

지휘소 문을 열자마자 극히 가까운 곳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로 떠들다가 돌격 함성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잔혹하기로 유명한 카자크들이 잘 다루지도 못하는 권총으로 저항하던 연대 행정병 하나의 왼팔죽지를 훅 하고 갈라 버렸다. 붉은 피가 솟구치는 것이 그의 눈에도 똑똑하게 보였다. 그에겐 아들같은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발터 권총을 꽉 쥐었다. 손에 땀이 흘러 미끄러트리고 떨어트릴 것만 같았지만 아직 사격 실력이 녹슬지 않았던지 이제는 목을 베려고 칼을 치켜 든 기병의 어깨를 명중시켰다.

"날 봐라! 더러운 슬라브..."

신참 소위 시절 서부전선의 끔찍한 참호전을 몇 달 동안 구르고 굴렀었다. 처음 사람을 제 손으로 죽여 보고 토악질을 하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던 고참 하사관이 곧 날아온 총탄에 시체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라를 위해, 라며 나이를 속이고 입대했던 어린 소년이 첫 전투에서 수류탄 때문에 상이용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보았다. 그의 지난 날 군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권총의 여섯 발 탄창을 비우는 동안 두 명의 소련 기병을 낙마시킬 수 있었다. 충분히 곧, 그가 무엇을 더 해보기도 전에 기관단총이 그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독일군 계급장을 알아볼 수 있던 기병소대장은 고위 장교라는 걸 깨닫고 병사들에게 생포를 명령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연대장은 전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과는 크렘린에 보고될 것이다. 아마 독일군 사령부, 늑대굴(볼프스산체)에도 보고될 것이다. 파죽지세와도 같았던 독일군의 진격에 소련군은 작지만 효과적인 반격을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이것이 전세를 뒤집는 첫 반격이 될까? 아니면 소련군이 파멸당하는 와중 그저 파멸을 늦추는 무의미한 발버둥이 될까. 아무도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최전선으로 가는 보급품은 상당 부분 연료였다. 간단히 생각해 봐도 당연했다. 연료가 없으면 수송 차량이 굴러갈 수 없다. 수송 차량이 굴러가지 못한다면 어떤 보급품도 전달되기 어렵다. 말? 말은 분명 이 시대까지도 유용한 수송 수단이었고, 독일군은 전 전선에 걸쳐 부족한 트럭 수송을 대체하기 위해 말을 사용했지만 차량이 없는 군대는 이제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말은 오히려 연료에 해당하는 건초와 각종 물자들을 보급해 주어야 했으며 유지관리가 까다로웠다. 차량을 보조할 수는 있어도 아예 대체하기는 어려운 노릇. 전차를 굴리기 위해서든, 트럭을 굴리기 위해서든, 아니면 의외로 쌀쌀한 밤에 병사들을 따뜻하게 덥히기 위해서든 막대한 양의 연료가 전방으로 매일 보내져야 했다.

쾅!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부됸늬가 이끄는 기병부대는 습지에서 효과적인 기동을 위해 전적으로 차량을 배제했다. 심지어 122mm 곡사포도-몇 문 없기는 했지만-말 12마리를 할당해 끌게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저 많은 양의 기름을 수송할 방법도 없거니와 필요하지도 않았다. 유류와 독일군의 탄약은 그래서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아쉽게도 작전이나 보급에 관한 기밀 문서들은 다 파쇄되어 그다지 건진 것은 없지만 붙잡은 수백 명의 포로들을 심문하면 몇 가지 유용한 정보들은 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부됸늬는 보급소에서 탈취한 독일제 소시지 통조림을 원수의 의장용 단검으로 따서 하나씩 찍어 먹으며 보고를 듣고 있었다. 소시지 통조림의 국물이 흙먼지 투성이 콧수염에 묻어 꽤 더러운 꼴이었지만 하급 장교들은 그런 것 따위에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높으신 원수 동지가 굉장히 우리 아버지와 하는 게 비슷하다며 좋아할 뿐.

"움, 움.. 이거 맛있구만 그래? 정찰대는 어떤가?"

"예! 명령하신 대로 노획차량 위주로 정찰대를 편성해 사주 경계를 보냈습니다. 인근 지역에서 확인되는 적의 무장 병력은 없습니다. 다만, 정찰 항공기가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비행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몇 대의 기체들이 인근 비행장으로 가서 보고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기습 시 완벽하게 보고를 차단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럴 수 있지. 어떻게 그걸 다 차단하겠나. 최대한 빨리 이탈해 민스크 구원군에 합세하도록 하지. 그쪽에서 올라온 보고는 없나?"

순식간에 소시지 통조림 한 통을 비우고 다른 노획 통조림 깡통들을 뒤적거리는 부됸늬에게 이번에는 다른 부하 장교가 보고하기 시작했다.

"옛! 현재 보고된 바에 따르면 독일군 경비사단과 교전 중이며, 시 외곽 독일군 점거 구역의 기관총 진지를 돌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지원을 요청한다는 보고 역시 있었습니다."

부됸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관총, 그놈의 악마가 물어갈 무기 같으니라고. 참호를 파고 웅크리고 앉아 기관총만 겨냥하고 있어도 기병으로서는 돌파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광대한 전장을 휙 하고 가로질러 기동해 지나쳐 버리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방어측이 한정된 지점을 지키면 될 경우 공략의 난이도는 급상승했다.

"그쪽으로 곡사포들을 모두 지원보낼 걸 그랬군? 노획한 적군 차량의 수량은 얼마나 되나?"

"모두 58대입니다. 각하. 이중 장갑차량은 6대입니다."

58대, 모두가 장갑차량은 아니겠지만 임시로 전면에 강판을 붙여넣거나, 장갑차량을 앞세우는 등 조치를 하면 이동식 토치카 역할 정도는 톡톡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이 떠올랐다. 타찬카를 끌고 폴란드의 평원을 가로지르며 반동 폴스카 놈들을 유린하던. 이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 늙었고, 적들은 수십 톤 짜리 쇳덩어리를 끌고 평원을 대신 질주했다.

그는 여전히 전차가 기병을 결코 대신할 수 없으리란 것을 믿었다. 말은, 위대한 동물이다. 지금도 그의 애마는 옆에서 푸르릉거리며 끓어오른 피를 식히고 있었다. 그 쇳덩어리 살육 기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아름다운 짐승이다.

그러나 기관총 앞에, 전차포 앞에, 그리고 강철 장갑 앞에 말과 기수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물론 지금처럼 그들의 약점을 찾아 파고들고 또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것은 가능했다만.

"죽는다면.."

뜬금없이 보고를 받던 그가 딴 소리를 하자 부하 장교들이 모두 그에게 주목했다.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고, 낯선 이들도 있었다. 노농 적위대 시절부터 그를 따랐던 1기병연대 시절의 신참 병사는 어느샌가 사단장이 되어 있었다. 저기 시베리아 쪽에서 말을 타다 징집되어 온 듯한 젊다못해 어린, 솜털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지휘본부의 급사 노릇을 하는 당번병은 저 노인네가 무슨 소리를 하려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럴 법도 하다. 부됸늬가 활약하던 시대는 저 병사가 태어나기도 전이니.

"죽는다면, 말 위에서 죽고 싶네."

"각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됸늬는 피식 웃고 원수 제복의 주머니에 대충 처박아 두었던 파이프를 꺼내어 뒤적거렸다. 담배를 재고, 불을 붙이는 동안 부하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아니야. 내일도 아니겠지. 저... 파쇼 놈들의 살육 기계한테 찢겨서 죽고 싶지는 않아. 로지나, 저 녀석-그의 애마-도 그러고 싶진 않을 게야."

전설적인 늙은 기병대장은 이제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들이켰다. 그를 오래 따랐던 장교들은 노 원수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저 평원의 끝까지 가면 뭐가 있을까. 내 젊을 적에는 그게 그렇게도 궁금했지. 이제는 그런 곳들은 다 가 봤어. 노농적위대의 대표로 저어기 바르샤바에 가 본 적도 있고, 끝없는 숲을 지나면 나오는 거대한 우랄 산맥에도 가 봤지. 젊은 친구, 자네 마그니토고르스크에는 가 봤나?"

어린 당번병은 원수 동지가 그를 지목하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관등성명도 대지 않았지만 그런 것을 지적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우랄의 강철 도시. 마그니토고르스크의 고로는 젊은 시절의 그가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산맥의 기슭에 차르의 성보다도 거대하게 선 그 도시와 쏟아져 나오는 강철들. 서기장은 그것이 소련 산업의 피라고 표현했다.

"내가 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 말들도 곧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말은 결코 그런 공장에서 생산될 수 없다. 평원을 달리고 자유로이 풀을 뜯다가 기수가 부르면 달려와 전장으로 향할 뿐.

"뭘 그렇게 침울한가? 우리는 이제 밤에 출발할 테니 쉬어 두도록 하게. 새벽녘, 박명을 틈타 민스크를 우회해 적병을 동쪽에서부터 기습한다!"

"예 각하! 붉은 군대 만세! 부됸늬 원수 만세!"

노원수가 우렁차게 명령하자 장병들은 환호와 함성으로 답했다. 1근위기병군의 전설은 그들의 손에서 또 한줄 더해지고 있었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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