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화
프스코프는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로 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동명의 호수의 남쪽에 위치한 프스코프는 리가와 빌뉴스 등 발트의 도시들에서 오는 철도선이 모여 레닌그라드 쪽으로 올라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독일의 보급난이 시작되는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프스코프를 차지하면 러시아령 철도망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여기를 점령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북으로 가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독일이 점령한 발트 지역은 이전에 깔린 철도가 독일 철도와 호환되는 표준궤였다. 그러나 발트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소련 철도는 광궤를 사용하였기에 독일군은 보급을 위해 철도를 수리할 필요 없이 프스코프의 문 앞까지 쾌속 진군할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지역의 소련군은 개전 며칠만에 북부집단군 휘하 16군과 4기갑집단에게 짓밟혔다. 침략자인 나치에 대항해야 할 발트 지역의 주민들은 소련에 대한 적대감으로 독일군에게 철저하게 협조했다.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에서는 슬라브 민족을 운터멘셴(하등인종) 으로 간주하며 주민들을 학살했을 독일군들은 같은 게르만 인종인 발트인들과는 생각보다 잘 협력할 수 있었다.
모든 요인들이 독일의 진군을 돕고 있었다.
소련 북서전선군 사령관 니콜라이 바투틴은 프스코프 시 청사에 자리잡은 그의 사령부에서 참모들과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총사령부에서 명령을 내릴 때에는 '가급적' 이라고 표현했지만 최소 20주 가까이-라스푸티차가 올 때까지- 프스코프를 사수해야 했다.
만약 여기서 후퇴할 경우 전선은 급작스럽게 넓어지게 된다. 프스코프에서 지키고 있을 때에는 호수와 강들이 우측으로의 기동을 막아주지만 여기를 지날 경우 독일 기동집단을 위한 기동로가 활짝 열리게 된다.
발트에서 지연전을 펼치는 소련군 역시 프스코프가 돌파당하면 레닌그라드 인근으로 후퇴해야 할 것이다. 보급이 끊긴 채 포위 섬멸당하거나. 그렇게까지 몰리면 레닌그라드를 지키기 위해 광역도시권인 푸시킨, 콜피노에서 시가전을 치뤄야 할 것이고 여차하면 레닌그라드로 가는 철로 연결이 끊겨 고립당할 수도 있다.
또, 북서전선군은 후퇴한다면 지켜야 하는 곳이 두개로 늘어난다.
프스코프를 틀어막고 있을 때에는 반드시 중부의 철도 교차망인 벨리키에 류키를 뚫어야 모스크바 이북의 철도망을 열어줄 수 있다. 하지만 프스코프가 뚫리면 독일은 정면 돌파가 아니라 크게 돌아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전략적 기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이 전략적 기동을 통해 레닌그라드를 포위하던가.
이러나 저러나, 프스코프가 열릴 경우 독일은 막대한 전략적 우위를 손에 쥐게 되고, 소련은 역으로 북부의 심장인 레닌그라드를 정면에서 위협당하는 그림이 나온다.
혁명의 시발점이자 전 수도가 넘어간다면? 바투틴은 이런 결과를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8군과 11군은 요새화 작업에 차질이 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각하. 현재 8군 휘하 10소총군단과 11소총군단은 시와 시 외곽도로를 중심으로 참호를 준비하고 있으며 11군 휘하 8개 소총사단은 시 서쪽의 이즈보르스크 지역을 요새화하는 중입니다. 각하께서 명령하신 대로 충분한 대전차 화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부참모장으로 임명된 바실렙스키가 추천해준 이 참모는 굉장히 유능했다. 원래 발트 특별군관구에서 사단장을 역임했다고 하는 이 소장은 아직 3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적백내전 당시 너무 어려서 참전할수도 없었다!-어지간히 노련한 군인처럼 요새화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스타브카에서 전달된 독일군의 전투교리에 관련한 매뉴얼은 굉장히 유용했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예 각하. 저도 전달받은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전달한 내용은 별 것이 아니었지만 독일 기갑부대의 포위섬멸을 몇 번이고 얻어맞아 온
소련군에게는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겹겹이 구성된 참호와 기관총 진지, 소위 지난 대전 식의 방어진지는 보병에 대해서는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했지만 애초에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개발된 전차는 얼마든지 돌파가 가능했다.
독일군은 전차를 극한으로 활용해 포위-섬멸-진격을 반복해왔다. 소련군은 전차를 잡기 위한 무기가 일선 부대에 극히 부족했는데, 스타브카에서는 대전차 병기로 활용할 만한 여러 가지 수단들을 급조해서라도 전달해 주었다. 예컨대, 고정포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차의 포탑이라던가.
초반 KV-1 전차들의 손실은 전투에서 비롯된 파괴였다기보다는 대부분 기동계통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독일군이 가지고 있는 어지간한 대전차포로는 영거리에서조차 관통하기 어려웠던 이 중전차들은 많은 수가 후퇴하면서 생긴 기동계통 문제로 빌빌대고 있었고, 이에 대해, 총사령부는 과감한 조치를 허가했다.
문제가 많은 전차는 과감히 해체해서 필요한 부품을 뜯어 다른 전차를 수리하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멀쩡한 포탑은 땅에 파묻거나, 건물 등에 숨겨 대전차포로 전용한다. 호수와 강이 앞을 흐르기에 기동로가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이 지역에서, 독일군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정면으로 이 견고하게 축조된 방어선에 들이 받거나 소련군의 열려 있는 좌익을 향해 우회하여 포위기동을 시도하거나.
어느 쪽을 시도하든 좋았다. 소모전에 소모전을 거듭한다면 승리할 쪽은 이쪽이니까.
적의 북부집단군 선두부대는 4기갑집단의 56차량화군단이라고 했다. 군단장은 그 유명한-사실 바투틴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에리히 폰 만슈타인. 서기장은 그가 프랑스를 6주만에 끝장낸 희대의 명장이라고 평하며, 최대한의 방어를 구축할 것을 명령했다. 단 한 방울의 피라도 더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기장은 엄한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미 너무 많은 피가 무익하게 흘려졌다. 소련 병사의 피가 흐르지 않을 수는 없지만, 부득이하게 희생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땀을 흘려야 했다. 소총병들은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에도 요새화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다. 대인 참호와 대전차호를 파고, 민간인들을 소개시키는 한편 노동력을 징발해 건물들을 요새화시키는.
독일군이 그토록 자랑하는 전차부대라 해도 병사들이 곳곳에 숨어 공격하는 시가지에서 날뛸 수나 있을까? 정 시간을 끌 방법이 없다면 저들을 포격으로 폐허가 될 도시 속으로 끌어들여 박투를 벌여라. 그렇게 하면 포위섬멸은 당하지 않겠지.
서기장은 서부전선군의 참상을 두고 쓰게 웃으며 시가전을 권고했다. 북서전선군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 곳을 사수하라는 명령이었다.
스타프카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해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추축군을 약화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머릿수를 채워주는 동맹국들을 이탈시키는 데 있다는 것.
미국의 금수조치와 영국의 해군 전력 때문에 추축국은 석유를 항상 필요로 했다.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일본은 석유 산지를 차지하기 위해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동남아로 진격했고,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고 코카서스의 유전지대를 확보할 것을 명령했다.
독일이 그렇게도 갈구하는 석유의 많은 부분은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 유전지대에서 공급되었다. 또 일부분은 석탄을 액화시키는 공정을 통해 충당되었다. 즉, 소련이 남부, 우크라이나 지역을 지키고 루마니아로 진군해 항복시키거나 최소한 플로에슈티 유전지대에 전략폭격을 가해 추축국의 석유 공급을 끊는다면 히틀러의 계획을 역으로 돌려줄 수 있었다.
히틀러가 계획했던 작전,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의 자원줄을 끊어 소련을 항복시킨다는 계획은 렌드리스가 있는 소련보다는 자원을 수급할 배후지가 제약된 독일에게 더 위험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신편 부대들과 새로 생산되는 전차들, 그리고 극동에서 데려올 정예 부대들은 대부분 남부관구에 배치할 것이 결의되었다.
총참모부의 샤포슈니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코피 터지도록 근무해서 새로이 편성하는 수십 개 사단들이 남부로 열차를 타고 배치되었다. 명장 주코프와 키르포노스의 손에 쥐어진 이 병력들은 허접한 추축 동맹국 병력을 박살내고 진격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장군이 잘나면 뭐하나? 병력 수준이 처참한데.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신규 징집병력들이 후방에서 충원되어 각 군관구에서 교육을 거치고 있었으나 아직 이들이 투입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을 뿐더러, 질적으로 그다지 믿을 만 하지도 않았다. 특히 실전을 거쳐 단련된 독일군을 상대로라면.
주코프의 남부전구 총사령부는 오데사에 위치해 있었다. 키예프에 있는 키르포노스의 남서전선군 사령부와는 전신을 통해 끊임없이 통화가 오갔고 두 사령부는 긴밀한 협조 하에 방어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서부의 최대 도시인 르보프는 개전 첫주에 1기갑집단의 쾌속 진격하에 함락당하고 말았다. 1기갑집단은 순식간에 동진해 키예프로 가는 관문인 지토미르를 위협하고 있었고, 주코프 본인이 준비를 끝마치고 오데사에 부임하는 그 순간에도 지토미르에서는 1기갑집단 휘하 병력들과 소련 5군, 26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발사! 발사!"
드네프르의 지류인 테테레프 강을 끼고 저편에 대치한 독일군 병력을 향해 소련군의 포병대가 끊임없이 포를 발사했다. 소련군이 총사령부 단위에서 남부전구에 예비대를 집중하기로 했다는 것을 일선 부대의 병사들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묵직한 중포의 폭음이나 카츄샤 다연장로켓의 끔찍한 휘파람 소리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깨닫기 마련이니.
"빌어먹을, 겁나게 시끄럽구만?"
"그래도 저게 우리 편인게 다행이지 않겠나?"
소대 선임하사가 끌끌 웃으며 코를 후비적거렸다. 투덜거리던 병사는 그런 선임하사의 농에 헤헤 웃으며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도 아군의 포성만 들리는게 훨씬 나았다. 파시스트 놈들의 겁나 시끄러운 폭격기가 끼에에에엑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와서 그의 중대 옆 소대 위에 존나 큰 폭탄을 떨어트리고 기관총을 퍼붓는것을 보았기때문에 더더욱. 이름이... 슈투카랬나?
독일군 항공기들은 마치 제 집 안방처럼 소련의 푸른 하늘을 설치고 다녔다. 아군 전투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밥도 못 먹은 개새끼마냥 비실비실하니 기어나와서 독일군 전투기의 격추수만 올려주고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제공권이 저쪽 손에 넘어가고 나면 끔찍한 슈투카들이 몰려와 소련군을 찢어발겼다. 하늘에서 내리찍는 공포 앞에선 아무리 용감한 병사들이라 해도 별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제 2소대였던 그의 소대는 1소대가 되었다. 1소대는 사라졌기 때문에. 1소대의 정치장교는 꽤 좋은 사람이었지만 폭격이 지나간 후 그의 남은 부분은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 두어개 뿐이었다. 그의 TT-33 권총은 꽤 탐이 나는 물건이었지만 굳이 고인이었던 그... 것을 뒤지고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갓 판 참호에서는 흙내와 풀 파헤친 풋내가 큼큼하게 올라왔다. 참호를 파느라 더러워진 옷도 털 겸, 찌뿌둥한 몸도 일으킬 겸 참호에서 훌쩍 올라와 활짝 기지개를 펴는 그의 눈에 저 하늘 위 파쇼놈들의 정찰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군측 포병대를 타격하기 위한 항공정찰을 하는 걸까? 제발 이 지역만은 그 빌어먹을 끼에엑거리는 폭격기가 안 왔으면 좋겠는데.
아군 대공포들이 정찰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사격을 시작했고, 정찰기는 어느샌가 저 편으로 멀리 사라졌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배급이 좀 잘 나왔으면, 모든 성인들께 마음속으로 빌며 병사는 휙휙 성호를 그었다. 소대 정치장교나 소대장이 보면 기겁하며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뭐 어떤가.
콰쾅! 또 아군의 포대가 불을 뿜었고, 항공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적이겠지. 공습의 소식을 알리며, 병사는 다시 참호로 몸을 숨겼다.
물론 소련군의 상황이 나쁘다고 독일군이 아주 신이 난 것은 아니었다.
1기갑집단 사령관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는 뻐근해오는 뒷목을 잡고 있었다.
지난 프랑스 침공에서도 상관이었던 국방군 공식 최고 꼰대 룬트슈테트가 이번에도 또 상관으로 앉아 있었고, 또 자신은 임시 편제이자 언제든지 갈갈이 찢겨 휘하 병력을 남들 손에 넘겨주어야 할 수 있는 기갑'집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프랑스 침공때 막나가던 구데리안은 어느새 그때 세운 전과에 대한 공적을 모조리 쳐묵쳐묵하고 가장 중요한 보직 중 하나인 중부집단군의 기갑집단 사령관으로 영전했지만 자신은 또 또 또 꼰대 밑에서 더 막나가는 또라이들을 통제해야만 했다.
한 살 위의 페도어 폰 보크는 무려 중부집단군 사령관이고 일곱살이나 어린 구데리안은 자신과 똑같은 기갑집단 사령관인데! 나는 무슨 하사관이나 하다 온 깡패들이 장군이고 총통 친위대랍시고 꺼드럭거리는 꼴이나 봐야 하나?
돌파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군 최고의 명장이라는 주코프가 상대로 온 것도 모자라 정보부 아프베어에서는 적의 전략예비대가 남부로 집중되고 있다는 비보 역시 전했다. 초반 양익 포위기동을 할 기동로가 여의치 않아 키예프로의 돌파를 우선한 그의 입장에서 신장된 말랑말랑한 옆구리는 결코 달갑지 못했다.
"사령관 각하! 지휘관들이 모두 소집되었습니다"
젊은 차석부관의 목소리에 그는 주무르던 뒷목을 놓고 회의가 예정된 막사로 들어갔다. 1기갑집단 휘하 3개 군단 9개 사단의 지휘관들이 모두 모여 있다가 그가 입장하자 기립, 경례를 보냈다.
"지크 하일!"
그 와중에 국방군식 경례 안 하고 끝까지 나치식 경례 하는 두 새끼. 클라이스트는 위산이 역류하는 듯 쓰린 가슴팍을 문질렀다. 그리고 사령관인 본인도 그냥 입 다물고 넘어가고 있는데 꼭 한마디 덧붙이는 융커 꼰대 도련님 새끼도 추가요. 애비가 카이저 시대의 원수였고 현재 군 최고 원로이신건 알겠는데 좀! 좀!!!
"회의를 시작하지. 다들 좀 조용히 해주지 않겠나?"
회의의 안건은 간단했다. 키예프로 갈 것인가? 아니면 양익을 안정화시킬 것인가. 1기갑집단의 쾌속돌파로 지토미르 앞까지 와 키예프를 이미 위협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기갑부대가 진입하기 극히 어려운 습지에는 아직도 소련군 병력이 득실득실 했고, 어떤 지휘관도 자기 부대를 그 진창 속으로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또, 타르노폴-스타니슬라프-체르노프시 구간에서는 아직 적 병력이 일소되지 않았고, 드네스트르 강줄기를 따라 있는 험지를 끼고 버티는 소련군 9군 휘하 병력들 역시 건재했다. 빌어먹을 루마니아 놈들은 아직도 드네'스트르' 강조차 넘지 못하고 오데사 포위는 커녕 접근조차 못 했다.
아무리 최고 명장이 상대라지만 아직 국경도시 한 곳 조차 못 밀고 있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이래서는 가능한 선택지가 없다. 1기갑집단이 남하해서 적을 밀어내면 무엇할 것인가? 포위에 협조해줄 기동 제대가 한정되어 있고, 저들은 그저 후퇴해서 다음 방어선으로 가면 그만인데.
그리고 사실 편제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사실 중부의 조공이나 다름없는, 그리고 진격 거리가 훨씬 짧은 북부집단군에 기갑군단 두개만 배치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중부 못지 않은, 어쩌면 훨씬 먼 거리를 가고 넓은 영역을 담당해야 할 남부집단군에는 단 세 개 기갑군단만이 배치되었다. 중부집단군의 2기갑집단과 3기갑집단을 합치면 6개 군단, 기갑군단만 해도 다섯 개나 배치되었는데!!
2기갑집단에서 한두개 군단은 이쪽으로 빼 주었어야 해. 클라이스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머저리같은 '친위대' 놈들은 데려가도 되니 제발 제대로 된 기갑군단 하나만이라도 더 주지 그랬나.
그가 던진 안건 앞에 장군들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양익의 6군, 17군과 협조해서 남부의 소련군 주력들을 일소해야 한다. 아니다, 보급에 난맥이 생기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키예프를 위협하는 위치로 진출해야 한다.
우리는 키예프로 가는 관문인 지토미르를 위협하면서 동맹군 기동병력들이 지원될때까지-헝가리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놈들이 무슨 제대로 된 기갑사단이나 차량화사단이 있겠냐만은-아군 전력을 온존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렇게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줄 모르고 파고든 것이 문제였지만 총통은 후퇴라는 말만 들어도 난리칠 것이었다. 국방군 장군 주제에 천한 나치 놈들과 어울리면서 그놈들 물이 든 라이헤나우 같은 꼴통도 같이.
어쩐지, 진창에 빠져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절절히 깨달은 것이지만, 소련은 넓었다. 개전 이전 독-소 국경에서 키예프까지 거리는, 국경도시 브레스트-리톱스크에서 베를린까지의 거리와 맞먹었다.
독일이 갈라먹은 폴란드 땅만큼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련 남부의 첫 관문으로 가는 관문일 뿐이었다. 무슨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 그랬다.
국경에서 키예프까지만 해도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데, 키예프 다음 목표라는 하르코프와 드네프르페트로스크, 스탈리노, 로스토프, 스탈린그라드. 이 지역들을 언제 정복할 것인가? 명령서에 적힌 끝없이 많은 도시들의 이름을 보는 클라이스트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복할 수는 있을까..?
일단 이 뭣같은 부하 새끼들을 끌고 거기까지 가야한다니. 우웩,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