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3화 (3/300)

# 3

3화

가장 정확하게 동부전선을 재현했다는 <개리 그릭스비의 동부전선>에서 소련을 할 때 하던 초반 플레이를, 난 지금의 실제 상황에 가급적 비슷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북부의 핵심은 혁명의 심장이자 공업의 중심지 레닌그라드(옛 명칭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였다. 레닌그라드로 가는 관문은 철도가 모여드는 프스코프였고. 이 프스코프를 틀어막고 시간을 끌면서 레닌그라드의 방어를 굳히거나 공장을 뜯어내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중부에서는 겹겹의 관문들이 버티고 있었다. 현재 독일이 짓쳐 들어와 공성하는 관문은 스몰렌스크. 스몰렌스크에서 분기하는 모스크바행 철도선의 두 가닥을 사수하면서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기본 계획이었다.

스몰렌스크가 돌파당할 경우 비야즈마, 그 다음은 르제프. 몇 개가 더 있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독일군이 올 경우 모스크바가 마비될 것이 뻔했다. 그러려면 지금 스몰렌스크에서 막아야 했고.

남부는 뻥 뚫려 있는 평야인 만큼 최대한 유능한 지휘관과 병력을 몰아 주어 공간을 조금씩 내주면서라도 종심 방어를 펼친다. 가급적 사수해야 하는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지만 내줄 수도 있다고 치고...

너무 많은 땅이나 인명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이 41년 하계 소련의 목표였다.

버티다보면 라스푸티차, 진흙의 계절이 오고, 혹독한 러시아의 동장군이 몰아닥치며 독일의 초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다.

물론 이 상황이 게임이 아닌 만큼 변수는 넘쳐난다.

핀란드나 루마니아같은 추축 동맹국이 어떻게 행동할까? 역사대로 간다면 핀란드는 독일 편에 붙기는 하지만 깔짝 깔짝 간을 보다가 결국 독일의 뒤통수를 친다. 그런데 내가 너무 잘 막아내버리는 바람에 독일이 핀란드를 더 열심히 꼬드겨 적극적 참전을 요구한다면??

일본은 과연 예정대로 진주만을 공습하기는 할까? 소련이 유럽전선에서 위협적이라는 이유로 극동을 공격하지는 않을까? 장개석은 역사처럼 끝까지 일본 육군을 붙들고 늘어질 수 있을까? 미국이 독일을 너무 잘 막아내는 소련을 위협으로 여겨서 렌드리스를 끊어 버리진 않을까?

수많은 경우의 수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군사 지도자로서 독일군을 막아내는 것은 예상보다 쉬울 수 있다. T-34의 초기 단점들과 후기 개량형들의 장점을 미리 알려주어 설계에 참조만 해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그 외에도 소련의 전략적 실책은 많았다.

실제 역사에선 그냥 손 놓고 잃어버렸던 소련 기술개발의 중핵인 키예프 병기국만 지켜도 개발과 생산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 아닌가?

스탈린으로서나 밀덕인 '나'로서나, 진짜 명장들의 지휘력이나 상황판단력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전시 총괄 지도자라면 명장들이 미쳐 날뛸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어야지.

"서기장 동지, 제가 무얼 하면 좋을런지.."

"몰로토프 동지, 핀란드와 루마니아, 헝가리 정부에 통신을 보낸다면 얼마나 빨리 보낼 수 있겠소?"

내 부름을 받아 집무실로 온 몰로토프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듯 했다.

"핀란드에는 우리가 선공을 취했으나 통신망은 아직 살아 있을 것입니다. 즉시 무선 통신이 가능합니다. 루마니아와 헝가리 쪽에 대해서는 조사하여 보고하겠습니다."

"만네르하임 놈에게는 이렇게 전하게. 우리 소련은 대국이고, 핀란드는 소국이다. 우리는 파쇼 놈들이 밀고 들어와도 광대한 대지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버틸 수 있지만, 핀란드가 독일에 협조하여 공격을 한다면 이번에는 카렐리야 정도로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헬싱키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고 말겠다."

핀란드 놈들은 전투민족이다. 보로실로프가 무능하기도 했지만, 겨울전쟁에서 핀란드가 보여준 감투정신과 극지전술은 분명히 특기할 만 했다.

그런 그들이 남하해서 레닌그라드를 북쪽에서 포위하면 꽤나 골치아파질 것이다. 레닌그라드는 북쪽은 핀란드, 동쪽은 호수로 뚫려 있어 독일이 남쪽에서 포위하더라도 버틸만 한데 북쪽이 막혀버린다면 숨통이 턱 막히게 된다.

핀란드가 레닌그라드를 북에서 포위하지 않는다면 레닌그라드로 가는 보급망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 또 북극권의 극지에서 얻어낼 것도 없는 땅덩이를 지키겠다고 역사처럼 2개 야전군이나 되는 대병력을 투입하는 뻘짓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핀란드 놈들에게는 허풍을 쳐서라도 최대한 소극적으로 참전하도록 만드는 것이 낫다. 결국 우리가 그쪽에서 지켜야 할 것은 딱 두가지. 나중에 렌드리스가 들어올 무르만스크 철도와 레닌그라드 뿐이니까.

"루마니아와 헝가리에 대해서는 외교인민위원회가 전적으로 관할하여 진행하시오. 둘은 서로 앙숙인 만큼 서로를 이용하여 한쪽이라도 추축 전선에서 이탈시킬 수 있다면 대단한 성과이겠지. 예컨대, 루마니아에게 베사라비아, 왈라키아와 트란실바니아를 약속하고 헝가리를 공격하게 한다던가. 물론 이는 예시일 뿐이오."

루마니아와 헝가리는 지금 독일과 함께 소련을 치기 위해 참전한 상태라도 발칸 전쟁 이래로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해 온 상태이다. 당연히 국민 감정도 나쁘고. 두 앙숙 국가를 잘 선동하여 전선에서 이탈시킬 경우 이들이 참전시킨 70만이 넘는 추축군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추축 동맹의 일원이던 핀란드군이 최대로 참전했을 때 대략 30~40만 정도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세 나라가 빠질 경우 독일 전력의 1/3 가량이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는 선에서이지만. 하지만 시도한다고 별 문제될 것은 없잖아? 독일이 알아챈다 해도 소련과 혹여나 내통하지 않을 지, 자기네 동맹국을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이득이고.

루마니아는 사실 우리 소련이 루마니아 접경의 베사라비아 땅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참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 때문에 당시 정부의 인기가 곤두박질쳤고, 지금 루마니아의 독재자인 안토네스쿠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할 수 있었다.

스탈린그라드의 대패를 초래하고, 추축국의 구멍을 담당하던 루마니아는 44년, 전황이 기울어지자 뒤로 물러서 있던 국왕이 친위쿠데타를 다시 일으켜 연합국 쪽으로 이탈했다.

이렇게 불안정한 권력 기반을 가진 군부정권에 대항하여 친소 왕정을 밀어주면서 대 루마니아-북 트란실바니아와 베사라비아 등-을 보장한다면? 충분히 추축국을 이탈할 만큼 먹음직스런 미끼이다.

당장 코딱지만한 땅덩어리를 내주면서 추축국의 석유 생산을 담당하는 루마니아와 루마니아군 50만 병력을 이탈시킨다면? 원래 앙숙이던 헝가리와 싸움을 붙여 헝가리 쪽으로 독일의 남부집단군을 빼게 할 수 있다. 기름이 없는 독일의 차량, 기갑병력들을 멈춰세울수도 있고.

몰로토프는 그럭저럭 유능한 외교관이다. 트로츠키한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욕을 쳐먹기는 했어도 그건 트로츠키 인성이 뭣같아서 그런 것이고. 발칸은 워낙에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몰로토프의 역량이라면 발칸 국가들을 여러 수단들을 종합적으로 동원해 뒤흔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샤포슈니코프 원수는 피로한 듯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건강이 이미 좋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전쟁만 아니라면 곧 은퇴하려고 했을 텐데 급작스레 터진 전쟁의 총참모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군의 생산 관련해서 가장 병목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경륜이 쌓인 노원수는 이런 쪽에서 유능함을 뽐냈다. 샤포슈니코프는 러시아 제국 대령까지 지내다 적백내전 시절 적군에 참여한 노장 중의 노장이다. 당연히 정규 군사학 교육을 받은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고, 오랫동안 전쟁을 지도해온 만큼 내가 뭘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군의 전시 물자 생산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곳은 두 곳입니다. 하나는 서부 우크라이나이며, 또 하나는 레닌그라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왜인가?"

"먼저, 우리 소련의 산업 역량이 집중된 곳은 여러 곳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드네프르 강 양안의 동서 우크라이나, 레닌그라드 일대, 모스크바와 인근의 이바노보/야로슬라블/고르키, 볼가 연안의 스탈린그라드와 우랄 산맥의 세 도시-마그니토고르스크, 첼라빈스크, 스베들롭스크.. 헉헉. 샤포슈니코프는 지도에서 내가 생각한 도시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레닌그라드와 인근 푸시킨, 파블로보, 콜피노 등은 아군의 중전차 중 절반 이상이 생산되는 키로프 공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이 무력화된다면 중전차 생산은 절반, 아니 그 이상으로 하락합니다."

음... 그렇군. 세세한 공장의 배치까지 알지는 못했지만, 샤포슈니코프는 늙은 생강답게 하나하나 핵심 생산시설들을 짚어나갔다.

"물론 나머지 시설들은 우랄 산맥의 첼라빈스크에 위치해 있으니 괜찮습니다만... 크흠. 서부 우크라이나에는 석탄과 풍부한 인력을 중심으로 화학공업 단지들과 포탄, 야포 생산 공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석탄만으로도 지켜야 할 가치는 충분히 있지만, 서부 우크라이나를 상실할 경우..."

그렇지. 소련 제 3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키예프가 독일군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키예프 이후로는 뻥 뚫린 대평원지대가 나와 독일군이 기동을 통해 얼마든지 소련 영토를 유린할 수 있게 되고.

거대한 드네프르 강, 천혜의 방어선이 동서 우크라이나를 가르며 소련군을 위한 방벽이 되어 주겠지만... 거기까지 몰리면 방어선은 너무 넓어지고 공격자가 선택할 지역은 많아진다.

또, 키예프가 뚫리거나 혹은 그 앞까지 독일군이 도달했다면 오데사와 세바스토폴같이 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 위험해진다. 이러나 저러나, 서부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사수하는게 관건이었다.

"아주 좋소. 참모부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없는가?"

늙은 원수는 힘들게 웃었다. 서기장은 분명 무섭고 냉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쓸모있고 충성스러운 관료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저, 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할 수 밖에.

"저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서기장 동지."

"일본이 참전하려는 징후는 없는가?"

이번엔 베리야를 불러다 놓고 상의하기 시작했다. 리하르트 조르게라는 특S급 간첩이 물어다 주는 정보를 쥐고 분석하는 것이 베리야이다. 사실 이미 바르바로사 작전에 대한 것도 알려주었지만 '내' 가 무시해서 이 참사가 났을 뿐...

사실 미래를 과거로서 알고 있는 나는 그의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일종의 검증 수단으로는 써먹을 수 있겠지만 조르게의 가치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독일이 모스크바를 점령할 경우 극동에서 참전하려고 내부적으로 정리를 했다고 합니다. 독일 역시 이에 동의한 상황입니다. 일본은 오히려 미국을 공격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 선으로도 확인 했으니 극동에서 정예부대들을 빼내어 전략 예비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조르게를 통해 일본의 동향을 체크해야 할 것이고, 혹여나 일본이 딴 맘 먹지 못하게 병력을 어느 정도 박아두기는 해야겠지만 20만 명에 달하는 전략예비대가 등장한 것이다. 총참모부를 통하여 명령을 내릴 것을 머릿속에 기록해 두면서 나는 내가 생각해둔 것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일본에 있다는 우리 측 간첩 말이네, 독일이나 일본 쪽에 정보를 흘리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베리야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어우, 저 혐오스러운 인간이 저런 표정을 짓는걸 보면 당장이라도 숙청해서 굴라그에 쳐넣고 싶지만 제법 유능한 첩보국장인 만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베리야는 히틀러의 힘러처럼 충성심이 엄청난 것도 아니다. 스탈린이 쓰러졌을 때 치료를 방해했다는 설도 있고 아예 베리야가 스탈린을 독살했다는 설도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인데 내가 혹여나 숙청하려 하면 역으로 날 보내버릴 수도 있다.

"잘못하다 역정보를 흘리는 것을 발각당할 경우 귀중한 첩보망이 싹 제거당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흘려야 한다면 가능은 합니다만... 어떤 공작을 펼치실 계획이십니까?"

"나는 역정보라고 한 적이 없네 국장. 진짜 정보를 넘겨 줄 생각이지."

베리야는 그 말을 듣자 씨익 웃으며 안경을 닦기 시작했다. 핵심은 이러했다.

리하르트 조르게는 일본에 침투해 독일 대사관 등에서 양국의 정보를 빼내어 소련에 전달하는 간첩망의 총책임자였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독일 측에도 우리 정보를 일부 넘기곤 했는데 이 기능을 끝까지 활용하는 것이다. 일본은 그를 독일 첩보국 요원으로 생각했고, 독일은 그가 골수 나치라고 생각했던 만큼, 꽤 잘 먹힐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었다.

또, 리하르트 조르게가 잡힌 이유가 소련으로 뭔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들켜서인 만큼 우리 쪽으로 정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역정보를 흘리기만 한다면 잡힐 확률도 낮아질 것이다.

우리 쪽에서 수집한 미국과 영국, 중국 등의 정보를 조르게를 통해 독일과 일본에 넘겨 추축국이 유리해질수록 전선의 거대한 몫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 소련의 주가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게 들킨다면 아예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꼴이 되겠지만, 내가 아는 내용들만을 전해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예컨대, 미 해군의 진주만 배치 현황에 대해 일본군에게 알려주어 태평양 전쟁을 개전시킨다면? 일본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대국들을 양편에서 맞아 싸우느라 소련을 침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독일 역시 역사처럼 일본을 따라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날려서 유럽전선의 독일군을 상대하는 소련에게 미국이 지원을 퍼부어주게 될 것이고. 이쯤 되면 소련의 극동 방면이 안전해진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득이나 다름 없었다.

일본에 닿아 있는 끈을 이용해 연쇄적으로 일본-독일-미국까지 움직여버리는 수를 두는 것이 내 목표였다. 가능한 한 빨리. 그래야 역사가 바뀐 나비효과가 나지 않겠지. 베리야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내 명령을 받아 나갔다. 싸워라, 싸우게 만들어라. 우리가 흘릴 피를 저들이 흘리게 만들어라.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