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화 (2/300)

# 2

2화

"첩보망을 통하여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파쇼들의 군대는 3개 집단군으로 구성되어 있소. 북부, 중부, 남부를 관할하는 이들 집단군은 각각 휘하에 한개, 혹은 중부의 경우 두개의 야전군급 규모 기동집단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현재 전선을 돌파해 아군을 포위 섬멸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네."

물론 첩보망 따위에서 얻은 지식은 아니다. 나같은 밀덕이라면, 그리고 워게임 매니아라면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독일군 편제 정도는 줄줄 외우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독일군의 편제를 회의실 탁자에 깔린 지도 위에 적어줄 수 있다.

회의실 안의 장성들은 다들 충격받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자기네들이 일종의 반역을 기도하던 것을 들킨 게 아닐까? 그저 충격에 틀어박힌 줄 알았는데 이미 서기장은 모든 작전 계획을 세워둔 것이다! 아아, 어찌 서기장 동지를 칭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역시 일종의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었다. 나야 그냥 미래에서 온 사람이지만, 이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자기 능력을 증명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다. 무능하기로 유명한 보로실로프나 부됸늬 같은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역사에 이름을 남긴, 기라성같은 소련의 명장들이 나를 이렇게 대단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우월한 기동병력으로 아군을 손쉽게 포위, 섬멸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항할 무기를 세 가지 가지고 있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예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스탈린의 몸이 조금만 더 키가 컸더라면 이들을 아예 내려다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아예 완전히 호빗은 아니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볼 정도는 되었다. 장군들은 오오 하는 눈으로 나에게 주목했다.

"주코프 장군! 그대는 알겠소?"

"전혀 모르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고견을 알려 주시지요"

크... 소련군 최고의 명장이라는 주코프가 나를 존경하듯 올려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아 취한다 취해!

"첫 번째는 공간이오. 어머니 조국의 넓디 넓은 땅을 파쇼 놈들은 기계화된 병력으로 가로지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연료가 부족하고, 보급을 받기 어려워 멈춰설 수 밖에 없소. 지금 저들은 철로와 국경에서 가까워 그들이 쌩쌩하게 달려다니지만 깊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저들의 보급은 어려워질 것이고 아군은 전선에 집중될 것이오. 우리는 저들이 멈춰설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노려 분쇄할 것이오!"

분쇄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책상을 쾅 내려치자 모든 인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몇명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까딱거리며 동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고, 또 다른 몇명은 깊이 생각하는 듯 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의 반응 역시 볼만했다. 대표적인 예스맨 보로실로프는 생각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일 뿐이었다. 반면, 명장들, 굳이 찍자면 주코프나 코네프는 깜짝 놀라면서도 내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 가부를 따져보듯 깊이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둘째는 시간이오. 지금은 여름의 한복판. 날씨가 화창하여 저들이 손쉽게 진격할 수 있지만 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소. 20주, 길어도 20주면 날은 추워지고 비가 내려 라스푸티차가 오면 저들은 적지에 고립될테지. 반면 우리는 이미 깔린 철로로 얼마든지 보급을 할 수 있소."

나는 독소전쟁의 전훈을 줄줄 꿰고 있었다. 수많은 유럽의 군주들이 러시아를 침공했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같은 정복자들은 러시아를 내심 가볍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영토는 저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었고, 길은 더 막장이었으며, 겨울은 더 추웠다.

"셋째는... 머릿수라고 할 수 있겠군. 우리의 인구는 파쇼 놈들보다 세 배는 많소. 지금 당장 저들은 400만 병력을 동원했고, 우리는 300만이 채 안 되는 병력만을 전선에 배치한 상황이라 인원수에서 밀리고 있소. 하지만 우리가 소집할 수 있는 병력은 저들보다 훨씬 많고, 곧 인민의 파도 속에 저들은 침몰할 수 밖에 없소!"

내가 이 연설을 끝마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몇몇은 아예 일어서서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고개를 끄덕이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제 이들에게 미래인 밀덕의 힘을 보여줄 때이다.

적아의 배치를 보여주는 거대한 지도가 회의장의 벽에 나붙었다. 지도는 적군과 아군의 배치를 보여주는 군사부호로 빽빽하게 가득차 있었다.

나치 독일의 군대는 일차 목표로 세 곳을 지정하여 파죽지세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먼저 북부집단군은 이전 수도이자 혁명, 그리고 공업의 심장 레닌그라드로 가고 있었다. 중부집단군은 너무 당연하게도 수도 모스크바로 오고 있었고, 남부집단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로 향했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된 양, 마음 속에서 내정해둔 배치를 하나씩 불러나갔다.

첫 번째로 소련군의 명장이라 하면...

"주코프 대장!"

내 말을 곱씹고 있었는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주코프가 우렁차게 대답하며 벌떡 일어섰다. 고생 좀 해주셔야겠어. 당신만큼 유능한 사람도 몇 없잖아?

"주코프 동지는 구 오데사 군관구, 이제 남부전선군 사령관으로 보하오. 동시에 남부전구 사령관 역시 겸직하여 키예프 군관구-남서전선군 역시 장악하여 프리퍄티 습지 이남의 전 병력을 그대가 책임지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원래 역사라면 부됸늬가 맡았을 자리다. 적백내전 시기 기병 지휘관으로 활약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부됸늬는 처절하게 패배해 전선을 말아먹었다. 기동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스탈린의 사수 명령은 대패를 초래했었다.

남부 사령관을 맡은 주코프는 한때 키예프 군관구(=남서전선군) 사령관에 있었던 만큼 남부전선을 총괄하여 지휘하기에는 최적일 것이다.

이 자리에 없지만 키예프를 사수하다 포위당해 전사한 키르포노스 역시 독소전쟁 초기의 고위 지휘관들 중에서는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던 만큼 제 몫은 해 줄 것이고.

"남부관구에서 앞으로의 목표는 피해를 최소화하며 키예프와 세바스토폴을 지켜내는 것이오. 그러나 포위될 것 같다면 얼마든지 내주어도 좋소. 무리한 현지 사수로 우리 인민들의 목숨을 공연히 버릴 필요는 없소"

스탈린의 최대 트롤링 중 하나, 키예프 사수 명령. 구데리안의 2기갑집단이 남하하며 키예프를 포위하러 내려오는데 스탈린은 현지사수를 끝까지 고집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60만 명의 대병력이 포위당하고, 키예프 설계국을 상실했으며 키르포노스는 전사했다. 이렇게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들어온 독일군은 하르코프까지 밀고 들어가며 우크라이나 전역을 차지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해선 안된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그리고 흑해함대의 모항 세바스토폴은 지켜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수십만 명을 꼴아박을수는 없다. 주코프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다만 걱정이 되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부전선군 사령관으로는 파블로프 대장을 유임시키겠소. 이 패전에 대한 책임은 현 국면이 일단락된 이후로 미루어도 무방하오. 서부전선군은 스몰렌스크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며 모스크바로 적군이 쾌속 진격하는 것을 막아낼 것을 명령하오. 민스크에서 포위당하지 말고 가능한 한 최소의 사수대만을 남기고 퇴각하여도 좋소."

독일의 가장 강력한 집단군, 중부집단군은 이미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를 지나 진격하고 있었다. 민스크에서는 소수의 아군이 결사 항전을 하고 있었지만 독일의 기갑부대는 이들을 지나쳐 질풍처럼 소련령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들의 목적지는 중부의 관문 스몰렌스크. 모스크바로 오려면 필수적으로 지나쳐야 하는 대도시였다. 나폴레옹 시절에도 불타오른 적 있었던 스몰렌스크는 이번엔 독일군을 막아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오렐 군관구는 브랸스크 전선으로 개칭하겠소. 사령관은... 예료멘코 대장!"

중부와 남부의 사이에는 거대한 습지, 프리퍄티 습지가 있었다. 이 지역은 기동이 어려워 독일군이 진입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저 열어둘 수도 없었다.

거대한 드네프르 강이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끼고 흐르는 만큼 이 강을 끼고 방어전을 펼치면 될 테니 굳이 많은 여력을 할애할 필요도 없지만.

"북부전선군 사령관에는 코네프 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임명, 북서전선군 사령관에는 바투틴 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시켜서 임명하오."

코네프와 바투틴은 젊었다. 둘 다 상장을 건너뛰고 대장으로 2계급 승진을 시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야전군 사령관도 높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들은 실제 역사에서 충분히 잘 해주었다.

지휘관들을 선정하며 솔직히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다. 확실히 대군을 지휘할 재능이 없는 보로실로프, 스탈린의 현지 사수 명령 때문이라지만 처절하게 남부를 말아먹은 부됸늬, 민스크와 스몰렌스크의 대패에서 지휘관이었던 티모셴코같은 이들은 원수 계급에 있음에도 배제했다.

여기에 덜 유명하지만 아무튼 떼삼사의 도입을 막는 등 처절한 트롤링을 저지른 쿨리크에 하르코프 공방전의 대패를 초래한 포포프까지 다 배제하고 나면 남는 장군이 없었다.

대전 중반기만 가도 자기 자리에서 군공을 세운 사람들이 쾌속 진급하며 꽤 괜찮은 라인업이 생기지만 초반기의 소련군 최고위 장교단은 독일군의 수준에 비하면 그야말로 폐급이었다.

훗날 이름을 날릴 이들을 최소 1~2계급씩 승진시켜서 보임시키면 어찌어찌 막아볼 만은 할 것이다.

주코프는 할힌골 전투의 승리로 이미 그 명성이 드높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이반 코네프나 니콜라이 바투틴, 그리고 경력이 아직은 처지지만 로디온 말리놉스키, 표도르 톨부힌, 파벨 로미스트로프 같은 잠재력 넘치는 장군들을 얼른 키워줘야지.

"마지막으로 총참모장에는 샤포슈니코프 원수를, 부참모장에 바실렙스키 대장을 임명하오. 총참모장은 최대한의 병력을 전선에 배치할 수 있도록 참모본부를 독려하고, 신편 부대들을 필요한 전선에 배속할 수 있도록 전선군별 조율을 담당하시오."

샤포슈니코프는 42년이면 건강이 악화되어 은퇴할 것이다. 그 이후 유능한 바실렙스키를 총참모장으로 임명하려면 미리미리 부참모장으로 임명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잘 했다면 그걸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방금 마지막이라고 했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쿨리크 원수!"

아직 전쟁을 총괄할 총사령관을 지명하지 않았다. 쿨리크는 기대감에 차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일어나 꺼드럭거리는 표정으로 좌중을 돌아보고는 대답했다.

"예! 서기장 동지!"

"집행하게!"

내가 외치자, NKVD 요원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회의실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고, 마구 발버둥치며 살려달라 울부짖는 쿨리크를 끌고 나간 이후 세 발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쿨리크가 울부짖던 소리는 잠잠해졌다.

회의실 안은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턱짓을 하자, 회의장 중간 즈음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내' 가 애용하던 장미목 파이프를 물자, 그는 다가와 파이프에 불을 붙여 주고는 아주 명랑하고 높은 목소리로 공포했다.

"쿨리크 원수... 아니 이제는 원수가 아니지요. 쿨리크는 포병 병과원수라는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의 적과 내통하여 아군의 내부 정보를 팔아넘겼습니다. 그 죄를 물어 즉결 처형하였으며 '증거'는 원하는 이들에게 얼마든지 공개되어 있으니 원한다면 요청하시지요."

베리야는 비밀경찰 총수에 걸맞는? 메스껍도록 명랑한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했다. 물론, 그가 그렇게 말하는 뒤에서는 기분좋게 파이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내'가 있었지만.

군부에서는 분명히 희생양이 필요하다. 실제 역사에서는 파블로프와 서부전선군의 고위 장교들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처형당했다.

만약 군부가 전혀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 된다면 개전 초반 참패의 책임은 정치권으로 역류했을 것이다. 이런 대대적인 참패와 함께 정치권마저 제 힘을 잃는다면? 그때는 진짜로 막장이 될 것이다!

파블로프는 아주 유능한 장군은 아니지만 아주 무능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을 처형하는 것보다는 대놓고 무능했으며, T-34의 개발이나 기관단총에 도입을 막아 대놓고 전력에 해를 끼친 쿨리크를 처형하여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나았다. 트롤링뿐만 아니라, 대놓고 인격 파탄자로도 유명했는데도 스탈린과의 친분만으로 고위직에 오른 것이라면 더더욱.

무능하기만 할 뿐인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는 그렇게 다룰 필요가 없었다. 처벌은 항상 최소한의 인원을, 최대한 빨리 진행시켜 더 이상 확대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보로실로프와 쿨리크 모두를 처형해버린다면 내 측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배반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잔혹해질 필요가 없다.

"그가 나치 놈들과 내통하여 서부전선군의 배치와 약점을 모두 팔아 넘겼소. 우리의 신형 전차에 대한 정보들 역시 그의 손에서 넘어갔고. 그러나 이는 방첩대의 조사에 따르면 그 혼자서 저지른 일인 것으로 밝혀져, 더 이상 군부에 대한 처벌은 없소."

회의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주코프처럼 베리야를 싫어하는 이는 대놓고 그를 아니꼽게 노려보고 있었고, 정권의 고위 인사들-몰로토프, 말렌코프, 미코얀, 카가노비치 등- 역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군사 작전에 대한 회의는 여기서 종료하도록 하겠소. 임명된 사령관들은 본인이 원하는 인선을 확정하고 보고하시오. 한시가 급하니만큼 최대한 빠르게 임지로 가도록 하시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자 폐 속에서 기다렸다는 듯 연기를 갈구했다.

원래는 피워본 적도 없는 담배지만 스탈린의 몸은 니코틴에 쩔어있었는지 너무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갑자기 탁 풀린 긴장에 푹신한 의자 속에 무너지듯 기대었다. 이길 수 있겠지.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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