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51화 (완결) (151/151)

151화

* * *

정태수는 찬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이 배겼지만, 이제 이 정도는 익숙했다.

‘후… 침대에 눕고 싶다…….’

침대에 안 누워본 지 10년이었다. 침대뿐만이 아니고 현대 문물을 구경하지 못한지도 그렇게 되었고.

작금의 삶은 원시인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그보다 못한 애완동물이었다.

자유가 없었다.

곁에는 늘 강기찬의 권속이 따라다녔다.

지켜주는 게 아니라 감시받는 거고…….

그래도 딱히 건드리지는 않아서 초반엔 버려진 세계를 좀 돌아다녔지만, 그래봤자 결국 밀림을 떠도는 것에 불과했다.

이후로는 먹고 싸고 산책하고 자고… 의 연속. 돌고 도는 쳇바퀴 같은 인생이었다.

유일한 변화는 식단이었다.

물론, 먹고 싶은 음식은 못 먹는다.

그저 바깥에서 음식이 들어오면 그걸 먹을 뿐.

대체로 매일 죽과 김치, 깍두기나 먹는다.

김치 종류만 바뀔 뿐이지 그 틀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끔 과일이나 영양제…….

그야말로 죽지는 못하게 막는 수준.

‘허…….’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화병이 나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죽으려고 시도도 못 한다.

‘그 할배 새끼 때문에……!’

죽으려고 시도해도 강기찬이 데려온 이상한 노인이 계속 치료해주고 회복해준다.

더한 문제는 자해를 시도할 때마다 살려주고선 더 큰 고통을 준다는 점, 마치 쓸데없는 짓 못 하게 한다는 듯이. 그 때문에 자해도 포기한 지 몇 년 되었다.

그래도 이 마음만큼은 변함없었다.

‘강기찬……! 반드시 죽여버린다!’

바로 강기찬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건, 다 강기찬 때문이었으니까.

대격변으로 이전보다 더욱더 호사스러운 사치를 부리면서 살 운명이었는데 강기찬 때문에 모든 게 엎어진 거니.

‘후…….’

슬픈 건 작금의 현실이었다.

강기찬을 죽이기는커녕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가끔 일부러 자신을 보러 오는 것 빼고는 얼굴도 못 보지 않나.

무엇보다 짜증 나는 건 저번에 강기찬 욕을 대놓고 내뱉었다가 권속한테 두들겨 맞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 이후로 속으로만 강기찬 욕을 할 뿐이었다.

‘답답해 미치겠구먼…….’

욕 하나 시원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다.

비참한 삶이라서 욕하려는 건데 그 욕을 못 하니.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을, 지금 몸소 실천 중이다.

그런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죽으려는 건데 그걸 못하고 그걸 못해서 죽고 싶은… 뫼비우스의 띠에서 토하면서 뛰어다니는 불쾌감이랄까.

‘나한테도 역전의 기회가 올까?’

의외로 그‘역전의 기회’는 그날 밤에 찾아올 것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 * *

그날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밤하늘에 밝은 별 하나는 매일 보네…….’

그나마 마음이 진정되는 시간이었다.

자기 전에 올려다보는 밤하늘, 그리고 별을 보는 것 말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눈물이 났다.

동시에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평범한 삶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평범한 삶.

평범하지 못하게 되니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리고 이 환경에서 유일하게 평범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꿈이나 꾸자.’

꿈에서만큼은 이 답답한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여자를 끼고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고 마약도 필 수 있었다.

하지만, 재수가 좋아야 꿈을 꿀 수 있다. 잠을 잔다고 매번 꿈 꿀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제발 꿈 꿀 수 있기를……!’

오늘도 역시 꿈꾸기를 빌면서 눈을 감고 멍하니 있었다.

그때였다.

띠링!

“?”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 소리는 레전드스토리에서나 울리던 알림음이었기에.

하지만, 그 소리는 아닐 것이다. 로그인 중이 아니니까.

‘벌써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정확한 연유는 모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레전드스토리할 때가 떠올랐기에.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알림음이야?’

불현듯 눈이 떠졌다.

그렇게 올려다본 시야에는…….

“헉!”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게 뭐야?’

정말 레전드스토리에서처럼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로그인 중일 때만 보여야 한다.

‘어째서?’

물론 일반인에게도 보이게끔 설정할 수야 있지만.

그거야 유저가 임의로 조작했을 때가 가능한 것.

즉, 누군가가 자신에게 반드시 보여주기 위해서 설정을 바꿔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사실 그런 건 금세 까먹을 정도로 내용이 획기적이었다.

[오늘로 레전드 스토리 지구서버 오픈 10주년입니다!]

[정태수님은 레벨업 지원 프로모션에 당첨되셨습니다!]

‘레벨업 지원 프로모션? 그게 뭐야?’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습니다.]

“씨발, 장난하냐? 당연히 없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권속이 째려보는 듯했으나 강기찬 욕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에휴…….”

솔직히 짜증 났다.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단다.

그거야 당연했다.

로그인 안 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레벨업은 꿈도 못 꾸지.

근데 레벨업 지원 프로모션이라니?

‘딱 보니 경험치 더 주는 거 같은데… 나한테 이게 무슨 소용이람?’

못 먹는 떡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홀로그램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다음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살펴보았다.

[강기찬님에게 첫 번째 특전이 주어집니다.]

[회귀의 시계를 얻었습니다.]

‘회귀의 시계?’

불현듯 강기찬이 떠올랐다.

10년 전… 그날‘회귀’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이걸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신빙성이 있는 게…….

[설명]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전.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는 자…….’

강기찬이 이 조건에 부합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아이템을 약탈한 후, 초기 몇 년 간 감시했었다. 던전은커녕 집밖에도 나가지 않았었다.

‘애초에 사냥할 수 있는 몸과 직업도 아니었고… 10년간 레벨 변동이 없었을 만해…….’

강기찬은 이‘회귀의 시계’를 써서 과거로 온 게 틀림없었다.

‘개자식… 이런 사기적인 걸 썼을 줄이야… 잠깐…….’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조건] 1만 레벨 이상.

사용 조건이 걸린 것.

‘강기찬이 1만 레벨 이상이었다는 거야? 어떻게?’

강기찬이 1만 레벨 이상이었기에 회귀의 시계를 사용한 것일 터. 문제는 10년간 레벨업을 못하다가 어떻게 레벨업을 하게 되었냐는 건데…….

그거야 금세 알게 되었다.

[정태수님에게 두 번째 특전이 주어집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 입장권을 얻었습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로 로그인하시겠습니까?]

‘테스트서버? 잠깐…….’

아무래도 테스트서버에 해답이 있지 싶었다. 강기찬이 1만 레벨 이상을 찍은 것에 대한…….

즉시 테스트 서버 입장권을 써보았다.

슉!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 입장권을 사용합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로 로그인합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는 경험치 10배, 아이템 드랍율 10배를 적용받습니다.]

[접속 가능한 시간은 매일 한 시간입니다.]

“헉! 미쳤네… 진짜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에 들어온 거야?”

주변을 보니 확실해졌다.

이곳은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였다.

‘만약 강기찬이 여기 들어왔다면… 걸을 수 있었겠지. 게임 속에서는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거였어…….’

10년 묵은 호기심이 씻어내러 가고 있었다.

‘이거… 나한테도 역전의 기회가 온 건가? 맞지? 하…….’

그간 뭘 하려고 최소한의 시도도 못 한 건 권속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자유의 몸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

하루 한 시간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 들락날락하는 걸 제지할 존재는 없다는 거지…….’

강기찬이 오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낮이다. 자정이 넘어서 온 적은 없었다.

지금은 괜찮은 것.

물론, 자신을 24시간 감시하는 권속,‘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있다.

그렇지만, 지능이 많이 모자란 권속이었다. 한 시간쯤이야 자신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이곳엔‘빛’이 없다. 한밤중에는 새까맣다. 곁에 누가 있어도 있는지 모를 만큼.

그랬기에 더욱 가능성이 있었다.

비밀리에 테스트서버에 오갈 가능성이.

다시 인생을 과거로 되돌릴 가능성이……!

‘회귀의 시계를 쓰면 된다. 그러면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어! 비록 현재의 강기찬에게 복수를 할 수 없겠지만… 과거의 강기찬에게는 복수할 수 있겠지!’

하루 한 시간으로 언제 1만 레벨을 찍나 싶겠지만, 그거야 희망이 없던 때를 떠올리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언젠가는… 될 거란 희망이 있으니까.

그때였다.

“어? 왔어?”

“!”

어디선가 난 목소리.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가, 강기찬!”

강기찬이 서 있었다.

정태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강기찬이 왜 여기 있는가? 그거야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왜 하필 이 타이밍인가…!

이제야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는데 그걸 적에게 바로 들켜버리다니…….

입조차 뻥긋거릴 수 없었다.

그저 얼어붙은 채로 서 있을 수밖에.

강기찬이 운을 뗐다.

“야… 테스트서버에 왔네? 축하해.”

“어? 어어…….”

강기찬을 앞에 두자 정태수는 절로 위축되었다.

“이날만을 기다렸어. 지난 10년 동안…….”

“뭐? 알았던 거야?”

“바보도 아니고 내가 테스트서버 수혜자인데 10년간, 레벨 변동 없으면 테스트서버 입장하는 거 모를까 봐?”

“그, 그걸 알면서 왜…….”

“… 그걸 아니까, 너를 10년간 살려둔 거야…….”

“?!”

“… 내놔.”

“뭘?”

“10년간 살려둔 대가는 받아야지.”

“뭐를 받겠다는…….”

“받은 게 테스트서버 입장권만이 아닐 텐데?”

“뭐?”

“그거 있잖아…….”

“서, 설마… 회귀의 시계? 그거 때문에 10년을 기다린…….”

강기찬이 쪼갰다.

“그것도 그거지만, 또 있어.”

“!”

“인벤토리 열어봐.”

“!”

“소원권 있지?”

“이, 이게 목적이구나!”

“그래.”

정태수는 분노가 샘솟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소원권을 써서 강기찬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또한 1만 레벨에나 쓸 수 있다. 지금은 회귀의 시계건 소원권이건 무용지물인 것.

“개새끼.”

“왜 그러는 거지? 그래도 10년간 먹고 재워준 사람한테?”

“너는 인간도 아니다.”

“하… 대격변이 시작되고 약자가 된 나를 수십 차례 죽이고 아이템을 털어갔던 새끼가 할 소리는 아닌데?”

“닥쳐라! 네 손에 소원권이 넘어갈 리는 없다.”

“아니, 넘어갈 건데?”

“?!”

“어차피 네 인벤토리 내가 10년 전에 텅텅 비게 했잖아? 한두 번만 더 죽이면 다 뱉어낼 거 같은데? 내 말 틀렸어?”

그랬다.

정태수의 인벤토리에 든 건 몇 없었다. 몇 번 죽으면 회귀의 시계와 소원권을 떨어뜨릴 것이다.

“고맙다. 내가 유일하게 다시 가질 수 없는 걸, 다시 얻게 해주어서…….”

정태수가 가장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을 때, 기대감을 꺾어버리고 죽여버리는 것. 최고의 복수일 것이다.

강기찬이 정태수에게 단검을 찔렀다.

강기찬의 복수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 * *

복수가 끝나고도 며칠이 흘렀다.

‘이제 뭐 하지?’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조금 더 생각해보자, 이제는 천천히 해도 되잖아.’

그동안은 쉼 없이 달려왔다.

런닝머신 위에서 시속 20km로 뛴 기분이랄까?

그것도 쉬지 않고 며칠간.

그야말로 불가능에 도전했었다.

이제야 비로소 뫼비우스의 띠 같던 런닝머신 위에서 내려온 거다.

그런데도 또 뛰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

강제로 억눌렀다.

또 뛰기 시작하면 한동안 내려오지 못할 성격임을 알기에. 만족할 만큼 목표달성을 하기 전까지는.

물론, 뛰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기왕 달릴 거 뭘 할지 정하고 달릴 거다.

단지 이번에는 의미를 다르게 가보려 했다.

본격적으로 또 다른 목표를 삼기 전.

잠시 쉬어가는 기분의 소소한 목표를 정한달까.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목표.

마침 하고 싶은 게 있긴 했다.

‘내가 겪은 일을 남기고 싶긴 한데…….’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자서전이랄까.

자신이 겪었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더 시간이 흘러서 까먹기 전에.

특히 대격변 이후, 테스트 서버로 들어갔을 때부터 몇 주간의 일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흠, 자서전은 좀 거창한데… 그건 싫네.”

가볍게 하자고 했는데 자서전은 전문 작가를 고용하고 출판사에 맡기는 둥, 일이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누군지를 밝혀야하니…….

“아!”

빠르게 인터넷을 켰다.

타닥, 타타타타.

‘웹소설로 써볼까?’

내 이야기를 하고 기록에 남되, 가볍고 익명을 보장받을 수 있을 터.

여러모로 최적의 수단이었다.

타탓, 타타타타!

공들여 프롤로그를 써보았다.

13시간이나 걸렸음에도 3천 자밖에 못 썼지만.

“제목은… 나혼자 테스트서버로 하자.”

부푼 가슴을 안고 업로드를 했다.

일주일 정도 연재하니,

“오! 댓글!”

조회수도 제법 늘고 댓글도 몇 개 올라왔다.

[코난(kkoj****) 출발!]

[ARGE(adrf****) 개연성 왜 이럼?]

[나아고(wkef****) 너무 비현실적임.]

[태식이(poih****) 하차합니다.]

“어허, 개연성 파괴라니? 내가 겪었던 건데?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썼구먼.”

강기찬은 서둘러 대댓글을 달았다.

[작가(asse****) 안여하시에ㅛ, 저 작가이넫, 이거 개연성 맞끄든요? 분명 말머리에 실제 이썽던 일이라고 적어쓴데.]

흥분해서 오타투성이였지만, 대강 의미전달은 되지 싶었다. 아니, 그걸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엔터키를 쳐버렸다.

곧바로 독자의 대댓글을 달렸다.

[ARGE(adrf****) 망상충 꺼져. 요새 양판소 너무 많아져서 힘드네. 이런 것도 작가한다고.]

‘와, 미친 새…….’

강기찬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태수한테 털렸던 이후로 가장 큰 충격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목표를 수정했다.

“내가 이 글로 베스트셀러 작가 되고 만다! 두고 보자!”

우선, ‘무료’ 베스트에 오르려 했다.

석 달 후.

[최신화 조회수 : 97]

처참한 조회수에 눈물이 나왔다.

살면서 처음으로‘포기’할까 고민했다.

“내 글은 왜 이렇게 인기가 없지?”

그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장르를 판타지가 아니라‘자서전’으로 해놓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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