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50화 (150/151)

150화

[김만수]

김만수한테서 온 전화였다.

‘이쯤에 전화가 왔었나?’

이미 집으로 찾아온 정태수를 처리한 것부터 과거와는 전개가 달라졌다. 그 당시엔‘고문’당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을 테니.

‘지금부터는 진짜 미래가 달라지겠네.’

나비효과라고 앞으로 많은 것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 전화로 인해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전화부터 받았다.

“어, 형?”

- 너…….

“마침 잘 전화했네.”

- 너 걸을 수 있게 된 건 아니지? 지금 어디야? 집이지? 내가 그리로 갈게. 지금 난리가 난 거 알지? 일단 너 피신 좀 해야겠다. 똥파리들이 달라붙기 전에…….

김만수한테서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대격변으로 강기찬이 가장 신변에 위협이 올 거라 판단한 것.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부자만큼 탐스러운 먹잇감은 없기에. 정태수가 유난히 두뇌 회전이 빠른 데다가 운까지 좋아서 대격변 10분 만에 찾아왔을 뿐, 김만수도 이 정도면 늦지 않게 연락한 거다.

강기찬으로서는 그 다급함마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아, 이미 대왕똥파리 왔다 갔어.”

- 뭐? 대왕똥파리? 누구?

“정태수.”

- … 태수? 태수가?! 너 괜찮아?

“괜찮으니까 전화 받지.”

- 아니,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지? 아, 미안하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고… 이게 암살자 스킬은 앉아서 못 쓰잖아?

“서서 썼어.”

- 뭐?! 설마… 너 일어설 수 있게 된 거야?”

“어.”

- 진짜?! 진짜야?

“그렇다니까 그러네.”

- 구라치면 죽는다! 하여간, 다친 데는 없는 거지?

“내가 정태수 따위한테 맞아서 다치겠어?”

- 그 외에 찾아온 놈은?

“글쎄, 태수 오고 나서 걔 처리하러 외출하고 지금은 밥 먹으러 나왔어. 누가 왔으려나 모르겠네.”

- 태수를 처리했다고? 무슨… 설마 죽인 거야?

“죽이지는 않았어, 10년 뒤에 죽이려고.”

- 뭐? 지금 죽이는 것도 아니고… 10년 뒤에 죽인다고? 참…….

“그래야 가장 모멸감을 줄 수 있을 거 같거든.”

- 문제 되는 건 아니지?

“증거가 없는데 문제라니?”

- 그래? 그 정도로 치밀하단 말이지?

“형만 입 닫고 있어 주면 돼.”

- 나야… 그럴 거지만…….

“안 되겠다, 뇌물을 줘야겠어.”

- 뇌물?

“잠시만 기다려 봐, 번호 불러줄게. 이번 주 토요일이 며칠이더라…….”

- 번호? 무슨 번호?

“복권 당첨 번호.”

- 개소리할래?

“이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형이 해달라고 해서 하는 거야. 아, 찾았다. 불러줄게, 받아적어. 4, 9, 15…….”

- 자, 잠깐만. 그냥 문자로 보내.

“진지하네.”

- 너도 진지한 거 같은데, 뭐 믿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천 원 손해 보려나.

“날 믿어?”

- 이게 믿음의 문제냐? 어차피 살 건데 네 번호도 넣어서 사는 거지.

“당첨되면 나 절반 주나?”

- 만약에 진짜라고 치자, 그럼 이번 주 번호만 아냐?

“아니, 10년 치는 있지.”

- 10년 치는 얼어 죽을, 10년 미래에서 오셨어요? 아이구- 대단하시네! 그럼, 다음 주 꺼 사면 되겠네요!

“알겠다. 그럼 다음 주 꺼는 안 가르쳐줄게. 갑자기 기분 나빠졌네.”

- 그러시던가, 너무 진지해서 내가 미안할 지경이네! 야, 소주 한잔하자. 국밥엔 소주지.

“형… 아직 아침이야.”

- 야, 근데 이거 근거가 뭐냐? 이 번호가 맞는다는…….

“내 경험.”

- …….

“못 믿겠으면 이번 주에 번호 어떻게 뜨는지 보고 결정해. 다음 주 꺼도 가르쳐줄 테니까,”

- 아니, 살게. 일단 사놓지 뭐.

어차피 돈 벌 루트야 남아 넘쳤다. 복권 당첨은 푼돈 취급할 정도로.

그럼에도 10년 치 복권 당첨 번호를 가져온 건.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지인들에게‘선물용’으로 주기 위해서다.

직접 현찰로 주는 것보다 더 값질 테니까.

‘어디 보자… 이제 누구한테 가야 하나…….’

강기찬은 국밥값을 계산하고 가게로 나오며 생각했다.

‘재민이한테 가야겠네.’

노재민한테 싸인을 주겠노라, 약속했었다.

‘근데 지금 재민이가 몇 살이지?’

만났을 당시가 14살이었다.

그보다 10년 전이니…….

4살.

‘4살이라… 너무 어린데? 나를 모르지 않을까?’

아주 높은 확률로 강기찬이란 인간을 모를 확률이 높았다.

‘굳이 지금 재민이한테 가서 싸인주는 것도 웃기겠네. 미래에 네가 내 팬이 될 거고, 싸인받고 싶어할 거니까, 미리 줄게… 하는 건 너무 정신병자 같을 거고…….’

결론이 났다.

‘다음에… 주자.’

노재민이 조금 더 크고 난 뒤에

만난 당시에 팬이 된 지 몇 년 되었다고 했으니 12살쯤에 주면 확실히 좋은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걸어가던 도중이었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괴, 괴물이……!”

도심 한복판에 괴물이 나타났다.

강기찬은 즉시 뛰었다.

어떤 유저가 와도 자신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사태를 수습할 수는 없을 터.

현장에 가자마자 보이는 건 거대한 네발형 공룡 몬스터, 트라노우스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웬 어린애가 넘어져서 울고 있었다. 저대로 두었다간 상당히 위험한 상황.

슉-

트라노우스가 덤프트럭을 집어서 던졌다.

그러자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웬 아줌마가 외쳤다.

“어, 어떡해! 재민아!”

“응?”

강기찬은 우선 어린애 앞으로 이동해 덤프트럭을 받아냈다. 마법을 쏘아 보낼 수도 있었으나 그랬다간 스플래시 데미지를 주변인들에게 줄 수도 있었기에.

투-우욱.

덤프트럭이 부서지지 않게 사뿐히 내려놓았다.

직후, 헬파이어를 한 방 날려버렸다. 겁 화의 불꽃이 트라노우스의 복부에 붙더니 삽시간에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찌나 뜨거운지 미쳐 날뛰려 하기에 추가피해를 줄이고자 공중으로 띄웠다.

그리고 친절히 보호막을 쳐주었다.

물론, 이 보호막은 트라노우스를 위한 게 아니다. 놈의 몸에 붙은 불씨가 튀어 애꿎은 시민들이 다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지.

한데, 트라노우스는 그 보호막이 마음에 안 든 걸까? 허공에다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면서 발작했다.

그럴수록 불길은 더욱 거세졌고 산소는 부족해졌다. 몸부림치는 정성이 부족해지면서 서서히 내장이 타들어 가며 기어이 죽음에 이르렀다.

헬파이어는 대상을 소멸시키고 나서도 그 불씨가 남는 성질을 지녔다. 그렇게 또 다른 태울 것을 찾을 때까지 활활 타오른다.

오션 레인을 내려서 불붙은 사체를 꺼뜨렸다. 그런 다음에야 사체를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다.

완전히 안전히 확보되었다.

그제야 뒤돌아섰다.

“괜찮아?”

어느새 다가온 아줌마가 자식을 감싸 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강기찬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애를 살려주셔서… 재민아,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

“…고, 고맙습니다!”

“그래, 근데 애 성이 어떻게 되죠?”

“예? 노 씨예요. 노재민.”

“혹시 4살인가요?”

“예?”

“4월 25일생?”

강기찬은 얼마 전, 노재민에게 사인해줄 때 생일도 적어주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노재민의 어머니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어, 그걸 어떻게?”

자식의 나이를 맞추는 것도 신기한데 생일까지 아는 것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 유저의 스킬입니다.”

“그, 그런가요?”

“예.”

노재민의 어머니는 딱 봐도 유저가 아니었으니. 대충 유저의 스킬이라고 둘러대고 넘기면 될 일이었다.

노재민의 어머니가 공손하게 물었다.

“저… 괜찮으시다면 사례를…….”

“아뇨, 됐습니다. 저도 아드님에게 감사한지라…….”

강기찬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만난 유일한 팬이 바로 노재민이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거니 보답은 바라지 않았다. 아니, 다른 건 바랐다.

“그렇지만, 또 감사함을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예?”

“저… 굳이 사례를 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제 부탁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예?”

“아드님한테 싸인 좀 하게 해주십시오.”

“예?”

“싸인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 * *

강기찬은 숙제를 하나씩 해나가는 기분이었다.

‘만수형의 소원이야 어렵지 않았고, 재민이 부탁도 운 좋게 해결했지만…….’

딱 두 명 남았다.

NPC화타와 맹인검객.

NPC화타가 자신을 불러 달라고 했었다.

‘화타님은 지금 갇히신 건 아닐 테니…….’

하나, NPC화타를 부르는 건 훗날일 수밖에 없다. 레전드스토리 본사 휴지통에 갇히기 전이니까. 물론 그 전에 부를 수도 있으나 굳이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휴지통에 갇히지 않았을 때는 잘 먹고 잘살고 계셨다고 했는데, 그럴 때 지구로 부르는 건 사실상 납치에, 장차 향수병 들게 하는 짓이지.’

다짜고짜 불러내는 건 명분도 없고 설명할 거리도 없었다. 그랬기에 좀 이상하긴 해도 일단 휴지통에 갇혀보게 한 뒤에 불러내는 게 그림이 맞았다.

그렇지만,

‘말씀은 드려도 나쁘지 않겠지.’

NPC화타에게 출두를 썼다.

바로 근처에 나타났고, 방이었기에 마주쳐버렸다.

“누, 누군가?”

느닷없이 눈앞에 낯선 사람이 서있다? 경계를 안 할 수가 없다. NPC화타가 한발 물러섰다.

“놀라신 건 알지만,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온 겁니다.”

“뭐?”

“미래에 어딘가에 감금되실 겁니다.”

“뭐라고?”

“그럼 그때 저에게 귓속말하십시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여기까지입니다.”

친절하게 설명할 법도 했지만, 그래봤자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다. 미친놈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겠지.

반면 레전드스토리 본사 휴지통에 갇히는 순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되겠지. 그때 가서 구해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되리라.

그리고 남은 한 명…….

맹인검객.

‘맹인검객도 지금 바로 할 건 없지.’

훗날, 자신을 암살하러 온다면 그때 이름을 불러주어도 될 것이다.

“이제 뭘 할까…….”

대강의‘숙제’는 끝마쳤다.

회귀 전과는 달리 할 게 많다.

그리고 실제로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었다.

부와 명예, 권력… 다 가질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미 가진 거나 다름없고.

그렇기에 소원권으로 빌 소원은 역시나 하나밖에 없었다.

소원권을 꺼냈다.

“불로불사.”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

진부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가진 걸 다 가진 권력자들이 종국에 꿈꾸는 게 괜한 이유가 아닌 것.

병 걸리면 어쩌냐고?

NPC화타가 있다.

이로써 남들이 공통으로 다 가지는 기본적인 근심·걱정은 털어놓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하게만 살면 되겠네.’

앞으로의 10년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외제 차부터 구매하러 가기로 했다.

아니, 운전면허부터 따야겠다.

아니, 카트 한판 해볼까?

* * *

그렇게 대격변이 터지고 10년이 지났다.

강기찬은 일부러 오늘 일정은 비워두었다.

아주 뜻깊은 날이 될 거라서.

‘슬슬 가볼까.’

정확히 오늘이었다.

복수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오늘이 오기만을 10년이나 기다렸네.’

기다린 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강기찬이 따로 얻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정태수의 삶에서 가장 최악의 날이 될 테니까.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정태수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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