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회귀의 시계를 사용합니다.]
[원하는 과거로 회귀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연, 월, 일을 지정해주십시오.]
과거.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
그 기준은 확실했다.
‘10년 전이지.’
대격변이 시작되던 날.
20대 극 초반.
그의 인생이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을 그 시절.
그보다 더 과거로 돌아갈 것도 없었다.
딱 그때로 돌아가면 되었다.
그래야 의미가 있었다.
[대격변이 시작되던 날.]
[그날 그 시각으로 시간 회귀합니다.]
[현 상태를 유지한 채로 회귀합니다.]
슉!
시야가 암전되었지만, 침착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거라 이럴 줄 예측했고 능히 감수할 수 있었기에.
잠시 후, 햇살이 들어오듯 밝아지는 시야.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몇 년 전 천장 벽지를 갈았었다.
눈에 보인 건 예전 천장 벽지였다.
그것만으로도 회귀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집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것 역시 알았다.
‘슬슬 움직여볼까?’
움직이기 전, 우선 두 다리의 감각을 느끼려 했다.
이것만으로도 회귀 전의‘상태를 유지한 채’로 회귀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테니.
발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꼼지락, 꼼지락.
역시나 다리는 멀쩡했다.
“후…….”
내심 일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던 터라 이제야 마음껏 안심할 수 있었다.
‘무사히 회귀가 되었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대격변까지 10분…….’
대격변 시작되기 10분 전으로 설정해두었었다.
일부러 이 시간에 맞춰서 회귀했다.
그 정도는 준비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여겨서.
바로 이 인간 때문에…….
‘정태수…….’
시간 회귀를 결정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첫째,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한 것.
둘째, 정태수에게 복수하는 것.
첫째는 회귀를 안 하면 불가능했다.
반면, 둘째는 회귀를 안 하더라도 할 법도 했으나, 테스트서버에 대해 알기 훨씬 전에 정태수가 사망하는 바람에 불가능했었다. 이렇게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서는…….
그렇기에 과거로 회귀한 다음 가장 먼저 할 일은 단연‘복수’였다.
정태수에 대한 복수.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 새끼도 지금이 가장 화려하던 시절이었지…….’
강기찬은 세계 랭킹 1위 프로게이머.
정태수는 세계 랭킹 2위 프로게이머였다.
대격변이 시작되면서 강기찬을 제치고 세계 랭킹 1위가 되어버렸고. 그것도 프로게이머가 아닌 현실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 대통령보다 더 권력을 지닌 실세 중의 실세로서.
‘그런 정태수를… 드디어 나락으로 보내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이런 방식으로 복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최상의 복수방법 같았다.
실은 고민했었다.
지금 복수하느냐??
나중에 정태수가 정점을 찍었을 때 박살 낼 거냐.
둘 중 하나를 정하려고.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정태수였기에.
둘 다 하자고.
지금도 복수하고.
나중에도 복수할 것이다.
다만, 차별점이 있다.
원래 역사대로 정태수가 정점 찍는 일은 없을 거라는.
‘그렇게는 못 하지.’
물론, 가장 행복할 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복수의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사양이었다.
‘굳이 시간을 들여서 정태수가 누릴 거, 다 누리고 행복해하는 걸 지켜봐야 해? 그 새끼가 행복해하는 거 1초라도 보기 싫어.’
‘그 행복과 기대감은 딱 우리 집 올 때까지 만으로도 충분하지, 아니 과하지.’
그동안 꾹꾹 참아왔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서.
아니, 외압에 의해 알릴 수 없었다.
그만큼 정태수는 영악했다. 대격변이 터지자마자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온 것만 봐도 알듯이.
자신을 연속으로 죽이고선 더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입 닫고 살라고 했었다.
나름대로 대격변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계산이 섰기에 가능한 협박.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확신했겠지.
지금도 그런 미래의 희망과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자신을 맞이하러 왔었을 터.
우선은… 그때 1차로 모든 걸 박살 내버리는 게 꽤 강렬할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치는 것. 정태수에게 알맞은 복수방법이었다. 그도 그런 게 싫다는 식으로 말해왔었으니까.
흐뭇했다.
곧 있으면 자신이 겪었던 좌절을 정태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해줄 수 있을 터. 아니, 그 충격을 더 클 것이다.
‘그 새끼는 내가 아직도 못 걷는 줄 아니까.’
강기찬이 멀쩡히 일어서고 걷는 것.
정태수 인생에 최고의 반전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곧 오겠네.’
정태수에게 복수하러 갈 것도 없었다.
‘15분 안에 나한테 올 거니까.’
대격변이 시작되고 10분도 안 되어서 정태수가 집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어떠한 변수도 없기에 100% 일치할 터.
‘기다리면서…….’
계속 누워있기에도 좀 그랬다.
맵핵을 켜놓았기에 정태수가 오기 전에 누울 자신도 있었고.
천천히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정말 젊어졌구나.’
회귀의 시계 덕분에 회귀해도 레벨, 아이템 등을 유지하는데, 유일하게 변하는 게 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10년 전의 얼굴과 몸으로 되돌아가는 것. 한 마디로 10년 젊어졌다는 것이다. 20대 극 초반으로……!
얼굴만 봐도 안다.
10년 전의 그 앳된 얼굴이었다.
‘이제… 좀 덜 늙겠네.’
단순히 10년 전의 얼굴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앞으로 10년 뒤의 얼굴 또한 회귀 전과 달라질 것이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고 하지 않나. 인상, 표정이나 주름살 등으로.
과거의 그는 평범한 20대의 삶을 살지 않았다. 대격변이 시작되던 날, 그 하룻밤 사이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했었고, 지옥에서 10년간 지내왔다.
무수히 많은 절망을 겪으면서.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 부적응, 혼자만 불이익을 당했다는 억울함, 주변의 불쾌한 동정에 대한 분노, 기자들의 조롱, 악플러의 맹공격…….
깎이고 깎여 절벽이 되어버린 자존감까지…….
이제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 다시 30대가 되었을 때의 얼굴은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오네…….’
맵핵에 정태수의 이름이 동네 안으로 진입했고 이리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생전 처음이었다.
기대감으로 뛰는 울림은.
천천히 침대로 가서 드러눕고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러면서 저절로 짙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린아이가 된 양.
‘살다 살다 이런 기분도 다 느끼네…….’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는 상대가 오고 있다. 그것도 나를 죽이고 약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는 걸 뻔히 알고 있다.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짜릿하게 고조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승률 100%도 나쁘지는 않아.’
프로게이머 시절도 그렇고, 대다수의 대전에서 승률 100%였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승률이 낮았던 적이 많았지. 물론 그거야 의도적으로 그런 과제만 쫓아다닌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여하튼 지금처럼 승률 100%는 드물지 싶었다. 게다가 승률 100%라서 기분 좋았던 적도.
‘정태수의 레벨이 몇이었지? 990 정도였던 거 같은데…….’
과거, 이 시점의 자신은 999레벨이었다.
그리고 정태수는 그보다 낮았다.
반면, 작금의 자신은 5만 레벨.
그것도 자신은 앞으로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고…….
상대는 심하게 방심하고 오고 있을 테니…….
여러모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오오오! 왔다, 왔어!’
마침내 정태수가 집 앞까지 왔다.
띡- 띠띠띠-띠띡!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이제와서 느끼는 거지만, 참 안일했었다. 현관문 비밀번호 알려준 것 말이다. 물론 이 당시만 해도 믿고 의지할 만한 동료여서 그런 거지만.
‘다 부질없는 가정이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주든 안 알려주든 죽임당하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작정하고 살인하러 온 인간에게 그깟 현관문 따위가 뭐 얼마나 걸림돌이 되겠나. 당장 100레벨만 되어도 현관문쯤이야 종잇장과 다를 바 없는데. 손쉽게 부수고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상념에 잠긴 사이, 정태수가 쥐죽은 듯이 현관을 지나 거실로, 침실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발소리도 안 나는 게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그렇게 다가오더니 침대 앞에서 섰다.
1초? 2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이불을 젖혔다.
정태수가 곤히 잠들어 있는 강기찬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멍청한 새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괜히 소리 내서 자는 강기찬을 깨우면 좋을 건 없으니까.
대신 속으로 실컷 욕을 퍼부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고 잘도 자고 있구먼…….’
강기찬을 둘러업었다.
급하게 오느라 준비된 건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는 계획했었다.
이 자리에서 강기찬을 죽이면 안 된다고.
무려 레전드스토리 세계 랭킹 1위를 살해하는 것이다.
거사를 치르는데, 내가 아닌 남의 집에서 하긴 꺼려졌다.
‘도중에 누가 올지도 모르고, 또 한 번 죽이고 말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죽이면서 아이템 다 뺏어 먹으려면 꽤 긴 작업이 될 텐데, 작업하다가도 중간중간 나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역시 거기밖에 없지. 창고로 데려간다…….’
자신만이 아는 공간으로 강기찬을 데려가는 게 최선의 선택지였다.
강기찬을 내려다보았다. 고맙게도 여전히 자고 있었다.
‘잠에 깊이 빠졌구먼.’
실제로 강기찬은 안 자고 있었고 자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속셈을 모르기에 자는척한다는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일반인의 상식상, 납치당하게 생겼는데 자는 척하는 게 말도 안 되고 말이다.
* * *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태수가 강기찬을 데리고 창고로 들어왔고, 의자에 묶으려고 밧줄을 가져가는 순간까지…….
“휴.”
강기찬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너무 굼뜨네.”
나직이 말했다.
“!”
정태수의 손에 허공에서 멈칫했다.
잘못 들었… 을 수가 없었다.
강기찬을 내려다보았다.
“… 너 정신을 차렸나?”
“어, 덕분에.”
강기찬이 어느새 뜬눈으로 정태수를 올려다보았다.
정태수를 보니 회귀했다는 사실이 확! 실감이 났다.
“정말 반갑다.”
“뭐? 뭔 소리야? 어제 저녁에도 봐놓고선.”
“아, 그랬던가? 미안, 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났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뭐?”
“내가 회귀하는 바람에 사실상 어제 기억은 없거든.”
“뭐? 회귀?”
정태수는 회귀라는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그러다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강기찬이 정신이 나가서 횡설수설하는 거라 여기기로 한 모양.
“됐고… 강기찬, 네 아이템, 다…….”
“… 넘겨. 그럼 목숨만은 살려준다! 이 말 하려고 했지?”
“!”
정태수는 황당했다.
자신이 하려는 말을 미처 다 내뱉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기찬이 그 뒤를 자연스레 이어버렸다.
마치 생각이 읽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