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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테스트서버-147화 (147/151)

147화

“우-우우웁!”

강기찬은 두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누가?

너무 가까워서 누군지 인식하는 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입술을 닫으며 얼굴을 떼는 순간에야 보고야 말았다. 누가 이런 짓거리를 한 건지를……!

“매, 맹인검객!”

“…….”

맹인검객이 한 짓이었다.

쨍그랑-

강기찬의 뒤편에서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차마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

“후…….”

맹인검객의 얼굴도 빨개 있었다.

방금 그 과감한 행동과 표정은 어디가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기찬이 뒤늦게 코를 훌쩍였다.

“이거… 술 냄새? 너 술 마셨어?”

“… 그래, 어떻게 안 마시냐?”

뒤에서 NPC화타가 작게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저… 우리는 이만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만수가 답하는 것도 들렸다.

“기찬이는 저 취향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 하면서 노재민의 눈을 가렸다. 노재민이 그 손을 치우며 낮게 읊조렸다.

“다 봤는데 뭘 가려요…….”

강기찬은 시간이 정지한 기분이었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 화부터 내야 하는데 화도 안 날뿐더러 타이밍도 놓쳤달까…….

“저… 무슨 일 있어?”

“너 떠난다며?”

“아, 어…….”

청용과 주은 등등에게는 문자로 남겼다.

굳이 만날 거 없이 문자, 그리고 전화로 작별하기로.

저쪽에서 보고 싶어 한다면 만나줄 의향은 있지만.

여하튼 거기엔 맹인검객도 포함되었다.

‘문자 방금 보냈는데…….’

채 30분도 안 지났을 거다.

“장난은 아니지? 그 과거로 떠난다는 사실 말이다.”

“어, 내가 무슨 장난을 쳐도 너한테까지 치겠냐?”

“그렇군, 아직 너와 나는 장난조차 칠 수 없는 사이였지, 네가 나빴다.”

“뭐?”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노력해볼 걸 그랬어. 뭐 그랬어도 네가 바빠서 시간을 못 냈겠지만…….”

맹인검객은 강기찬이 들으라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인 건지 모를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네가 과거로 떠난다면, 그 세계… 라고 해야 하나… 그곳에서도 너는 정점에 서겠지.”

“…….”

“… 그러면 필시 공적이 될 테지. 또 누군가는 너를 죽이려 들 테고… 그러다 보면…….”

“…….”

“나는 또 너와 다시 만나게 될 테지. 그리고 그 계기는 지금과 똑같은 것이다. 이번 생에서처럼 너를 암살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때는 너를 공격하지 않는 나였으면 좋겠다. 첫인상이 안 좋은 건 이번 생에서면 족하거든.”

“왜 그래? 너무 부담스러운데?”

“그래, 마음껏 부담스러워해라, 어차피 너는 내 곁을 떠나지 않나. 그렇다면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게 해라. 그냥 넌 듣기만 하고.”

“어? 어어…….”

“잘 들어라.”

“듣고 있어.”

“나는 너를 좋아한다.”

“!”

다짜고짜 키스할 때부터 대강 예상은 갔다.

하지만, 이렇게 말로 들으니까, 강기찬도 귀가 빨개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맹인검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너무 급전개 같냐?”

“… 조금.”

“급전개를 할 수밖에 없지. 네가 급전개를 했으니.”

“뭐?”

“너를 알게 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이다. 그런데 너는 이미 볼일을 다 보고 과거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 어느 누가 천천히 호흡을 맞출 수 있겠나.”

“…….”

“너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 모를 거다. 맞지?”

“어.”

“그래, 너는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으며 그 시간마저도 상당수 적과 적으로 지냈었으니까.”

“…….”

“그런데 어쩌나, 첫눈에 반했는데…….”

강기찬이 침을 삼켰다.

“항상 암흑 속에 갇힌 삶이었다. 그런데 네 덕분에 암흑을 탈출하고 빛을 보았다. 그렇게 뜨게 된 내 첫눈에 보인 남자도 너였고, 내 첫눈을 맞이하게 해준 은인도 너였다. 어찌 안 좋아할 수가 있겠냐?

뒤에서 NPC화타가 김만수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저 여자가 지금 거짓부렁이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저 여자의 첫눈에 보인 남자는 접니다. 이것만은 꼭 알아주십시오.”

김만수가 입 다물라는 듯 엄지를 입에 갖다 댔다.

“예, 예에 좀 집중합시다.”

어차피 강기찬과 맹인검객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맹인검객이 말을 이었다.

“너보고 가지 말라고, 고집을 피우진 않겠다, 남자의 앞길을 막는 부인으로 남고 싶진 않기 때문이지.”

너무 급전개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강기찬은 내색하지 않았다.

“과거에서 내가 암살하러 오거든, 이 말을 해라. 그러면 괜한 싸움은 하지 않고 너와 돈독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거다. 그게 뭐냐면…….”

맹인검객이 강기찬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내 이름을 알려주마, 내 부모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이에게만 알려줄 예정이었는데, 그동안 없었지. 하지만, 너라면 괜찮다. 기억해라, 나는 최설아다. 과거에서 내 이름을 불러줘.”

직후,

“잘 가라. 너무 고마웠다.”

쿵!

“…….”

맹인검객이 퇴장했다.

* * *

강기찬은 작별인사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주 짧은 기간, 적은 수의 사람들과 알고 지냈지만, 의외로 헛된 시간과 인연은 아니었음을.

다들 자신이 과거로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내심 말리고 싶어 했으니까.

강기찬은 집에서 나왔다.

이제 정말 떠나야할 때가 왔으니까.

그의 뒤편에는, 정확히는 옥상에는 맹인검객이 있었다. 자신이 있다는 티를 내지 않고 있지만, 맵핵을 보았기에 있는 줄 알았다. 조용히 떠나는 길을 지켜보고자 하는 거겠지.

잠시 후, GM미르, GM자쟈가 찾아왔다.

“강기찬,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우리도 너에게 많은 빚을 졌어. 솔직히 네가 이렇게 지구를 지킬 줄은 몰랐는데.”

“역시 내 남자라니까.”

GM미르가 강기찬을 부둥켜안았다.

일순, 강기찬은 맵핵을 통해 맹인검객이 움찔했다는 걸 알아차리고선 얼른 품에서 벗어났다. 괜히 운영자에게 검을 들이대는 건방진 유저가 탄생하진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이 판단이 옳았음을 약간 늦게 알았다.

GM미르는 그냥 운영자가 아니었기에.

“떠나는 마당에 더 비밀로 할 것도 없겠지?”

“비밀이요?”

강기찬이 솔깃해하며 묻자, GM미르가 쪼갰다.

“어, 나 사실…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네. 네가 말해.”

GM미르가 GM자쟈의 어깨를 살살 쳤다.

“예, 제가 말씀드리지요.”

어째 GM자쟈가 GM미르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 같았다. 이내 그게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GM미르님은 레전드스토리 게임사 회장님의 장녀이십니다.”

“!”

강기찬은 진심으로 얼어붙었다.

이번 생에서는 맹인검객에게 키스 당한 거 외에는 더 없을 줄 알았다. 한 시간 안에 떠날 계획이었기에 물리적으로도 그랬을 테고.

한데 상상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 정말입니까?”

“어,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레전드스토리 게임사 회장실에 들어가게 했겠어? 그리고 너를 돕는 것처럼 회사 운영방침에 위배 되는 행동을 했겠냐고.”

하긴 이상했었다.

그동안 GM미르가 한 행동은‘일개 운영자’가 저지르기에는 지나치게 과감했다. 도를 지나쳤달까?

화끈한 성격 때문에, 그리고 회사에서 잘려도 상관없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싶었는데 설마하니 레전드스토리 게임사 회장님의 장녀였다니! 역시 믿는 구석이 확실하게 있으니까, 저럴 수 있는 것이었다.

강기찬이 웃었다.

“이거 저한테 말씀하셔도 됩니까?”

“왜?”

“과거에도 GM미르님은 있을 텐데요?”

“왜 협박이야?”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협박일 수도 없지요. 보아하니 비밀도 아닌 거 같고. 이 사실로 제가 뭘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

강기찬이 GM자쟈를 보며 중얼거렸다. 알 사람은 다 아는듯했다. 다만, 유저들만 몰랐을 뿐.

“그렇지… 근데 너라면 이걸로 협박할 수 있을 거 같아 크크큭.”

GM미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는 못 만날걸? 그러니까, 네가 과거로 돌아가면 말이야.”

“왜? 아… 아아…….”

강기찬은 몰랐다가 이내 깨달았다.

과거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GM미르는 못 만날 것이었다.

애초에 GM미르는 테스트서버 운영자다.

그리고 그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거기서 나오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강기찬이 돌아간 과거에는 더더욱 그렇겠지.

즉,

“너 다시 테스트서버로 갈 거야?”

강기찬이 과거로 돌아가서도 테스트서버에 가고 또 적극적으로 GM미르와의 접점을 만들어야 만남이 성사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려면 꽤 귀찮아질 텐데?”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과거에선 테스트서버에 들어오는 게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GM미르와 인연을 맺고자 한다면 꽤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었다. 무조건 숱한 의심과 불신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과거에 돌아가더라도 테스트서버 입장은 자유롭지, 하지만, 테스트서버에 입장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과거로 가도 테스트서버에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질 터.

테스트서버에 입장했다는 걸, 운영자, 그러니까 GM미르는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또 만나겠지. 또 물을 것이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고…….

“… 어떻게 테스트서버에 입장할 수 있는지, 그걸 설명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

애초에 테스트서버 입장 조건이,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 강기찬은‘공식적’으로는 테스트서버 입장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역설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 회귀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회귀했다고 고백할 거야? 과거의 나에게?”

그건 결코 쉬운 고백은 아닐 것이다.

남에게 내가 미래의 일들을 안다고 하는 것은, 강점임과 동시에 약점으로 발목이 잡힐 수도 있으니까.

사람은 시시각각 변한다.

지금 친하게 지내도 과거에 돌아가 하나라도 일이 삐끗하게 된다면 바뀔 수 있는 법.

아니, 인간관계가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분명 변할 것이다. 고로, 작금의 신뢰와 인간관계를 믿고 과거의 대상에게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못할 것도 없지요.”

강기찬은 시간 회귀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GM미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사양할게. 그냥 나와는 접점을 만들지 말아줘. 괜히 네 약점을 드러내지 말라는 거야, 설령 그게 과거의 나라도…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성격이나 그런 게 매우 다를 거거든… 괜히 그런 나를 상대한다고 골치 아파질 거 없어.”

김만수와는 대비되었다.

‘그 형은 복권 당첨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며 또 누군가는 강기찬을 걱정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만수형이 나쁜 놈은 아니지.’

김만수는 보편적인 인식일 뿐이었다.

단지 GM미르가 대단할 뿐이고.

그래도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과연 높은 곳에 있는 자는 다르달까.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도 했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강기찬이 허리 숙여 작별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GM자쟈도 허리 숙여 작별인사를 전했다.

“우리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강기찬은 간지러운 심장을 뒤로하고선 고개를 돌렸다.

띠링!

[첫 번째 특전, 회귀의 시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 / N?]

“회귀의 시계 사용.”

이제 새로운 삶을 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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