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강기찬은 김만수와 절교할까, 하다가 말았다.
‘이제와서 절교할 수는 없지.’
[강기찬] 내가 좀 먼 곳으로 가게 되어서…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김만수] 어디 여행이라도 가냐? 즐겁게 놀다 와!
[강기찬] 잠깐 보는 것도 안 돼? 여친이라도 생겼어? 좀 보지?
[김만수] 왜 이렇게 달라붙어? 나 바쁘다니깐!
강기찬은 1,000만 원을 김만수에게 입금했다.
[김만수] 야! 이 돈 뭐냐?
[강기찬] 빨리 와.
[김만수] 아, 알겠습니다. 집으로 가면 되죠? 곧 가겠습니다.
역시 자본주의 맛을 보니까 사람이 태도가 달라졌다.
덜컥!
“야! 뭐야? 대체 어디를 가길래? 돈까지 부치면서 사람을 오라 가라 해?”
김만수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손에는 비닐봉지에 소주가 가득 들어 있었다.
강기찬이 그의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하나 챙겨가며 따 마셨다. 김만수도 깡소주를 들이켰다.
“역시 이 맛이지! 근데 무슨 일이냐? 먼 곳 어디?”
“아… 과거로 시간 회귀를 할 거라서.”
“우웩-!”
김만수가 마시던 소주를 다 뱉어버렸다. 입가에 줄줄 흐르는 걸 닦지도 않고선 침 튀겨가며 소리쳤다.
“너 어디 아파?”
“안 아프고, 진심이야.”
“근데 왜 지랄이야? 판타지 소설이라도 봤어?”
“지랄 아니라니까 그러네?”
강기찬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 이거 봐.”
회귀의 시계를 보여주었다.
이것만 보여주면 설명이 필요 없을 거기에.
《 회귀의 시계 》
[분류] 아이템
[등급] 유일
[설명]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전.
[효과]
(1) 원하는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2) 현 상태를 유지한 채로 회귀할 수 있다.
* 단, 나이가 어려집니다.
[조건] 1만 레벨 이상.
[제약] 없음.
이를 본 김만수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벌컥- 벌컥.
소주를 한 병 더 마실 줄은 몰랐지만.
그러고선 트림을 한 뒤에 짧게 내뱉었다.
“미친…….”
입가에 침이 줄줄 흘렀다.
이걸 본 마당에 거짓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상상을 초월한 아이템이네. 원하는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니, 그것도 이룬 것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어! 너… 설마? 과거로 회귀하려고?”
“어…….”
강기찬도 소주 한 병을 벌컥- 들이마시고선 입을 닦았다.
그리고 듣게 된 김만수의 말.
“왜? 이번 삶은 마음에 안 들…….”
말을 하다가 말았다.
강기찬의 심정을 십분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었을 수도 있겠구나…….”
강기찬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강기찬만큼 굴곡진 삶을 살았던 사람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레전드스토리로 게임계의 신화를 써 내려가다가 대격변이라는 유저들의 축복인 날에 홀로 절망을 겪었지 않나. 그리고 다시 다리를 고치고 재기를 하는 작금에 이르렀고…….
“확실히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어, 부럽다, 야…….”
짝!
김만수가 강기찬의 어깨를 툭 쳤다.
“… 근데 뭐 이렇게 일찍 말을 해?”
“응?”
강기찬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자, 김만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회귀의 시계 사용 조건… 1만 레벨이라고 되어있던데. 야! 적어도 9,000레벨은 되고 나서 알려주지, 무슨 마음의 준비를 이렇게 일찍부터 시키려고 그래?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족히 10년은 걸릴 일인데!”
강기찬은 그제야 김만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 형, 내가 아직 쪼렙인 줄 알고 있겠네…….’
김만수는 강기찬의 레벨이 5만이라는 걸 모른다. 5만은커녕 2,000레벨도 못 넘긴 거로 알고 있을 터.
실제로 강기찬이 테스트서버에 간 게 이제 일주일 조금 넘었고 일어선 것은, 그보다 더 최근이었으니, 김만수의 관점에선 강기찬이 레벨업을 재개한 게 채 일주일도 안 되었다고 보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안에, 본 서버에서는 당연히 2,000레벨도 못 넘기는 게 맞았고.
회귀의 시계 사용 조건은 1만 레벨 이상이니 너무 일찍 가르쳐준 게 아니냐고 뭐라 하는 것.
“형…….”
강기찬은 이번에도 말로 풀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상태창을 공개하려고 했다.
단, 그 전에…….
“놀라지 마.”
이 말을 꼭 해줘야 했다.
어차피 이 말 한다고 놀랄 걸 안 놀라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0.0001%라도 덜 놀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워낙에 놀랄 일이라서…….
“뭘 놀라지 말라는 거야?”
강기찬이 상태창을 공개했다.
1초… 2초, 3초…….
“어… 어어어?! 어어! 어?”
이번엔 예상했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제대로 된 말은 안 하고 어버버 거리기만 몇 초.
대략 1분 가까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야아-아아아!”
김만수가 괴성을 질렀다.
“어! 어어! 왜? 왜? 이거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어, 아니야.”
“너 왜 5만 레벨이야? 왜? 어떻게? 이게 말이 돼? 아니, 뭐 이런…….”
“…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999레벨에서 5만 레벨까지 오르는 과정.
그걸 다 설명하려면 판타지 소설로 족히 6권 가까이는 써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 자리에서 말로 다 하기엔 무리인 것.
“야, 술 다 깼다. 휴! 정신이 확 드네!”
술이 다 깨서(?) 그런지 김만수는 소주 한 병을 또 까서 들이마셨다.
‘저 형… 어지간히 충격인가 보네.’
김만수가 말했다.
“과거로 언제 갈 건데? 아, 곧 가겠네?”
“어, 그러니까 형 불렀지.”
“오늘이 마지막인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와… 이거 참 너무 당황스러으…….”
“나도 당황스… 형? 형?!”
김만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선 옆으로 넘어갔다.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이다.
“그러게… 시작부터 소주를 3병 연속으로 원샷을 왜 해?”
주량이 맥주 세 병인 사람이 말이야.
NPC화타가 방에서 나왔다.
“이분… 정신 차리게 합니까?”
강기찬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예, 부탁드립니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 * *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김만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NPC화타에게 사과했다. NPC화타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강기찬님의 손님이신걸요.”
“후… 이렇게 술이 한 번에 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하, 전부 강기찬님 덕분이죠. 한데…….”
NPC화타가 앞에 놓인 소주를 내려다보았다.
“저도 술자리에 끼어도 되겠습니까?”
“아? 예… 뭐 그러시지요.”
강기찬이 흔쾌히 수락하자 NPC화타가 병나발을 불었다.
“아…….”
NPC화타가 술 마시는 걸 처음 보았다.
그를 빤히 보고 있자, 대답이 나왔다.
“오늘은 꼭 술을 마셔야겠더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 아닙니다. 그런 날이 있지요.”
“강기찬님께서 떠나신다니…….”
“…….”
“늘 함께 있을 거로 여겼습니다.”
김만수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면서 거들었다.
“예, 저도 기찬이랑 평생 함께 있을 줄 알았어요! 비록 한날한시에 죽지는 않을 테지만, 이렇게 떠나게 될 줄은……. ”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네.”
“앞으로 없는 거나 죽는 거나 그게 그거지. 가슴 속에선 살아있다, 이딴 건 없어 인마! 넌 과거로 가는 순간 죽은 사람인 거야!”
강기찬은 김만수의 말이 늘어남을 경계하고선 쓴소리를 내뱉었다.
“형, 이번에는 좀 적당히 마셔.”
“그래, 또 신세 질 수는 없으니까.”
김만수가 NPC화타의 눈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NPC화타가 말을 이었다.
“저는 단순히 희망 사항으로 강기찬님과 늘 함께 있을 거로 여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예? 그려면…….”
“강기찬님께서 혹여나 사고나 수명을 다하셔서 죽더라도 제가 살려드릴 거였으니…….”
강기찬이 웃었다.
“그 정도면 늘 함께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예… 그 정도는 해야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NPC화타가 피식, 쪼갰다.
“한데, 시간을 역행하시면서 떠나시면… 그건 저도 어쩔 도리가 없겠군요. 감히 제가… 붙잡을 수도… 그렇다고 남아주실 거도 아닐 테니까요.”
“예, 맞습니다.”
강기찬은 특전으로 회귀의 시계를 받았을 때부터 다짐했다. 반드시 시간 회귀하고 말겠다고. 목전에 두고선 이제와서 마음이 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로군요. 그곳에서도 저를 찾아주십시오.”
“… 화타님을요?”
“예, 과거로 돌아가도 저는 존재하겠지요?”
“저도 과거로 안 가봐서 모르기는 하는데… 소설 보면 있긴 할 것 같아요.”
“예,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그곳에서도 제가 있다면 저를 찾아주십시오. 저를 구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작금의 저와 같이 평생 보필할 것입니다.”
“아, 예. 그러도록 하죠.”
“…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제가 아니지만? 아니 저의 과거? 이지만, 그래도 강기찬님을 보필할 수는 있다는 거니까요.”
이를 잠자코 듣던 김만수가 손을 들었다.
“야! 너 과거로 돌아가면 나한테는 어떻게 대할 거야?”
“응? 어떻게 대하기는…….”
“내가 그래도 이분처럼 큰 도움은 못 되었어도… 나한테 복권 당첨 번호는 알려줄 거지? 과거의 나는? 잘 먹고 잘살았으면 좋겠어.”
“하…….”
강기찬이 웃어넘겼다.
“결국, 그게 목적이었구먼. 복권 당첨 번호를 알려달라니.”
“소소한 부탁이잖냐. 내가 과거로 가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너라도 가서 다행이다…….”
“하여간 웃기는 형이라니까.”
딩-동!
“어, 왔나 보다.”
강기찬이 일어서서 현관문으로 가자 김만수가 물었다.
“뭐야? 누구를 또 불렀어?”
“어, 재민이.”
노재민이 들어왔다.
“형, 그게 사실이에요? 멀리 떠난다니?”
“어… 그게…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어…….”
강기찬이 설명을 시작했고 노재민은 얼굴을 굳혔다.
의외로 노재민은 단 하나의 딴지도 걸지 않았다.
“전 솔직히 과거로 돌아간다는 게 못 믿겠지만, 형이 그런 진지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테니… 믿어야지요.”
“고맙다.”
“안 가면 안 되는 거죠?”
“어? 어어…….”
“그러면… 그냥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포기도 빨랐다.
“부탁?”
“과거의 저를 만나면 사인 좀 바로 해주세요, 네?”
“음? 그, 그래.”
“그럼 됐어요.”
“그게 다야?”
“예 그게 다죠!”
“그렇구나, 누구와는 다르게…….”
강기찬이 김만수에게 눈치를 주었다. 김만수가 헛기침했다.
“내가 정상인 거지, 쟤가 비… 도 오고 그랬으면 좋겠다아…….”
노재민에게 비정상이라고 하려다가 나이가 어린 애라는 걸 직시하고선 말을 바꾼다고 고생했다.
딩-동!
또 현관문 벨소리가 울렸다.
이에 강기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올 사람은 없는데?”
GM미르, GM자쟈에게는 이 자리에서 말고 따로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올 사람은 없었다. 초대받지 않은 누군가거나…….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훅!
누군가 치고 들어와 강기찬의 뺨을 붙잡았다. 강기찬은 재빨리 물러서려 했으나 멈춰서고야 말았다. 갑자기 키스를 당해버려서. 살면서 이토록 당황한 적은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