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코인이 좀 더 필요하다?”
슈슈크크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강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왜?”
코인이 필요한 게 아니고‘좀 더’라고 했다. 충분히 거슬릴 만한 대목이었다.
강기찬은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코인이 드는 문제다. 그 코인을 슈슈크크한테 몽땅 받아낼 거다. 슈슈크크가 복사비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할 터.
마다할 명분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네 거 복사하는 김에 하나 더 복사해서 나도 가지게.”
“!”
그런데 너무 솔직했던 탓일까?
슈슈크크는 기가 막힌 지 헛바람을 들이켰다.
파티 사냥해달라던 헛소리 이후로 또 뻔뻔한 소리를 들을 줄이야.
“네가 왜… 내 걸 가지려고 하는 거지?”
“어차피 복사품이잖아? 좋은 건 나누자고.”
“코인이 좀 더 필요하다는 건?”
“내 복사비용도 대신 내줘.”
자기 코인 내고 복사해간다고 해도 혀를 찼을 거다. 심지어 그 복사비용까지 대신 내달란다.
‘이 새끼, 날강도가 따로 없네?’
슈슈크크는 강기찬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강자였어도 화가 났을 텐데, 약자주제에, 한 달 뒤에 죽을 운명인 주제에 이렇게 설쳐대는 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멋대로 굴 수도 없었다.
속으로 분을 삼키고선, 그러고도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 그래도 내 아이템을 내 돈 내고 너한테 주라고? 누구 맘대로?”
“그래서 네 허락 받으려고 그러는 거지.”
“싫다면?”
“그래도 내가 복사해주는 건데…….”
“무료라며?”
“원래 아이템 복사는 돈 내고도 못 하는 거 알지? 그거 해주는 게 무료라는 거지. 복사비용은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거고… 그건 내 재량이 아니지, 안 내면 복사가 안 되는 거잖아?”
한 마디로 별개라 이거다.
입장료랑 이용료를 구분 짓는 차이랄까.
그랬기에, 슈슈크크는 반발심이 앞섰다.
자신의 것을 복사하는 비용이야 기꺼이 낼 수 있다.
그러나 강기찬의 것까지 내는 건, 내키지 않았다. 복사고 나발이고 내 아이템이 남의 손에 덩그러니 넘어가는 게 불쾌했다. 그걸 떠나서 다른 행성인에게 주는 것 자체가 코인을 강에다 버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곧 사라질 행성인이었기에.
“근데 복사템을 가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한 달 뒤에 죽을 텐데?”
“소원이라서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은 못 들어주냐?”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아, 넌 모르겠구나, 어쨌든 우리 행성엔 그런 말이 있어.”
“…….”
“한 달 뒤에 죽을 거라고 오늘부터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잖아? 한 달 동안 요긴하게 쓰면 되지.”
“흐음…….”
“죽을 때 되면 돌려줄게.”
“… 반납하겠다는 거냐?”
“그래.”
“흐음…….”
“이것도 계약서 써줄게.”
어차피 죽거나 회귀하면 의미 없는 계약서, 얼마든지 써줄 수 있었다.
“…….”
“싫으면 말고.”
“…….”
슈슈크크는 침묵했다.
“그럼, 하는 거로 안다.”
강기찬은 슈슈크크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 그럼 정말 죽을 때 되면 반납하는 거다?”
“아, 그렇게 하겠다니까 그러네. 결국, 이렇게 될 거 시간만 낭비했네. 나 좀 신경 써 줘. 죽을 날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슈슈크크는 강기찬의 말을 들으며 지구인이 이미지를 굳혀가는 중이었다.
‘망할 새끼, 저거 시한부 인생이 맞아? 어떻게 저렇게 활기차게 돈을 뜯어 갈 수가 있나…….’
강기찬이 말했다.
“… 자! 특별히 다섯 개만 복사해줄게.”
강기찬이 특별히 다섯 개만 아이템 복사해준다고 한 것.
사실, 아이템 복사를 더 해주어도 괜찮았다.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었다. 어차피 아이템 복사비용은 슈슈크크가 다 내줄 거기에.
그렇지만, 우선은 제일 귀한 것만 하려고 했다.
아이템 복사를 하다말고 슈슈크크가 변심할지도 모르기에.
‘특별히 다섯 개만 아이템 복사해준다.’ 했기에 슈슈크크도 제일 귀한 순으로 다섯 개를 먼저 복사하려 할 것이다.
이러면 슈슈크크가 도중에 변심하더라도 몇 개는 건질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질 것이다.
‘슈슈크크도 굳이 쓰레기 아이템을 내밀지는 않겠지.’
강기찬이 대가로서 아이템 복사를 해준다고 했을 때, 어차피 지구 서버에 가서 아이템 복사를 얻는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거야 확신이 없지 않나. 나중 일이고 어찌 될지 모르기에.
기왕 공짜로 아이템 복사할 수 있는 김에 귀중품부터 내미는 건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귀중품은 하나의 가치도 큰데 똑같은 게 하나 더 생기는 거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자, 받아라.”
슈슈크크가 귀중품을 주었다.
“이건…….”
강기찬은 그것을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보았다.
“근두운?”
“그래, 근두운이다.”
‘근두운.’
어서 빨리 아이템 복사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띠링!
[스킬, ‘아이템 복사’를 사용합니다.]
[아이템, ‘근두운’을 복사합니다.]
[복사비용을 책정합니다.]
.
.
강기찬은 복사비용을 보고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에, 슈슈크크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 왜? 얼마나 나왔냐?”
“… 이 드네.”
“뭐?!”
슈슈크크가 화들짝 놀랐다.
“그게 정말이냐?”
“어.”
‘근두운’은 슈슈크크의 행성에서도 최상품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복사비가 상당했다.
“1,000조 코인이라고? 믿으란 말이냐?”
“어 봐봐.”
강기찬이 알림창을 띄워주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1,000조 코인이었다.
“미쳤구먼…….”
복사비용으로 코인이 소모되고, 아이템의 가치에 따라 복사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라고 설명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최상급 아이템인 만큼 이해는 가면서도 또 새삼 놀라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안 할 거야?”
슈슈크크는 강기찬의 물음에 확답하지 못했다.
“잠시만…….”
분명 아주 비싼 게 맞다.
우주 랭킹 1위인 자신이 머뭇거릴 정도면.
동시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기도 했다.
아니, 남는 장사다.
‘실제 판매액보다는 적을 테니…….’
얼마 전에 근두운을 9,000조 코인에 사겠다는 존재도 있었다. 1,000조 코인에 하나 더 생기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아니, 강기찬의 것까지 해주느라 2,000조 코인을 써도 7,000조 코인이 남으니…….
결심이 섰다.
“… 하겠다.”
“몇 개 할래?”
“… 개수는 상관없나?”
“그래.”
“그냥 하나만 하겠다.”
마음 같아선 많이 복사하고 싶었다. 코인이 없지만 않았어도.
아니, 코인은 있었다. 다만, 또 근두운 복사할 마음이 없었을 뿐. 다른 아이템을 복사하고 싶었다.
‘근두운만 복사하는 것보다는 다른 아이템도 두루두루 하는 게 좋겠지.’
슈슈크크가 손을 덜덜 떨면서 코인을 지급했다.
강기찬은 곧장‘근두운’을 복사해냈다.
[스킬, ‘아이템 복사’를 사용합니다.]
[아이템, ‘근두운’을 복사합니다.]
[복사비용을 책정합니다.]
[복사비용 : 2,000,000,000,000,000 코인]
[복사비용으로 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자…….”
근두운을 슈슈크크에게 주었다.
슈슈크크는 근두운 두 개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근두운이 두 개나 있다니.’
하나씩 만져보고 동시에 만져보았다.
푹신-
‘촉감이 같네, 무게도 같고, 이 정도면 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구별할 수 없는데?’
이름 끝에 괄호 치고‘복사’라고 되어 있는 것만 빼면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머지 4개의 아이템도 전부 복사를 해두었다.
휙-
슈슈크크가 강기찬을 노려보았다.
‘아이템 복사… 정말 탐나는 스킬이다. 이것만 있어도 평생 코인 걱정은 안 하고 살 수 있잖아?’
결과가 어찌 된다 한들, 아이템 복사 하나만으로도 지구에 가볼 가치는 충분하지 싶었다.
“얼른 지구로 가자.”
슈슈크크가 재촉하자 강기찬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가긴 가야지, 근데 일단 여기서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찍고 그다음에 가자. 그게 시간 낭비 덜 하는 거라서…….”
“하…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강기찬을 버스 태워줘야 하고, 여기서 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강기찬이 원하는 건 얻고, 내가 원하는 건 얻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구먼…….’
실은 그가 아직 대가로 받지 못한 것은 더 있었다.
지구에 가는 것 외에도.
바로 테스트서버로 가는 것.
“테스트 서버라도 가자.”
“좋아, 그거는 지금 해도 되긴 되겠다. 거기서 나를 버스 태워주는 게 레벨업도 빠를 테고.”
“…….”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테스트서버였다.
그런데 강기찬이 거기 가는 걸 원하는 뉘앙스를 풍기니 왠지 가기 싫어졌다.
“… 레벨업이 빠르냐?”
“어, 거긴 경험치 10배라서…….”
“미쳤구먼…….”
둘은 테스트서버로 갔다.
그리고 슈슈크크가 강기찬을 버스 태워주었다. 열심히 사냥하다가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잠깐… 테스트서버에 오는 것도 결국 강기찬을 키워주려고 온 게 되잖아?’
그 심정을 강기찬도 알아차린 걸까?
“어서 나를 키워주고 나서 테스트서버에서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해.”
“…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였다!”
* * *
시간이 흘러… 강기찬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모은 것.
슈슈크크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정말 이상한 놈이라니까, 경험치만 잔뜩 모아서 뭐할 거야? 현실은 1만 레벨도 못 찍었는데…….’
그것도 잠시, 이제 드디어 자유가 주어졌다는 기분에 기지개를 켰다.
‘슬슬 테스트서버를 둘러볼까?’
드디어 강기찬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지구 갈 건데 같이 갈래?”
“뭐?!”
슈슈크크는 정색하며 외쳤다.
강기찬의 한 마디에 하마터면 사레가 걸릴 뻔했다.
‘저 새… 일부러 저러는 거지? 엉?’
강기찬이 슈슈크크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왜 그래? 이전에는 어서 빨리 가고 싶어 하더니?”
“마음이 바뀌었다. 나중에라도 갈 수 있으니…….”
“그래? 그래도 나는 갈 건데. 넌 나중에 올래?”
“… 그래…….”
지구도 가고 싶었지만, 테스트서버에 온 김에 이곳에서 더 있고 싶었다.
“그럼 있어.”
강기찬은 이 행성을 귀환지로 설정해놓았다.
이제부턴 다음에 오고 싶을 때 얼마든지 올 수 있었다.
“돈 좀 빌려주라.”
“뭐?!”
“돈이 땅 파면 나오…….”
“경험치 10배 쿠폰 어때?”
강기찬이 경험치 10배 쿠폰을 꺼내고선 흔들었다.
“그, 그거 진짜냐?”
슈슈크크는 솔깃했다.
마침 경험치 올리기 버겁던 차였다.
“그래, 보여줄게. 잘 보도록 해.”
강기찬이 아이템 설명창을 띄워주었다가‘빠르게’ 지웠다. 아이템 이름을 보기엔 충분했다. 경험치 10배 쿠폰이 맞았다.
“얼마?”
“1,000,000,000,000,000 코인.”
강기찬이 1,000조 코인을 요구했다.
그러고선 거래창을 띄웠다.
“빨리하자, 나 급해, 화장실 좀 가자!”
“그, 그래…….”
강기찬이 슈슈크크를 재촉했다.
슈슈크크가 코인을 올렸고, 강기찬도 경험치 10배 쿠폰을 올린 뒤, 거래 승낙 버튼을 눌렀다.
교환이 완료되어 거래창이 꺼지고.
“또 보자고.”
강기찬은 지구로 사라졌다.
슈슈크크가 흡족해하며 경험치 10배 쿠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
[효과] 기존의 경험치 10배를 더 얹어준다
[제약] 허수아비의 논밭 한정.
… 놓쳐선 안 될 걸 놓쳤다는 걸 뒤늦게 깨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