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슈슈크크가 고백했다.
“사실, 9,999레벨에서 10,000레벨이 될 때, 더 필요한 게 있다.”
“만렙 돌파의 광석 말고도?”
“그렇다. 만렙 돌파의 광석 말고도 더 필요한 게 있다.”
거짓말은 아니다.
강기찬이 레벨업하려면 1차 만렙 돌파의 광석이 아니라 2차 만렙 돌파의 광석이 필요한 거니까.
‘그건 말해줄 수 없지.’
여전히 입장은 변치 않았다.
강기찬이 레벨업하려면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는 알려주지 않을 속셈이었다.
다만, 강기찬이 가진 만렙 돌파의 광석으로는 경험치가 꽉 차도 레벨업이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알려주려 했다.
‘이건 말해줄 수 있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알려주는 건 오히려 상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터.
“그러니 내가 파티 사냥해줘서 네가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모은다 한들, 레벨업은 못 할 거다.”
일찍이 빠져나갈 구멍을 확보하는 것이다.
경험치가 충분히 모였는데도 10,000레벨이 되지 않는 것 가지고 항의하지 않게끔.
슈슈크크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못 받고 시작하자는 것.
이로써 강기찬의 기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경험치만 모이면 바로 레벨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걸림돌 하나가 도중에 놓이게 된 격이니까.
‘그래도 이 거래는 성사될 수밖에 없지.’
그렇지만, 강기찬은 거래를 깨지 않을 것이다.
경험치가 모였음에도 바로 레벨업 못하는 게 슈슈크크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그 점을 짚어준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슈슈크크의 파티 사냥’을 포기할 이유는 아니기도 했다.
일단 슈슈크크의 파티 사냥은 받아놓는 게 좋았다.
‘비록 바로 레벨업은 못할지언정, 그렇다 한들, 내가 파티 사냥해주는 거로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모을 수 있으니까.’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모으는 것도 일이었다.
혼자 사냥을 한다면 족히 한 달은 잡아야 할 터, 그걸 10분으로 단축해주는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강기찬은 만족스러울 수밖에.
강기찬이 말했다.
“흠, 레벨업에 필요한 거는 내가 따로 모아야겠네.”
“그럼, 파티 사냥을 할 건가?”
“당연하지, 너한테 버스 탈 기회가 흔한가?”
“잘 생각했다.”
“근데 레벨업에 필요한 게 뭐야?”
“그건 일단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다 모은 다음에 알아내도 늦지 않을 거다.”
“그래.”
강기찬은 무덤덤한 척 연기했다.
‘등신아, 레벨업에 필요한 건 ‘2차 만렙 돌파의 광석’밖에 없는 거 다 아는데, 뭐가 더 있어? 아이구… 속아주는 것도 힘드네…….’
강기찬은 이미‘2차 만렙 돌파의 광석’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슈슈크크가 버스 태워줘서 필요경험치가 꽉 차면 바로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필요경험치가 꽉 차도 바로 레벨업하지는 않을 것이다. 슈슈크크에게 괜히 경계심만 키워줄 테니.
[강기찬님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파티 신청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파티가 되었습니다.]
“됐다, 가자.”
슈슈크크는 당당하게 앞서 걸었다.
자신을 죽일 인간의 성장을 돕는 건지도 모르고.
* * *
강기찬은 흡족해했다.
사냥터에서 10분 만에 10,000레벨이 될 수 있는 경험치가 모였다. 인벤토리에 있는 2차 만렙 돌파의 광석으로 마음만 먹으면 10,000레벨이 될 수 있는 셈.
“자.”
슈슈크크에게 아이템 복사 스킬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한데, 슈슈크크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다.
《 아이템 복사 》
[설명] 방문할 수 없는 ‘히든 스테이지, 만렙 고블린의 왕국(지구 서버)’에 방문한 데에 대한 보상.
“?”
개운치 않달까?
이를 눈치챈, 아니 이미 예측했던 강기찬이 순진무구한 척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슈슈크크는 입을 뗐다 붙였다 하다가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나중에야 말을 꺼냈다.
“… 아이템 복사를 얻으려면 지구 서버의 만렙 고블린의 왕국에 방문해야 한다는데?”
“그래. 그게 왜?”
“지구 서버에 가야 한다는 말은 안 하지 않았나?”
강기찬이 인상을 구겼다.
“지구 서버가 핵심 정보인데 그걸 미리 말함?”
“…….”
“난 잘못 없다? 계약대로 한 거니까? 넌 나한테 10,000레벨로 올릴 수 있는 경험치를 얻어주는 거고, 나는 너한테 아이템 복사 스킬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 우리 둘 다 지켰고 그걸로 끝인 거야.”
그랬다.
맞는 말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슈슈크크는 강기찬한테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강기찬 탓할 게 아니었고.
확실히 계약대로 충실히 이행한 거니까.
짜증 나는데 짜증 내기 힘들달까?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겨우 추스르고선 다음 할 말을 꺼냈다.
“… 내가 지구 서버에 가야 하는 거냐?”
“거기 적힌 대로라면 그래야겠지?”
슈슈크크는 난감했다.
지금 여기서 그들만으로는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아이템 복사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구 서버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구 서버에 가도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조건이 붙은 건 최초의 유저에게만 보상을 주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이걸 감안하고 거래한 거긴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회의감이 들었다.
마침, 강기찬도 정확히 그 점을 짚어주었다.
“지구 서버에 간다고 해도 얻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 고민이지?”
“그렇다…….”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강기찬이 희망 고문을 내던졌다.
“어째서?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봐봐, 설명 서두에‘방문할 수 없는’이라고 되어있지?”
“그래.”
“그게 핵심이야. 솔직히 네가 지구 서버에 가기는커녕 지구 서버가 있는지도 이제 알 정도잖아? 그만큼 난도가 높다고… 그런데 그걸 해냈을 때 아이템 복사를 못 얻겠어?”
“흐……음.”
“어쩌겠어? 난 이득을 봤고 넌 아직 이득을 못 본 건데, 이대로 끝낼 거야? 배 안 아프겠어? 나 같으면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보겠다.”
강기찬은 계속해서 바람을 잡았다.
슈슈크크가 지구로 오고 싶어 하면‘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테니.
슈슈크크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망할…….’
그래서 욕이 나왔다.
자신이 강기찬에게 무언가를 받고선 행성으로 초대했듯, 지구로 가기 위해선 강기찬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지 싶었다.
그렇다고 시도 안 하는 것도 찝찝했다.
실패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지, 지구에 가고… 싶다.”
강기찬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지구에 가고 싶다고!”
“잘 들리네, 좋아. 그럼 나한테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지?”
“으응…….”
예상대로 강기찬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슈슈크크가 언짢다는 어조로 물었다.
“… 원하는 게 뭐냐?”
“5만 레벨.”
“뭐?”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모을 수 있게 해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레벨업 못 하잖아!”
“그러니까, 뭐가 있어야 레벨업할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고.”
“그럼, 나한테도 대가를 줘야지?”
“그래, 복사해줄게.”
“뭐?”
“아이템 복사해준다고.”
“그거야, 내가 지구에 가면 얻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 그럼 말자. 내가 알아내지.”
“그래라.”
처음으로 협상이 결렬되었다.
강기찬으로서는 나쁠 거 없었다.
어차피 뭐가 필요한지 알고, 손에 있지 않은가.
한편, 슈슈크크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 알고 있는 건가?’
강기찬이‘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요구하는 게 석연찮았다. 레벨도 못 올리는 주제에 경험치는 모아서 어쩌려고?
꼭 얼마든지 5만 레벨을 찍을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한 번 찔러보기로 했다.
“너 설마 그걸 가진 거냐?”
“그게 뭔데? 아, 그거? 안 가졌지, 그 전에 모르지, 알았으면 너하고 이러고 있겠나, 그거 찾으러 갔겠지.”
“…….”
맞는 말이었다.
‘2차 만렙 돌파의 광석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 레벨업해서 소원권 쓰고 최종우승했겠지, 이러고 있을 리가…….’
그 반대를 생각해봐도 그랬다.
‘2차 만렙 돌파의 광석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데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진작 찾으러 떠났을 테고…….’
강기찬의 현재 행동이 말해주었다. 2차 만렙 돌파의 광석을 가지고 있기는커녕 그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요구하는 걸까?’
그건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알 길이 없었다.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왜 모으려고 하는 거지?”
“언젠가는 5만 레벨이 될 거니까.”
“아… 그래? 당장 레벨업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를 그리는 거 아닌가?
“그거야 언젠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네 버스는 지금이 아니면 못 탈지도 모르잖아.”
“으음…….”
슈슈크크가 수긍했다.
‘하긴, 2차 만렙 돌파의 광석이야 나중에라도 얻을 수 있긴 하지, 반면, 나한테 버스(?) 탈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고.’
강기찬이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왜 모으려는 이유.
레벨업 할 자신이 있다, 이거다.
그러니 경험치가 많이 있으면 좋은 거고.
이 의문은 해결되긴 했으나, 궁금한 게 하나 더 남아있었다.
“다 부질없는 짓 아닌가? 어차피 한 달 뒤에는 죽을 텐데?”
“… 발버둥이지, 그리고 또 모를 일 아닌가? 한 달 전에 레벨업할 수 있으면 안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역시 그럴 속셈이었구나.”
“그래, 너도 알았을 텐데? 내가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를…….”
지나고 나서야 알아낸 거지만, 계약에는 맹점이 있었다.
한 달 뒤에 소원권을 준다고 했지, 그 전에 소원권을 안 쓰겠다고 하지 않았다.
즉, 강기찬이 한 달이 되기 전에 레벨업할 수 있으면 소원권을 쓸 수 있고, 그러면 살 수 있다는 게 되었다.
“… 엄청나게 긍정적이구먼.”
지금, 강기찬은 살아남고 그 뒤의 일까지 생각하는 거다.
“어차피 넌 날 죽이지도 못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강기찬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슈슈크크는 강기찬을 죽일 수 없었다.
죽이기엔 강기찬이 가진 게 너무 많았다.
“맞는 말이다. 난 널 죽이지 않을 거다.”
이제와서 새삼 드는 생각이었다.
강기찬이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한 것.
그 부탁을 들어준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물론 그만큼 소원권이 탐나서였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소원권 외의 탐나는 것들 또한 얻게 될 테니.
“어쩔 거야? 할 거야, 말 거야?”
“좋다! 해주지…….”
슈슈크크가 거래를 수락했다.
“5만 레벨까지의 경험치를 모아줄 테니 지구에 보내 다오.”
“잘 생각했어.”
5만 레벨.
강기찬이 생각건대, 슈슈크크를 때려잡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꼭 슈슈크크와 레벨이 엇비슷해야 승산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자신에게는 프리 스탯 포인트가 있지 않은가.
거기에 하극상까지 있으니…….
적당히 레벨이 낮아도 맞먹을 수 있을 터.
‘레벨은 얼추 됐고… 남은 건 슈슈크크의 귀중품을 챙길 차례인가?’
어차피 죽을 슈슈크크.
탈탈 털어주기로 했다.
우선, 그의 무기와 장비…….
‘벗기기’ 스킬로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귀중품은 인벤토리에 있을 터.
죽여서 얻는 건 랜덤 드랍이라 좋은 걸 얻길 기대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운빨.
반면, 슈슈크크가 제 손으로 귀중품을 내놓게 할 방법이 있었다.
“공짜로 복사해줄까?”
“뭐?”
역시 획 돌아선다.
복사에 공짜라니… 이만큼 매력적인 단어 조합이 또 있을까?
“정말이냐?”
“특별히 다섯 개만 복사해줄게.”
복사해주는 김에 몇 개 더 복사해서 내 주머니에 슬쩍하면 되었다.
‘좋은 건 나누자고.’
아, 대신…….
“복사에는 코인이 좀 더 필요해,”
당연히 코인 비용은 몇 배로 부를 거다.
네 코인으로 내 복사비도 대주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