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37화 (137/151)

137화

‘슈슈크크를 잡자.’

우주 랭킹 1위 슈슈크크.

얼마 전 강기찬과 차원의 숲에서 만났던 존재다.

대전 한 달 정지를 조건으로 소원권을 주기로 한.

‘적절하네.’

레벨업 하기에 그만한 대상이 또 있을까, 싶었다.

슈슈크크의 레벨이 95,000이었다.

반면 자신의 레벨은 고작 9,999.

거의 9.5배 차이.

‘슈슈크크의 레벨도 높으니까, 잡으면 한 방에 레벨업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레벨업이 되느냐의 여부였다.

생명체를 죽인다고 무조건 경험치가 오르는 건 아니라서.

일례로 지나가는 개미 밟아 죽인다고 경험치가 오르진 않았다. 대격변 초창기에 실험적으로 멧돼지를 죽인 유저도 있었지만, 경험치가 안 올랐었고.

‘또… 유저끼리는 살해해도 경험치가 안 오르니까.’

슈슈크크는 유저다.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살해해도 경험치가 안 오를 터.

그런데, 희망을 품어봄직한 게,‘외계인’이지 않나.

‘생김새가 인간은 아니니까…….’

지구인의 관점에선 몬스터나 슈슈크크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강기찬] 자쟈님?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게 직방이다.

[GM자쟈] 네?

[강기찬] 슈슈크크를 죽이면 경험치가 오릅니까?

[GM자쟈] 네? 누구요?

[강기찬] 슈슈크크요.

[GM자쟈] 네? 잠시만요…….

GM자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귓속말 연결이 끊긴 건가 싶을 정도로.

이 침묵, 이해는 갔다.

아주 뜬금없이, 어이없는 질문을 보낸 거니.

랭킹 꼴등이 랭킹 1등을 죽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은 거 아니겠나.

다른 랭킹 꼴등이었다면 욕부터 했거나 무시로 일관했을 터. 그렇다고 강기찬을 보통의 랭킹 꼴등하고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다. 자신, 아니 지구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이니까.

여러모로 정신을 추스르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GM자쟈] 그러니까… 게임 대전을 신청해서 이겼을 시, 경험치가 오르는 걸 묻는 거죠?

GM자쟈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1. 차원의 숲에서 죽이는 것.

2. 실제로 죽이는 것.

도저히‘실제로 죽이는 것’을 전제로 강기찬이 물어왔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자체적으로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떠보는 것일 수도 있고.

[강기찬] 당연히 아니죠.

강기찬은 이미 항복을 받아서 슈슈크크에게 승리하지 않았나. 게임 대전에서 승리 시, 경험치가 안 오르는 건 확인이 끝났다. 그러니 그걸 물은 건, 당연히 아니었다.

[강기찬] 슈슈크크를 실제로 죽이는 거 말입니다.

강기찬이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실제로 죽였을 시, 경험치가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를 묻는 거라고.

그러자 GM자쟈가 격앙된 어조로 소리쳤다.

[GM자쟈] 진심입니까?

GM자쟈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강기찬은 지구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 자가 슈슈크크를 죽인단다.

정식으로 게임 대전을 신청해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서로의 목숨을 걸고 한판 붙겠다는 거다.

아니, 사실상 자살 시도로 받아들여도 이상할 게 하등 없다.

그러는데 얌전하게 대꾸하는 게 말이 안 되지.

[GM자쟈] 대체 왜?

[강기찬] 레벨 올리려고요.

[GM자쟈] … 레벨 올리려고 슈슈크크를 죽일 생각을 해요?

GM자쟈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어투였다.

[강기찬] 예, 역시 안 되려나요?

[GM자쟈] 어, 안 됩니다! 절대!

[강기찬] 슈슈크크를 실제로 죽였을 시, 경험치가 안 오른다는 겁니까? 아니면…….

[GM자쟈] 후… 경험치는 오릅니다.

강기찬이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강기찬] 슈슈크크도 레전드스토리 유저인데 죽여도 경험치는 오르네요?

[GM자쟈] 예, 폭넓게 봐도 같은 행성의 유저만 아군이지, 다른 행성의 유저는 적군이니까요. 그래서 죽여도 경험치가 오르는 겁니다.

[강기찬] 감사합니다.

[GM자쟈]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강기찬] 그것만 중요한데…….

[GM자쟈] 아니, 슈슈크크를 어떻게 잡으려고 그러십니까?

[강기찬] 안 잡으면 답이 없잖습니까.

순전히 슈슈크크가 경험치를 많이 줄 것 같아서 잡으려는 게 아니다.

문득 걱정되었다.

자신이 과거로 회귀한 뒤의 이곳이…….

어떻게 될까? 자신만 없어진 채 평행세계로서 계속 시간이 흘러갈까?

그렇게 되면 한 달 뒤에는 슈슈크크가 별 1,000개를 모아서 지구는 소멸할 터.

그렇게 될 미래를 알고도 이곳 사람들을 남겨둔 채 혼자만 과거로 가기가 찝찝했다…….

‘다른 대체재가 있으면 몰라도, 이건 나만 막을 수 있는 거니…….’

이 중대사를 남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니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직 그만이 맡을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소원권을 써서 멸망을 막는 건데…….’

물론, 소원권 쓰면 되었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터.

그런데 소원권 쓰기 아까웠다.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소원권이 여러 개 있다면 모를까, 복사금지이기까지 하니.

물론, 정 안 되면 소원권을 써서라도 멸망을 막을 거지만, 다행히 방법이 하나 있었다.

‘내가 최종우승하는 것도 가능하지.’

직접 별 1,000개를 모아 최종우승해서 회귀하는 것.

‘그러려면 우선 슈슈크크부터 제거해야 하고…….’

슈슈크크만 없어지면 한 달보다 더 뒤로 멸망을 미룰 수 있을 터. 이후, 랭킹 2위, 3위, 차례로 제거하며 추가로 시간을 벌면 되었다.

다만,

‘슈슈크크한테는 어떻게 가지?’

슈슈크크에게 가는 방법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출두가 제일 편하나, 슈슈크크의 레벨이 높아서 사용 불가.

문득 위치 바꾸기가 떠올랐는데 외계인이 미치지 않고서야 위치를 바꾸어줄 리 없고, 위치를 바꾸어주는 것도 위험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지구에 들이는 것만큼 미친 짓도 없었다. 지구에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또 공간이동도 생각났는데 이건 가본 곳만 갈 수 있으니.

이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슈슈크크에게 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딱 하나 있었다.

그 혼자만의 힘으로 슈슈크크에게 갈 수는 없으니.

반대로,

‘직접 초대를 받아야겠네.’

슈슈크크의 도움을 받으면 되리라.

게임 대기실에 입장했다.

슈슈크크는 접속 중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대전을 안 하기로 했으니 대기실에 접속할 리가 없었다. 그에게 쪽지를 보냈다. 접속 중이 아니라도 볼 수 있었다.

[강기찬] 나를 너희 행성으로 초대해줘.

이내 답장이 왔다.

[슈슈크크] 왜?

한 글자에다가 문자였음에도 의심이 가득 전해졌다.

강기찬이 이유를 말하려고 하는데,

[슈슈크크] 싫다.

거절해버렸다.

이유가 궁금하지만, 무어라 말하든 소용없다는 것.

‘마음을 돌리려면 강수를 둬야겠네.’

강기찬은 세게 나가기로 했다.

[강기찬] 테스트서버에 대해 알아?

[슈슈크크] 응? 레전드스토리에 테스트서버가 있던가?

다행히 관심을 보였다.

아무렴 종족이 다르다 한들, 관심이 없을 리가.

레전드스토리 유저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강기찬] 내가 어떻게 포탑 안에 들어갔겠어? 그 외의 것들도…….

순전히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럴싸한 근거가 밑받침된 상태. 슈슈크크가 한층 더 집중하게 되는 요인이었다.

[슈슈크크] 그래서 뭐?

[강기찬] 테스트서버에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아?

[슈슈크크] 우리 행성으로 초대하는 거랑 맞바꾸자는 건가?

[강기찬] 그렇지.

[슈슈크크] 먼저 해라.

[강기찬] 뭐를?

[슈슈크크] 나를 먼저 테스트서버로 초대해라.

[강기찬] 그래, 기다려 봐.

강기찬은 쪽지 내용으로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반면, 속마음은 달랐다.

‘그래, 계속 기다려 봐라. 내가 너를 테스트서버로 초대하나…….’

강기찬은 주방으로 가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배부르게 먹은 뒤 커피를 타 마셨다.

슬슬 춘곤증이 오나 싶을 즈음…….

[슈슈크크] 어떻게 됐냐?

슈슈크크로부터 쪽지가 왔다.

‘선쪽지라니, 어지간히 테스트서버에 들어가 보고 싶었나 보네…….’

시간을 확인한 후,

‘이쯤… 이면 되겠지?’

슈슈크크에게 쪽지를 보냈다.

[강기찬] … 안 되네?

[슈슈크크] 뭐?

[강기찬] 테스트서버에서 초대가 안 된다고. 서버가 달라서… 라는데?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슈슈크크를 테스트서버에 초대하기는커녕 테스트서버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시간을 끈 것은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

너를 테스트서버에 초대하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실패했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알리려고.

‘어차피 알지도 못할 거…….’

슈슈크크는 정말 그러한 시도가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는 우기지 못할 것이다.

강기찬보고 테스트서버 초대를 먼저 하라고.

안 된다는데 어쩔 건가?

그리고 초대가 안 되는 원인을 서버가 달라서…라고 함으로서 테스트서버에 초대받고 싶으면, 먼저 행성으로 초대해달라, 라는 메시지를 깔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슈슈크크 행성으로 초대되고 나서 테스트서버에 초대할지 말지를 결정해야지. 그 반대는 곤란하지.’

슈슈크크가 자신이 뒤통수를 칠까 봐 의심했듯, 역으로 자신도 슈슈크크를 의심했다.

‘슈슈크크가 뒤통수를 칠지도 모를 일이니까.’

절대 먼저 슈슈크크를 테스트서버로 초대하지는 않을 요량이었다. 괜히 먼저 테스트서버로 데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행성으로 초대 안 해주면 답도 없으니까.

‘사실, 테스트서버는 당장 보기엔 별로 다를 것도 없거든.’

테스트서버는 본서버보다 선행하는 서버라 새것이 있기는 하나, 그보다는 기존의 것이 더 많다.

겉보기에는 그곳이 테스트서버는 본서버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했다.

그러니 별 메리트를 못 느낄 확률도 높았다. 그래서 불만족스럽다면서 입 싹 닫아버리면 별수 없을 터.

그 전에 미리 보장받는 것이다. 입 싹 닫지 못하게끔.

[슈슈크크] 서버가 같으면 테스트서버에서 초대가 되는 건가?

[강기찬] …그렇겠지?

[슈슈크크] 좋다, 그럼 너를 우리 행성으로 먼저 초대하마. 단…….

거의 넘어왔다.

과연 어떤 조건을 내밀까?

[슈슈크크] 일단, 게임 속에서 만나자.

[강기찬] 만나서?

[슈슈크크] 거기서 계약서를 쓰지, 서로 뒤통수칠 수 없게 하자는 거다.

[강기찬] 좋다.

쪽지로 계약서를 주고받을 수는 없으니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게임 속에서 만나는 거다.

[강기찬] 지금?

[슈슈크크] 그래.

[강기찬] 근데 말이야.

[슈슈크크] ?

[강기찬] 게임에서 만나면 마무리를 어떻게 짓지?

[슈슈크크] 그게 무슨 소리지? 마무리라니?

[강기찬] 무승부는 없잖아.

[슈슈크크] ?

[강기찬]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져야지.

[슈슈크크] ?

[강기찬] 이번에도 네가 항복해줄 수 있나?

[슈슈크크] …….

[강기찬] 안 되나?

[슈슈크크] 하아…알았다. 내가 항복해주마, 됐냐?

[강기찬] 어, 근데 어차피 내가 이길 건데 빨리 이기는 것일 뿐이야, 너무 불쾌해하지 마.

[슈슈크크] 그래…….

어차피 만날 거.

어차피 별 모아야 할 거.

어차피 승리할 거.

빨리 끝내면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

[강기찬] 접속할게.

그렇게 공짜 승리를 따낸 강기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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