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 *
‘뭐라는 거야? 강기찬이 직접 온다고? 어디를? 여기를? 여기가 어딘지는 어떻게 알고?’
조금 전, 현기현이 강기찬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강기찬의 말투가 본인의 의지로‘혼자서’ 온다는 것 같았다.
‘설마…….’
느낌이 안 좋았다.
[나가로] 현기현상? 대답 좀 해보세요. 현기현상!
현기현에게 귓속말을 해보았으나, 응답이 없다.
‘그럴 리가…….’
현기현이 고의로 응답하지 않을 리 없다.
그 어떤 부하보다 반응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귓속말 한 것임에도 옆에서 부르는 것처럼 칼같이 응답했었다. 심지어 새벽 3시 30분에도 부르고 3초 안에 대답했을 정도이니…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구나!’
… 그러니 이번만큼은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할 수밖에. 일전에 강기찬 감시를 위해 보낸 부하들이 연락 두절일 때부터 찝찝했었는데 현기현마저 이러니,
‘강기찬… 그 조센징이……!’
한 번은 우연이라 해도 두 번은 필연이었다. 그 원인은 강기찬에게 있다고 보는 수밖에.
그리고,
“어때?”
지금 강기찬이 앞에 있었다.
귓속말로 온다고 했을 때, 긴가민가했는데,
‘진짜로 와버릴 줄이야…….’
이곳의 위치도 모를 텐데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할 건 없었다. 소환도 할 수 있는데 추적은 못 한다는 것도 억지니.
“어떠냐고.”
강기찬의 물음에 나가로가 대답했다.
“현기현상이 정말 귓속말이 안 되는군.”
강기찬이 말했었다. 부하들과 현기현을 처리했으니 귓속말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시도해보았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희한했다.
강기찬이 그들을 처리했다는 게, 그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그런데 강기찬 혼자 이곳으로 온 걸 보면 마냥 헛소리 같지도 않아 보이고. 무엇보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들이 연락 두절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정말로 네가 그들을 처리한 거냐?”
“그렇다니까, 그러네.”
“너는 1,000레벨 초반대 아닌가?”
나가로의 목소리는 확신이 없었다. 그도 강기찬의 레벨을 들었을 뿐이니. 저 레벨이 아닐 수도 있는 것.
그렇지만 의구심은 들었다. 상식적으로 저 레벨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나.
‘휠체어 타는 암살자라면서? 레벨을 올릴 수가 없지 않나?’
자신의 상식으로도 강기찬의 레벨은 높아봤자‘1,000레벨 중반대’여야 했다.
다른 직업이라면 몰라도 암살자라면. 걷지도 못하는데 쓸 수 있는 스킬은 없고, 스킬을 못 쓰면 사실상 사냥은 못 하고 레벨업도 불가능한 거니까.
물론, 파티사냥이나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긴 있다.
단, 파티사냥이나 버스를 탔다는 정보나 기록도 없다. 비밀리에 했다 한들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더군다나 땅덩어리 좁은 한반도에서…….
반면, 자신의 부하들과 현기현의 레벨은, 남의 레벨이라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적게 잡아도 9,000레벨 이상은 확실했다.
고로, 강기찬의 레벨은 적어도 9,000레벨 이상이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더 정확한 레벨을 알아봐야…….’
당사자의 입에서 정확한 레벨을 들을 수 있었다.
“1,000레벨 초반대는 무슨… 만렙이구먼.”
“…….”
약 3초 정도 정적이 일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가로가 말했다.
“… 만렙이라고?”
“어.”
“9,999레벨?”
“어어.”
“허세가 심하군.”
나가로는 불신했다. 그거야 거짓말할 수 있는 거니. 그리고 그 사실을 잠시 잊어버렸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걸 보았기에.
“… 너… 서 있네?”
“아, 어.”
강기찬은 아까부터 서 있었다. 하지만, 강기찬이 서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애초에 강기찬에 대해서 알지 못해왔었기에 이게 얼마나 어색한지를 깨닫지 못해왔던 것.
깨닫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원래 서 있을 수 있었던 거군, 그럼 레벨을 올리는 게 가능하고. 어쩐지…….’
강기찬이 대한민국의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왔다고 판단했다. 원래 서 있을 수 있는 건데 앉아 있었다는 거로.
‘사회에서 동정심은 큰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거기까지 가도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몰래 숨어서 사냥해서 만렙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왜 네가 만렙을 찍을 때까지 아무도 몰랐지?”
단순히 랭킹표에서 비공개로 하는 것만으로는 만렙이 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의심할 수밖에.
‘만렙이 아닌 거 아닌가? 그래, 그런 거야. 나도 못 한 만렙을 저놈이?’
자신은 물론, 세계 랭킹 1위인 앤드류조차 찍지 못하고 2차 전직을 해버렸던 만렙이었다.
그걸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이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붙어보면 알 일이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주먹다짐이 증명해줄 것이다.
강기찬이 만렙인지 아닌지.
그렇게 쏘아붙이려던 찰나였다.
슉!
강기찬의 옆에 누군가 나타났다.
‘치사하게 아군을 불렀다?’
아군은 맞았다.
한데, 보통 아군이 아니었다.
“… 앤드류?”
세계 랭킹 1위인 대마법사 앤드류가 아닌가.
강기찬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오셨군요.”
“예, 이렇게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앤드류가 강기찬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나가로는 의아해했다.
‘앤드류가 왜 강기찬 따위에게?’
막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슉, 슈슈슈슉!
청용, 맹인검객, 백령, NPC화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휘하의 길드원들까지…….
전부 강기찬이 소환한 것이다.
강기찬이 그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가로의 100만 대군을 상대해줄 아군들이었다.
전반적인 전투력은 나가로 측이 우세했지만, 여기엔 세계 랭킹 공식 & 비공식 1위가 다 있었다. 거기에 최고의 힐러까지……. 단일 전투력으로는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강기찬이 고개를 돌려 나가로를 보았다.
“너는 나랑 가자.”
“뭐?”
나가로가 물었지만,
강기찬은 대답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잠시 후, 나가로도 덩달아 사라졌다.
강기찬이 소환했고 나가로가 불려온 곳은 외딴 필드였다.
“대체 무슨…….”
나가로는 몹시 불쾌했다.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순전히 강기찬의 뜻대로 소환당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그 외의 요소도…….
“완전히 말아먹었군…….”
청용, 맹인검객, 백령을 암살하려던 것, 그리고 대한민국을 먹어치우려던 야심도, 전부 다 수포가 되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으나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정체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를……!
“넌 대체 뭐지?”
“강기찬.”
역시나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도 없었지만,
“내 계획을 다 꿰뚫어 보는 거 같던데…….”
나가로는 꿋꿋하게 제 할 말을 했다.
강기찬은 자신의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지 싶었다.
“어떻게 안 거지?”
‘누군가 정보를 빼돌렸을 확률이 높은데…….’
의심 가는 자가 있었다.
현기현이었다.
‘현기현, 그 새끼… 어쩌면 한국의 첩자였을지도 몰라…….’
청용한테 암살당할 뻔했단 것. 사실 여부를 가리지 않았었다. 어차피 사무라이 길드를 한국에 밀입국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했으니까.
그게 성공했기에 굳이 더 생각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었다. 자기네들을 한국으로 유인 및 소탕하려고…………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끼로 하기엔 너무 과한 걸 얻었는데?’
‘사무라이 길드원 100만 명’ 전원을 한반도에 밀입국시킨 것.
이것만으로도 현기현에게 혐의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제거하고 싶은 길드라 한들, 또한, 홈그라운드가 유리하다고 한들, 자발적으로 자국을 전쟁터로 만드는 미친 짓을 누가 하랴.
일개 길드장이 그랬다고 해도 제정신이 아니고, 정부 주도하에 그랬어도 미친 짓이다. 국민이 알게 되면 공분을 살 일, 성공 여하를 떠나서 기존에 가진 것들을 몽땅 잃을 수도 있는 짓거리다.
사무라이 길드 패망.
그게 목적이었다면 자신이나 간부급만 따로 노려도 충분했을 터. 막말로 그들이 빠진 사무라이 길드는 다른 길드와 차별점이 없기에.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현기현은 내부고발자가 아니다. 청용한테 암살당할 뻔했단 것. 그거 하나 때문에 미쳐서 나라를 팔아먹은 게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한테서 이 정보를 얻은 거지?’
강기찬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지.”
“맞는 말이다… 하나, 비밀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이렇게 추진력 있게 나올 수도 없는 법이고…….”
“나는 그게 돼. 만렙이니까.”
“만렙이라…….”
“어, 확인할 기회를 줄게. 마음 같아선 바로 버려진 세계로 보내려고 했는데, 그래도 몇 대 처맞고 울기는 해야지, 나중에 반성할 때 좋을 거 같아서.”
‘버려진 세계로 보낸다?’
나가로는 생소한 용어가 나왔음에도 무시했다. 알려달라고 한다고 대답해줄 거 같지도 않고. 어차피 한 판 붙어서 결과에 따라서 알게 될 것 같아서,
대신,
‘조심해야겠군.’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했다.
‘저놈은 비밀이 많은 놈이다.’
설령 만렙이 아닐지라도 경계해야 할 대상인 건 확실했다. 자신을 소환하고 또 자신에게 곧바로 올 수 있는 스킬, 그런 건 레전드스토리에는 없었던 거니까.
또다시 그러한 스킬을 사용한다면 대응하기가 어려우리라. 두 번이나 그랬는데 또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여러모로 무슨 흉계를 꾸밀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나한테는 안 될 테지만…….’
설령 만렙이라 할지라도 마지막에 웃는 건 자신이 될 예정이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그가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5분 남았다.’
믿는 구석은 시간과 관련이 있었다.
‘시간은 나의 편이지.’
앞으로 5분만 지나면 강기찬이 만렙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어질 것이다. 덧붙여, 한국의 모든 유저가 다 만만해질 예정이었다.
그때였다.
강기찬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왜 오는 거야? 나랑 싸우려고?’
솔직히 허세라고 생각했었다. 강기찬이 만렙이라고 한 것 말이다.
그러나,
‘진짜인가……?’
이쯤 되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허세라면 저렇게 당당하게 다가오지 못할 터.
정말 만렙이라서 보이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지, 진짜면 곤란한데……?’
나가로의 레벨은 9,900이었다.
100레벨 차이 내에서 데미지를 줄 수 있기에…….
99레벨 차이로 만렙에게도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일 거 없었다.
자신이 불리해서가 아니다.
자신보다 강기찬이 레벨이 낮아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조금이라도 피해를 볼 확률이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고.
이대로 도주를 한다고 한들, 따돌릴 수 없을 터.
기왕 싸울 수밖에 없다면 시간이라도 끌어야 한다.
3분 57초 뒤에 싸워야 했다.
그래야 승률 100%가 될 테니.
‘그래, 그거면 놈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겠지.’
마침, 시간을 끌 방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