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현기현에게 착각이라 알린들,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나가로가 순순히 물러가지 않을 거라서.
현기현의 복수를 돕고자 청용을 암살하려는 게 아닐 테니까.
단지 명분일 뿐.
현기현을 통하면 안전하게 밀입국할 수 있으니, 돕는 척 이용했던 거고 애초에 청용 암살이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태에…
‘흐음…….’
강기찬 본인도 어느 정도 책임을 통감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내 잘못도 있지.’
이 사건은, 현기현이 암살당할 뻔했다고 착각, 본인의 힘으로는 반격 못 한다고 판단, 외세의 힘을 빌려 청용을 제거하려고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착각이야 주은이 멋대로 한 거지만, 강기찬이 곧장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주은이 먼저 사기 치려 한 걸, 역이용한 거지만.
어찌 되었든 백령에게 현기현의 위치를 전송, 겁주고 뒤쫓는 시늉도 하라 하면서 착각을 진짜처럼 연출해버린 잘못은 있으니.
설마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 이렇게 큰일이 될 줄 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현기현으로 하여금 암살당할 뻔했다고 믿게 만들어버렸으니… 모르는 척 넘어갈 수가 없다.
‘나로 인해 시작된 일, 내가 끊는 게 좋지.’
[강기찬] 나가로야, 소환할 테니까 와라.
* * *
띠링!
[강기찬님이 당신을 지구서버 - 흔들리는 공중 계단(필드)으로 소환하려 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푸-허허어업!”
나가로는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어찌나 당황했던 건지 커피 일부는 콧구멍에서 나올 정도.
옆에서 부하가 황급히 휴지를 내밀었지만,
“하…하흐흐흐으윽!”
괴상한 소리만 냈다.
인중을 통해 커피가 줄줄 흐름에도, 닦기는커녕 휴지를 받아들지도 않았다.
“… 이 조센징은 뭐지?”
“주군, 왜 그러십니까?”
“아… 나를 소환한다는데?”
“예? 소환… 말입니까?”
“그래, 이거… 진짜 되는 건가? 동의하면 바로 거기로 간단 말인가?”
“소환이라니… 그런 스킬이?”
“나도 너무 신기해서 그래, 그것도 이런 하찮은 놈이 한 거라서 더더욱…….”
“누가 말입니까?”
“강기찬.”
“신기하군요. 랭킹 꼴등이라던데…….”
“그래, 뭐지? 근데 아무리 소환할 수 있다고 해도 나를 소환하려 하다니? 간땡이가 부은 거 아닌가? 소환 가진 거 자랑하려고 이러나?”
“어떡하실 겁니까?”
“흠, 글쎄다… 근데 이놈이 나한테 소환을 썼다는 건, 무언가 눈치를 챘다는 건데… 감시를 붙인 게 들켰다는 의미겠지? 일단, 애들한테 연락부터 넣어라.”
“하잇!”
부하가 자리를 비우더니 잠시 후,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그게… 귓속말이 안 됩니다.”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일반인이 된 것 같습니다.”
“죽어서 일반인이 되었을 리는 없지 않나?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로그아웃을 왜 해? 로그인 시간이 다 된 건 아닐 텐데? 그리고 모두가 동시에 로그인 시간을 다 썼을 리도 없고…….”
“자세한 건 가서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어째 좀…….”
“흐음…….”
강기찬이 소환한 것.
감시하라고 보낸 부하들이 일반인이 된 것.
이 둘이 연관 있지 싶었다.
그때였다.
“제가 한 번 갔다 오겠습니다.”
“오, 현기현상이?”
현기현이 다가온 것.
“예, 제가 강기찬에게 갔다 오겠습니다. 벌레 하나 상대하는데 굳이 주군께서 나설 것 없지요.”
“주군이라고? 하하! 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그럼 현기현상이 강기찬을 내 앞으로 데려오도록 해.”
“예.”
현기현은 마음을 굳혔다.
이미 팔아버린 나라, 이번 일이 끝나더라도 한국에서 발붙이고 살 수는 없다. 자신의 매국 행위가 들키지 않더라도 여러모로 불편해졌기에.
그랬기에 일본에 가서 살기로 했다. 그러려면 사무라이 길드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가야 했고, 궁극적으로 나가로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렇다고 맹인검객이나 청용, 백령을 상대하는 걸 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강기찬이 적당했다. 무언가를 했다는 시늉이라도 내기에는.
그래서 흔쾌히 나서고자 한 것이었다.
[현기현] 강기찬, 나가로님을 소환하려 했다고? 나한테도 한 번 써봐라.
띠링!
[강기찬님이 당신을 지구서버 - 흔들리는 공중 계단(필드)으로 소환하려 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의외였다.
막상 소환을 해보라고는 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냅다 소환해주는 것이.
‘내가 누군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군인 줄 아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방금 말로 인해, 나가로의 편인 걸 알려준 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소환한다?
‘무슨 꿍꿍이속이지?’
어찌 된 영문인지는 가보면 일일이었다.
“그래.”
[소환에 응했습니다.]
슉!
시야가 바뀌었다.
소환은 처음이지만, 무사히 된 거지 싶었다. 눈앞에 강기찬이 있는 걸 보니.
“그래, 강기찬. 왜 나가로님을 소환하려 했던 거…….”
현기현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아까부터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도저히 안 떠올랐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떠올랐다.
“너… 너-어!”
강기찬의 다리를 가리켰다.
“어떻게…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는 거지?”
“살다 보니 기적이라는 것도 있더라고.”
“…….”
현기현은 강기찬의 다리만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환각을 보는 기분에 취해있는 그때였다.
“청용은 너를 죽이려 하지 않았어.”
“음? 뭐?”
현기현은 할 말도 까먹었다. 그만큼 강기찬이 한 말이 솔깃해서.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다.”
“맞든 틀리든, 네가 어떻게 알지?”
“난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조작한 거거든.”
“네가… 조작을 해?”
“그래, 그날 카페에서 백령한테 쫓겼었지?”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내가 시켜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보를 한 번에 풀고 있다. 당연히 현기현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강기찬은 현기현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간을 할애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대강 정보를 나열했다.
이를 들은 현기현이 그제야 알아차렸다.
“… 정말이구나!”
이 모든 것은 강기찬이 주도했다는 것을.
“그래, 그렇다니깐.”
“하… 미치겠네…….”
현기현은 담배라도 피고 싶은 표정이었다.
여전히 믿기 힘든 것들투성이였지만, 이제는 믿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왜…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수모를…… 내가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알아? 사무라이 길드를… 나가로……!”
“다 알아.”
“진작 말해줬으면 내가 이런 짓까지는 안 해도 되었잖아? 안 그래?”
“진작 안 말해줬다고 네가 그런 짓까지는 할 줄은 몰랐지.”
“하! 원인 제공자면서……!”
“응?”
강기찬은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원인을 제공했기에 현기현이 매국노가 되었을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자 현기현이 대신 답을 꺼내주었다.
“백령이 나를 쫓아오게 했잖아!”
“난 또 뭐라고…….”
“?!”
“그게 다야?”
“뭐-어?!”
“누가 보면 손찌검이라도 한 줄 알겠네. 그냥 뒤쫓다가 말았잖아? 단 1의 데미지라도 줬냐고, 아니지? 끝까지 쫓아갔냐고? 아니지? 듣기로는 5분도 안 되게 쫓았다더니만…….”
“…….”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은 되었을 수도 있지. 그 점은 미안해. 지금보다는 좀 더 빨리 진실을 말해줘야 했는데…….”
“…….”
“근데 그것 때문에 일본 최상위 랭커놈들 떼거리로 밀입국시키는 게 정상인의 사고방식인가?”
“그, 그건…….”
“내가 잘못 안 했다는 건 아닌데, 네가 선을 넘어도 너무 세게 넘은 거야, 인마! 알아? 지 혼자서 흥분해서 나가로한테 나라 팔아먹은 걸, 내 탓도 있다고? 심한 비약 아니냐?”
“너… 너-어어!”
현기현이 흥분했다.
논리적으로 밀리자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지만,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여기서 화내봤자 돌이킬 수 없으니.
‘그래,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하자…….’
지금 당장 강기찬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나중에 해야 했다. 나가로가 강기찬을 보고 싶어 하니 데려가야 하지 않나.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거야.’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나가로 부하들은?”
“잘 지내고 있어.”
나가로 부하들의 행방.
강기찬이 쉬이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거야 나중에 자세히 알아내면 될 일.
“후… 일단 가자.”
“어디로 가?”
“나랑 같이 나가로한테 가자고.”
나가로 부하들의 행방, 반드시 알아갈 필요는 없다. 자신은 나가로에게 강기찬을 데리고 간다고 했었기에 그것만 지키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같이 가달라고 한다고 강기찬이 순순히 같이 가줄 리가 없을 터. 괜한 말장난 하기 싫어서 시작부터 강제로 데려가려고 강기찬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손을 내미는 순간,
훅-
강기찬이 블링크로 뒤로 빠졌다.
현기현은 제 눈을 의심했다.
강기찬의 스킬이 어딘지 낯설지 않았기에.
그랬기에 위화감이 들었다.
“! 그거… 블링크 아닌가?”
“그래, 왜?”
“아니, 왜라니? 넌 암살자…….”
강기찬이 블링크를 썼다.
하나, 블링크는 마법사의 스킬이지 않나.
반면, 강기찬은 암살자고.
동시에 성립될 수 없었다.
한데,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다.
강기찬은 암살자다.
그리고 마법사의 블링크를 썼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강기찬이 말했다.
“요새는 직업 하나 가지고는 살기 팍팍해. 적어도 투잡은 뛰어야지. 그래서 대마법사도 구했어.”
“미친 새끼,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나도 농담 아닌데.”
“미친 새끼.”
“미친 새끼도 아니고.”
강기찬의 농담조에 현기현은 결국 폭발해버렸다.
‘딱, 딱 한 대만 때리자.’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게 복부를 가격하려고 했다.
그렇게 손을 내뻗었는데,
그런데,
퍽!
맞은 건 강기찬이 아니었다.
“!”
현기현이 피를 토했다.
그런 그를 보며 강기찬이 중얼거렸다.
“가야지… 오기 싫다는데, 내가 가줘야지. 근데 그 전에 너부터 좀 맞자. 과대망상증 환자 때문에 지금 내 계획 어그러진 건, 나도 좀 짜증 나거든.”
강기찬의 말을 들으면서 현기현은 몸이 활처럼 휜 채로 뒤로 밀려나 몇 바퀴를 굴렀다. 강기찬의 정권 찌르기의 여파였다.
그렇게 현기현은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뒤늦게 인지했다.
‘무… 무슨!’
강기찬이 손을 들어 올리는 것까지는 보았다.
그 이후를 보지 못했다.
직후, 강한 충격을 받았다. 필름이 끊긴 것 같달까…….
빠르다… 피할 수가 없다.
힘은 또 어떻고… 강하다. 방어할 수가 없다.
그 결과.
지금은 그저 무기력하게 땅을 뒹구는 중이었다.
툭!
무언가에 걸린 듯 밀려나던 게 멈췄다.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국노 새끼…….”
맥없이 구르던 걸, 강기찬이 받쳐준 것이었다.
현기현은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 뭐 뭐지-이? 저, 저 자식이 나를 공격한 거였어? 어떻게? 나랑 레벨 차이가 얼만…….’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의식을 잃었다.
강기찬이 현기현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한국 최고의 탱커라면서?”
현기현을 들어 버려진 세계에 던지고선,
[강기찬] 야, 기현이가 오라고 했다며? 특별히 내가 직접 갈게.
나가로에게 출두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