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NPC화타가 쓰러진 사무라이 길드원들에게 가서 침을 몇 방식 꽂아주었다. 그러자 반응이 터졌다.
“어? 어어?”
“무, 무어야? 무슨……!”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함을 표출했다.
예기치 못한 현상이 아닌가.
출혈로 서서히 진이 빠지고 죽어가야 하는데?
어째서 독약 깨물기 전보다 더 활력이 샘솟는단 말인가?!
이러면 손해였다.
자결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굳게 마음먹고 시도한 건데.
남는 건, 고통스러운 기억뿐이었다.
그들의 귓가에 강기찬의 목소리가 꽂혔다.
“자, 얘들아, 정신이 들어? 너희들 다시 살아난 거야. 자, 살아난 기념으로 고문 시작하자. 누구 먼저 처맞을래?”
죽다 살아났지만, 표정만큼은 도로 죽을상이 된 걸 볼 수 있었다.
* * *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한 존재다.
유저가 되었다 할지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육체는‘진화’했다고 할 만큼 강해졌다.
하나, 정신은 그대로. 아니, 더 물러졌다. 경제적으로 삶이 윤택해진 만큼 고생을 덜 하게 되었으니까.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그랬다. 얼마나 살만했나 하면 자신들보다 고레벨이라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얕잡아 볼 수 있었다. 일본 랭킹 1위 길드, 사무라이 길드원이었기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지금은 일반인으로 전락했다. 한국에선 사무라이 길드의 후광도 못 받는다. 보호해주던 포장지가 전부 다 벗겨지고 알몸이 된 기분.
반면, 강기찬은 여전히 유저, 즉 강자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우월했었는데, 그 위치가 뒤바뀐 것.
이렇게 된 마당에, 살아 돌아갈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이대로면 정보가 다 털리고 죽을 터. 고국에는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럴 순 없다. 역사에 치욕스레 남을 바엔 명예롭게 죽길 택했다.
그런데 웬 노인네가 나타나 훼방 놓았다…….
자결 전으로 원상복구, 아니 더 생기 돌게 되었다. 당장 일어나서 팔굽혀펴기하고 싶을 정도로…….
반면, 자결을 시도했을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생생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최악의 결과였다. 자결 시도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으! 우릴 죽게 해라!”
“죽을 자유를 달라!”
여전히 죽음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랬기에 강기찬에게 자유롭게 죽을 권리를 요구했다.
이를 들은 강기찬이 코웃음 쳤다.
“죽게 해줄게, 죽어 봐.”
“뭐?”
“죽어보라니까?”
“…….”
강기찬이 도발했다.
자결하려면 또 할 수야 있다. 여분의 독약이 있으니.
하지만, 그게 쉽나?
독약 먹어봤자 저 노인이 되살릴 터.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다. 독이 체내에 스며드는 그 고통을 또 맛보는 거다. 처음엔 그 정도 고통일 줄 몰랐으니까 저질렀던 거지, 어찌 다시 겪으랴.
힐끗, NPC화타의 눈치를 보았다.
그가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목숨을 소중히 여기게나… 또 가벼이 자살하려거든 반신불수로 깨어나게 해줄 터이니…….”
“!”
다들 동시에 같은 마음을 품었다.
‘자결 절대 안 해!’
강기찬이 말했다.
“… 죽을 자유를 달라고? 염병… 죽을 자유를 줄 거면 되살리질 않았지.”
“으으! 우리는 절대 네놈 뜻대로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정보를 네놈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 조센징! 조센지-으으윽!”
강기찬이 욕한 놈의 머리채를 잡고선 뺨을 후려쳤다.
짝!
“야, 뭐라고 했냐?”
짜-아아악!
“왜 말을 못해?”
두 번, 세 번, 네 번을 연속으로 쳤다.
뺨이 화끈거리고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졌다. 핏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눈물까지 범벅인 눈으로 강기찬을 노려보았다.
“눈깔아, 안 깔아?!”
눈을 깔자, 강기찬이 한층 노기를 가라앉히면서 중얼거렸다.
“하나같이 과거에서 오셨나, 언제적 욕을 하는 건지…… 조선은 100년도 더 전에 망했는데 말이야…….”
옆에서 같이 으르렁대던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다소 누그러진 기세를 보였다. 괜히 대들었다간 저렇게 처맞지 싶어서.
“또 죽어보던가. 반드시 살려줄 테니까. 대신 이번에 자결 시도하면 뺨으로 안 끝난다? 알았냐?”
… 죽을 수도 없는데 죽고 싶게 만들어 줄 테니까.
“…….”
사무라이 길드원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고자 자결을 시도했던 거니까.
예상대로 흘러가니 암울할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잔인한 놈!”
“우리는 아무 죄가 없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이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강기찬을 나쁜 놈으로 만들고 죽자! 그들이 택한 최후의 발악이었다.
설득력도 있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느닷없이 나타나더니 자신들을 죽이고 납치해서 고문하고 있는 거니.
그러나,
“멍청하네.”
… 통할 리 없었다.
강기찬은 저들에게 아직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왜 자신을 감시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왜 한국에 밀입국했는지까지.
다만, 캐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건 있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무려 일본의 랭킹 1위 길드원들이 국내에 밀입국했다. 소수정예도 아니고 대거… 맵핵으로 추려본 결과, 대략 100만 명……. 한국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 4대 길드원을 다 합친 수가 100만 명이다. 이만한 수가 단체로 연차 내고 국내 관광하러 온 건 아닐 테지.
어떤 흉계가 있을지는 모르나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는 건 자명했다.
그랬기에 대충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자, 왜 날 감시했지?”
좀 전에 듣지 못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감시 안 했…….”
달갑지 않은 대답이 들려 오려 했다.
강기찬이 직전에 끊었다.
“10, 9, 8…….”
숫자를 세면서 목울대에 칼집을 냈다. 빨간 피가 한 방울 맺혔다. 오랜만에 초집중했다.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게 손끝의 힘을 조절했다. 아까 두 번 경험했다고 지금은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할 수 있었다.
“……!”
사무라이 길드원은 확신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반쯤 죽였다가 살리기를 반복할 거라고.
그런 까닭에,
“아아아하아아! 마, 말할 게 말한다고!”
이실직고하기로 했다.
상대는 악마 그 자체다.
끔찍한 미래가 훤히 예견되어 있는데 어떡하랴. 차라리 다 불고 편하게 죽여달라 비는 수밖에.
그런데…….
“7… 6…….”
강기찬이 숫자 세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바로 말하라고.
빠르게 이해하고선,
“…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
황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기찬이 말을 끊었다.
“누가?”
“기, 길드마…….”
“나가로가 시켰어? 뭐를? 왜?”
“청용하고 백령, 맹인검객을 다 암살할 예정이셔…….”
강기찬은 그만 말하라고 손짓한 뒤,
[강기찬] 다들 괜찮습니까?
‘청용, 백령, 맹인검객’에게 안부 귓속말을 돌렸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초조했다. ‘청용, 백령, 맹인검객’이 강하다 한들, 상대방도 그에 못지않다. 아니, 맹인검객 빼곤 상대가 안 될 터. 나가로는 세계 랭킹 2위이지 않나.
게다가 대규모 병력으로 무슨 비겁한 수를 썼을지도 모르고… 기습은 필수로 했을 테니…….
머릿속이 복잡해질 즈음… 하나씩 답장이 돌아왔다.
[청용] 예? 괜찮냐니? 괜찮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백령] 뭐가 괜찮아? 근데 너 날 걱정해주는 거냐? 오~ 웬일이지? 시간 돼? 만날까? 우리 안 본 지 오래된 거 같은데…….
[맹인검객] 괘, 괜찮다. 너는……? 잘 지내……?
다행히도 다들 무사했다.
암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휴…….”
안심하면서도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저들에게 대략적인 정보를 흘렸다.
사무라이 길드원 전원이 국내에 밀입국, 너희들 암살당할 수 있다고.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청용] 알고 있습니다.
[강기찬] 어떻게요?
[청용] 주은씨가 알려주던걸요. 친구가 알려준 비밀이라면서…….
[강기찬] 다행이네요…….
강기찬은 안도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들으라는 듯이.
“청용 백령, 맹인검객을 암살한다고? 그게 나를 감시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 그들이 유독 너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무언가 있는 것 같다고, 너부터 납치하라고, 지시를 내리셨어. 쓸만한 패일 수도 있다고…….”
강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감시했던 이유가 그거였나…….’
의문이 하나 해소되었다.
알아야 할 건 더 있지만.
“청용하고 백령, 맹인검객을 왜 암살하려는 거지?”
“조선을 잡아먹으려고, 그러기 위해서는 청용하고 백령, 맹인검객이 없어야 하니까…….”
“조선? 야! 너희들 과거에서 왔냐? 뭔…….”
“아, 아니. 아니야! 대한민국! 대한민국이야!”
이젠 강기찬의 강함의 원인은 전혀 관심 없는듯했다. 그저 겁먹었을 뿐. 몇몇은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강기찬이 코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한국엔 어떻게 들어왔지?”
소수정예야 쉽게 밀입국 가능할 터.
하지만, 100만 명은 무리다.
아니, 밀입국은 어떻게든 한다고 쳐도 이토록 발각되지 않을 순 없다. 꽤 힘 있는 한국인 권력자의 도움이 있지 않고서야.
“현기현 상의 도움으로…….”
“현무길드의 길드마스터?”
“그렇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확실히 현기현 정도면 적합하지… 그런데 현기현이 왜?’
현기현과는 저번, 썬더버드 소탕 작전 때 만났었다. 꽤 듬직한 인상이었는데…….
‘어쩌다가… 사무라이 길드에게 나라를 판 거지?’
현기현의 동기야 어찌 되었든 일본에 대한민국을 갖다 바친 거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의 4대 길드. 그중 1, 2위 길드의 수장을 암살하는데 동조한 거니까.
무엇보다 사무라이 길드원 전원이 국내에 몰래 들어와 있는 상태, 그들이 과연 청용, 백령, 맹인검객을 암살하고선 순순히 물러나 줄까?
물론 강기찬이 있기에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능히 제압할 수 있을 테지만.
“현기현이 왜 너희 길드를 도왔지?”
“청용에게 암살당할 뻔했다고 했다…….”
“?!”
뭔가 구린내가 났다. 예전에 맡아본 듯한……? 더 캐봐야겠다.
“계속 말해. 구체적으로…….”
“청용이 백령에게 사주해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동료인 주은 역시 맹인검객한테 죽을 뻔했다고 했고… 그 복수를 하고팠는데 본인의 힘으로는 안 될 걸 아니까, 우리에게 부탁한 거다.”
“…….”
강기찬은 일순 생각이 많아졌다.
‘이거… 주은이 했던 착각과 궤를 같이하는데?’
그러고 보니 대마법사의 증표를 거래하고자 주은과 카페에서 만났을 때, 바깥에 현기현도 있었다.
그리고 맹인검객과 백령도 멀찍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호원으로서.
그런데, 주은은 그 맹인검객을 감지하고선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고 착각했었고…….
‘현기현도 착각했던 거야? 백령이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고?’
아무래도 현기현 역시 착각한 거지 싶었다.
그때, 백령이 암살하러 왔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