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 * *
강기찬은‘차원의 숲’에서 돌아온 뒤, 맵핵을 보았다. 습관이었는데 덕분에 수상한 정황을 발견했다.
‘뭐지?’
집 주변에 일본인 다섯 명이 있었다.
물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외국인이 거의 없는 동네지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 법했다. 그들의 이름 위에 뜬‘길드명’만 아니었다면.
‘사무라이 길드?’
맵핵에는 유저가 속한 길드명도 뜬다.
한데, 길드명이 꽤 낯익었다.
‘얘네 일본 랭킹 1위 길드잖아?’
일본 랭킹 1위이자, 세계 랭킹 2위의 길드원?
그의 집 근처로? 올 수도 있다.
‘입국 금지’된 길드만 아니라면.
‘근데 여긴 왜?’
밀입국? 할 수 있다. 저만한 권력을 지닌 자들이라면.
문제는 왜 자신의 집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집 창문을 응시하면서…….
이는 천공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건 백번 양해해도 그것만큼은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다.
‘나한테 용건이 있는 건가?’
의아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들과 접점이 없었다.
“얘네들이 왜 여기 왔지?”
다들 레벨이 3,000대였다.
일본 랭킹 1위 길드라 해도 레벨 낮은 애들?
있다.
자신 같은 저레벨(?)을 감시하는 걸 고레벨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
‘하긴, 대외적인 내 취급은 딱 저 정도지. 그나마 사무라이 길드라서 2,000이 아니라 3,000레벨 감시역을 붙여둔 거네.’
공식, 비공식, 세계 랭킹 1위들을 밑에 두고 있다 보니 현실을 망각했다. 자신이 사회에서는 여전히 1,000레벨 초반대의 최하급 유저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물어봐야겠다. 용건이 뭔지…….’
출두를 써서 사무라이 길드원들 앞으로 이동했고.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흠칫하며 그를 보았다.
그런데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소리치거나 공격을 한다든지 하는…….
철저히 교육받아서 일반인인 척 연기도 잘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
그렇다고 알아봐달라고 이름 대기에도 좀 그래서,
“저기, 여기서 뭣들 합니까?”
순수한 물음만 던졌다.
이쪽에서도 일종의 연기톤으로.
이에, 돌아온 대답은 싱거웠다.
“예? 그냥 지나가는 길인데…….”
일본어가 흘러나왔지만, 유저끼리는 의사소통이 되었다.
“그럼 지나가야지, 왜 여기서 저 집을 지켜보고 있냐는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인지…….”
“시치미 떼네.”
이해는 간다만, 다 아는 관점에선 답답하다. 말 몇 마디 덧붙인다고 태도가 달라지지도 않을 것 같고.
“모르면 맞으면서 배워야지.”
정신교육부터 하기로 했다.
쫙쫙쫙쫙쫙.
강기찬이 순식간에 다섯 명의 뺨을 후려갈겼다.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미처 대비하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공격당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기절과 동시에 사망해버렸기에.
‘힘 조절한다고 한 건데…….’
너무 레벨 격차가 나버리니 힘 조절이 어려웠다. 나름대로 약하게 한 것인데도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고통만 조금 느끼게 해주려고 했는데 죽음을 선사해주었으니.
‘999레벨일 때 10레벨 건드리는 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랑 비교도 안 되게 어렵네… 뭐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는 거지.’
이렇게 되어버린 건, 급속성장을 해버린 탓이 컸다.
단계마다 밟아야 할 감각을 익히는 과정이 생략된 거니.
그중 하나가 힘 조절이었다.
숱한 실전 경험으로 축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으니. 첫 몸풀기를 하필 7,000레벨 차이 나는 것들하고 한 것.
아무리 그라 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하긴, 벌레를 약하게 밟는다고 안 죽는 건 아니니까. 너희들이 너무 약한 걸 탓해라.’
사무라이 길드원들은 사망으로 로그아웃 당해 일반인이 된 상태.
‘이번에는 힘 조절 잘하자, 또 죽어버리면 진짜 죽는 거니까.’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눈을 뜨기도 전에 다시 손가락 끝으로 꾹 눌렀다. 그러자마자 기절해버렸다.
‘이 정도 느낌이라 이거지? 엘리베이터 버튼 누를 때의 강도인데 기절을 해버릴 줄이야… 내가 얼마나 강해진 거야?’
자신의 힘을 가늠하면서 사무라이 길드원들을 전부 들쳐멘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일반인 신분이라서 밧줄로 묶어도 풀지 못할 것이다. 다 결박하곤 거실 구석에 처박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사무라이 길드원들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얼음을 잔뜩 띄운 찬물을 연신 끼얹었다.
“어-어으으으으!”
“어푸푸푸풋!”
저마다 듣기 싫은 신음을 내며 하나둘씩 정신 차렸다.
이내 자신들이 결박된 걸 알고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소파에 앉은 강기찬을 본 것.
“가, 강기찬!”
“이제야 나를 알아보네.”
자신을 감시하던 자들인데 어째 못 알아본다고 했다. 아니면 못 알아보는 척을 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제는 알아봐 주었으니 되었다.
그리고 왜 자신을 못 알아봤던 건지 곧이어 하는 말을 듣고 알게 되었다.
“… 너 서 있을 수 있었냐?”
“강기찬이 일어설 수 있다고?!”
“그럼! 방금 만난 녀석이 강기찬이라고?!”
“근데 일어선다니? 그건 정보에 없던 건데?”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며?”
“그새 다리를 고친 건가?”
“아니, 어이 어이! 그걸 무슨 수로 고쳐?! 레전드스토리라도 그런 건 못 고친다고!”
강기찬의 얼굴을 알았지만,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줄 알았다. 설마하니 일어설 줄 알고 또 자신들을 몸소 맞이하러 올 줄 꿈에도 몰랐던 거다.
그래서 강기찬의 얼굴을 보았음에도 강기찬인 줄 몰랐던 것. 인지부조화가 발생했던 것.
아니,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그러지 못한 것은 강기찬이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나타났던 탓도 컸다.
게다가 말 몇 마디 섞은 뒤 바로 공격하고 기절시킨 뒤, 죽이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인지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강기찬이 뒷머리를 긁었다.
“아, 맞다. 나 못 걷는 거지?”
그러고 보니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몇 없었다. 공식 석상에서 걷는 걸 보여준 적도 없을뿐더러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조차도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다했을 테지만.
굳이 이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지금 저 사무라이 길드원들만 봐도 시끄러운데 한국인들이 알게 되면 얼마나 시끄러워질까?
‘귀찮아지는 건 질색이야. 필요에 의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밝혀지는 거라면 또 모를까…….’
여하튼 그런 까닭에 대중들은 아직도 자신이 못 걷는 줄 알 터. 바다 건너 외국인들은 더 모를 수밖에.
‘흐음…….’
걸을 수 있게 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제는 걷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새삼 다리를 만져보았다. 주물럭거리면 느껴지는 이 감각이 여전히 좋았다.
웃으면서…
“봐봐, 일어설 수도 있고, 이렇게 걸을 수도 있다?!”
곧장 일어섰다. 그리고 걸었다. 그럴 수 있음을 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지만,
“우릴 어쩔 셈이지?”
사무라이 길드원들은 관심 없는듯했다.
하긴, 강기찬이 서 있는 게 놀랍다 한들 그거야 나중에 따져볼 일. 자기네들 앞날을 걱정하는 게 우선일 거다.
강기찬이 대답했다.
“너희는 날 감시하고 나서 어쩌려고 했는데? 그거부터 말해 봐.”
“뭐? 우리가 너를 감시해?”
“아니야?”
“그런 적 없다.”
“… 여전히 모르쇠로 나오네? 그러면 다 해결될 것 같아?”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아직도 아닌 척하고 잡아뗄 생각이었다니. 한 번 죽었다가 깨어났음에도 정신을 못 차렸지 싶었다.
강기찬이 중얼거렸다.
“제법 연기는 잘하는 거 같은데, 이거 하나는 인지하고 대화하자. 지금 너희들 죽어서 일반인 됐어. 여기서 또 맞으면 영원한 죽음이고, 이해가 되나?”
이해.
그 단어를 듣자 문득 떠오른 것.
“아, 아니… 네가 우리를 죽인 거냐?”
사실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갑자기 강한 충격과 함께 눈앞이 암전된 것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로그아웃 당해서 일반인이 되어서 아픔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때 맞았던 충격은 찰나였음에도 억겁의 세월 같았다. 때문에, 그 고통만큼은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내가 너희를 죽였냐고? 어, 그러니까 너희가 내 집에 있는 거지, 그렇게 결박당한 채로…….”
“…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네 레벨은 1,000레벨쯤 아닌가?”
사무라이 길드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왜? 너희들이 3,150레벨 암살자랑 3,091레벨인데 한 방에 당해서 이상해?”
“!”
“우리 레벨을 어떻게 알았지?”
“야, 내가 뭐 할 때마다 물어보는데 난 질문받는 거 싫어한다. 근데 질문하는 건 좋아하고. 이제부터 내가 묻기만 할 거고 너희들은 대답만 하면 된다. 입 다물거나 거짓말하면 그 즉시 죽는다. 다섯 명이니까 네 명은 죽여도 되겠지?”
“…….”
“자, 왜 날 감시했지?”
“…….”
푹.
왼쪽에 있는 유저를 죽였다.
하나 죽인다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어차피 범죄를 저지를 놈들이다. 아니, 저지른 놈들이다. 밀입국했으니.
더군다나 이쪽은 시간 회귀를 할 거기도 해서, 막 나가도 되었다.
그랬기에 말했다.
“… 내가 인내심이 없어졌거든?”
얼른 1만 레벨을 찍어야 했다.
그래야 소원권을 쓰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몬스터를 잡으러 가기도 전에 길이 막힌 셈.
무언가를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예기치도 못한 날벌레들이 꼬이고 말았다. 그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알게 된 이상, 더는 번식하지 못하게 조기에 퇴치하고자 했다.
무시하고 하려던 일 하기에는 기분이 찝찝할 테니까.
날벌레들이 꿈틀대는 걸 방지하고자,
“말해.”
한 유저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말하지 마!”
옆에 있던 누군가 외쳤다.
“응, 넌 아웃.”
강기찬이 그 즉시 그자를 죽여버렸다.
“안 말하면 저렇게 된다.”
“아니! 사실대로 말해도 죽일 거다! 그리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주군의 얼굴을 어떻게 볼 거냐! 내부고발자로 고국으로 어찌 돌아갈 것이냐! 우리는 자랑스러운 일본인! 명예롭게 같이 가자! 전우들이여!”
그때였다.
나머지 세 명이 일제히 어금니 뒤에 숨겨둔 독약을 깨물었다. 그러면서 눈웃음을 지으면서 실실 쪼갰다.
강기찬, 네가 바라는 때로는 되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내 동료들이 너에게 복수를 해줄 거라는 듯이…….
그들의 입가에 새어 나오는 검은 피를 보면서, 강기찬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결 잘하네…….”
일절 당황하지 않았다.
사무라이 길드가 워낙 자결로 유명한 길드라서.
길드원들을 어떻게 세뇌한 건지,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해서 길드의 명예를 떨어뜨릴 것 같으면 자결시켜서 묻어 버린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강기찬도 대비책을 마련해둔 뒤였다.
“얘네들이 자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니까. 자결 맛집이라니까, 자결 맛집…….”
쓰러진 사무라이 길드원들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렸다.
“도와주셔야겠는데요? 응급환자입니다.”
덜컥!
방문을 열고 백발의 노신사가 나왔다.
“저출산 시대와 인구절벽은 막아야지요!”
NPC화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