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25화 (125/151)

125화

“항복해.”

“?”

슈슈크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항복하라고.”

강기찬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다시 요구했다.

“항복? 내가 왜?”

슈슈크크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감히 자신에게 대전 신청을 할 때부터 정상은 아니라 여겼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물론, 상황만 놓고 보면 강기찬이 유리한 건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거점인 중앙 1차 포탑, 중앙 2차 포탑까지도 파괴했으니까.

또한, 포탑 안에 들어가 파괴할 수 있다는 것만 보아도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다. 나머지 포탑도 그런 식으로 부숴버리면 본인은 손도 못 쓰고 패배하는 건 기정사실화였으니까.

그렇다고 항복 요구라니?!

‘타당하군.’

돌이켜 보니 패배를 인정 안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봤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피차 시간 낭비할 것 없지. 저런 사기적인 방법이 있는데 더 해서 뭐하겠나.’

그랬기에,

“그래, 알겠다.”

그도 저 생명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항복하겠다…….”

‘자존심 상하기는 하지만…….’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다. 더 해봐야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그게 더 자존심 상할 거다.

강기찬과 더는 얽히기 싫었고.

‘이번 판은 일찍 포기하고 다음 판을 노리자. 그게 더 나아.’

어차피 패배할 거, 일찍 패배하는 게 시간 낭비가 덜 할 것이다.

‘다음 판에 누구를 만나도 감사하겠네.’

너무 먼치킨 생명체에게 데인 까닭에, 랭킹 2위를 만나도 감사할 것 같았다.

‘이제는 항복할 일만 남았군…….’

이 생명체와도 마지막 만남이 될 터.

그 전에,

‘그래도 할 말은 해줘야겠지.’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나무를 볼뿐, 숲을 보지는 못하는구나.”

“뭐?”

“내가 항복해서 네가 이긴다고 치자, 그래봤자 뭐가 달라지지? 이번 판만 이겨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

“네 별이 998개가 되는 거잖아.”

“그래봤자 나는 두 번만 더 이기면 된다. 그럼 너도 네 가족도 네가 살던 세상도 끝이다.”

지금의 승리.

그걸로 잠깐 기쁠 수는 있다.

하나, 예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단지 짧은 생명 연장밖에 안 되는 것.

그 점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그것이 슈슈크크가 강기찬에게 줄 수 있는 절망이었다. 이번 판을 져도 그렇게 불쾌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데도.

‘표정 변화가 없군.’

강기찬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물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니다. 익히 아는 걸 상기시켜봤자 시큰둥할 거다.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해두었다, 이건가?’

그렇지만, 슈슈크크는 은근히 기분 좋았다. 이겼다고 기뻐하는 데다가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물론 강기찬은 기뻐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지만.

“누가 끝이래?”

강기찬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나갔다.

“?”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닌 걸 모르나?”

“그 말이야 알지, 하지만 이 상황에도 그 말이 통할 거라고 보나?”

그때였다.

강기찬이 돌발 발언을 한 것은.

“거래를 제안하지.”

“뭐 거래?”

돌발 제안에 슈슈크크는 관심을 보였다.

“대전을 한 달만 멈춰라.”

“……?”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하지만, 반발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거래’라고 했다.

단순히 자신에게만 요구하는 게 아닐 터.

저쪽도 대가로 무언가를 줄 거니까 하는 소리일 터.

그 정도는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 죽기 전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그 정도야 들어는 줄 수 있지.’

“대전을 한 달 멈춰주면 너는 나한테 무엇을 줄 거지?”

대전을 한 달 멈추는 것.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였다. 그저 대전을 안 하면 되니까.

물질적인 손해도, 변수도 없어 보였다.

한 달 멈춘다고 랭킹이 뒤집히지도 않으니까. 그만큼 랭킹 2위와 확고한 차이니까.

하지만, 그거야 당사자니까 할 수 있는 생각.

타인이 그걸 요구하려면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그 대가는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가질 건 다 가진 삶이었으니까.

‘망한 판국에 꺼낼 수 있는 패가 뭐가 있나 싶지만…….’

듣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으니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괜히 기대를 걸어봄 직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포탑 내부 진입’을 발견하고 ‘포탑 내부 공격’까지 실행했다. 말도 안 되는 소환 스킬까지 보유했고.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나온 강기찬의 말…이 아닌 손짓.

슉!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쥐자 10초 뒤에 설명창이 떠올랐다.

‘아이템 설명?’

도대체 무슨 아이템인 걸까?

잘은 모르지만, 저게 자신에게 대가로 줄 무언가인 것 같았다.

‘흥, 무슨… 아이템 따위로… 나를 유혹해보시겠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커져만 갔다.

아이템 위에 뜬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두 눈이 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 소원권 》

[분류] 아이템

[등급] 유일

[설명]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전.

[효과] 어떠한 소원이든 딱 하나만을 이루어준다.

[조건] 1만 레벨 이상.

[제약] 없음.

“소, 소원권? 어떠한 소원이든 딱 하나만을 이루어준다고?”

슈슈크크는 제 눈을 의심했다.

분명 보고 있음에도.

저건 조작할 수 없는 것임에도.

‘어디서 이런 걸 얻은 거…….’

아이템의 출처를 따지려다가‘설명’을 보았다.

[설명]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전.

‘시, 십 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

그 말인즉슨,

‘저… 저 자식이 십 년간, 레벨업을 안 했다고?!’

두말할 거 없다.

설명란에 그렇게 적혀 있는데 무슨 반박이 필요하리.

‘… 그래서… 그랬던 거군…….’

이제야 강기찬이 왜 이렇게 늦게 구 만렙을 찍고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 건지 이해가 갔다.

‘10년이나 레벨업을 못 했으니까 그렇지… 그나저나… 이런 걸 얻을 수가 있었구먼.’

소원권의 획득 조건이 괴이하기 짝이 없다.

자신은 획득 조건을 알고도 시도해볼 엄두를 못 낼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저 자식은 저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했다는 거잖아?’

강기찬은 획득 조건을 모르는 상태에서 살다가 획득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각 유저가 사는 세상은 달라도 레전드스토리를 플레이한 건 똑같다.

즉, 저 소원권이 자기네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얘기.

그런데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즉, 저건 조건을 충족해야 얻을 수 있고, 얻고 나서야 획득 조건을 알 수 있는 거다.

명백히 대단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저걸 얻은 건 대단한 게 아니다.

평균 이하의 행동을 취해야지만 얻는 거라니.

물론, 그걸 원해서 한 게 아닐 테지만…….

‘얼마나 열등하면 레벨을 1도 올리지 못해서 저런 걸 얻는 지경에 이른 거지?’

보통 열등한 게 아니라 더 하향 조정을 해야 하지 싶었다.

미생물 수준으로…….

직접 물어보고자 했다.

“왜 레벨업을 못 했지?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그런 게 있다.”

“그래.”

슈슈크크도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10년 동안 레벨을 올리지 못할 만큼 열등하다는 걸 굳이 제 입으로 꺼내기엔 무리가 있겠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저 아이템 그 자체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전을 한 달 멈추는 대가로 소원권을 주겠다고?”

“어.”

“흠…….”

내심 기대를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막말로 영원한 삶을 달라고 하면 받을 수 있는 거다!’

이미 자신은 절대 강자다.

가진 걸 다 가졌지만, 그거야 힘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들뿐. 소원권은 그 외의, 힘으로 쟁취할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정말 탐이 나는구먼.’

솔깃할 수밖에 없는 대가였다. 솔직히 마음은 이미 많이 기운 뒤였다.

그렇다고 경솔하게 굴어선 안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보았다. 이렇게 매력적인 건 보통 뒤가 구린 법이다.

그랬기에 신중하게 따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신중하지 않아도 단박에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한 달을 늘려서 뭐하게?”

물론, 오늘 죽을 거, 한 달 뒤로 미룰 수 있는 건 의미가 있다. 자신은 몰라도 죽는 처지에서는. 어쨌거나 소중했던 인연들과 작별인사라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는 있을 테니.

하지만, 이것에는 아주 큰 모순이 있다.

‘나한테 거래를 제안할 게 있나? 본인이 소원권을 쓰면 되잖아?’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거래였다.

‘본인이 직접 소원권을 써서 그냥 최종우승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주 간단했다.

소원권을 쓰면‘대전을 한 달만 멈추는 것’쯤이야 우습다.

아니, 애초에 저런 요구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최종우승해달라고 하면 끝이다.

소원권은 제약이 없지 않은가.

어떠한 소원이든 딱 하나만을 이루어준다.

‘최종우승’쯤이야.

그게 안 된다면‘어떠한 소원이든’ 이루어준다는 명시가 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바보인가? 아니지, 이건 바보의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 속셈이 있다고 보았다.

이내,

‘오호라!’

강기찬의 속셈을 눈치챘다.

‘레벨이 모자라는구나!’

자신은 아이템 설명을 봤을 때 전혀 거슬리지 않았던 것.

하지만, 강기찬은 내내 거슬릴 수밖에 없었던 것.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사용 조건] 1만 레벨 이상.

‘강기찬은 9999레벨이지?!’

그랬다.

강기찬은 지금 당장 소원권을 쓸 수 없다.

딱 1레벨이 부족해서.

‘하! 그래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로구먼!’

알고 나니 단순했다.

9999레벨에서 1만 레벨로…….

레벨 올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시간이 부족할 터.

자신으로 인해서.

‘나는 오늘 별 1,000개를 찍고 최종우승할 예정이니까. 그러면 소원권이 있어도 못 써보고 끝나니까.’

길어봤자 오늘 안에 종말을 맞이할 터.

아무리 기를 써도 그 안에 레벨업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거래를 제안한 것이리라.

다문 한 달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소원권은 일종의 미끼겠지. 한 달이라는 기간을 벌어줄.’

어차피 한 달 뒤에는 1만 레벨이 되어있을 테니. 자신한테 소원권 안 주고 본인이 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의구심이 들었다.

‘… 한 달 안에 1만 레벨이 되나?’

언뜻 보면 고작 1레벨업이지만, 9,999레벨은 필요경험치가 심하게 많다. 빠듯하게 하면 한 달 안에 가능하긴 할 테지만,

‘만렙 돌파의 광석은 어떻게 구할 건데?’

여기서 막힐 거다.

9,999레벨부터는 이전처럼 한계돌파 사탕으로 레벨업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만 레벨이 되려면 만렙 돌파의 광석을 써야 할 터.

그러나 그 사실은 레벨업 요건을 충족할 만한 경험치가 모이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 거다.

‘만렙 돌파의 광석은 얻는 것만 해도 족히 한 달은 걸릴 문제지.’

즉,

‘저 자식은 단순히 레벨업에 걸리는 기간만 계산해서 한 달을 요구한 거다. 만렙 돌파의 광석까지, 총 두 달이나 필요한 지도 모르고…… 크크크큭!’

슈슈크크가 입을 열었다.

“좋다! 거래하지! 계약부터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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