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어리석고 오만하다, 라… 그렇게 보일 거 같네.”
강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슈크크가 물었다.
“네 행동은 무엇을 위해서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
슈슈크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 때문에 모두가 죽을 가능성만 커졌다.”
“그래?”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라 한들, 항상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지. 지금이 그렇다.”
“나보다는 다른 유저가 너랑 붙는 게 나았을 거라고 보는 거지?”
“그렇고말고. 나 말고도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다른 유저는 그렇게 생각해도 너는 아니게 될걸?”
“그렇긴 하지. 네 덕분에 쉽게 별을 챙기게 되었으니.”
“아니, 그것 말고 다른 거.”
뭘까, 강기찬의 화법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른 거? 그게 뭐냐? 말해 봐라.”
“나중에, 이번 판 끝날 때쯤에 말해줄게.”
“너를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이면 들을 수 있다, 이건가?”
“아니.”
“?”
“내가 승리할 거 같아도 끝날 때쯤에 공개할 거야…….”
누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상관없이 게임이 끝날 때쯤에 공개한다는 말이었다.
“네가 나랑 붙은 걸 고맙게 여길만한걸…….”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뭐 아무렴 어떻겠나. 어차피 끝에 가면 알 수 있다는 거니. 좋다, 일단 한 번 죽자.”
슈슈크크가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 즉시 강기찬이 사라졌다. 그 직후 검을 허공에 휘두른 슈슈크크가 침을 탁 뱉었다.
‘약삭빠르구먼. 뭐 상관없지. 놈을 죽이건 못 죽이건…, 어차피 포탑을 부수면 이기는 거니.’
강기찬을 놓친 건 의외지만, 상관없다. 다시 나타나면 그때는 놓치지 않을 테니까.
‘여하튼 방해꾼이 사라졌고 좋네. 이제 포탑을 부수면 되고.’
하지만, 이대로 무작정 포탑을 향해 돌격할 수는 없다.
포탑을 공격하려면 포탑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 즉시 빛 공격이 날아온다.
한 방에 생명력이 10%씩 깎인다. 피할 수도 없다. 빛이 날아올 때 공간이동 해도 결국엔 맞는다.
방어력과는 무관하기까지 하다. 방어력이 아무리 높아도 빛 공격 한 방에 생명력이 10% 깎인다.
즉, 유저의 생명력이 다하기 전에 포탑을 파괴할 자신 없으면 단신으로 진입하는 건 자살행위일 뿐이다. 특히 지금처럼 포탑 생명력이 100%일 때는 더더욱. 유저가 때려봤자 포탑 생명력은 개미 눈물만큼 깎이기에.
반면, 병사들은 아니었다. 포탑에 강했다. 유저보다 데미지가 높을 정도.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다. 기지에서 출발한 병사들이 오고, 그들이 대신 포탑 공격 맞아줄 때 접근하는 것.
그게 제일 안전하고 정석적인 진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곁에 병사가 없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자니 불현듯 떠오른 것.
‘잠깐… 강기찬의 병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온 거지?’
그땐 경황이 없어서 미처 따지지 못했다.
지금, 잠깐의 여유를 갖자니 이상했던 것.
그가 도착했을 때, 병사들은 이미 포탑 안에 있지 않았나.
‘그 시간대엔 병사들은 도착 전이어야 하는데?’
게임 시작 후, 5분.
병사들이 각자의 중앙 1차 포탑을 지나치는 시간대다.
아직 5분이 안 되었다.
자신의 병사들도 도착 전이고.
그건 적군 병사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 그래야 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적 병사들은 더 일찍 도착한 거지?’
의문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더 의문스러운 게 있었다.
‘병사들은 어떻게 포탑 안에 들어가 있었지?’
유저는 병사를 조종할 수 없다.
포탑 안에 들어가란다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 추정은 가능했다.
‘소환을 썼다면 가능하겠지만…….’
병사들을 포탑 안으로 소환하면 되었다.
그렇게만 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진행될 거다.
원체 포탑 공격만 하던 것들이니 내부라고 한들, 실컷 공격했겠지.
‘그런 소환이 다 있다니…….’
소환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원하는 대상을 원하는 공간으로 소환하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소환 아니던가. 소환 또한 게임을 기본으로 하기에 그렇게 사기적인 소환은 없는 법이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구먼, 그런 소환도 원래 있었던 거야.’
강기찬에 대해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부럽기도 하고, 시기 질투도 나고, 재수 없고……
‘천하의 나도 얻지 못한 소환을… 그리고 다른 유저도 얻었다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한 걸, 어째서 그 애송이가 가지고 있는 거지?’
차라리 자신보다 우월한 생명체였다면 이해라도 한다.
하지만, 강기찬은 인제야 구 만렙을 달성, 이 게임에 참가하게 된 생명체 아닌가?
열등하고 또 저질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아아! 그래, 단지 소환, 소환만 갖게 된 거야. 그것도 아주 재수 좋게…….’
간혹 봐왔다. 제 주제에 맞지도 않은 좋은 스킬을 가진 열등한 생명체들을. 강기찬도 그런 부류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주할 수 있었다.
때마침,
‘온다…….’
자신의 병사들이 이리로 오는 중이었다.
‘인제야…….’
평소 같았으면 별생각 없었을 거다. 평소처럼 5분에 오는 거니까.
한데, 이번에는 아주 느리게 오는 것 같지?
‘강기찬의 병사들과 비교가 되어서 그런가…….’
하나, 그 생각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병사들이 중앙 2차 포탑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번쩍!
피슉!
“아, 아니!”
고성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이런… 미친!”
욕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지가 얼어붙는다는 게 이런 거였나?!
그만큼 황당했다.
피슉! 피슉! 피슉!
중앙 2차 포탑이 공격 중이었다.
병사들을…….
둘 다 슈슈크크 진영인데.
‘아군이 아군을 공격……’
차마 생각을 잇지 못했다.
털썩!
빛 레이저 공격에 병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졌기에.
그 광경을 보면서도 여전히 정지해 서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확고한 두려움이었다.
괜히 저들을 구하고자 뛰어들었다간 자신도 포탑에 공격당할 테니까.
절대로 중앙 2차 포탑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게임에 들어온 이상, 유저는 안 무서워도 포탑은 무서우니까.
가만히 있는 와중에도 저 괴이한 현상의 원인만큼은 알 것 같았다.
‘… 그놈이!’
그랬다.
또 그 강기찬이라는 열등한 생명체가 저 포탑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포탑을 조종해 자신의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중인 것이다.
‘어쩐지… 잠잠하다 했어!’
강기찬.
포탑에 그토록 일찍 도착했던 자다.
그런 자가 사라진 지 몇 분이 지났다.
이미 다른 길의 포탑을 공격 중이었을 시간.
그런데도 조용했다.
‘그동안 내 포탑을 하나 더 장악하고 있었다니…….’
지금이야 그걸 알아차렸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일만 생각하느라 미처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다. 평소라면 하지 못할 실책이었다.
동시에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공격하는 중이지 않나.
그의 병사들이 포탑을……!
심란했다.
제 포탑과 제 병사들이 서로 공격하는 광경이…
의아했다.
‘포탑이야 그 열등한 생명체가 조종하고 있는 거라지만, 병사들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금세 병사들이 저러는 역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병사들의 어그로는‘고정’되어있으니까.
무조건 적군 유저, 포탑, 병사들로……!
즉, ‘적군 유저(강기찬)’가 포탑 안에 들어가 있기에 포탑부터 공격하는 것이다.
병사들은 죽을 때까지 포탑만 공격하다가 죽을 것이다.
저 포탑이 제 포탑이 아니길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지만,
띠링!
[중앙 2차 포탑이 공격당했습니다!]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97/100)]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96/100)]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95/100)]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94/100)]
.
.
.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71/100)]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67/100)]
알림창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었다.
저 등신같이 처맞고 있는 포탑이 네 포탑이 맞노라고.
마침내,
털썩! 털- 털썩- 털썩!
빛 레이저 공격에 병사들이 전멸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띠링!
[중앙 2차 포탑이 공격당했습니다!]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59/100)]
.
.
.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23/100)]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19/100)]
포탑도 파괴당하는 중이었다.
열등한 생명체가 포탑 내부에서 부수고 있는 거다.
“… 하…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지에서 온 병사들이 몸을 대주고 자신은 적진의 병사들과 포탑을 공격했어야 했는데…….
이제, 실질적으로 기지에서 병사들이 오길 바라는 건 포기해야 했다. 중간에 차단당할 테니까.
전쟁으로 치면 병력 충원이 끊긴 것.
적진의 포탑을 치기 위해 진격할 수도…….
그렇다고 아군의 포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사실상 저건 아군의 포탑이 아니니까.
이도 저도 할 수 없기에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1/100)]
[중앙 2차 포탑의 생명력 (0/100)]
[중앙 2차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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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퍼어어어어어엉!
중앙 2차 포탑이 파괴되었다.
포탑이 사라지고 강기찬과 병사들은 허공에서 추락, 안전하게 착지했다.
병사들은 적진의 중앙‘3차’ 포탑을 향해서 직진했다. 그걸 보다가 강기찬이 휙- 고개를 돌렸다. 슈슈크크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물었다.
“잘 봤어?”
“…….”
잘 보고말고.
너무 잘 보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1, 2차 포탑이 허무맹랑하게 파괴되었다.
3차 포탑… 더 나아가 기지까지도 똑같은 방식으로 파괴될 것이다.
즉, 이번 판을 패배가 기정사실화되었다.
짧지만, 길고 긴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줄 알았던 애송이가, 알고 보니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을 줄이야…….’
좀 전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해버렸다.
그런데도 안도 되었다.
왜냐하면,
‘이 애송이가 지금 들어와서 다행이다.’
이제와서 이렇게 강력한 적과 만나서.
이보다 훨씬 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 자리에 오는 데까지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지.’
이번 판을 져도 별이 98개.
두 판 만 더 이기면 된다.
그리고 다음 판에서는 이놈과 만날 확률은 0.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연결되는 구조이니까.
‘애당초 대전 신청을 받아들이지만 않았어도 평생 못 볼 사이였는데… 망할…….’
최종우승이 단지 몇 시간 늦춰진 거로 위안 삼을 수밖에.
그게 몇 시간 늦춰진 게 아니었음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