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21화 (121/151)

121화

“!”

별을 1,000개 모으면 끝인데 랭킹 1위가 999개 모았단다.

“벌써……?”

“강기찬님이 끝물에 참가하신 거지. 다른 서버에서는 이미 한창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하긴, 구(舊) 만렙이 되어야 참가 요건을 갖추는 거다, 다른 서버는 진작 구(舊) 만렙을 넘어섰다고 하니…….

“999개라면 정말 끝이네요…….”

“그렇게 볼 수 있죠.”

“저… 그럼 끝난 거 아닙니까?”

괜한 우려가 아니었다.

강기찬이 아무리 발악을 해봤자 랭킹 1위가 별 1,000개 모으면 끝이다. 그것도 하나밖에 안 남았고.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어떤 희망…이…….”

“랭킹 1위가 1,000개를 못 찍게 만들면 되지요.”

“어떻게?”

“레벨이 낮은 유저는 높은 유저에게 대전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강기찬은 자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나, 생각이 일치하는지를 확인코자 했다.

“저보고 랭킹 1위에게 대전 신청하라 이거군요.”

“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동시에 시도해볼 법했다.

“제가 대전 신청하면 흔쾌히 수락해주겠네요.”

“당연하죠, 만만한 상대이니까요.”

강기찬은 랭킹 꼴등이다.

어차피 상대의‘레벨과는 무관하게’ 이기기만 하면 별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되도록 쉬운 상대와 붙고 싶을 터. 평소에도 그런데 별 999개라면? 한 판만 더 이기면 별이 1,000개, 끝이다.

그 와중에 랭킹 꼴등이 붙어달라고 한다?

거절하면 바보 등신이지.

“지금 당장 대전 신청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새 다른 유저랑 붙으면…….”

“랭킹 1위가 아직 대기실에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대기실에 접속해야 대전을 치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접속하기 전까지는 여유는 있어요. 접속하는 즉시 제가 알려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행이었다.

숨 쉴 여유는 생긴듯하니,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게임에 참가해야 했다.

가장 궁금한 것.

“랭킹 1위는 레벨이 몇입니까?”

“95,000.”

“욕해도 됩니까?”

“채팅금지 하루입니다.”

“씨팔, 줫같네.”

“하시네요?”

“채팅은 안 칠 거라서.”

“저도 농담입니다. 이제와서 제재 가해서 뭐하겠어요? 다 죽게 생겼는데……. 씨팔. 상황 참 개같죠?”

* * *

랭킹 1위에 대한 정보.

게임 상세한 규칙.

자쟈의 조언.

중간고사 전날 벼락치기처럼 보고 읽고 외웠다. 숨 쉬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몰두했다.

이쯤 되니 새삼 깨우쳤다.

승산이 없다는 것을.

랭킹 1위와 레벨 격차가 나도 너무 많이 났다.

9만 가까이 차이가 나니…….

플레이 영상도 구해볼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전투력도 높을뿐더러 신들린 컨트롤까지 더하니 당해낼 자가 없었다. 가히 90% 이상의 승률을 유지할 만했다.

자쟈가 지켜보다가 말했다.

“랭킹 1위의 평소 접속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마음의 준비하라 이거다. 이제 마지막 게임을 할 테니까.

그 말을 하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역시 안 되는 것 같네…….’

강기찬의 심각한 표정이 풀리지 않는 걸 보고선 한 추정이었다. 천하의 강기찬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실은, 내심 기대를 걸었었다. 강기찬이라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가 해왔던 업적들이 그러지 않았나.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였던 걸 가능으로 바꾸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안 되지 싶었다. 시간, 기회, 정보, 경험, 여러모로 많은 것들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래, 안 되는 게 정상이지. 이걸 강기찬에게 기대한 내가 욕심쟁이였지.’

되지도 않은 희망 고문은 이쯤 하는 게 낫다. 자신이나 강기찬에게나…….

‘자존심이 있을 테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강기찬을 단념시키기로 했다.

“저… 역시 힘들겠죠?”

“…….”

강기찬이 침묵하자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계속 말을 걸었다.

“차라리 다른 유저와 붙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기찬에게 이렇다 할 전략이 없다면 강기찬을 내보내선 안 되었다. 그 한판이 끝일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다른 유저에게 기회를 넘기는 게 낫다. 적어도 강기찬보다는 승산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운 좋게 랭킹 1위를 한 번이라도 이긴다면 시간 벌이는 될 터. 그래 봐야 몇십 분 버는 거겠지만, 그마저도 간절한 상황이었다.

강기찬이 나직이 물었다.

“다른 유저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자는 겁니까?”

“그 수밖에 없습니다.”

괜히 오기를 부리다간 답도 없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했다.

“다른 유저가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데?”

“… 음. 그렇다고 강기찬님에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

자쟈는 스스로 말을 끊었다. 강기찬의 표정을 보고선.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절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설마?’

또 찾아낸 것일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해답을?

강기찬이 말했다.

“… 시간은 벌 수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

“지금 말씀드리면 재미없지요.”

“아-으으!”

“그놈… 아직 안 들어왔습니까?”

“아!”

호랑이도 제가 말하면 온다던가.

“왔습니다.”

방금 랭킹 1위가 접속했다.

* * *

서버 랭킹 1위는 대기실에 접속했다.

긴장되었다.

운 좋으면 이번이 마지막 판이 될 수도 있으므로.

흥분되었다.

무려 10년간의 긴 여정의 끝이 보이는 중이어서.

그런 그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깨뜨린 것은,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대기실 접속과 동시에 울린 알림음이었다.

“후훗!”

어떤 게 왔을지야 뻔했다. 접속할 때마다 무수히 많은 유저들로부터 대전 신청을 당해오지 않았나. 이번에도 그랬다.

‘어디 보자… 마지막으로 나의 제물이 되어줄 희생양은 누가 될까나?’

팬레터처럼 쌓인 대전 신청들. 그중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상대를 고르는 작업은 필수였다.

‘마지막은 좀 쉽게 가도 되잖아?’

여기서 패배해서 998 별이 되면 토할 수도 있었다. 이미 경험해보았다. 재수가 없는 건지 990 별이 넘어가고선 계속해서 승리와 패배를 번갈아 해서 오르락내리락을 해댔다.

5vs5 팀 대전을 해야 별을 많이 딸 수 있어서 했다가 망하기를 연속…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었다.

‘이놈의 팀운 존망겜. 내가 잘하면 뭐해, 그 새들이 못하는데…….’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여기에 다다랐다.

그러니 레벨 높은 유저와는 절대 싸우지 않을 요량이었다. 가장 먼저 뜬 대전신청 알림창을 지우려던 그때였다. 유독 그의 눈에 걸리는 숫자가 있었다.

“내가 잘 못 본 건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다시 보았다.

[강기찬(Lv. 9,999(별 0))님이 당신에게 대전을 신청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 / N?]

“일, 십, 백, 천… 진짜 9,999레벨이라고?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라니?!”

깜짝 놀랐다.

“오! 이런 횡재가!”

자동 매칭을 하면 비슷한 레벨대와 전투를 치렀다. 대전 신청도 마찬가지. 미치지 않고서야, 저레벨이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이냐?!”

저레벨이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게 아닌가?!

최초로 있는 일이었다.

그걸 마지막 판에서 겪게 될 줄이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의 고생한 것에 대해서…….

‘신께서 그동안 별 올린다고 고생했다는 걸 알아주시는구나. 꽁승(공짜 승리) 하나 챙겨서 나쁠 것 없지! 잘 먹겠습니다!’

굴러들어온 떡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먹잇감은 다시는 없을 테니.

[강기찬(Lv. 9,999(별 0))님의 대전 신청을 수락합니다.]

[10초 후, 전장으로 소환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10]

[9]

[8]

[7]

.

.

.

슉!

[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적진으로 침투해 기지를 파괴하십시오!]

슈슈크크는 홀가분한 걸음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산책하러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결판이 난 승부이기 때문이었다. 레벨 격차가 85,001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원샷원킬 뜨겠는데?’

그때였다.

[강기찬(Lv. 9,999(별 0)) : 어디야?]

강기찬이 채팅을 쳤다.

슈슈크크는 채팅을 무시하는 편이다. 시간 낭비라고 여겼으니까. 채팅칠 시간에 움직이는 게 낫지.

하지만,

[슈슈크크(Lv. 95,000(별 999)) : 오, 반갑다!]

채팅을 쳐주었다.

알아서 제물이 되어주겠다는 고마운 존재다.

이 정도는 대꾸해주어도 되지 싶었다.

[강기찬(Lv. 9,999(별 0)) : 어디냐니까?]

[슈슈크크(Lv. 95,000(별 999)) : 너한테 가는 길이지. 어디냐?]

[강기찬(Lv. 9,999(별 0)) : 동쪽 길로 가는 중인데?]

‘이놈 봐라? 위치를 물었는데 알려준다? 뭐지?’

의도를 곱씹어볼 수밖에.

[슈슈크크(Lv. 95,000(별 999)) : 네 위치를 왜 말하지?]

[강기찬(Lv. 9,999(별 0)) : 네가 물었으니까.]

강기찬이 참 당돌하다고 여겼다.

‘멍청하기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건 금기이거늘.’

전투 전에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필수다. 누가 먼저 아느냐에 따라 기습공격을 펼칠 수도 있고 퇴각로를 차단해 둘 수도 있기에.

그랬기에 서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게 자신의 위치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제 위치를 알렸다? 잡아달라고 애쓰는 격이다.

‘뭐 초보자니까, 그럴 수 있지.’

평소엔 대놓고 욕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품었다. 사실상, 모든 게 끝났다는 해방감 때문일 거다.

[슈슈크크(Lv. 95,000(별 999)) : 동쪽 길? 왜 거기로 가냐? 중앙 길로 와야지.]

중앙 길.

적진 기지까지 최단 거리다.

당연히 여기로 올 줄 알았는데?

[강기찬(Lv. 9,999(별 0)) : 중앙 길은 네가 갈 거잖아.]

‘아아, 나를 피하려고?’

강기찬이 동쪽 길을 택한 이유.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피하지 마라!’

[슈슈크크(Lv. 95,000(별 999)) : 얼굴 보자.]

[강기찬(Lv. 9,999(별 0)) : 왜?]

슈슈크크는 쪼갰다.

강기찬이 물음을 던지는 게 이해가 갔다.

마지막 판이다.

그냥 중앙 길을 쭉 밀면 끝이다.

승리 조건은 적진 기지 박살이다.

적 처치가 아니라.

서로 길 막아서 싸우지, 아니면 싸울 것 없다. 알아서 피해 주기까지 하는데, 굳이 만나려 한다?

이해가 안 갈 수밖에.

그럼에도, 게임을 끝내지 않고 강기찬을 만나려 하는 이유…

‘너무 궁금하잖아.’

… 진심으로 강기찬에게 흥미가 생겼다.

직접 얼굴 보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왜 자신에게 대전 신청을 했는지.

왜 이제야 이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기타 등등…….

채팅으로 물어봐도 되지만, 너무 느리고 답답했다.

마주 보고 직접 대화하는 게 속 편했다.

‘멀지도 않고, 만날 수 있는데 안 만날 것도 없지.’

[강기찬(Lv. 9,999(별 0)) : 나를 보고 싶다라… 좋다. 중앙 길에서 보자.]

슈슈크크는 황당했다.

만나자고 한다고 냉큼 수락하다니?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중앙 길로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 잠깐! 교란 작전일 수도 있다!’

너무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다.

강기찬의 관점에서 볼 필요성을 느꼈다.

‘놈이 중앙 길로 올 리가 없잖아?!’

세상에 패배하려고 싸움 거는 놈은 없다.

그것도 패배하는 순간 영원히 소멸하는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 살던 세계가……!

즉, 강기찬은 이기기 위해 대전 신청을 한 것.

그리고 애초에 정면승부는 안 될 걸 알았을 터.

그래서 시작부터 중앙길을 포기했을 것이다.

자신이 무조건 그 길로 갈 걸 알 테니.

괜히 욕심내봤자 죽임당하고, 포탑은 건드리지조차 못할 터. 그럴 바엔 좀 돌아가더라도 동쪽 길이 낫다, 이거다. 자신이 오지 않을 테니 죽지도 않을뿐더러 포탑도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그 계획에 변수를 준 거지.’

만나자고 했으니.

직접 찾아올 기세였으니.

‘그래서 중앙 길에서 보자고 했구먼. 중앙 길에 오지도 않을 거면서…….’

강기찬은 거짓말했을 것이다.

중앙 길에서 보자고.

여전히 동쪽 길로 가는 중이면서.

‘… 나를 물로 보나?’

가던 길을 틀었다.

동쪽 길로.

‘나는 네놈을 만나고 싶다고! 딱 기다려!’

신속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몇 분에 걸쳐 다다랐을 즈음,

“!”

띠링!

[중앙 1차 포탑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 뒤통수가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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