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20화 (120/151)

120화

자쟈, 운영자가 연락해왔다. 신선했다. 쪽지를 안 보내고 귓속말을 보내다니. 그런 적이 있었던가.

[GM자쟈] 회귀 안 하셨죠? 지금 하려는 것도 아니죠? 그런 거면 잠…….

말에서 다급함이 전해졌다.

그래서 귓속말부터 날린 걸 테지. 쪽지보다 빠르니까.

[강기찬] 예, 회귀, 안 했습니다. 아직 못 쓰는걸요.

[GM자쟈] 아! 아차차.

10년간, 유일하게 레벨 변동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전.

테스트 서버 입장권, 회귀의 시계, 소원권, NPC 방송 중계권. 이 중, 회귀의 시계와 소원권은 아직 못쓴다. 1만 레벨 이상에서 쓸 수 있는 거라.

그리고 설령 1만 레벨 찍었다고 해도 그러자마자 과거로 날라버릴 계획은 없었다. 그건 이번 삶에서 만난 지인들한테 예의가 아니니까. 못해도 작별인사는 나눠야지.

[GM자쟈] 저,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강기찬] 아, 네.

GM자쟈의 요청에 강기찬은 흔쾌히 승낙했다.

운영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하고픈 말? 뭘까?

[GM자쟈] 아, 중요한 얘기라 직접 얼굴 보고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강기찬] 네.

[GM자쟈] 지금 테스트서버이신데 지구서버로 나와 주실 수 있나요? 제가 테스트서버로 넘어갈 수는 없는 몸인지라…….

[강기찬] 네.

[GM자쟈] …에서 뵙도록 하죠.

[강기찬] 예.

자쟈가 강기찬에게 만날 장소를 지정해주었다.

잠시 후, 둘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우선 중요한 얘기에 앞서, 공적으로 알아가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부터 여쭐게요. 무엇이냐 하면…….”

자쟈는 이번 사건(만렙돌파 고블린 포섭)의 자초지종을 물었고 강기찬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다 듣고선 자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게 만렙돌파 고블린을…….”

“그런데 이건 왜?”

“강기찬님이 만렙돌파 고블린을 어떤 경로로 이 세계로 빼 왔는가를 보고서에 올려야 해서…….“

강기찬의 얘기를 듣고 보니 개발진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혹시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뇨, 문제 될 건 없습니다.”

불법 프로그램을 안 썼으니 유저 잘못은 없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오롯이 운영진에게 있지.

출시하기도 전에 만렙돌파 고블린이 유출된 건…….

‘강기찬도 이 사실을 알고 이런 이벤트를 벌인 거겠지.’

조금이라도 문제라 느꼈다면, 운영진 귀에 들어갈 정도로 큰 이벤트 열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문제없을 거라 확신하니까, 한 거지.

‘일전의 경험이 다량으로 쌓였으니까…….’

대담했다.

또 정확히 짚었다.

이쪽에선 전혀 제재를 가할 수가 없다.

‘영리하네.’

강기찬이 재수 없으면서도 뿌듯했다.

참 알 수 없는 감정.

그때였다. 귓속말이 울린 것은.

[자로 부장] 저 팀장님, 또 드릴 말씀이… 강기찬에 대한 것입니다.

자쟈는 약간 인상을 구기며 끝까지 들었다.

잠시 후, 강기찬에게 물었다.

“저 방금 들은 건데… 혹시 보물 고블린도… 강기찬님이…?”

“아… 네. 알고 오신 줄 알았는데…….”

“방금 부하직원이 일러주더군요. 참, 대단하십니다.”

“이것도……?”

“문제없습니다. 다만, 이것도 알아야겠습니다. 가르쳐주실 수 있을지요?”

“아, 얼마든지 말씀드리지요.”

보물 고블린에 대해서도 들은 자쟈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기찬님은 참 저를 놀라게 만드십니다. 아니 이제는 놀라기보다는 또 어떤 걸 보여주실까, 기대하는 데까지 이르렀죠.”

자쟈가 이어 말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길 바라면서… 지금부터는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사적인 얘기이기도 합니다.”

한껏 진중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우선 만렙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강기찬은 얼떨떨했다.

만렙이 된 걸 누군가에겐 축하받을 줄 알았다. 단지 운영자한테, 그것도 가장 먼저 축하받을 줄 몰랐을 뿐.

“사실 저희는 강기찬님께서 만렙이 되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답니다.”

“왜죠?”

보통 만렙이 늦게 되길 바라지 않나? 컨텐츠 소모 속도가 느려야 일거리가 줄어들 테니.

“지구 서버 어디에도 강기찬님 만큼 만렙에 적합한 유저는 없기 때문이지요.”

어감이 좀 이상했다.

세상에 만렙에 적합한 유저가 어디 있나?

한데, 자쟈는 마치 만렙이 될 자격이 있는 유저가 따로 있다는 듯 말하지 않나. 그것도 바로 자신을 지칭하면서.

물어볼 수밖에.

“제가 왜 만렙에 적합한 유저죠?”

“압도적인 속도로 만렙이 되었잖습니까?”

“테스트서버 덕분이지요.”

“겸손하십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자쟈도 부인하진 않았다.

마냥 시인하지도 않았고.

“정녕 테스트서버만 있으면 그렇게 빨리 만렙이 된다고 보십니까?”

“…….”

자쟈의 물음에 강기찬은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겠죠…….”

재료가 같아도 요리사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테스트서버는 최상의 재료, 그렇다고 누구나 최상의 요리를 만들 수는 없다,

“다른 유저라면 이토록 단기간에 만렙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쟈의 말에 강기찬도 동감했다.

평범한 유저면 2주일 전에 만렙 못 찍는다. 빨라야 1년 본다.

자쟈가 마저 말했다.

“그러니 강기찬님이 만렙에 적합한 유저죠. 그리고 늦게나마 만렙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아까는 빨리 만렙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상반되는 말이었다.

“늦게나마 만렙이 되었다고요?”

“다른 서버는 만렙을 넘긴 지가 한참이라서…….”

“네? 다른 서버?”

“예, 테스트서버 말고, 다른 서버가 있습니다.”

“… 저는 왜 몰랐…….”

“모를 수밖에 없죠. 가르쳐 주질 않았으니까. 인간의 관점에선 외계인이 사는 서버라고 보면 됩니다.”

다른 서버, 그리고 외계인의 존재.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지만, 애써 침착했다. 그보다 우선하여 짚고 넘어갈 게 있기에.

“… 방금 말하기를, 다른 서버는 만렙을 넘긴 지가 한참이라고…….”

“맞습니다. 우주에는 수억 개의 행성, 그만한 서버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지구 서버가 꼴등으로 구(舊) 만렙인 9,999레벨을 찍었습니다.”

지구 서버에선 이제야 찍은 만렙.

그 따끈따끈한 만렙이 다른 서버에선 구(舊) 만렙이란다.

즉, 9,999레벨이 다른 서버에선 낮은 레벨이란 의미.

이 격차는 무어란 말인가?!

자세히 알아보고자 했다.

“다른 서버에선 9,999레벨을 넘긴 자가 얼마나 됩니까?”

“하늘의 별과 같지요.”

“!”

다른 서버에선 구(舊) 만렙돌파를 한 유저가 무수히 많단다.

강기찬이 진중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거죠? 저들이 먼저 게임을 시작하기라도 한 겁니까?”

“아뇨, 모든 서버 유저들은 20년 전에 동시에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자쟈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동시에?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비롯한 최상위 랭커들은 게으르지 않았다. 정말 부지런하게 사냥하고 자는 동안에는 자동사냥을 했었다.

그런데 무엇이 저만한 격차를 벌리게 한 걸까?

자쟈가 대답했다.

“레벨1 고블린과 레벨1 드래곤의 차이랄까요? 둘은 레벨이 같지만, 전투력이 같지는 않죠. 반면,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똑같습니다.”

똑같이 1레벨이라고 쳤을 때.

고블린은 오우거를 못 이긴다.

드래곤은 오우거를 이긴다.

“종족부터가 다른 거라 성장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죠.”

자쟈의 말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인간이 고블린이고, 외계인은 드래곤이라 이거다.

그래서 게임을 동시에 시작해도 레벨업 속도가 다르다고.

“전 서버를 통틀어 인간이 가장 약해서 이제야 만렙을 찍었다?”

“예, 더 늦어질 뻔한 걸 그나마 강기찬님이…….”

잠시 정적, 이후 강기찬이 먼저 말했다.

“이제 말씀해주십시오.”

“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화가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강기찬이 만렙이 되자마자 자쟈가 부리나케 온 이유.

자쟈가 말하기 시작했다.

“강기찬님께서 만렙이 되셨으므로 지구서버 대표로 서버간 멸망전을 치르게 됩니다.”

“…….”

강기찬은 침묵했다. 더 말해보라고.

“자세한 설명은 튜토리얼을 같이 진행하면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튜토리얼… 지금 말입니까?”

“예, 사실… 강기찬님이 가장 늦게 멸망전에 참가하셔서, 조급한 마음이 있습니다.”

“저… 궁금한 게, 운영자님께선 왜……?”

운영자가 유저의 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 이유가 있을 터.

“강기찬님의 손에 저희 운명도 걸려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멸망하는 건 지구뿐만이 아닙니다. 각 서버별 운영진들의 목숨이 걸려있단 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우주의 정리입니다.”

“…….”

“서버가 너무 많아져 관리하기 어렵다고…….”

“고작 그 이유로?”

“예, 고작 그 이유로.”

서로 경쟁하게 한 뒤에 하나의 서버만 남겨두겠단다.

* * *

둘이 이동한 곳은 어떤 숲이었다.

“여기가 어디죠?”

“차원의 숲, 이라고 부릅니다.”

“지구가 아닌 겁니까?”

“예.”

“…….”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저편에서 작은 생명체가 오는 게 보였다.

인간처럼 창과 방패를 쥐고 있었다.

키는 대략 1미터 정도?

“난쟁이?”

강기찬은 자쟈의 눈치를 보았다.

이에, 자쟈가 말했다.

“적군 병사입니다.”

“어찌합니까?”

“당연히 죽여야지요.”

“지금?”

“예.”

강기찬이 뛰어가 단검으로 적 병사의 목을 베었다.

한 방이었다.

‘또 오네?’

이러한 적이 줄지어 오는 게 보였다.

‘이상하네?’

적들이 자신을 보았다. 그럼에도 동요가 없다. 마치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그저 묵묵히 오고 있을 뿐이다.

저벅.

이번엔 자쟈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 마리씩 제거해나갔다. 너무 손쉬웠다. 적이라는 표현이 과분할 만큼.

자쟈가 뒤따르고 있었기에 강기찬은 말없이 계속해서 적을 처치하면서 나아갔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전방에 거대한 탑이 있었다. 높이는 대략 10미터인.

더 다가가다가…….

번쩍!

탑이 빛나며 꼭대기에서 빛 레이저가 쏘아져 내렸다.

강기찬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피슉!

그 자리의 땅이 움푹 파였다.

그곳에서 올라오는 연기.

후끈! 열기를 느끼면서 깨달았다. 아주 위험한 공격이었다는 것을.

‘정통으로 맞았으면 큰일 났겠네.’

강기찬이 멈춰서서 탑을 올려다보았다.

더는 탑에서 빛 레이저가 쏘아지지는 않았다.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즉각 공격이 오나 보네.’

실험해보고자 굳이 발을 내밀지는 않았다.

탑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자쟈에게 물었다.

“뭐죠?”

“적군의 진입을 막는 포탑입니다. 강기찬님에게는 저 포탑을 부숴서 나아가거나 옆길로 돌아가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참고로 포탑 파괴하고 지나가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

“저기…….”

강기찬이 돌아서서 자쟈를 마주 보았다.

“이거… 참 익숙합니다.”

“예, 지구에 이와 같은 게임이 성행한다는 걸 들어봤습니다.”

“그것과 똑같습니까?”

“비슷합니다.”

“그 게임에선 모두가 공평하게 1레벨에서 시작하는데…….”

자쟈가 한 박자 쉬고 중얼거렸다.

“이것도 모두가 공평하게 1레벨에서 시작했습니다. 20년 전에.”

“그럼, 사실상 레전드스토리의 연장 선상이네요.”

“그런 셈이죠.”

단지 게임의 장르가 바뀌었을 뿐이다.

RPG에서 AOS로.

“승리 조건은?”

알 것 같지만, 확실하게 알아야 했다.

본인뿐만 아니라 지구의 운명이 걸린 거니.

“승리 조건은 적진 요새 함락. 그럼 별 하나를 획득하고, 패배하면 별 하나를 잃고. 그 별을 1,000개 먼저 쌓는 쪽이 최종 승리합니다. 그 순간 나머지 서버는 멸망 당하죠.”

랭킹 1위가 속한 서버만 생존한다.

즉, 랭킹 1위가 모은 별 개수가 중요했다.

별이 1,000개가 되기 전에 따라잡아야 하니까.

“지금 랭킹 1위는 몇 개의 별을 모았습니까?”

“999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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