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대격변 때 들렸던 알림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게임이 현실로 바뀔 때.
워낙 독특한 소리라서 아직도 기억했다.
10년 뒤인 지금 들을 줄이야.
혼자만 들은 게 아닌듯싶었다. 청용과 경석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저 모두에게 알림음이 들린 것이리라.
‘대체 뭐길래?’
솔직히 겁부터 났다.
저 알림음… 대격변 때 듣고 이번에 들었다.
딱 두 번…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나.
‘설마 두 번째 대격변은 아니겠지?’
기우이길 바라지만, ‘대격변’일 확률이 높았다.
‘대격변이면 안 되는데…….’
이미 첫 대격변 때 겪었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 정립되는 과정을.
그는 대격변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랬기에 ‘두 번째 대격변’을 바라지 않았다. 지금 상태로 쭉 유지되길 바랐다. 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었다.
이는 그뿐만 아니라 모든 최상위 랭커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리라.
그렇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격변이 아닐 수도 있었고, 또 그 대격변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으니까.
설사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들 이에 대처해야 하지 않겠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여러모로 빨리 보는 게 나을 거다.
알림음과 동시에 떠오른 문구.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선명하게 잘 보였다.
채팅창에 뜬 붉은 글씨, 월드 메시지였다.
[경축!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만렙 유저가 탄생했습니다.]
상단에 고정된 월드 메시지, 그 밑으로…
[의잉이] 미쳤다!
[akakan] 실화냐?!
[김춘재] 와… 상상도 못 했음.
[김희수] 최초의 만렙이 탄생한다면 당연히 미국의 앤드류일 줄 알았는데…….
[파도파도우울] 한국에서… 만렙이라니?
[진지한검] 국뽕이 차오른다아아앗!!!!
[순대국밥] 누굴까?
[싱그러움] 랭킹에는 안 뜨는데? 비공개 처리되어잇는듯.
[익숙한흐름] 대단하다 진심.
… 무수히 많은 채팅이 쏟아졌다.
방금 눈에 들어온 유저의 채팅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유저의 채팅 또한.
새로 올라온 채팅이 지난 채팅을 깔아뭉개는 형상.
채팅이 그야말로 파도처럼 쓸려 내려가는 중이었다.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채팅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기현은 천천히 그곳에서 시선을 뗐다.
약간 김이 빠진 얼굴을 한 채로.
긴장이 풀렸달까…….
‘내가 생각하던 그 대격변은 아니네…….’
약간 안도했다.
게임이 현실로 바뀌었던 수준은 아니라서.
그렇다고 좋을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변화는 변화다. 달가운 변화도 아니고.
랭킹이 한 단계 떨어지지 않았나.
‘랭킹이라…….’
랭킹하니 의아한 게 있었다.
‘이 유저가 만렙이 될 때까지 왜 몰랐었지?’
현실적으로 아무도 모르게 만렙을 찍을 수 없다.
1레벨씩 올려 만렙이 되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사냥터를 오고 가며 마주쳤을 거다. 그러면 유력한 후보가 떠올라야 했다.
미국,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땅덩어리가 좁은. 상위 랭커만 되어도 서로 잘 알 수밖에 없다. 무리에 어울리지 않고 교류가 없어도 티가 나기 마련.
레벨업을 위해선 경험치 잘 주는 사냥터를 다녀야 하고, 그런 데가 한국에 몇 군데 없으니까. 외국 원정 가도 소문은 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경험치 잘 안 주는 사냥터를 다니면서 최초로 만렙을 찍었을 리도 없고.
그 외의 가능성이라면 혼자만 아는 히든 사냥터에서 사냥했다는 건데…….
그럴 수는 있다.
단, 한두 군데 정도일 터. 저레벨부터 만렙찍을 때까지 레벨 별로 히든 사냥터만 골라 출입한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었다.
즉, 한국인 중에서 그럴 만한 인물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단연 청용이지만,
‘청용도 아니야.’
청용일 리가 없다.
월드 메시지는 실시간이다. 만렙 찍자마자 뜨는 것.
그 시점에 청용과 함께 있었다. 만렙 유저일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또 의아한 게 있었다.
세계 랭킹 1위 앤드류보다 빨리 만렙을 찍은 것.
‘어떻게 앤드류를 제친 거지?’
최상위 랭커는 솔로 사냥이 아니라‘파티 사냥만’ 한다. 경험치 오르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니까.
파티 사냥 위에 대마법사의 광역스킬이 있다. 광역스킬 한 방이, 수백 명이 파티 사냥하는 효율과 맞먹는다.
그런 앤드류도 못 찍은 만렙이다.
그걸‘솔로 사냥’으로 해냈다.
‘솔로 사냥으로 만렙 찍은 게 맞을 거야, 파티 사냥이면 이토록 베일에 싸여있지 않을 테니까.’
머릿수가 많아지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혼자서 사냥했으니까, 이제야 실체가 드러난 거지.
또한, 하나는 확실했다.
‘최소한 2차 전직을 했겠네.’
2차 전직을 이기려면 2차 전직이어야 했다.
최초의 만렙 유저가 2차 전직했다는 건 억측이 아닌 셈.
‘그러면 9,000레벨쯤에서 2차 전직을 하고 또 9,999레벨이 되었다는 거잖아?’
듣기로는 앤드류가 아직 3,000레벨을 넘기지 못했다고 들었다. 1차 전직 때와 필요경험치 양이 똑같지 않고 더 많아져서 성장이 더딘 것이다.
고로,
‘… 괴물이 따로 없네…….’
‘최초의 만렙 유저’는 폭풍 성장을 했을 것이다.
당연히 정석 레벨업 루트를 밟지 않았을 터.
자신만의 레벨업 루트를 밟았으리라.
‘도대체 누굴까?’
정체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이 문제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유저다.
높은 확률로 적이 될…….
그런 자가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고, 또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무섭네…….’
공포감을 조성하기에는 충분했다.
너무 골몰해서인지 머리가 아파 왔다.
은연중에 청용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응?’
왜일까?
청용은 전혀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 기분 탓이겠지, 그래, 반드시 기분 탓이어야 해.’
아니길 바라지만, 솔직히 불길했다. 청용뿐만 아니라 경석도 담담해서.
‘뭐야? 쟤네 왜 저래?’
한 사람이면 몰라도 두 사람이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럴 수가 없을 터. 왠지 마치 최초의 만렙 유저가 누군지 아는 것과 관련 있지 싶었다.
‘최초의 만렙 유저가 누군지 아는 건가? 아니지, 나도 모르는걸? 아니다, 청용은 알 수도 있으려나?’
청용이라면 자신보다 높은 정보력을 가졌을 게 틀림없다. 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염치 불고하고 물어보는 수밖에.
“처, 청용!”
청용이 현기현을 보았다.
“왜?”
“넌 최초의 만렙 유저가 누군지 아냐?”
“어.”
“뭐?”
“안다고.”
대강 짐작은 했지만,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니 도리어 현기현이 당황했다. 그래도 금세 다음 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어떻게?”
“짧게나마 지켜 봐왔으니까… 그분의 성장기를…….”
청용이 희미하게 웃었다.
* * *
한 시간 전.
강기찬은 흥분된 마음을 안고선 테스트서버에 들어왔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에 로그인했습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위치 : 히든 스테이지, 만렙 고블린의 왕국]
[남은 시간] 01시 59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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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545
[직업]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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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435
[직업] 암살자
이번엔 계정 두 개를 동시 로그인 한 채로 들어왔다.
명확한 용건이 있어서.
‘이제 슬슬 만렙을 찍어볼까?’
네크로맨서 계정이 만렙까지 남은 레벨은 454다.
업적을 하나만 더 달성하면 만렙이라고 보았다.
하도 업적을 많이 달성하다 보니‘감’이 생겼다. 이 정도면 업적으로 인정받겠구나, 저러면 레벨이 얼마만큼 오르겠구나.
그런 관점에서 찾아보았다.
한꺼번에 500레벨을 올려 만렙이 되게 해줄 업적을.
하나 떠올랐다.
‘만렙돌파 고블린 최초 처치. 그거면 되겠네.’
어떤 만렙돌파 고블린을 처치할지는 고민할 게 없었다. 널리고 널렸으니까.
‘언제 처치할지도 정했고.’
녀석들은 흡사 인간처럼 생활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자고.
밤에 잘 때 암살하면 되었다.
‘지금이지.’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맵핵으로 혼자 사는 가구를 찾았다.
‘여기로 하자.’
혼자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맵핵상으로는 이동도 전혀 없다.
자고 있을 확률이 컸다.
천공의 눈을 통해 자는 걸 확인했다.
“썬 부탁한다.”
- 써-어어어어언!
썬이 벽을 관통해 잠입한 뒤, 위치를 바꾸었다. 자는 놈에게 다가가서 급소를 가격!
푹!
일격이면 되었다.
‘끝.’
완벽한 암살이었다.
죽었는데 죽었는지도 모를.
띠링!
[만렙돌파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500 올랐습니다!]
[100,000,000코인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1,000을 얻었습니다.]
[현재 암살자 레벨 : 7,435 …▶ 7,935(+500) ]
[현재 네크로맨서 레벨 : 9,545 …▶ 9,999(+500)]
[현재 코인 : 10,540,458,700 …▶ 10,640,458,700(+100,000,000)]
[현재 프리 스탯 포인트 : 23,500 …▶ 24,500(+1,000) ]
… 싱겁게 만렙을 찍었다.
만렙이 된 기분?
의외로 별거 없었다.
당연히 될 줄 알았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진작 끝내놓았고…….
솔직히 허탈하긴 했다.
너무 쉬워서.
‘좀 더 어려우면 좋았…을 것까진 없고, 쉬우면 좋은 거지.’
[현재 단계에서 처치할 수 없는 만렙돌파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하극상’이 주어집니다.]
“오호…….”
《 하극상 》
[분류] 스킬
[등급] 이벤트
[설명] 현재 단계에서 처치할 수 없는‘만렙돌파 고블린’을 처치한 데에 대한 보상.
[효과] 레벨 격차를 무시하고 상위 레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조건] 없음.
[제약] 없음.
[쿨타임] 없음.
‘?’
저절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만큼 황당했다.
이때까지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
항상 좋은 것만 뜨지 않았나.
물론 이게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진작 떠주길 바랐는데…….’
시기를 놓쳤다.
한참.
이 스킬은 레벨 격차를 무시하고‘상위 레벨’ 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즉, 레벨 낮을 때 유용하다.
달리 말하면, 나보다 레벨 높은 유저가 많을 때.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걸 주냐?’
이제는 정점을 찍었다.
세계 랭킹 1위다.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유저밖에 없다.
‘도대체 이걸 어디다 쓰라는 거지?’
이 스킬은 필요 없다.
물론 만렙돌파 고블린이 있었다.
하나, 겨우 한 종…….
그러한‘종’이 더 있어도 실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라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문득 불길해졌다.
‘이거 복선은 아니겠지?’
아쉬운 감정이 든 보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것마저 유용한 거라면?
‘만렙이 만렙이 아니라면?’
소설에서 본 적 있다.
만렙인 줄 알았는데 더 높은 경지가 있다는걸.
그때였다.
띠링!
[GM자쟈] 자, 잠깐! 저기요! 저기!
뜻밖의 존재로부터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