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 *
다음 날(테스트서버에 접속한 지 10일 차)
강기찬은 주은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세 번째 빅이슈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이번 이벤트를 홍보해줄 이는 주은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인데? 근데 몬스터를 곁에 데리고 다닐 수 있어? 펫이야?”
오늘도 놀랄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놀란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 만렙돌파 고블린. 내 동업자야.”
“……!”
몬스터 이름을 말했으니까.
“만렙돌파 고블린?”
“어.”
“믿으라고?”
“보여줘.”
강기찬이 지시하자 만렙돌파 고블린이 무언가 했다. 직후, 그의 머리 위로 이름과 레벨이 떴다. 이로써 허언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주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 진짜네? …어디서 만난?”
“길 가다 만났어.”
“어제는 만렙 돌파의 광석을 길 가다 주웠다고 하질 않나… 이번에도?”
“…….”
“말을 말자… 됐고… 어떻게 데려온 거야?”
“사탕 주니까, 따라오더라고.”
“그게 다야?”
“뭐 그렇지.”
주은이 수상쩍어하는 기색이었다.
하나, 강기찬은 자세히 말해줄 수 없었다.
‘만렙 고블린 왕국 대장간’에서 만나서 한계돌파 사탕, 그리고 원하는 걸 복사해준 덕에 동업자가 되었다고 어떻게 말하나.
“너무 간단한데?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 사탕 주니까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거잖아?”
“왜 그러면 안 되나?”
“아니, 이게 상식적으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도 아닌데.”
“그렇긴 하지만…….”
주은은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다가 말았다.
강기찬은 제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인물이다.
괜히 들이댔다간 역풍 맞고 자존심에 상처받을지도 몰랐다.
“됐고, 너… 넌 처음 봤을 때도 안 놀랐지? 솔직히 말해봐.”
“어떻게 안 놀라냐. 난 회전목마 타고도 놀랐었는데.”
“지랄… 아니 농담할 상황이 아니야. 이건… 이건 이건!”
주은은 발도 구르고 펄쩍 뛰고 눈을 감았다, 뜨고 혼자서 난리가 났다. 그러다가 강기찬에게 와서 따지듯 침을 튀겨 외쳤다.
“이건 대박 사건이라고!”
“그래, 그래서 내가 어제 말했잖아, 오늘 최소한 30만 명 이상 찍어야 한다고.”
강기찬이 태연하게 말하자 주은은 그게 더 기가 찼다.
“3…, 30만 명?! 겨우?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하겠어?”
“누가 그러던데… 보통 이런 이벤트는 첫날 이후로 내림세라고. 가파르겠냐 완만하겠냐 그 차이지…….”
주은이 인상을 구겼다. 본인이 한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더 큰 이슈가 있으면 모른다고!”
“그게 이거지.”
“그래! 이제 어쩔 건데?”
“어쩌기는 돈 벌어야지.”
“정확히!”
“대본 써왔어. 너도 촬영하면서 들어.”
“와…….”
주은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만렙돌파 고블린이 직접‘만렙 돌파의 광석’을 홍보한다?
그 파급력은 장난이 아닐 터.
기꺼이 주은이 카메라를 들었다.
강기찬이 눈짓하자 만렙돌파 고블린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 … 이 인간들아! 나는 딸꾹! 만렙돌파 고블린!
- 지… 지금부터… 너희 인간들에게… 딸꾹! 아, 아으…
만렙돌파 고블린이 말을 더듬거렸다.
말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무슨 말 할지 고민되어서도 아니다.
카메라 옆의 대본을 읽기만 하면 되기에.
문제는…
“어떡해…….”
주은이 안타깝다는 듯 웅얼거렸다.
“저 친구 카메라 울렁증 있는 거 같은데?”
…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하면 입술을 떨고 딸꾹질을 해댄다는 것이다.
‘환장하겠네.’
강기찬은 어이가 없었다.
초면이라면 모를까, 대화도 해보고 성격도 알지 않나.
서슴없이 망치로 동족 대가리도 깨부쉈던 놈이다.
그때와 상반되게 지금은 쑥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놈과 똑같은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런 까닭에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카메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카메라 울렁증이 생기지?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는 건가?’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를 푸는 동안…….
참다못한 주은이 물었다.
“다른 만렙돌파 고블린은 없어?”
그녀도 어지간히 짜증이 났던 모양이었다.
이에 강기찬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귀찮아.”
“… 그 말뜻은 만렙돌파 고블린이 더 있다는 거야?”
“아니, 아니, 모르지. 더 있는지…….”
“…….”
주은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강기찬을 쏘아보았으나 더 말하지는 않았다.
강기찬은 생각했다.
‘다른 만렙돌파 고블린을 데려온다고 제대로 촬영에 임할 수 있을까? 해보기 전까지는 미지수지만…….’
설령 다른 만렙돌파 고블린이 카메라 울렁증이 없다고 한들, 걸리는 게 많았다.
데려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나 포섭하는데 드는 노력은? 여러모로 탐탁지 않다. 그럴 바에 저놈을 계속 쓰는 게 낫다. 말 좀 더듬고 떠는 게 하자는 아니니까.
“문제없어. 계속 진행해.”
손짓으로 강행시켰다.
만렙돌파 고블린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재개했다.
- 나… 나나나… 나를…….
“다시.”
- 나… 나를 잡으면… 만렙 돌파의 광석을 얻을…….
“다시! 말 더듬는 건 괜찮은데 알아들을 수는 있어야지!”
- 아, 알겠다. 나… 나를…….
“다시! 아, 안 되겠다. 쉬었다가 하자.”
만렙돌파 고블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본 주은이 가엾어했다.
‘이거 동물학대… 아니 몬스터학대 아니야?’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누굴 걱정하는 거지……? 쟤는 만렙을 넘어서 10,999레벨이잖아…….’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가 학대받는 걸 걱정하는 것에, 그만 자괴감이 들고 말았다.
* * *
결국, 만렙돌파 고블린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도 카메라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상관없지 싶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유저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겠는데?’
이번 이벤트도 전체적인 틀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만렙돌파 고블린을 잡아야 만렙 돌파의 광석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할 것이다.
그런데 잡아야 할 몬스터가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
아니,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지 모른다는 가정하에선 그저 소심하거나 모자란 몬스터로 비치기에 십상이다.
관점에 따라서 만만하게 볼 여지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보물 고블린이란 비교 대상이 있지 않던가. 보물 고블린은 영악하고 또 잡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반면, 만렙돌파 고블린의 이러한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상대적으로 더욱 잡기 쉬워 보일 터. 심리적으로 유저들을 유인하기 유리하다고 보았다.
주은이 촬영 영상을 훑어보며 미소지었다.
“이번에도 대박 나겠는데?”
“당연하지. 만렙돌파 고블린 & 만렙 돌파의 광석, 둘 다 최초 공개이니까.”
“장소는 리자드맨의 무덤 던전으로 할 거야?”
“당연히 아니지.”
기존의‘리자드맨의 무덤 던전’
보물 고블린 잡기 이벤트는 여기서 열리는 중이었다.
만렙돌파 고블린은 이곳에 투입하지 않을 요량이었다.
“거긴 오로지 보물 고블린 이벤트 용이야.”
“그러면?”
“따로 분리해야지. 다른 던전 좀 찾아줘.”
“왜?”
“입장료를 더 높게 책정할 거야.”
“얼마 정도?”
“보물 고블린 때(한 시간에 1억)보다는 훨씬 높게 책정해야지.”
“그래도 되겠어?”
비싸면 방문율이 줄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였다. 하나 주은과는 달리 강기찬은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되고 말고… 이건 아무리 비싸도 살 수밖에 없지.”
다른 것도 아니고 만렙을 뚫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최상위권의 랭커들 중에 이걸 마다할 사람이 있겠나.
물론, 당장 만렙 돌파의 광석을 쓸 수 있는 자는 없다.
만렙은커녕 그 근처도 못 간 자들뿐이었으니까.
만렙에 가장 근접한 강기찬도 9,544레벨이니까.
그 외의 유저들은 언제 쓸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게 없다.
본인 사용용으로도 그렇고, 타인 방해용으로 그렇다.
본인이 만렙이 되고 저게 없어서 만렙을 뚫지 못하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나.
똑같이, 누군가 만렙이 되어도 저게 없어서 만렙을 뚫지 못하면 얼마나 다행이겠나.
저들은 만렙 돌파의 광석이 세상에 몇 개나 있을지 모른다. 일단,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 기회가 마지막일 지도 모르니까.
고로, 사활을 걸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최상위권의 랭커들은 돈이 없는 게 아니야.”
“그러면?”
“만렙을 뚫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이제 기회가 왔어. 그깟 돈을 아끼겠어? 가지고 있기만 하면 압도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 건데?”
“…….”
“이번에는 보물 고블린 때처럼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보물 창고의 보물, 그리고 공간이동.
막말로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정확히는 그것들을 가져서 얻는 이점을 다른 거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만렙 돌파의 광석은 달랐다.
그것을 가져서 얻는 것을 다른 거로 대체할 수 없다.
만렙을 넘어설 수 있냐, 없냐.
그걸 어떻게 다른 거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지.”
권력, 세력, 부, 명예, 힘까지…….
지금까지 장장 10년간 고착화 되었던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이대로 뒷방늙은이로 전락할 게 아닌 다음에야 반드시 하나쯤은 갖춰두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인 것.
“…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질 거야.”
강기찬도 한때 랭킹 1위를 해봐서 안다.
랭킹에 든다는 집념은 광기로 표현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남들과는 다르게 홀로 앞설 수 있다?
“… 돈을 아낄 수가 없지.”
* * *
일본 도쿄 – 사무라이 길드 회장실.
딸깍- 딸깍.
사무라이 길드 마스터, 나가로.
그가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 동영상이 흘러나왔는데 무척 매력적인 내용이 있어서였다.
- 그러니까… 인간! 나를 잡으면… 만렙 돌파의 광석을… 얻을 수… 있다!
딸깍.
마우스를 누르자 화면이 정지했다.
“이거… 이거… 하늘이 나를 도우시는 거로구먼. 안 그런가, 현기현군?”
그의 옆에는 현무 길드 마스터 현기현이 서있었다.
“예, 아주 잘 됐군요.”
짝- 짝 짝 짝 짝…….
나가로가 연신 손뼉을 쳐댔다.
“마침, 자네의 부탁으로 조선에 가려 했는데, 간 김에 겸사겸사 만렙 돌파의 광석도 얻으면 되겠군. 역시 조선은 축복받은 땅이야. 예나 지금이나 먹을 게 많아… 흐흐흐!”
현기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된 것이… 저 영상에 나오는 여자는 제 동료입니다.”
그 말에 나가로가 놀란 척을 했다.
“오? 정말인가? 자네의 친구? 그러면 피를 흘리지 않고도 만렙 돌파의 광석을 얻을 수 있는 겐가?”
“예, 제가 달라고 하면 흔쾌히 내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자는…….”
“아! 하하하! 알았네, 알았어. 뭐, 내가 미치광이 살인자도 아니고 다 죽일 생각은 없어. 그 누구라고 했지?”
“청용, 백령, 맹인검객입니다.”
“그래, 그래. 자네를 죽이려고 했었다지?”
“예.”
“자넨 길잡이 노릇만 제대로 하게. 그 잡것들을 죽여줄 테니. 대신, 조선을 먹는 건 확실하게 도와줘야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현기현은 나가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주은과 대마법사의 증표를 구매하려 했던 날.
백령한테 쫓기지 않았던가.
그 배후에 청용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
복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의 힘으론 부족했다.
한국 랭킹 1위이지 않나.
국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랭킹 1위, 나가로.
그에게 복수를 약속받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을 터주기로 했다.
그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