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레벨 낮을 때도‘레벨 높은 유저’를 보면 겁이 안 났다.
하물며 지금은?
네크로맨서 레벨이 9,544다.
저들의 레벨은 모르지만, 상태창으로 알 수 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고 몰라도 되었다.
무조건 그보다 낮을 거니까.
이제‘공식 & 비공식’ 세계 랭킹 1위가 되지 않았나. 청용은 물론 앤드류와 맹인검객도 뛰어넘었다.
물론 랭킹표엔 안 보였다. 비공개라서.
그렇게 상념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느리네…….’
적들이 다가오는 속도가 불만족스러웠다.
‘이제 나도 가줘야겠네.’
강기찬은 적들을 마주 보며 뛰어주었다.
왼손으론 프리 스탯 포인트를 조작하며-
[프리 스탯 포인트 23,500을 민첩에 분배했습니다.]
[민첩] 16,544 …▶ 40,044
[여의주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모든 스탯이 100% 상승합니다]
[민첩] 40,044 …▶ 80,088
슉.
강기찬이 고속 이동했다.
유저들이 그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미, 미미미친……!”
“아니,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또한, 의구심을 품었다.
“저거 스킬… 아닌 거 같은데?”
“스킬이 아니라고?”
“무슨 소립니까?”
“저렇게 빠른데 스킬이지!”
“스킬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빠르면 스킬이어야 했다.
한데, 누가 봐도 스킬이 아니다.
근거는 충분했다.
“끊김 현상이 없습니다.”
“… 그러네요.”
“놓친 건가?”
“아뇨, 똑똑히 봤어요. 확실히 없었어요.”
“이펙트도 없잖아요?”
“맞네? 보통 이동속도 올려주는 스킬은 발을 감싸는 빛이 터지거나 흘러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어.”
스킬은‘이펙트 효과’와‘끊김 현상’이 나타난다.
‘끊김 현상’은 찰나의 순간이라 놓쳤다고 쳐도 ‘이펙트 효과’는 놓칠 수가 없었다.
이 많은 사람의 눈을 속였을 리가?
스킬을 안 썼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즉, 순수하게 민첩 스탯으로 달리는 거란 의미.
거기까지 생각하니 절로 드는 생각.
“그게 가능한가?”
올 민첩에 민첩 특화 장비라 해도 저만한 속도를 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외의 가능성은 없었다.
…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괴물이잖아…….”
“현실에 괴물이 있는데 유저라고 괴물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저건…….”
“대체… 스탯이 어떻게 되어 있길래?”
상태창을 엿보고 싶기까지 했다.
한편, 강기찬은 금세 적들의 코앞에 다다랐고.
따닥!
왼손가락을 움직였다.
[프리 스탯 포인트 23,500을 힘에 분배했습니다.]
[힘] 5 …▶ 23,505
[여의주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모든 스탯이 100% 상승합니다]
[힘] 23,505 …▶ 47,010
모든 프리 스탯 포인트를 힘에 분배했다.
초근접한 상황이라 민첩이 필요 없고 다른 것도 딱히…….
“이야아아앗!”
적들이 먼저 공격을 시도해왔다.
강기찬은 피하거나 막지 않았다.
맞수를 놓아주었다.
그의 힘팡이와 적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야말로 힘과 힘의 대결…….
그 결과는,
뻑-!
강기찬의 승리였다.
힘팡이가 검을 부러뜨렸다.
여세를 몰아 옆구리를 강타까지!
빠-지직!
갈비뼈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던전이라 실제로 부러진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일시적으로 상체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강기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경직된 상체를 놔두고 오히려 하체를 노렸다.
적의 다리를 발로 걸어서 넘어뜨린 뒤-
푹!
드러누운 상체를 짓밟은 채 힘팡이로 내리쳤다.
퐈-아앙!
치명타가 떴다.
경직된 부위를 타격할 시, 50% 확률로 치명타가 떴다.
경직시켜놓고 다른 부위 쳤다가 경직된 부위를 치면 100% 확률로 치명타가 뜨고.
그래서 옆구리치고 굳이 다리 걸고 나서 옆구리를 친 것이다.
이는 강기찬만 알고 있는 콤보였다.
일반적으로 경직된 부위를 타격하지 굳이 다른 부위를 타격하지 않기에.
타탓.
짧게 발 구름을 두 번 하며 뛰어올랐다.
이럴 경우, 평소보다 2배 높이 뛸 수 있다.
폴짝-
나비처럼 가볍게 뛰어올랐고…….
한 놈의 어깨를 밟고 또 한 놈의 어깨도 밟고 지나갔다.
그 수가 늘어날수록 이를 구경하던 유저들이 놀라 혀를 내둘렀다.
“아니 저건!”
“속도가 점점 빨라지네?”
“몰랐습니까? 유저를 밟을수록 이속 빨라져요.”
밟는 상대의 수가 늘 때마다 이동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다.
널리 알려진 사실.
이 기술을 쓰려는 자들이 많았다.
하나, 아무나 못 한다.
단단히 고정된 징검다리를 밟는 게 아니다.
움직이고 높낮이가 있는 사람을 밟는 거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점점 빨라지기까지.
보통의 균형감각으론 버겁다.
채, 세 번째 스텝을 밟지 못할 거다.
두 번째 스텝을 밟으며 추락하고 마니까.
강기찬은 달랐다.
물론 그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뼈 깎는 노력과 끈기, 그렇게 단련된 감각으로 극복했을 뿐.
한 달 만에 균형감각과 순발력이 무르익었고.
기어이‘연속으로 밟은 유저 수’가 50명을 넘겼다.
더 나아가 대회에서 100명 밟기 기록까지 세웠다.
그로부터 15년이 넘게 지났다.
솔직히 어색했다.
하나, 저들을 교보재 삼아 그때 그 감각을 되살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비교적 천천히(?) 다섯 명을 연속으로 밟으며 지나치는 중이었다.
밟으며 지나칠 때마다-
“으어억!”
적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파서가 아니다.
생명력이 팍 떨어져서 놀란 거다.
그게 순전히 어깨를 짓누른 결과인 걸 알고는 더더욱!
하긴, 힘만 무려 47,010이다.
그런 까닭에, 순수한 다릿심만으로도-
빠지지지직!
어깨를 박살 내기엔 충분했다.
유저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짓밟혀 나자빠지는 유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괴력을 묻어버릴 만큼 안정감 있는 걸음걸이와 이동속도 때문이었다.
“그냥 이동속도만 빠른 게 아니잖아!”
“머리하고 어깨를 밟고 지나가는 거 맞아?”
“거의 평지에서 달리는 급인데?”
“너무 안정적이야!”
“또 빨라!”
“그리고 밟히는 족족 죽어 나가는데?”
“한 발 한 발에 실리는 힘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셋 중에 하나만 되어도 대단한 건데… 셋이 다 되다니?”
“저게 가능했었던 거야? 난 한 사람 머리 밟고 나서 바로 떨어졌는데?”
“나는 두 명, 그 이상은 안 되더라고!”
“저? 저거… 대체 몇 명이나 밟는 데 성공한 거야?”
“제가 세어봤는데 어림잡아 80명을 넘겼어요!”
“예? 80명이요?”
“80명은…….”
누군가 미간을 좁히며 이름을 언급했다.
“강기찬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기찬일 리가…….”
“하긴, 강기찬은 못 걷잖아요.”
“근데 활동하던 시기에 대단하긴 했어.”
“그렇죠. 지금도 이렇게 뭐 잘한다고 하면 그 사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니.”
“절대로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죠.”
“그 사람이 현역이었으면 대한민국 위상도 지금만큼 떨어지지는 않았겠죠.”
“전 대격변 이후로 일본이나 중국, 미국을 뛰어넘을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다가 강기찬이 못 걷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정태수, 그 매국노 새끼가 다 망쳤…….”
이야기가 딴 길로 새려던 그때였다.
“!”
“어어어!”
강기찬이 몇 명을 밟고 지나가는지를 세던 유저가 고함을 질렀다. 그 목소리에 딴생각과 대화를 나누던 이들의 흐름이 끊겼다. 일제히 고개가 돌아갔다.
“왜요?”
“무슨 일이죠?”
“저 사람이 가… 강기찬 기록 깨겠는데?”
“몇 명이나 밟았는데요?”
“97명… 98, 99, 100… 101, 102……!”
“와…….”
강기찬이 타 유저를 밟을 때마다 이동속도가 더 빨라졌기에 숫자를 세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다가 110명을 넘어갈 땐 결국 놓치고 말았다.
잔상만 남을 정도로 빨라졌기에.
“미친 거 아닌가?”
“이러면 강기찬 기록 깨진 거죠?”
“대체 몇 년 만이야…….”
“15, 아니 16년.”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그러면요?”
“저런 괴물을 건드렸다는 거죠. 110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그 대가는 죽음이고…….”
한편,
‘아, 실수다.’
강기찬은 아차 싶었다.
예전의 감각이 돌아왔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졌고 되레 무뎌지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발끝에 주던 힘 조절에 실패했다.
조금 더 힘을 주었던 탓에-
두둑- 두둗두두두두두둗두!
적을 짓밟아 땅속에 처박아버렸다.
두더지 잡기의 두더지처럼 쏙 들어가 버렸다.
그 여파로 움푹 파헤쳐진 지면 위로-
후-아아아아--------- ---- -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일대의 시야가 가려진 상황.
강기찬은 지면을 박차고 펄쩍 뛰어올라 공중부양을 더 했다.
하늘 높이 떠오르자 시야가 확 트였다.
그러자 아래로 시체들이 보였다.
한 번씩 밟아서 죽인 유저들이었다.
차츰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중이었다.
이를 보고선 감상평을 남겼다.
‘하… 기분 좋네.’
무려 110명을 짓밟는 동안 아무도 자신에게 손 하나 내뻗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종횡무진이었다.
며칠 전, 다리를 고치고 야밤의 도시를 질주하던 그때처럼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과거, 랭킹 1위로 세계를 호령했던 그때 그 영광을 재현하는 느낌이랄까.
이내 흙먼지가 걷어졌고.
하강하면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적들이 많았다.
‘내가 너무 호구로 보인 건가? 나름대로 나하고의 격차를 가늠할 만큼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여겼는데…….’
이쯤 되면 도망갈 줄 알았건만, 자리를 지키는 게 용감했다. 그만큼 군중심리나 대중의 시선, 혹은 보물 고블린의 보따리가 탐이 난다는 거겠지.
무엇보다 그들에겐 기회이기도 했다.
“공중에 있는 지금이 적기다!”
“지, 지금이다! 쏴!”
“쏘자!”
공중에 떠있는 동안, 유연하게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무래도 지상보단 움직임에 제약이 많으니까.
공중요격을 하면 적중률이 높을 터.
슈-우우웅!
슉, 슈슈슈슉.
사-아아악!
각종 마법과 화살이 날아오는 중이었다.
오색찬란한 빛줄기가 하늘로 향했다.
펑- 퍼어어엉!
강기찬은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고 맞았다.
‘맞아보고 싶었으니까.’
Miss! Miss! Miss! Miss! Miss! Miss…….
단 1의 데미지도 받지 않았다.
레벨 격차로 인해서.
‘역으로 내가 이 특혜를 누리게 되다니…….’
언제나 상대방이 레벨이 높지 않았나.
귀찮게 급소만 노려야 했다.
아니면 생명력을 5% 이하로 떨어뜨리던가.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뒤집혔다.
전부 다 자신보다 아래다.
아무리 맞아도 괜찮다.
그는 그 사실이 달가웠지만 상대는?
다들 당혹스러워했다.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잖아?”
“레, 레벨이 몇이기에?”
“나 9,200레벨인데?”
“그럼 최소 9,201레벨은 넘는다는 거잖아?”
“그렇지, 공격이 안 통하려면…….”
“저 유저가 청용이나 백령 급은 된다는 건가?”
“어쩌면 청용일지도?”
“…….”
잠시간의 침묵.
저마다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는 뒤늦게나마 정신 차렸다.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슬그머니 뒤로 발을 뺐다.
그러더니,
다다, 다다다다!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도주하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어… 잠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네!’
강기찬은 기뻤다.
또 다른 돈벌이 수단이 생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