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 * *
테스트서버에서 로그아웃하자마자, 강기찬은 출두를 썼다.
슉- -- 보물 고블린 앞으로 이동했고.
보물 고블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몸을 빼려 했다.
그때,
확!
강기찬이 보물 고블린의 손목을 잡아버렸다.
‘이게 되네.’
얼떨떨했다.
몇 초 전엔 실패했었으니까.
심지어 그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이번엔 보물 고블린이 대비했었으니까. 그랬음에도 잡히고 만 것은, 딱 하나의 변화 때문이었다.
민첩이 52,050가 된 것.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돈의 위력이었다.
‘하긴, 무려 1조 원을 투자한 건데 이 정도 체감은 나야지, 돈 들인 티가 나는 거지.’
분명 좀 전과 같은 동작을 취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등히 높아진 민첩 스탯 덕분에 결과가 달라졌다. 제삼자가 볼 땐 손이 안 보일 지경.
다만, 그 손으로 무엇을 잡았다, 라는 그 결과만큼은 다들 놓치지 않고 보았다.
던전 내부의 유저들도.
주은의 우투브를 통해 시청자들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몇 초 늦게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 어어어어!”
- 어?
- ??????????????????????
처음엔 황당.
이어지는 당황, 놀라움, 경악까지…….
각양각색의 감정이 묻어나오는 중이었다.
특히 잡힌 보물 고블린이 주목할 만했다.
- …….
붙잡힌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스스로 정지한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자신이 붙잡혔다는 사실이.
인간의 손에 붙들린 손목을 내려다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놀란 건‘잡히지 않은’ 보물 고블린이었다.
전쟁터에서 죽어 나가는 전우를 보는 기분일까?
자신도 저리될지 모른다는 데에서 오는 공포를 느꼈다. 때마침 강기찬이 자신을 보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강기찬은 굳이 그쪽에 더 눈길을 주진 않았다.
보상에 신경 쓰기 바빠서.
띠링!
[보물 고블린을 최초로 잡았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500 올랐습니다!]
[100억 코인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10,000을 얻었습니다.]
[현재 암살자 레벨 : 6,910 …▶ 7,410(+500)]
[현재 네크로맨서 레벨 : 9,044 …▶ 9,544(+500)]
[현재 코인 : 510,458,700 …▶ 10,510,458,700 (+10,000,000,000)]
[현재 프리 스탯 포인트 : 13,500 …▶ 23,500(+10,000)]
예상대로 최초 업적이었다.
그로 인한 레벨업이 가장 기뻤다.
9,544레벨.
만렙이 다가왔다는 게 실감 났다.
‘좀 허무하네…….’
레벨 1부터 999까지 10년 걸렸다.
레벨 999부터 9,544까지 올리는 데엔 일주일?
짧다.
심하게 짧다.
더군다나 레벨 1부터 레벨 999까지 고생이 더 컸다.
비교하니 더 허무해졌다.
하나, 불쾌하지 않았다.
되레,
‘이렇게 기분 좋은 허무함을 또 겪을 수 있을까?’
입술이 씰룩이는 걸 주체를 못 하겠다.
‘그동안 고생한 데에 대한 보상인 거야…….’
또한, 테스트서버가 얼마나 언밸런스한 지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말이다.
물론, 다른 유저가 999레벨에서 테스트서버를 이용했다면 일주일에 1,500레벨 절대 못 찍을 거다.
그의 비정상적인 행보가 있었기에 단기간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 근데 진짜 코앞이네. 만렙까지 456레벨 남은 거니까, 최초 업적 하나만 더 달성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느 순간부터 사냥으로 레벨업 하는 게 아니라 업적 달성으로 레벨업을 하는 게 주가 되어버렸다.
업적 달성이 더 많은 레벨업을 해주었기에.
상념을 뒤로하고 나머지 보상을 살펴보았다.
‘레벨이 500밖에 안 오른 대신, 코인은 역대 가장 많은 액수인 100억 코인이네. 또 프리 스탯 포인트가 10,000… 미쳤다.’
마지막으로,
[절대 잡을 수 없는 보물 고블린을 잡았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공간이동’이 주어집니다.]
시스템 메시지창을 보니 머리가 띵해졌다.
‘뭐야, 잡지 못할 걸 만든 거였어?’
개발자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만렙 고블린 왕’을 처치했을 땐‘현재 단계에서 잡을 수 없는’이었다.
이번엔‘절대 잡을 수 없는’…….
말 그대로 불가능인 거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이 되어도…….
애당초 보물 고블린은 잡을 수 있는 게 아닌 것.
‘어느 정도 직감은 했었지만…….’
물론, 전혀 몰랐던 사실을 이제 막 깨우친 건 아니었다. 그도 보물 고블린을 지켜보고 또 잡으려 시도를 해보면서 체감했다. 그렇다 한들 이렇게 공식적으로 확인을 받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잡았으니 되었지.’
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보상이나 확인했다.
《 공간이동 》
[분류] 스킬
[등급] 이벤트
[설명] 절대 잡을 수 없는 보물 고블린을 잡은 데에 대한 보상.
[효과] 원하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조건] 가본 곳만 가능.
[제약] 없음.
[쿨타임] 24시간
업적의 급이 높아서일까?
확실히 보상은 매력적이었다. 유저가 아니라 일반인도 탐낼 만큼.
다음으로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가본 곳만 가능한 공간이동이라…….’
못 가본 곳도 공간 이동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본 곳만 공간 이동된다는 게 이 스킬의 가치를 떨어뜨리진 않았다.
‘이것도 감지덕지하지.’
강기찬이 미소지으며 보물 보따리를 빼앗았다.
* * *
‘잡히지 않은’ 보물 고블린은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동족이 붙잡혔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도 잡힐 터.
공간이동을 쓰고픈 충동이 덮쳐왔다.
하지만, 이내 단념했다.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
경험해보지 않았나. 반복된‘공간이동 도망 실패’를.
가봤자 다시 끌려오기밖에 더하겠는가. 차라리 지금 잡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불명예스러운 것. 보물 빼앗기는 것.
이 두 가지를 잃지만, ‘그놈’에게 나중에 잡혀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판단을 내리려던 그때였다.
타닷, 타다닷.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되레 돌아서는 게 아닌가?
끝까지 경계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저러다가 휙 돌아서서 급발진할 수도 있기에.
하나, 몇 초가 지나도 수상한 낌새는 없었다. 정확하게 출구 방향으로 가는 중이었다.
- 고… 오?
희한한 일이었다.
왜 자신을 잡으러 오지 않는 걸까? 자신까지 잡으면 두 배로 이득인 거야 자명한데. 동족을 손쉽게 잡은 걸 보면 자신을 잡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저 인간이 자신을 잡지 않는 것은 호재였으나, 원인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 * *
‘이쯤하고 물러서야지.’
강기찬은 일부러 보물 고블린을 한 마리만 잡았다.
실로 전략적인 계산이었다.
한 마리만 잡으면 방문객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지만, 두 마리 잡으면 장사 접겠다는 거니까.
출구로 향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공간이동 쓰는 건 무리겠지?’
공간이동을 얻은 김에 바로 써보고 싶었다.
단 아껴두면 좋았다.
쿨타임이 24시간이다. 함부로 썼다가 정작 필요할 때에 못 쓸 수도 있다.
결심이 섰다.
‘귀환으로 빠지자.’
그때였다.
“저 저 자식을 잡아!”
“보따리를 뺏어야 해!”
너무 노골적인 대사를 치며 뛰어오는 이들이 보였다.
자신을 잡아서 보따리를 뺏겠다 이거다.
‘바보들인가?’
강기찬은 저들이 무섭기는커녕 아둔해 보였다.
‘나를 어떻게 잡겠다는 거지?’
잠깐만 따져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은 보물 고블린을 잡았다.
즉, 보물 고블린보다 빠르다는 얘기 아닌가.
‘그런 보물 고블린조차 못 잡는 주제에? 나를 잡겠다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속도나 전투력이나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저들은 둘 다 빠지고.
‘나름 레벨이 높아 보이는데 이래 사리 분별을 못 해서야 오래 살겠나?’
아무래도 참교육을 시켜줘야 하지 싶었다.
‘마침 잘됐네.’
그러고 보니 저들은 좋은 교보재였다.
단기간에 레벨이 너무 많이 올라서 익숙해지려면 감을 익힐 기간이 필수였다.
이참에 급성장한 걸 체감해볼 겸, 겸사겸사 연습해볼 것도 있었다.
‘프리 스탯 포인트를 자유자재로 올리고 내리는 연습을 해야지.’
프리 스탯 포인트만 무려 23,500이다.
이것만 해도 어느 유저보다 압도적인 수치인데, 다른 스탯으로 옮길 수 있기까지 하니…….
‘전투 중에 능수능란하게 스탯을 옮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힘이 필요한 상황에 힘을, 민첩이 필요한 상황에 민첩을 쓸 수 있다면 극상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을 터.
‘해보자.’
실전에서 쓰려면 지금부터 연습을 시작해야 했다.
뿅.
좌측 상단에 프리 스탯 포인트 창을 띄웠다.
왼손으로 프리 스탯 포인트를 조정했다.
오히려 이럴 땐 뇌내 조작보다는 수동 조작이 오류가 없는 편이었다.
[프리 스탯 포인트 23,500을 힘에 분배했습니다.]
[힘] 5 …▶ 23,505
[여의주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모든 스탯이 100% 상승합니다]
[힘] 23,505 …▶ 47,010
슉.
힘팡이를 꺼내서 힘껏 던졌다.
힘팡이가 부메랑처럼 돌며 허공을 가로지르고선-
퍽!
선두에 선 유저의 복부에 처박혔다.
뒤따라오던 유저들이 움찔했다.
전방의 시체가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걸 보면서.
“마, 망치 한 방에 즉사라니?”
“뭐 저렇게 강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다 사회에서 강자들이었다.
특히 강기찬을 노리고 뛰어가던 이들은 레벨이 8천은 넘었다. 방금 죽은 유저도 마찬가지.
그런 유저를 한 방에 즉사시켰다?
그것도 저 먼 거리에서 무언가를 던져서?
힘만 강한 게 아니라 명중률도 상당했다.
상대의 수준을 높게 칠 수밖에.
이쯤 되니…….
“…….”
서로 눈치 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소득 없고 시간만 축내고 있는 기분인데 죽기까지 한다면 엄청난 손해일 테니.
하나, 몇몇 이들은 돌진을 재개했다.
자신은 저 유저와 다를 거라는 확신으로.
강기찬은 감사했다.
‘겁먹고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주변 이목을 살피는 것도 그렇고, 꼴에 자존심은 있는지, 어깨도 쫙 폈다. 결정적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강기찬은 저들이 오는 걸 기다리며 방금 공격을 회상했다.
유저가 복부에 힘팡이를 맞아 죽지 않았나.
이게 의미하는 바는 컸다.
적을 상대할 때면 항상 급소만 노렸었다. 레벨 격차로 다른 부위는 데미지를 줄 수가 없어서.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급소만 노리지 않아도 되었다. 방금 복부를 타격해 쓰러뜨린 것처럼,
‘드디어 나도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게 되었네.’
어디를 타격해도 데미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공격 범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니 해방감이 찾아왔다.
어깨를 짓누르던 족쇄를 하나 치운 느낌이랄까.
‘이 맛에 레벨 올리는 거지.’
레벨이 확 뛰어오른 게 실감이 났다.
더 실감이 나려면 직접 맞붙는 게 좋았다.
적들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