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 * *
지구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
그녀가 부장이 가져온 보고서 첫 장을 읽으며 물었다.
“고블린 왕국 진행 상황은?”
“내일 중으로 마무리 짓지 싶습니다.”
“그래?”
“음, 팀장님, 지금 묻는 게 좀 그렇지만…….”
부장이 망설이는 것 같아, 자쟈가 재촉했다.
“아 왜! 말해 봐! 뭔데?”
“… 아직 만렙 달성한 유저가 없지 않습니까?”
“아, 만렙 달성한 유저도 없는데 이 프로젝트를 해서 불만이야? 그럼 진작 말하지 왜 이제와서 지롤이야?”
“아, 아뇨! 불만은 아닙니다.”
“내가 말 안 했던가? 다른 서버들은 만렙 도달한 유저가 많아졌다고. 패치는 동시에 진행해야 하잖아. 우리쪽에 만렙 유저 없다고 패치 늦춰달라고 생떼라도 부리라는 거야 뭐야?”
“아,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그날 결근을 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못 들었나 봐요…….”
“그래? 몸은 괜찮고?”
“예…….”
“아! 그 퀘스트 관련한 내용이 몇 페이지에 있지?”
불현듯 자쟈가 물었고 부장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23페이지입니다.”
“아, 아아 그래, 여기 있네.”
《 만렙 고블린 왕 처치 》
[등급] 에픽
[난이도] 헬
[목표] 만렙 고블린 왕 처치
[제한 시간] 24시간
[보상] * * *
* 승낙할 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자쟈가 보상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상… 수정하자.”
“예?”
“각 서버 담당자들이 모여 회의를 나눴는데 심사숙고 끝에 보상을 바꾸기로 했대.”
“왜 그렇죠?”
“보상이 너무 세다고, 안 그래? …이라니? 너무 밸런스 붕괴잖아.”
“네, 그렇습니다.”
“이거 네가 아이디어 내서 상부에까지 올라간 거였지?”
“예,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20주년 이벤트에 충분히 내 볼 수 있지, 다만, 이걸 보상으로 받은 유저가 악한 마음을 품으면 전세계의 유저들을 상대로 양민학살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라…….”
“하긴… 세계랭킹 1위도 처참하게 짓밟아버릴 수 있겠죠?”
“당연하지!”
부장이 물었다.
“보상, 지금 수정하고 올까요?”
“음, 지금 퇴근 시간 지났잖아? 내일 해.”
“하지만, 만약 누가 이 퀘스트를 깨면 보상으로 …을 받잖습니까…….”
“야! 너 예민한 거 알긴 아는데 그것도 심하면 병이야 인마! 출시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퀘스트를 깨?”
“하지만, 저번에 강기찬이 허수아비의 논밭 리뉴얼 사전 점검 중일 때 무단침입하지 않…….”
“그거랑은 경우가 다르지. 이건 완전히 별개의 공간에 분리된 거야. 공개도 안 해서 존재 자체를 모를 텐데 어떻게 알고 와서 퀘스트까지 깬다는 거야? 망상이 심한데?”
“아…….”
“오늘 야근해서 피로한 거 같은데, 급할 거 없어. 내일 출근하고 그때 보상 수정해. 그래도 절.대. 안 늦으니까.”
지구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가 시말서를 작성하기까지 9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 * *
< 히든 스테이지, 만렙 고블린의 왕국(지구 서버) >
강기찬은 만렙돌파 고블린의‘친절한’ 안내를 받아 궁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면서 대마법사 계정은 암살자 계정으로 계정을 전환했다.
다음 절차는 침입인데, 그거야 어렵지 않았다.
“썬.”
- 써어언!
“가장 큰 침대가 있는 방을 찾아.”
궁궐에서 가장 큰 침대를 쓰는 이.
당연히 만렙 고블린 왕일 거다.
“그런 다음 나한테 신호보내, 쉽지?”
- 썬!
“너무 쉬워서 미치겠다고? 하지만, 어려울 수는 없어.”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만렙돌파 고블린은 정신이 아득히 멀어질 것 같은 걸 간신히 붙잡았다.
- 썬!
썬이 관통으로 벽을 뚫고 들어갔다.
강기찬은 썬이 금방 신호를 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궁궐이 아무리 넓어도 문제없다.
썬이라면 순식간에 다 훑을 수 있을 것이다.
썬의 이동속도는 생명체 중 상위권 아니던가.
비록 유아기이긴 하나 종족 자체가 빠르니.
- 썬썬!
잠시 후, 신호가 왔다.
강기찬은 썬과 위치 바꾸기를 썼다.
썬이 있던 자리에 소환되었고 확신했다.
‘왕이다!’
왕의 처소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 것일 터.
있는 건, 침대에서 곤히 자는 만렙 고블린 왕뿐.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만렙 고블린 왕의 표정.
세상 태평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평생을 안전하게 지냈으니 근심이랄 것도 없겠지.
저벅, 저벅, 저벅…….
강기찬은 만렙 고블린 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단검을 양손으로 잡고선 역수로 들어 올리면서.
그리고 필살기를 발동시켰다.
생명력의 99%를 소진하여 일격을 불어넣는 스킬!
[사신의 동귀어진(同歸於盡)]
단검을, 급소인 만렙 고블린 왕의 목을 향해 내리찍었다.
쿠-우욱!
[만렙 고블린 왕을 처치했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만렙 고블린 왕을 처치하는 건 너무 쉬웠다.
야밤의 기습이라 어떤 저항도 없었다.
‘좋네…….’
직업이 암살자였지만, 이 정도로 은밀하고 깔끔하게 끝내긴 처음이었다.
마치 하나의 드라마 같았다.
만렙 고블린 왕도 암살당하는 배역인 것처럼, 그렇게 싱겁게 끝이나 버렸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해서 지금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한 왕의 처소였다.
‘자, 돌아가 볼까.’
강기찬이‘위치 바꾸기’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썬과 위치가 바뀌었다.
궁궐 바깥으로 나온 것.
직후, 썬을‘펫소환’을 통해 불러들였다.
이로써 퇴장도 깔끔했다.
왕 시해 사건.
신하와 백성들은 내일 아침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될 터.
강기찬이 떠난 뒤에 이 세계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드디어 즐거운 시간이다!’
이제 이곳에서 마지막 할 일이 남았다.
사실, 밖에 나가서 해도 되지만 어쨌든.
보상을 확인했다.
[만렙 고블린 왕을 처치했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100 올랐습니다!]
[10,000,000코인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100을 얻었습니다.]
[현재 암살자 레벨 : 6,810 …▶ 6,910(+100) ]
[현재 네크로맨서 레벨 : 8,944 …▶ 9,044(+100) ]
[현재 코인 : 500,458,700 …▶ 510,458,700 (+10,000,000)]
[현재 프리 스탯 포인트 : 3,400 …▶ 3,500(+100) ]
만렙 고블린 왕, 처치?
‘당연히’ 최초일 줄 알았다.
그로 인해 보상받을 줄도 알았고.
그런데 보상 퀄리티가 기대 이하였다.
이전에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지구 서버)에 최초 방문.
히든 스테이지, 만렙 고블린의 왕국(지구 서버)에 최초 방문.
이 두 가지로 레벨이 각각 500, 1,000이 올라서일까, 100 레벨만 오른 게, 낮게 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 코인이나 프리 스탯 포인트도 그랬고.
그렇지만,
‘쏠쏠하구먼…….’
너그러울 수 있었다.
생고생하며 만렙 고블린 왕을 잡았다면 모를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수월하게 끝냈지 않나.
그런 까닭에, 보다 이성적으로 난이도를 측정할 수도 있었고.
‘같은 최초라 해도 급이 다르긴 하지, 만렙 고블린의 왕국에 오기가 어렵지, 이건 그것보다는 쉬우니까.’
저난도라 표현해도 될 만했다. 물론 그의 기준이지만.
보상도 그의 기준에서 별로였지 남들이면 깜짝 놀라지 않겠나.
‘내가 너무 좋은 보상만 받다 보니까 심리적인 만족 기준치가 많이 높아지긴 했지.’
또 보상이 남아 있었다.
방금 보상이 다가 아니란 말씀.
그렇기에 한결 더 너그러울 수 있던 것.
‘어디 볼까나…….’
[현재 단계에서 처치할 수 없는 만렙 고블린 왕을 처치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스킬 쿨타임 제로’가 주어집니다.]
“오호…….”
《 스킬 쿨타임 제로 》
[분류] 스킬
[등급] 이벤트
[설명] 현재 단계에서 처치할 수 없는‘만렙 고블린 왕’을 처치한 데에 대한 보상.
[효과] 원하는 스킬 하나의 쿨타임을 제로로 만든다.
[조건] 없음.
[제약] 없음.
[쿨타임]
- 하루 한 번.
- 자정을 기준으로 초기화
“와 씨…….”
‘아이템 복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그런데, 그만한 사기 스킬을 또 얻고야 말았다.
‘스킬 쿨타임 제로라니…….’
확장성 또한 우수했다.
영구적으로 하나의 스킬만 쿨타임 제로라고 해도 아무런 불만을 가질 수 없다.
한데,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스킬에 쿨타임 제로를 적용할 수 있지 싶었다. 매일 한 번의 스킬을 쿨타임 제로로 만들 수 있다고 했으니까.
또한, 중복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없으니.
오늘 쿨타임 제로한 스킬이 마음에 들었다면 내일 또 똑같은 스킬을 쿨타임 제로로 만들면 된다는 얘기.
바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띠링!
[스킬,‘스킬 쿨타임 제로’를 사용합니다.]
[어느 스킬을 쿨타임 제로로 만드시겠습니까?]
“스킬 쿨타임 제로!”
띠링!
[스킬,‘스킬 쿨타임 제로’는 쿨타임 제로로 만들 수 없습니다.]
강기찬은 가벼이 웃었다.
‘안 될 줄 알았지만, 진짜 안 되는 거구나.’
‘스킬 쿨타임 제로’를 가장 완벽하게 쓰는 건, 단연, 이 스킬 자체를‘쿨타임 제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모든 스킬을 쿨타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예상대로 그런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어떤 스킬을 쿨타임 제로로 할 지는 상황이 닥치고 나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일단 보류…….’
앞날은 예측할 수 없으니 난사를 해야 할 스킬을 쓸 때가 오면 그때‘스킬 쿨타임 제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라고 생각했으나 시험삼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자정까지 2시간도 채 안 남았으니가.’
자정을 기준으로 초기화되지 않나.
지금 써도 2시간 뒤에 재등록을 할 수 있을 터.
막말로 아무거나 해도 되지 싶었다.
띠링!
[스킬,‘스킬 쿨타임 제로’를 사용합니다.]
[어느 스킬을 쿨타임 제로로 만드시겠습니까?]
“블링크!”
띠링!
[스킬,‘블링크’를 쿨타임 제로로 만들었습니다.]
블링크는 마법사 식 순간이동 스킬이었다.
일반 순간이동과는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하나였다.
장애물을 넘을 수 있냐, 없냐.
예컨대, 암살자나 도적, 궁수 등의 ‘순간이동’은 벽을 넘을 수 없다.
반면, 마법사의 순간이동인 블링크는 벽을 넘을 수 있다.
이렇게…….
[블링크]
슉!
강기찬이 제자리에서 발 한 번 안 구르고 만렙돌파 고블린의 뒤로 넘어갔다.
- 고… 고오오……!
만렙돌파 고블린이 황급히 뒤돌아섰다.
- 뭐… 뭐냐?!
신기한 그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선,
강기찬도 뒤돌아서며…
[블링크]
슉!
또다시 만렙돌파 고블린의 뒤로 넘어갔다.
그러자 또 만렙돌파 고블린이 뒤돌아섰고.
또! 강기찬이 블링크로 만렙돌파 고블린의 뒤로 넘어갔다.
그게 몇 차례나 이루어졌을까.
만렙돌파 고블린은 고개를 돌리다 말고,
콰당!
어지러운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외쳤다.
- 대, 대발견! 세, 세상이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