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강기찬은 질질 끌지 않았다.
“받아.”
곧장 인벤토리에서 한계돌파 사탕을 꺼내 던졌다.
한계돌파 사탕은 거래 불가였다.
하나, 거래가 아니고 그냥 양도는 되었다.
그걸 받아든 만렙돌파 고블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한계돌파 사탕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홀로그램으로 뜨는 정보창에서 이름도 보았을 거다.
눈으로 봤는데, 뭘 더 의심하겠나.
저놈의 지능이라면 시스템이 거짓말할 리 없다는 것쯤이야 알았을 거다.
역시나 냉큼 입에 집어넣었다.
우물, 우물, 와그작- 짜자작!
단숨에 깨물며 삼켜버렸다.
잠시 후, 제 혼자만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듯싶더니.
- !
강기찬을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경계심이 누그러든 눈빛으로.
강기찬도 그 눈빛을 읽었다.
그랬기에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어때?”
- 좋다!
이로써 완전히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봐야 했다.
‘대화 한 번 하려고 천만 원 썼네.’
천만 원.
한계돌파 사탕의 가격이었다.
그나마 테스트서버라서 90% 할인으로 천만 원이지 지구서버였다면 1억 원이었을 터.
상황 돌리는 데 이 정도면 싸지 않냐고 위안 삼았다.
그리고 간신히 얻은 이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참고로 그게 끝이 아니야.”
- ?
“11,999레벨에서 12,000레벨이 되려면 한계돌파 사탕을 또 먹어야 해. 그 이후로도 레벨 뒷자리가 999일 때마다 먹어줘야 하지.”
한 번만 먹어선 안 된다.
지속해서 먹어야 한다.
이 점을 주입해주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려고 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 그렇군…….
“나는 너한테 한계돌파 사탕을 계속 줄 수 있고…….”
- 특별히… 죽이지 않겠다… 너를!
“그래, 거 참 고맙네.”
- 나도 알려주마. 너에게! 만렙 돌파?
“어. 어떻게 해야 만렙 돌파를 할 수 있지?”
- 만렙돌파의 돌조각 10개.
강기찬이 만렙돌파의 돌조각 10개를 꺼냈다.
- 그걸 나한테 주면 내가 광석으로 제련할 수 있다. 그거면 된다. 그걸 먹으면 된다.
“간단하네.”
간단하다는 말에 발끈해서일까?
만렙돌파 고블린이 말을 덧붙였다.
- 그건 대장장이인 나만 된다.
“아…….”
- 이 세계에서 오직 나만.
만렙돌파 고블린도 강기찬과 똑같은 화법을 구사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필한 거다.
그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지고.
‘역시 방금 사망한 만렙 고블린이 이놈을 찾아온 건, 이래서였어.’
- 간다. 대장간으로. 거기서 해주마!
“어.”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장간으로 가면서 깨달았다.
이 만렙돌파 고블린이 신분이 꽤 높다는 걸.
길 가다 마주치는 만렙 고블린들.
그들이 하나같이 엎드려 절을 해대니.
레벨이 높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지 싶었다.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이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만렙돌파의 돌조각 10개’를 광석으로 제련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먹어야만 만렙돌파를 할 수 있으니…….
‘왜 신분이 높은지 알겠네.’
일종의 전직 교관 NPC와 같은 위치에 있는 거다.
만렙 고블린이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반드시 그의 협조가 필요할 터. 자연히 신분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일 터.
‘이런 위치에 있으니 아까 그 만렙 고블린도 벌레 밟듯 무참하게 죽여버릴 수 있었던 거겠지.’
강기찬이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 보아하니 한계 레벨을 뚫을 줄 모르는 거 같은데 어떻게 9,999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거야?”
한계 레벨을 여러 번 뚫어야 만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만렙을 뚫었는데 한계 레벨을 못 뚫다니?
앞뒤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이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 태어날 때부터 9,999레벨이었다.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9,999레벨.
애초에 한계 레벨을 뚫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9,999레벨, 만렙만 뚫으면 되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만렙이라니… 부럽네.”
불현듯, 만렙돌파 고블린이 운을 띄웠다.
- 하지만, 부족했다. 만렙만 뚫는 건…….
- 한계… 찾아왔다. 10,999레벨에서.
“그랬겠지…….”
- 사실… 인간세계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소문을 들었단다.
인간은 한계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쳐들어오려고 하려는 거다.
- 지금도 그 마음… 변치 않다.
“… 한계돌파 사탕을 줬잖아?”
- 네가 말했다. 하나론 부족해.
“더 줄 수 있어.”
- 얼마나? 우리 부족… 계속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어.”
- 나는 제어해야 한다. 그걸로 다른 부족도… 그만큼 더 필요하다. 사탕……. 최소 천만 개 이상……. 되나?
“…….”
- 많이 많이 많이 필요하다.
“의외로 부족원들도 다 먹이려고 하네?”
- 그렇다. 내가 레벨이 높아진 다음에… 먹인다.
혼자만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아군도 키우겠단다.
단, 자신이 레벨이 높아 따라오지 못할 때쯤에.
자신이 원톱을 찍고, 자신만의 세력을 독보적으로 키우겠다는 거지.
“그걸 나한테 말해도 되나?”
인간에게 인간세계 침공을 밝힌 거다.
상관없다는 듯, 만렙돌파 고블린이 중얼거렸다.
- 괜찮… 넌 여기서 못 나가.
“그래?”
- 만렙돌파는 해준다. 그다음에 죽인다.
“어이가 없네.”
- 약속은 지킨 것.
강기찬은 헛웃음이 나왔다.
- 원망하지 마라. 약육강식이다.
“알아, 나도 그거… 그 개 같은 거…….”
이내 둘은 대장간에 들어섰다.
- 잠시, 기다려라. 만렙 돌파의 광석… 만들고 나온다.
“어.”
잠시 후, 만렙돌파 고블린이 나왔다.
만렙 돌파의 광석을 손에 쥔 채로.
- 자, 여기 있다.
강기찬은 만렙 돌파의 광석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설명창이 떠올랐다.
《 만렙 돌파의 광석 》
[분류] 아이템
[등급] 측정 불가
[설명] 9,999레벨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광석.
[조건] 섭취할 시, 효력이 발동됨.
[제약] 없음.
‘적절한 시기에 얻었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만렙 돌파의 광석을 세계 최초로 얻었다.
즉, 만렙 돌파를 세계 최초로 할 가능성이 열린 것.
그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 자… 이제 죽어라.
만렙돌파 고블린이 망치를 집어 들었다.
강기찬이 뒷걸음질 치며 손사래 쳤다.
“잠깐만 뭘 그렇게까지 성급하게 굴어? 죽기 전에 유언은 남기게 해주라.”
- 오냐! 뭐냐?
“너 여기서 꽤 잘 나가는 거 같더라?”
- 그렇다. 내가… 제일 잘 나간다.
“그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 거지? 레벨이 높아서?”
- … 나보다 레벨 높은 놈들 많다.
“그래?”
만렙돌파 고블린의 권력.
레벨이 높아서 얻은 게 아니란다.
- 그런데 레벨 높은 것들도 나한테 함부로 못 해.
“왜?”
- 만렙 돌파의 광석… 나만 만들 수 있어. 그것들도 내가 키워준 거니까. 그것들의 자식도… 그 자식도 대대손손 만렙 돌파하려면… 필요하지, 내가.
“그렇구나…….”
역시 예상대로 만렙돌파 고블린의 권력은, 만렙 돌파의 광석을 만드는 재주에서 나온 것이다.
- 자, 이제 죽어…….
만렙돌파 고블린이 망치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잘 봐. 신기한 거 보여줄 테니까.”
강기찬이 만렙 돌파의 광석을 양손으로 포갰다.
[스킬, ‘아이템 복사’를 사용합니다.]
[아이템, ‘만렙 돌파의 광석’을 복사합니다.]
[복사비용을 책정합니다.]
[복사비용 : 1,000,000,000 코인]
[복사비용으로 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현재 코인 : 1,500,458,700 …▶ 500,458,700(-1,000,000,000)]
10억 코인을 들여‘만렙 돌파의 광석’을 복사했다.
‘아이템 복사’ 스킬을 처음 개시하기엔 ‘만렙 돌파의 광석’ 만한 게 없었다.
기념하기 좋고.
만렙돌파 고블린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 !
만렙돌파 고블린이 공격을 하려다 말았다.
강기찬의 양손에 올려진 만렙 돌파의 광석이 두 개였으니까.
- !
“놀랍지? 이거 두 개로 늘어났다.”
- 어떻게 한 거냐?
“난 수량을 늘릴 수 있어.”
- ! 혹시 다른 것도 수량을 늘릴 수 있나?
“어. 뭐든지.”
- … 대단하군.
“나랑 동업할래?”
- 동업?
“보니까, 너도 늘리고 싶은 게 있는 거 같은데…….”
모두에게 통용되는 질문이 아닐까?
괜찮은 걸 갖고 있으면 하나 더 갖고 싶은 법이다. 소장용이거나 보험용으로.
- 있다!
역시나 만렙돌파 고블린도‘하나 더’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강기찬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우린 꽤 인연이 깊은가 본데? 또 서로 필요한 걸 가지고 있으니까. 신뢰야 이미 서로 주고받았고…….”
만렙돌파 고블린은 망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마음이 반 이상은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
- 너는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 별로 어렵지도 않아. 어디 산책하러 나갔다 온다고 생각하면 돼.”
- 산책?
“어, 내가 소환하면 오면 되는 거야.”
- 알겠다.
만렙돌파 고블린이 함께해준다면 내일 개최할 이벤트가 더 풍성해질 것이다.
“아차, 혹시 만렙 고블린 왕은 레벨이 몇인지 알아?”
- 9,999레벨.
“어? 왜 만렙돌파 안 했어?”
- 왕은 레벨업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어차피 동족은 왕을 해할 수 없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
만렙 고블린 왕이 레벨업에 관심이 없는 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싸울 일이 얼마나 있겠나. 아랫것들 시키면 되지.
“여기 고블린 밖에 없지?”
- 그렇다.
고블린 밖에 없는데 고블린한테 무적이니, 더더욱 레벨업할 이유가 없는 거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 최소 5년 이상은 인간이 침입할 수 없다고 확신하셔서.
“어디서 그런 확신을?”
- 천상계 신들… 신탁… 주셨다.
NPC들이 운영자들을 신이라 불렀다.
고블린들도 운영자들을 신이라 부를 터.
즉, 운영자들이 고블린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거지 싶었다.
최소 5년 이상은 인간이 침입할 수 없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긴, 이게 만렙이 참여해야 의미가 있는 콘텐츠니까… 아직 만렙은커녕 근처에 도달한 유저도 없고 하니, 적어도 5년 이상은 만렙 고블린 왕도 안전하다고 본 거겠지…….’
강기찬은 속내를 숨기며 만렙돌파 고블린의 말에 동조하는 척했다.
“신들께서 신탁을 주셨다고? 그러면 확신할 만하네.”
- …….
“만렙 고블린 왕이 어디 있는지 알아?”
- 왜? 그러냐?
“내가 왕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
만렙 고블린 왕의 레벨 높아서 출두가 안 써졌다.
그렇다고 소환에 동의해줄 리도 없고, 직접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소재를 물은 것.
- 신하 된 도리로… 왕의 소재… 발설할 수 없다!
“자-아.”
강기찬이 인벤토리에서 한계돌파 사탕을 꺼냈다.
그런데,
- 발설할 수… 없다!
만렙돌파 고블린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오호라… 자, 많이 줄게.”
강기찬이 한계돌파 사탕을 10개를 꺼냈다.
- 바, 발설할 수… 없… 없다!
만렙돌파 고블린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심 썼다, 자!”
- 바, 바바바 발설할 수…….
강기찬이 한계돌파 사탕을 100개를 꺼냈다.
- … 있다! 신하 된 도리로… 왕의 소재… 직접 안내한다! 따라와라!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