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이건……?!”
강기찬은 입을 크게 벌렸다.
땅이 꺼졌는데 무언가 파묻혀 있었다.
그건 조그마한 돌덩이였다.
단순히‘돌덩이’이기만 했다면 놀라지도 않았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게 특별한 아이템 같았다.
돌을 줍자 이름이 보였다.
“하… 이런 게 있었어? 이걸 여기서 얻다니…….”
이 돌… 대중에 공개하면 큰 파장을 일으킬 거다.
그도 그럴 게…….
1,999레벨, 2,999레벨… 7,999레벨, 8,999레벨까지…….
한계 레벨에는‘한계돌파 사탕’을 섭취해야 하지 않나.
반면‘한계돌파 사탕’을 섭취해도 레벨이 안 오르는 단계가 있다.
바로 9,999레벨.
만렙이다.
그런데 이 돌이 만렙을 뚫는 데 도움 주지 싶었다.
띠링!
《 만렙돌파의 돌조각 》
[분류] 아이템
[등급] 측정 불가
[설명] 9,999레벨을 돌파하게 해주는 기운이 담겨 있는 돌조각.
[조건] 없음.
[제약] 없음.
이것만 가지곤 만렙돌파는 못할듯싶지만, 괜찮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희망도 없었던지라.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와도 연관 있으니까.
‘나도 곧 9,999레벨이잖아.’
현재 강기찬 계정 중 최고 레벨은 8,944이었다.
9,999레벨이 머지않았다.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 거다.
어디 8,944레벨 따위가 곧 9,999레벨이 될 거라는 헛소리하냐고.
한국 랭킹 1위인 청용도 9,999레벨이 아니다.
언저리에 가지도 못했다.
세계랭킹 1위인 앤드류는 9,000레벨에서 대마법사로 전직하느라 현재 2,500레벨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2,500레벨은 아니지만, 그 역시 9,999레벨은 꿈도 못 꿀 거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는 관심 가질 자격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다른 이들과는 처지가 아주 다르지 않나.
좀 전에 몇 분 만에 1,500레벨을 올렸다.
하물며 9,999레벨?
빨리 못 올릴 것도 없었다.
막말로 내일 만렙 찍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씀.
지금 만렙돌파에 관심 두는 게 자연스럽다는 의미였다.
‘정말 다행이네. 9,999레벨이 되고 나서도 방법을 못 찾을 줄 알았는데 그 전에 실마리를 찾게 된다니…….’
만렙돌파에 대한 기대감이 켜졌다.
소원권하고 회귀의 시계.
이 두 가지를 사용하기 위해선 10,000레벨이 되어야 했으니까.
‘후… 드디어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려나…….’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동시에 패배주의자도 싫었다.
단지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10년이나 정체되어 있어야 했던 삶.
남들과는 달랐기에 겪었던 불운한 사건, 사고들.
다시 돌아간다면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뜯어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잠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걸로 뭘 해야 만렙돌파를 할 수 있다는 거지?’
만렙돌파의 돌조각을 만지니 뜨는 정보.
그것만으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주어진 정보가 너무 빈약한 것.
그렇다고 관계없는 것도 아닌지라…….
일단 곳곳에 널린‘만렙돌파의 돌조각’을 주웠다.
‘조각’ 들어가면‘수집형’ 퀘스트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다만…….
[만렙돌파의 돌조각(x22)]
줍다 보니 금방 의욕이 떨어졌다.
‘모으는 거 같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몇 개 모아야 하는지를 모르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알았다.
하지만,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그 기준을 모르니.
무작정 모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때마침, 줍기도 다 주웠고 흥미가 식어버렸다.
강기찬만 그랬다.
- 고오오!
만렙 고블린들은 아니었다.
언제 강기찬이 두려워 물러났냐는 듯.
저벅, 저벅, 저벅…….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가 수거한 ‘만렙돌파의 돌조각’을 향해서…….
강기찬이 눈치채고선 그들을 향해 하나 내밀었다.
“이거… 관심 있어?”
알면서 물은 거다.
짧게 생각해봐도 답은 나왔다.
‘관심 있겠지.’
강기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당장 급한 건 그가 아니라 저들이니까.
‘만렙 고블린이니까.’
만렙이‘만렙돌파’를 꿈꾸는 건 당연지사.
만렙 고블린들이‘만렙돌파의 돌조각’에 관심 없을 리가.
물론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단 전제하에서지만.
만렙 고블린이 말했다.
- 우리… 필요하다… 그것이!
“이게 무엇인 줄은 알고 하는 소리야?”
- 만렙돌파의 돌조각!
만렙 고블린의 음성에 흥분이 섞였다.
“알고 있구나… 구하기는 힘들지만, 생김새는 안다 이건가?”
- 생김새는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을… 팔 수 없다. 그래서 못 얻었다!
“아… 그래?”
왜 저들이 이걸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또한, 원할 만큼 희귀한 건지도…….
‘만렙돌파의 돌조각’은 땅을 파야만 나오지 싶었다.
반면 만렙 고블린들은 땅을 팔 힘이 없는 것.
‘하긴, 나도 힘팡이가 있어서 한 거니까.’
그럼, 힘팡이가 없으면 어떨까?
순수 힘 3,400 정도로 말이다.
실험해보고자 맨주먹을 땅에 찍었다.
‘오…….’
땅은 단단했다.
흠집도 나지 않았다.
결론이 났다.
힘팡이여서 이 땅을 팔 수 있었다고.
강기찬이 파헤쳐진 곳에서 평지로 날아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곧장 공중부양을 중단했겠지만.
이젠 아니다.
‘NPC하인스’세트를 착용 중이라 마력이 넘쳐났다.
그 덕에 예전엔 아껴 썼던 스킬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공중부양도 그러했다.
그가 나는 걸, 만렙 고블린들도 신기하게 보았다.
강기찬은 신비감을 조성하고자 쭉 떠 있었다.
만렙 고블린들이 침 흘리며 보다 문득 헛기침했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이윽고 말을 걸었다.
- 우리에게… 달라.
“뭐? 만렙돌파의 돌조각?”
- 그래.
“이것만 가지고는 만렙돌파 못 하지 않나?”
- 그렇다.
“방법을 알아?”
- 안다.
“뭔데?”
- 달라.
순순히 알려주진 않을 모양.
쥐어패서 정보를 털어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래.”
강기찬은 한 수 양보하기로 했다.
이걸 주면 무엇을 하는지 보려고.
슉— 탁
강기찬이 만렙돌파의 돌조각을 던졌다.
이를 받아든 만렙 고블린이 재차 요구했다.
- 더 달라.
‘역시 하나 가지고는 안 되는가 보네.’
하나 더 주었다.
- 더!
“몇 개?”
- 8개.
‘아, 10조각이 있어야 하는구나.’
10조각을 받아든 만렙 고블린이 어딘가로 뛰어갔다.
강기찬이 뒤쫓으려 하자,
- 우리도… 달라.
- 달라!
앞길을 막는 나머지 만렙 고블린들.
만렙돌파의 돌조각을 주지 않으면 비키지 않을 기세다.
강기찬이 힘팡이를 집어 던졌다.
퍽!
한 놈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슝-
강기찬이 쏘아졌다.
만렙 고블린들이 뒤쫓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강기찬은 자신보다 앞서가던, 10조각을 받아든 만렙 고블린의 위치를 맵핵으로 찾았다.
마력을 쏟아부어 속도를 올려 순식간에 간격을 좁혔다.
제치지는 않았다.
가는 대로 두었다.
만렙 고블린은 뒤를 힐끗 보곤 갈 길 갔다.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 이거다.
이내, 놈이 도착한 곳은 웬 대장간이었다.
뒤따라 들어가니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렙돌파 고블린(Lv.10,999)]
이미 만렙돌파를 한 고블린이 있었던 것.
그 옆에서 쇠를 두들기던 다른 녀석도…….
[만렙돌파 고블린(Lv.10,999)]
… 레벨이 그랬다.
이는 강기찬에겐 호재였다.
만렙돌파가 꿈이 아니란 얘기니까.
‘만렙돌파 고블린’이 막 들어온 둘을 번갈아 보았다.
- 음? … 그건 만렙돌파의 돌조각? 인간을 데리고 왔다?! 인간을 만렙돌파 시키겠다?!
혼잣말을 막 해댔다.
눈빛은 경계심 가득했고.
- 그게 아니다. 내가 만렙을 돌파하려…….
이에, 만렙 고블린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훅!
만렙돌파 고블린이 뛰더니,
빠각!
망치로 만렙 고블린의 목을 쳤다.
- 배신자… 처단… 완료.
강기찬은 깜짝 놀랐다.
‘뭐 저래 무식하게…….’
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피를 흘리며 엎어진 제 동족을 망치로 연신 두들기더니…….
척!
고개를 치켜들어 강기찬을 노려보았기에.
다음은 너다, 라고 하듯.
강기찬이 손사래를 쳤다.
“잠깐만, 대화 좀 하자.”
걸레짝이 된 만렙 고블린을 보니 대화를 하고 싶었다.
- 대화? 인간이? 그게 가능한가? 야만인이?
그러나 상대는 아니지 싶었다.
하긴, 제 동족도 다짜고짜 죽여버리는데 인간은 오죽하겠나. 대화고 나발이고 죽일 기세다.
훅!
갑자기 놈이 망치를 날렸다.
휙-
강기찬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꺾어 피했다.
푹!
땅이 움푹 파였다.
저 땅도 아까 강기찬이 힘팡이로 판 땅하고 비슷해 보였다. 그걸 파헤쳤다? 몸에 맞았으면 골로 갔을 거다.
한편, 놈은 제 복대에서 새 망치를 꺼냈다.
그걸 또 날릴 준비를 했다.
- 인간… 민첩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까? 한 대만… 처 맞아라!
“아니, 이 미친 새끼가… 공격하지 말아봐.”
강기찬은 거친 말을 하면서도 뒷걸음질 쳤다.
레벨부터가 전면전으로는 상대가 안 될 테니.
아니, 그보다 처치할 대상이 아니지 않나.
잘은 모르지만,
‘알고 있을 거야… 만렙돌파에 대해서…….’
방금 사망한 만렙 고블린이 이놈을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다. 그건 만렙돌파와 관련이 있을 거고. 실제로 놈은 만렙을 돌파하기까지 했으니…….
- 이눔이! 잘도! 피한다! 허-어억!
놈이 망치를 날리고 휘두르며 강기찬을 위협했다.
강기찬은 잽싸게 피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했다.
‘차라리 처치하는 게 더 쉽지, 이건 뭐 설득을 해야 하니까…….’
설득이 처치보다 상위 단계다.
그것도 몬스터를, 자신을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몬스터를 설득하는 건 무척 어려웠다.
- 인간은 적이다. 우리 동족… 학살했다. 그런 놈은 만렙을 돌파해선 안 된다! 더는 성장해선 안 된다. 인간은…
“나는 네 편이야!”
강기찬은 뻔뻔한 걸 알면서도…
“나는 동맹을 맺으러 왔어.”
-거짓말했다.
“너희 고블린에게 득이 될 제안도 준비해왔고!”
- !
만렙돌파 고블린이 멈춰 섰다.
- 우리에게 득이 될 제안?! 말해 봐라.
강기찬은 고인 침을 삼켰다.
일단 공격을 정지시키는 데엔 성공했다.
대화의 여지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였으니까.
‘… 이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많아.’
강기찬은 다른 유저들보다 가진 게 많았다.
하지만,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지…….’
만렙돌파 고블린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 무언가.
‘아!’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 테니, 너도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라.”
당당하게 거래를 요구했다.
- ?
“우린 서로가 필요한 걸 가지고 있어.”
- 음……?
만렙돌파 고블린이 관심을 보인다.
여세를 몰아 솔깃하게 만들기로 했다.
“레벨이 안 올라가지?”
- 뭐? 그걸 어떻게?
“지금 10,999레벨이잖아.”
웃기는 점이었다.
만렙돌파 고블린은 한계 레벨이었다.
그런 까닭에 10,999레벨을 못 넘고 있는 거다.
“내가 한계 레벨 뚫게 해줄게. 넌 내 만렙 돌파 도와주는 거, 어때?”
- 한계 레벨 뚫게 해준다?
좀 전보다 더 관심이 짙어졌다.
강기찬은 자신감을 얻은 채 말했다.
“그래, 10,999레벨에서 11,000레벨이 되는 거지, 어때?”
- 그게 가능하냐?
“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