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 * *
오후 9시 50분.
모두가 다 떠난 뒤.
주작 길드 담당 던전.
그 근처에서 강기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을 이대로 보내긴 아쉽지.”
강기찬은 보물 고블린 잡는 걸 영영 포기한 게 아니었다.
여전히 보물 고블린을 잡을 의향이 있었다.
다만, 돈 버는 게 더 급했을 뿐.
이젠 아니지 않나.
돈 벌기가 확정되었다.
그러자 조급함이 가셨다.
맑은 정신으로 곱씹어보았다.
스스로가 참 바보 같았다.
낮에, 보물 고블린을 잡기 위해서 마땅히 시도했어야 할 걸 하지 못했다.
그걸 이제야 깨우친 것.
그것도 안 해보고 내일을 맞이하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그게 바로 늦게나마 주작 길드 담당 던전으로 돌아온 이유였다. 낮에 시도하지 못한 걸 시도해보려고.
즉, 돈 벌기가 아니라‘순수’하게 보물 고블린을 잡아보려고 온 것이다.
물론, 보물 고블린을 잡는 게 즉 돈 벌기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긴 하지만.
‘보물 고블린을 잡으면 어떡한담…….’
아직 시도조차 안 했다.
그런데도 결과를 예단하는 거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크게 점쳤으니까.
그런 까닭에 보물 고블린을 잡은 뒤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물 고블린을 잡고 나면 신경 써야 할 건 이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보물 고블린의 반응이지…….’
보물 고블린은 일평생 자신이 잡히는 걸 상정해두지 않았을 거다. 그랬기에 잡혔을 때 받게 될 충격이 클 터.
‘곧 중대사가 있는데 사이가 틀어질 수는 없지.’
알게 모르게 강기찬을 증오할 수 있었다.
부득이하다면 모를까, 굳이 자신을 증오하게 만들 건 없었다.
이 때문에 정체를 숨기기로 했다.
검은 암살자 전용 복장으로 얼굴과 몸을 완벽하게 가렸다.
그리고 그의 곁엔 썬도 있었다.
“썬, 가.”
- 써어어언!
이미 썬에게 작전을 설명한 뒤였다.
썬은 날아가 던전에 잠입했다.
관통을 통해 벽에 숨어든 것이다.
쥐죽은 듯 있을 예정이었다.
적절한 시기를 포착할 때까지는…….
시선을 돌려 던전 입구를 보았다.
‘농땡이 안 부리고 잘 지키고 있네.’
던전 입구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주은을 통해 부른 전문 경비 업체 직원이었다.
보는 눈이 없다고 근무 태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통같이 방비를 하는 중이었다.
현재 시각은 야심한 밤.
관계자 외엔 그 누구의 출입도 금지된 상태다.
던전 내부에 있을 보물 고블린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그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알린 것이다.
‘보물 고블린들도 이제 슬슬 경계심이 무뎌지려나?’
보물 고블린들이 던전에 머문 지 몇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안전을 보장받고 실제로 위험요소가 발견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차츰 경계심이 무뎌질 때가 되었다. 저도 모르게 말이다.
‘방심하고 있을 지금이 가장 기습하기 좋을 때지.’
강기찬은‘투시’로 던전 내부를 꿰뚫어 보는 중이었다.
보물 고블린들은 열심히 과자를 먹고 있었다.
강기찬이 일부러 이것저것 많이 사다 준 덕분에.
잠시 후, 보물 고블린 하나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자나? 배도 부르고 따뜻하니 잠이 오겠지.’
잠까지 자주면 더할 나위 없다.
둘 다 자나 싶은데……,
한 놈은 서서 보초를 서는 게 아닌가?!
‘충분히 느슨해질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니…….’
한편, 썬은 내벽에서 땅 밑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성공적인 기습은 기습대상과 최대한 가까워야 하는 법.
물론 내벽도 가까웠다.
하지만, 더 나은 선택지가 생겼다. 한 놈이 드러누우면서.
내벽보다는 땅 밑이 더 가까웠다.
땅 밑에서 올려다보니 보물 고블린의 등이 보였다.
여기서 기습하면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슈-우욱-
썬은 곧바로 수직으로 상승!
보물 고블린을 냅다 꽂아버렸다.
그런데도 모른다!
대신,
- !
곁에서 보초 서던 보물 고블린이 알아챘다.
화들짝 놀란 그 시점에,
슉!
강기찬이 썬과‘위치 바꾸기’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강기찬과 썬의 위치가 바뀌었고.
강기찬이‘자고 있던 보물 고블린’의 몸과 겹쳐졌다.
‘잡았다!’
강기찬은 쾌재를 불렀다.
더는 변수가 생길 여지가 없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NPC하인스가 공간이동을 해도 몸이 분리되지 않았었다.
그러니 보물 고블린이 공간이동을 써도 놓치지 않으리라.
‘역시 이거면 되네.’
하긴, 이 방법이 안 될 리 없었다.
투시가 있지 않고서야 당하기 전까진 들킬 수도 없을뿐더러 들킨 뒤에도 어찌할 수가 없다.
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만 전념하는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강기찬은 놈을 죽일 마음은 없었다.
두 마리에서 한 마리가 된다면 마케팅에 지장이 생기니까.
물론, 영원한 죽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리젠될 터.
하지만, 리젠 된 놈은 모든 기억이 초기화될 터.
또다시 ‘학습된 무기력’을 심어주고 교육해야 한다.
이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안 죽이는 거다.
무엇보다 꼭 지금 죽일 필요가 없고.
‘나중에 이벤트가 끝물이 되면 그때 가서 잡아서 죽이면 되지.’
‘관통’ 후, ‘위치 바꾸기’
이 방법만 쓰면 언제든지 잡고 죽일 수 있었다. 조급할 거 없다.
- 어억!
보초 서던 놈이 놀라며 소리 질러서일까?
자고 있던 놈이 깨어났다.
그러자마자… 강기찬을 보았다.
직후, 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쥐고 있던 보물 보따리를 냉큼 던져버린 것.
자신은 잡혔을지라도 보물 보따리는 뺏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보물 보따리를 보초 서던 놈이 잡아주었다.
‘와 순발력 봐라…….’
강기찬은 딱히 보물 보따리를 노리지 않았다.
저 보물 보따리는 이번 이벤트 상품이나 마찬가지니까. 저걸 가진 뒤에 이벤트를 여는 건 사기 아니겠나. 팥 없는 빵을 팥 있다고 거짓말하고 파는 격이니까.
하지만, 놈은 그 속사정을 모르기에 판단한 것이다.
직후, 놈이 공간이동을 썼다.
‘아! 안 쓰기로 했으면서!’
강기찬은 생각은 그리했지만, 놈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이렇게 깜짝 놀라게 해놓고선 공간이동 안 쓰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거니.
이건 저도 모르게 본능 • 반사적으로 공간이동을 썼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함께 공간이동이 되었다.
어디로 공간이동 했는가 봤더니…….
“!”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지구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라고? 실화냐?!’
이번엔 강기찬이 놀랐다.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
오직 보물 고블린만이 드나들 수 있다는 창고이지 않나.
보물 고블린의 보따리, 그 안이 보물창고와 연결되어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즉, 여기 보물이 다 보관되어 있단 말씀.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양의 아이템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지구 서버)에 최초로 방문했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500 올랐습니다!]
[레벨이 500 올랐습니다!]
[5억 코인을 얻었습니다!]
[5억 코인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500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500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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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암살자 레벨 : 6,310 …▶ 6,810(+500)]
[현재 네크로맨서 레벨 : 7,444 …▶ 7,944(+500)]
[현재 코인 : 495,200 …▶ 1,500,495,200(+1,000,000,000)]
[현재 프리 스탯 포인트 : 400 …▶ 1,40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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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할 수 없는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지구 서버)에 방문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출두’가 주어집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상태창 보기’가 주어집니다.]
역시나 시스템 메시지창이 떴다. 최초 방문이자 원래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그렇기에 다행이었다.
동시 로그인 중이었으니까.
덕분에 보상을 중복으로 받았다.
‘동시 로그인해놓길 잘했네.’
이번 동시 로그인은 손실을 각오해야 했다.
GM미르의 대리 사냥을 끊어야 하니.
그랬다가 보상까지 못 받으면 그 시간 동안 얻었을 경험치와 득템은 포기해야 하는 거다.
그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확신을 못 했다.
보통, 몬스터와 신체접촉만으로는 업적으로 안 쳐주니까.
하지만, 보물 고블린은 또 모를 일.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더 큰 호재가 터져버리기까지 했다.
보물 고블린의 보물창고에 입성할 줄이야.
본래 계획대로라면, 놈을 잡아보기만(신체접촉만) 하고 빠지려 했었는데.
‘참…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한편, 보물 고블린은 직감했다.
이 인간이 자신을 뒤따라온 게 아니라고.
단지 한 묶음으로 딸려왔다는 것을.
그럼, 이 인간을 도로 내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간이동을 써서 데려온 거라면, 똑같은 방법으로 퇴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황급히 공간이동을 다시 쓰려 했지만,
‘어딜……!’
이 기회를 놓칠 강기찬이 아니었다.
보물 고블린의 몸에 끼이는 건 썬의‘관통’ 스킬로만 가능하지만, 끼인 걸 해제하는 건 제 의지로 가능했다.
‘겹침 해제’ 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 몸이 분리되니까.
띠링!
[겹침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강기찬이 보물 고블린의 몸에서 튕겨 나왔다.
데구르르—르르--
앞뒤 재지 않고 냅다 몸을 던졌기에 땅에 처박히며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른다.
그래도 던전이라 다치진 않았다.
아니, 다쳐도 만족스러웠을 거다. 몸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이로써 보물 고블린은 공간이동을 써봤자 제 혼자서 사라질 뿐, 강기찬은 여전히 이곳에 남게 되었다.
강기찬은 재빨리 땅을 딛고 일어섰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가.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긴 아쉬웠다. 물론, 아이템을 집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의 선택은…….
타-아아악!
보물 고블린이 습격해왔다.
강기찬은 일찍이 뒤로 돌아서 이에 대비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린 뒤, 배 위를 발로 밟았다.
그러고선…….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에 로그인했습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위치 : 데르데르 마을 서쪽]
[남은 시간] 00시 59분 59초.
보물 고블린과 함께 테스트서버에 로그인했다.
직후,
[남은 시간] 00시 59분 57초.
[로그아웃할 시, 남은 시간이 정지됩니다.]
[오늘 안에 재접속 시, 남은 시간을 마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에서 로그아웃합니다.]
[지구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강기찬은 테스트서버 밖으로 나왔다.
보물 고블린만 테스트서버에 남겨둔 채.
사실상 가둬놓은 거다.
‘잠시만 거기 있어, 형이 중요한 일 하고 데리러 갈 테니까.’
양해를 구할 법도 했지만, 테스트서버 시간이 더 소중했다.
‘어차피 할 거 금방 끝나니까.’
여기서 나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 남았다.
아주 간단하게 끝날…….
동시에 가장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