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강기찬은 맹인검객에게도 귓속말했었다.
[강기찬] 썬이 혼자 있어서 걱정되는데… 좀 가줄래?
[맹인검객] 그래.
맹인검객은 썬에게 가다가 썬이 비명과 함께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걸 보았다.
“!”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저벅, 저벅.
맹인검객이 살기로 다 쓰러뜨리고 부길드장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만…….”
부길드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뭘 공격했다고 그러십니까?”
“저 새를 공격했잖아?”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저 미친 새가 갑자기 제 혼자 나가떨어지…….”
“뭐 미친 새?”
맹인검객이 무서운 표정을 짓자 부길드장이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제 표현이 과한 건 사과드립니다.”
“…….”
“근데 제가 하는 말을 믿어야죠! 앞도 안 보이시면서…….”
신중하게 말을 하다 보니 문득 의아스러웠다.
“잠깐… 저기 있는 저게 새인지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맹인검객은 앞이 안 보이지 않나.
그런데 저게 새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아… 아아! 울음소리를 듣고서?’
저 새가 비명을 지른 걸 듣고 안 것이리라.
그렇게 자체 결론지었지만, 또 이상한 점이 있다.
맹인검객이 정확하게 새를 보고 있지 않나.
그때였다.
“!”
맹인검객의 시선이 부길드장에게 가더니 정확히 꽂혔다.
“은색 갑옷이 잘 어울리는군…….”
“… 뭐…… 어……?”
부길드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제 갑옷 색깔을 어떻게 안 거…… 다, 당신 설마, 진짜로 앞이 보이는 거……커어어겁!”
더는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응, 잘 보여. 너무!”
솨-아악! 솩! 수-아아악!
* * *
< 주작 길드 비밀 통로 >
주은은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었다.
부길드장이 단칼에 쓰러지는 걸 본 뒤였다.
그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뻔했다.
‘맹인검객이 거리를 좁히기 전에……!’
한참을 내달리다가 멈춰 섰다.
거친 호흡을 진정시킬 겸,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았다.
1. 부길드장이 내란을 일으켰다.
2. 자신의 수족들도 다 잘려나간 뒤다.
3. 그 외의 졸개들은 이미 배신, 부길드장에게 붙었다.
‘이거야 불쾌하지만, 이해 못 할 건 없지…….’
자신은 맹인검객에게 찍혔으니까.
맹인검객은 암살 성공률 100%다.
죽음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
그런‘산송장’에 붙는 것보다는, 다음 실세가 될 부길드장에게 붙는 게 현명하다 본 거겠지.
‘지금 내 처지를 보면 틀린 추측도 아니고. 게네들이 잘한 거야…….’
자신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부와 권력, 다 잃어서 재기할 발판마저 요원하기까지.
‘이런 나를 누가 도와주겠어…….’
‘잠깐… 판매자가 청용하고 친하다고 했었지?’
‘판매자’가 한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부길드장에게 말하지 않았나.
- 내가 청용하고 친하거든? 너희들 죽이지 말라고 할게.
‘그 말이 진짜일까?’
랭킹 1위하고 친하다?
잘 나가는 자들하고 친하다는 식의 거짓말은 흔하다.
특히 살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 말하겠나.
‘그래도…….’
한 번 확인해볼 가치는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처지 아니던가.
거래했던 사이트에서‘판매자’를 찾아내 쪽지를 보냈다.
[너 정말 청용하고 친해?]
[어, 왜?]
[나 좀 살려주라.]
[내가 청용에게 말해서 맹인검객 물러가게 할게.]
[정말이야?]
[어.]
[그렇게 쉬운 건데 왜 진작 안 해준 거야?]
[이거, 나도 내 소원권으로 하는 거라서.]
[소원권?]
[청용이 나한테 빚진 게 있거든. 그래서 나한테 소원권 한 장을 줬어.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그, 그걸 나를 위해서 쓴 거야?]
[어.]
[감동이야…….]
[대신 부탁 들어줄 수 있지?]
[무슨 부탁?]
한참 뒤에 답장이 도착했다.
[주작 길드 관할 던전 좀 빌리자. 입장 레벨 제한 없고 텅 빈 데로…….]
* * *
510억 원.
VIP 캐시 상점 입장료 구매까지 남은 돈이었다.
강기찬은 510억 원만 벌기를 바라지 않았다.
510억 원을 모아 1조 원…….
VIP 캐시 상점 입장료로 내고 나면 거의 0원에서 새로 돈을 모아야 하지 않나.
어느 세월에 돈을 다시 모은단 말인가.
물론, 오늘로써 테스트 서버 초대장 받은 지 7일째다.
일주일 만에 1조 원을 모을 예정인 셈.
그리고 앞으로도 이만큼 벌 자신도 있고.
하나, 그도 사람인 이상 맥이 빠지는 법이다.
한꺼번에 1조 원이 빠져나가는 거니.
그런 공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1조 원이 빠져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의 돈이 남아있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할 이유는 명확했다.
VIP 캐시 상점 입장 이후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보나 마나 VIP 캐시 상점에서 판매하는 아이템들은 그 가치만큼이나 엄청 비쌀 테니까.
그랬기에 가능하면 510억 이상을 벌어둘 필요가 있었다.
막상 VIP 캐시 상점에 입장했는데 하나도 못 사고 입만 다시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비싼 돈 내고 놀이공원 입장만 하고 정작 놀이기구를 못 타는 불상사가 생겨선 안 되지 않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타 치기로, 그것도 막대한 돈을 벌기엔‘보물 고블린’만한 존재가 없었다.
보물 고블린.
‘보물이 든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몬스터다.
‘보물이 든 보따리’ 안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떤 보물이 들어있는지 추정할 수는 있었다.
실제로 보물 고블린이 보따리에 무엇을 넣는지 보았던 목격자들이 더러 있었으니까.
목격자들이 증언하기를, 유저가 죽기 직전, 귀신같이 나타나 죽은 유저가 드랍한 아이템을 훔쳐서 보따리에 넣고 도주한다고 한다.
그것도 귀한 아이템만을 골라서 가져갔다고…….
다들 뒤를 추격했지만, 실패했다.
공간이동으로 도망가버리니.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다른 몬스터와는 달리 서식지가 없었기에.
출현 장소, 시기, 무작위였다.
예고도 없이 프랑스의 드레이크의 지하던전에 나타났다가 10분도 안 되어 사라지고 다음 날엔 한국의 구미호 숲속에 나타났다가 1분 만에 사라지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우연히 만나는 것도 아주 어려웠다.
아니, 운 좋게 만나도 잡는 것은 더 어려웠고.
그런 까닭에 여태껏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은 거로 알려져 있었다.
달리 말하면, 한 번만 잡으면 보물 고블린이 여태껏 모아왔던 보물을 몽땅 싹쓸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장기간 복권 당첨자가 나오지 않은 격이다. 그럴 경우, 당첨금이 이월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릴 터.
… 20년간 복권 당첨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강기찬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보물 고블린과 만나는 것 자체는 쉽지 않나.
보물 고블린이 고블린 중에선 레벨이 높은 편이지만, 아무리 레벨이 높아봤자 고블린은 고블린…….
… 강기찬보다 레벨이 낮았다.
고로,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보물 고블린을 소환합니다.]
보물 고블린의 동의 없이 소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환만 쉽다는 것.
소환한 다음이 문제였다.
소환하자마자 손을 뻗었으나 대응능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돌발상황의 연속이었음에도 침착하게 뒤구르기, 직후 튕겨 나가 거리를 벌리기까지!
소환은 강제지만, 도망은 자유였다.
쫓으려 해도 공간이동이라 답이 없었다.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주은에게 빌린‘주작 길드 관할 던전’
그곳에 입장했다.
주문한 대로 텅 비어 있었다.
강기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살피며 구석으로 갔다.
그다음, ‘이동한계선’을 지나서 ‘버려진 세계’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보물 고블린을 소환했다.
- !
보물 고블린이 처음으로 당황했다.
공간이동을 썼는데 제자리이지 않나.
그러고도 몇 차례 더 해보았으나 실패.
‘예상대로……!’
강기찬이 쾌재를 불렀다.
이럴 줄 알았다.
버려진 세계에선 공간이동 못 한다.
경석이 좋은 사례다. 귀환이나 비상 탈출용 아이템으로도 탈출 못 했었으니.
‘지금이다!’
재깍 뛰었다.
보물 고블린이 당황한 이 순간이 가장 잡기 좋을 테니까.
타탓!
보물 고블린은 여전했다.
물 흐르듯 강기찬의 손길에서 빠져나왔다. 한 바퀴 회전한 뒤, 반대 방향으로 줄행랑을 쳐댔다.
‘와…씨! 되게 빠르네!’
강기찬의 눈에 보이는 것도 잠시, 보물 고블린이 어느새 콩알처럼 작게 보이더니 저 아예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도망쳐버렸다.
“와…….”
괜히 20년간 안 잡힌 게 아니었다.
잡기는커녕 쫓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공간이동만 막는다고 될 게 아니었던 것.
특수 몬스터라 그런지 레벨이 낮은데도 더 빨랐다.
“썬!”
- 써어어언!
썬을 보냈다.
금세 보물 고블린에 근접했다.
툭-
보물 고블린이 발을 찍더니 급격히 몸을 꺾어버렸다.
썬도 급하게 좌회전하려 했으나…….
쿵!
직진하던 힘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그 사이, 보물 고블린은 썬을 비웃으며 뛰어갔다.
썬은 장거리 이동에 유용할 뿐, 목표물을 추격하기엔 무리였다. 그것도 20년 술래잡기 장인 몬스터를 상대로는…….
이대로라면 답이 없었다.
공간이동을 막아서‘버려진 세계’에 가두면 뭐하나, 너무 넓어서 잡지 못하는데.
물론 계속 도전하다 보면 결국엔 잡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지금은 보물 고블린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지 않나.
보물 고블린을 잡아서 돈 버는 게 목적이다.
얼른 VIP 캐시 상점에 입장하고팠기에.
그런 점에서 빨리 잡아야 의미가 있었다.
아니면 차라리 다른 돈벌이 수단을 찾는 게 낫다. 보물 고블린을 언제 잡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니.
하나, 왠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있을 거 같은데…….’
항상 위기에서 기회를 찾았던 그였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보물 고블린을 잡지 못하는 걸, 역으로 이용해 돈을 버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
‘잠깐, 꼭 보물 고블린을 잡아서 돈 벌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물 고블린을‘잡아서’가 아니라 보물 고블린‘그 자체’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대강의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좋아, 한 번 해보자.’
바로 실천에 옮겼다.
도로‘이동한계선’을 넘어가‘버려진 세계’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보물 고블린을 소환했다.
‘버려진 세계’라는 감옥에서 도로 빼내온 것.
그런 까닭에 보물 고블린은 공간이동으로 즉각 도망쳤다.
그런데도 강기찬은 시큰둥했다.
저럴 줄 알았으니까.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보물 고블린을 소환합니다.]
강기찬이 다시 보물 고블린을 소환했다.
보물 고블린은 즉각 공간이동으로 도망쳤다.
그러자마자 바로 강기찬이 보물 고블린을 소환했다.
보물 고블린이 강기찬을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또다시 공간이동으로 도망쳤다.
강기찬이 또다시 보물 고블린을 소환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보물 고블린에게‘학습된 무기력’을 심어줄 때까지, 소환을 반복할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