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99화 (99/151)

99화

* *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강기찬의 나이 9살, 레벨 30.

강기찬이 고블린 전사 무리한테 쫓기는 와중이었다.

쫓기는 와중에도 틈틈이 공격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무리에서 튀어나오는 고블린 전사에겐 단검을 찍어버렸고.

가까워질 것 같으면 표창을 날려 견제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

양측의 간격이 넓어지고 있었다.

고블린 전사 무리가 작아져 보일 정도로.

‘내가 빨라졌어?’

정확히는 몰랐다.

자신이 빨라진 건지, 고블린 전사 무리가 느려진 건지.

… 아니면 둘 다인 건지.

어쨌든 확실한 건 하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 계속해서 간격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원인을 따져볼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스탯, 스킬, 장비……?’

이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요소.

그것들을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하나, 금방 답이 나왔다.

저것들이 아니라고.

저것들은 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바뀌었으면 바로 아는 것들이니.

즉, 그 어느 것도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

… 그렇게 결론이 지어졌다.

고블린 전사 무리와 많이 멀어졌다 싶을 즈음…….

뒤로 돌아섰다.

이제부턴 정방향을 보고 달려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느려졌네?’

자신의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게 체감되었다.

무거운 쇳덩이를 이고 가는 기분이랄까.

조금 지나고 차이점을 알 것 같았다.

왜 이동속도가 느려진 건지.

‘내가 앞으로 봐서?’

정방향을 보고 달리냐.

역방향을 보고 달리냐.

… 혹시 그 차이가 아닐까?

그것만이 이전과 지금의 명확한 변화였으니까.

추측만으로 끝내긴 찝찝했다.

이는 바로 실험해볼 만하지 않나.

이제와서 뒤로 뛰었다고 고블린 전사 무리한테 따라잡힐 거리도 아니었기에.

‘한 번 정도야… 어렵지도 않고…….’

마음먹자마자 곧바로 돌아섰다.

다시 고블린 전사 무리를 마주 보면서 뛰었다.

“!”

그러자마자 체감했다.

아까처럼 이동속도가 빨라졌다고.

역시 맞았다.

‘뒤로 뛰면 이동속도가 빨라지는구나.’

* * *

그때로부터 20년 후인 지금.

타탓- 타타타타!

강기찬은 주작길드원들과 마주 보고 뛰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 다 자동이네.’

하도 레전드스토리를 오래 하다 보니 이젠 상대의 움직임만 봐도 알았다. 상대의 옵션이 자동인지, 수동인지.

주작길드원들은 전부‘자동이동’ 중이었다.

그게 현명한 판단이기는 했다.

‘자동이동’ 중이면 아무리 오래 달려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지 강기찬을 표적 설정만 해놓으면 눈을 감아도 달릴 수 있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편리했다.

다만, ‘자동 & 수동 옵션’은 상황에 맞게 써야 했다.

편하다고 무작정‘자동 옵션’을 쓰면 곤란했다.

예전에 적진에 침투할 때, 은밀함을 위해 샛길로 가야 하는데 포장도로로 정직하게 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시스템이 판단컨대 그게 더 빠른 길이었을 테니까.

인공지능이라고 한들, 상황에 맞게 최선의 판단은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던 사건이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늦게나마 대처하긴 했다.

길드 채팅창을 통해 지령이 떨어진 건지,

‘수동으로 바꾸었네.’

주작길드원들이 전부 일제히‘수동 옵션’으로 바뀌었다.

‘그래 봤자지…….’

강기찬은 확신했다.

주작길드원들은 절대 자신을 못 따라잡을 거라고.

‘애초에 ‘자동 & 수동 옵션’의 문제가 아닌데.’

강기찬은 뒤로 뛰는 도중에는‘상대방의 이동속도의 두 배’였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20년 전, 레전드스토리 오픈 초창기부터 이런 행위를 해왔음에도 이걸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강기찬뿐이었다.

실제로 이를 목격한 이들도 많았고, 심지어 이를 주제로 게임 기사에 뜬 적도, 레전드스토리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음에도.

물론, 꽤 많은 이들이 따라 하려 했었다.

강기찬이 뒤로 뛰었음에도 잘도 뛰어다녔으니까.

하지만, 따라 한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동 옵션’만 조건이 아니었기에.

그 외의 조건이 더 있었기에.

1. 쫓기는 상황일 것.

2. 상대를 마주 보고 있을 것.

2번 조건까지 갈 것도 없었다.

1번 조건에서 다 걸러졌기에.

미치지 않고서야 쫓기는 상황일 때 뒤로 뛰지 않는다. 정방향으로 전력 질주해도 무사히 달아날지 미지수인데…….

결과적으로, 모든 이들이‘쫓기는 상황’이 아니라‘평상시’에 따라 하려 했기 때문에 강기찬처럼 하지 못했다.

‘나도 이 조건들을 다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었지.’

강기찬 또한 이 사실들을 알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보통 히든 스킬 등을 발견하면 관련 정보에 대해 시스템 메시지가 뜨기 마련이다.

반면, 이건 발견하고 난 뒤에도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해보았음에도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었다. 뒷걸음질 치다가 얻어걸린 격이니.

하나, 원할 때 즉석에서 쓰고 싶었다.

그러려면 상세한 사용 조건을 아는 게 필수였다.

고로, 직접 실험을 통해 터득해야 했다.

처음 이걸 알고 난 뒤에 재차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하나,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애썼다.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깨졌다.

그래도 한 번은 얻어걸리기라도 해보았던 경험이 주효했다. 덕분에 차차 조건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뒤로 뛰어도 넘어지질 않게 해주는구나!’

보정 효과로 인해 뒤로 뛰어도 넘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앞으로 뛰는 것 같달까.

절대 균형감각이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빠르다 한들, 넘어지면 의미가 없는데 그렇지 않으니 좋았따.

대박이었다.

이런 게 더 없나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 법칙 외에 다른 법칙이 많다는 것 또한 알았고 그것들을 종종 찾아냈다.

강기찬이 남들보다 조금 늦게 레전드스토리를 시작했고, 또 남들은 자면서도 자동사냥, 자동이동, 자동충전 등등을 함에도 그들을 뛰어넘고 랭킹 1위가 될 수 있는 비결 중의 하나였다.

물론, 강기찬도 돈이 좀 생긴 뒤에는‘자동 옵션’ 월정액 가입했다. 자고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자동사냥 돌려야지.

* * *

강기찬은 자신을 쫓는 주작길드원들 중, 선두의 한 명만 콕 짚고 마주 보고 있었다.

그렇게만 해도 따라잡히지 않았다.

다만, 주작길드원들이 스킬을 쓰다 보니 종종 선두가 달라져 시선을 옮기는 수고는 해야 했지만, 그거야 쉬웠다.

정말 까다로운 것은 후방이었다.

절대 균형감각이 유지되어 뒤로 뛰어도 넘어지질 않았지만, 그거야 문자 그대로‘균형감각’이었다.

경사면 모를까, 돌부리, 계단…….

뒤에 장애물이 있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여긴 현대 사회이다 보니 자동차까지 신경 써야 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주작길드원을 마주 보지 못하지 않나. ‘상대방의 이동속도의 두 배’가 중단될 터. 그렇게 될 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다.

그렇다고 앞만 보기도, 잠깐이나마 뒤도 보기도 난감했다.

그것이 이걸 자주 쓰지 못했던 이유였다.

이번엔 다행히 해결책이 있었다.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을 활성화했습니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 봅니다.]

천공의 눈을 통해 뒤를 볼 수 있었다.

뒤에 장애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천공의 눈은 눈을 감아야 하지 않나.

뒤로 뛰기는 주작길드원과 마주 보고 있어야 했고.

이는 한쪽 눈만 감으면 되었다.

정말 딱 절반만 보였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다.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했기도 하고.

그때였다.

[썬] 써-어어언!

썬이 신호를 알려왔다.

이제 술래잡기 그만하라고.

[강기찬] 알았어!

강기찬이 귀환을 포기하고 출구를 향해 처음 뛰기 시작할 때, 썬을 소환해 앞서 보내지 않았나.

‘위치 바꾸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귀환 다음으로는 그것만큼 괜찮은 장거리 공간이동이 없었기에.

그러기 위해서 썬이 멀리 가야만 했다.

그때를 기다리며 술래잡기를 한 거고.

겸사겸사‘뒤로 뛰기’와‘천공의 눈’을 동시에 쓰는 실전 연습도 했기에 남는 장사였다.

‘이제 이별해야 할 시간이네.’

주작길드원들과 술래잡기도 여기까지였다.

지금, 멀리 갔다는 대답을 들었다.

더 지체할 거 없었다.

‘위치 바꾸기’를 사용하려던 찰나.

‘음?’

맵핵에 의외의 인물이 찍혀 있었다.

‘저 이름… 주작길드 부길드장 아닌가?’

자신의 근처에서 정지하고 있는 게, 수상쩍었다.

‘빨리도 왔네.’

아무래도 길을 돌아서 온 거지 싶었다.

이 저택의 경로를 익히 알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기다렸다가 내 뒤를 급습하려고?’

수가 뻔히 읽혔다.

‘오냐, 좀 놀아주지. 내가 떠나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봐봐.’

강기찬이 외쳤다.

“공간이동!”

그게 소환 주문이라도 된 걸까?

갑자기 부길드장이 뛰쳐나와 강기찬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강기찬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썬과 ‘위치 바꾸기’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강기찬이 있던 자리에는 썬이 나타났다.

한발 늦은 부길드장은 강기찬 대신 썬을 붙잡았고…

지지지-- -- 지지짓! 지지지지직!

… 감전되었다.

“뭐… 뭔!”

부길드장은 감전되긴 했지만, 치명상은 피했다. 썬의 레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 망할 새는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도주자’가 공간이동으로 도망치기 전에 잡으려고 급하게 뛰쳐나온 거다. 그렇게 몸을 날렸는데도 ‘도주자’는 홀연히 떠나버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서 뜬금없이 나타난 새.

“근데 어디서 본 새 같은데? 최근에 봤던 거 같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건 중요치 않고… 오냐 너 잘 만났다!”

대충 몇 대 쥐어패면서 화풀이한 뒤에 생포하려 했다.

‘그 자식의 애완동물일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날개부터 꺾어놔야겠네.’

부길드장이 칼로 썬을 내리치기 직전!

- 써오-오온!

썬이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이에, 부길드장은 심히 당혹스러웠다.

‘뭐… 뭐지?’

아직 공격 전이었다.

그런데 저 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스스로 바닥에 처박혔다.

워낙 어이가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가 본 게 환각이 아닌 것을 확인하려고 하듯.

“얘 왜 이러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주작길드원들도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당최 왜 저 새가 저런‘생쇼’를 하는지 몰랐다.

하나,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게 아니었다.

[강기찬] 썬, 부길드장이 감전시키고, 널 때리려거든 맞지 않고도 맞은 것처럼 비참하게 쓰러지는 연기를 해!

강기찬이 그러라고 시켰다.

이 사실을 모르는 현장의 모두가 바닥에 엎어진 썬을 보았다.

썬은 마치 치명상이라도 입은 듯, 여전히 쓰러져서 골골대고 있었다.

- 써오-오온!

누가 봐도 가엾게 여길 만큼 가냘픈 울음소리와 함께…….

그때였다.

“음?”

부길드장이 썬에게서 시선을 떼 어딘가를 보았다. 다른 주작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

“매…, 맹인검객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무기를 고쳐잡았다.

그러나 맹인검객의 살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으- 으으윽!”

“으아아악!”

…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갔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바로 부길드장이었다.

“건방지구나.”

“뭐?”

맹인검객이 썬을 가리켰다.

“그분의 애완동물을… 감히 공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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