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이러면 곤란한데…….”
강기찬이 또 귀환 스킬을 발동시키며 말했다.
“당신이 가버리면 저도 곤란합니다만?”
부길드장은 곧장 강기찬의 귀환을 끊어버렸다.
직후 정색했다.
강기찬이 또다시 귀환 스킬을 발동시킨 게 아닌가?
“!”
부길드장이 급히 귀환을 끊어버렸다.
강기찬은 포기를 몰랐다.
또 귀환 스킬을 발동시켰고… 또 취소당했다.
‘… 소름이 돋는구먼. 저런 식으로 귀환 도발을 하다니……!’
강기찬이 상냥하게 물었다.
“나 그냥 보내주면 안 될까?”
“아뇨,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자신과 주은이 대화하는 걸 다 듣지 않았나.
늦어도 길드전이 끝날 때까지는 잡아두고자 했다.
부길드장의 말에 강기찬이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 억울하네. 내가 먼저 와서 식사하고 있었잖아? 그러면 너희들이 딴 데 가서 얘기하던가. 아니면 자리 좀 비켜달라고 양해를 구하던가. 내가 있는데도 멋대로 입 나불거려놓고선 나보고 들었으니까 비밀유지를 명목으로 감금시키겠다? 내 말이 맞아?”
부길드장은 강기찬의 말을 씹었다.
대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주은에게 물었다.
“이 사람 뭘 믿고 이렇게 깝죽거리는 겁니까?”
주은이 묵묵부답이자 부길드장이 인상을 구겼다.
“당신 외의 인간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부길드장은 불쾌감을 내비쳤다.
자신은 어디 가서 빠지는 유저가 아니었다.
엄연히 길드장 자리를 노릴 자격이 되는 수준이었다.
눈치가 있다면 자신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지 않나.
그런 자신에게 저렇게 대들다니?
저 자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강기찬은 결심했다.
‘귀찮지만, 직접 움직여야겠네.’
귀환이면 10초만 부동자세로 기다리면 집으로 공간 이동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번번이 방해를 받으면서도 고집스럽게 귀환을 고집했었다.
하지만, 귀환을 시도할 때마다 방해받고 또 말로 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체념할 수밖에.
이로써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저벅…….
강기찬이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썬! 출발해!”
썬도 소환해 앞서 보냈다.
이를 본 부길드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도주를 포기하지 않았다니… 대단한 집념이군요. 웬만하면 조용히 넘어가려 했건만…….”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길드원들에게 턱짓했다.
“그쪽이 조용히 있어 주질 않으니, 무력으로 진압하는 수밖에.”
부길드장의 무언의 명령을 받은 길드원들이 앞다퉈 강기찬을 향해 쏘아졌다.
‘그쪽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잘못 걸렸어… 나는 주작길드 부길드장이자, 장차 길드장이 될 몸이라고!’
곧바로 잡아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강제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겨 정체를 알아낼 요량이었다.
부길드장은 기다릴 겸 강기찬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선 주은에게 나긋하게 물었다.
“자… 주은 마스터, 아까 하다만 얘기부터 마무리 지어볼까요?”
주은은 순순히 앉으려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이를 본 부길드장도 덩달아 눈길을 옮겼다.
“!”
그렇게 본 광경은 의아함이 가득했다.
‘아직 못 잡았어?’
진작 상대를 포박하고 끌고 왔어야 할 시간이다.
한데 그러기는커녕 아직 잡지 못한 것 같았다. 이쪽으로 돌아오지를 않고 등만 내보이고 있었기에.
이건 길드원들이 느린 게 아니다.
‘도주자’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거지.
‘저 자식은 대체…….’
부길드장은 한숨을 쉬다가 얼핏 주은을 보았다.
이 사태를 보고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 마스터, 당신은 무언가 알고 있죠?”
그 물음에 주은은 태평하게 대답했다.
“무언가 알고 있다기보다는… 실은, 쟤가 나보다 빨랐거든.”
“뭐? 당신보다? 당신보다 이동속도가 빨랐단 말입니까?”
그리 놀라며 주은과 강기찬이 뛰어간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저 자식이 9,000레벨이 넘는다는 거야 뭐야?”
“9,000레벨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
“뭐? 9,000레벨? 한국에 9,000레벨 이상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잘 알지, 몇 명 안 된다는 거……. 근데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지.”
“…….”
“하나는 확실해. 신규 유저라는 거…….”
“예-에? 신규 유저라고요? 지금 장난치십니까?”
길드원들은 10년간 쌓아온 스킬 레벨로 달리는 거다.
그런 세월이 무색하게 저 자는 유저가 된 지 5일 만에 8,000레벨 이상의 유저들보다 빠르다는 거 아닌가?
“흥미가 생기는군요…….”
부길드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쩌려고?”
주은의 물음에 부길드장이 대답했다.
“지켜보다가 정 안 될 것 같으면 제가 가서 잡아 와야지요…….”
안 그래도 내보내지 않으려 했는데, 하는 짓을 보아하니 이대로, 밖에 내보냈다간 무슨 사고를 쳐도 칠 것 같았다.
부길드장은 신속히 이동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길드원들이 보였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야… 저게…….’
정체불명의 사내가 뛰는 폼이 이상하다?
아주 많이…….
‘어떻게 저런…….’
방금,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미친 듯이 귀환을 시도했던 것. 그 점만 특이했던 게 아니었다.
아니, 그건 점잖은 행위였다.
‘저것’에 비해선…….
‘저… 저저 미… 미친 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 * *
강기찬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를 뒤쫓는 길드원들만 100여 명, 전부 8,000레벨 이상이었다.
반면 강기찬의 현 암살자 레벨은 6,000이었다.
2,000레벨 차이, 레벨 격차가 나도 너무 났다.
… 그런데도 강기찬과의 간격을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 사실조차 모르기에 길드원들은 더더욱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상대가 빨라서가 아니다. 정체를 모르지 않나. 레벨이 높을 수도 있으니 빠를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핵심은 레벨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레벨이 중요치 않았다.
왜냐?
‘뒤로 뛰다니!’
그랬다.
강기찬은 뒤로 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길드원들과 마주 보고.
물론, ‘같은 방향’으로.
레벨이 높은 것과 뒤로 뛰는 건 별개의 문제다.
뒤로 뛰는데 앞으로 뛰는 이들보다 더 빠르다.
이게 모순이라는 거다.
‘왜 뒤로 뛰는 거지?’
뒤로 뛰는 것.
평소에 안 하는 사람은 평생 안 하는 행위다.
그런 걸 도주하면서 한다?
‘뒤로 뛰면 더 빨라지는 건가?’
뒤로 뛰면 더 빨라진다.
그래야만 저 행동이 당위성을 얻게 될 터.
하지만, 그래도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 스킬인가?’
스킬이냐 아니냐…….
스킬일 것이다.
스킬로 못 따라잡는 걸 보면 스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처음 보는 스킬이라는 게 문제다.
뒤로 뛰어야만 하는 스킬이라니?
아니다.
‘저거… 어디선가 봤는데…….’
워낙 특이했지만,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다.
한데 이런 기이한 광경을 예전에도 본 것 같았다.
누군가 길드 채팅창에 외쳤다.
[영찬] 강기찬!
뒤로 뛰는 것.
대격변 전인, 10년도 더 전에 레전드스토리 랭킹 1위였던 강기찬이 저렇게 뒤로 뛰었던 적이 있었다.
[김두식] 뭐라고? 강기찬 뭐?
[나영수] 저 자식 강기찬이야!
[신동식] 에라이 미친놈아, 뭔 강기찬이야!
몇몇이 속으로 강기찬을 떠올렸지만, 욕설에 퍼뜩 정신 차렸다.
[박가현] 강기찬일 리가 없지!
[신동식] 맞아, 걔 못 걷잖아!
강기찬은 다리 고친 이후로 타인에게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짓밟아버리기에 충분했다.
[나영수] 하긴… 저렇게 잘 뛰는데 강기찬일 수가 없지.
[최유하] 그럼, 도대체 누구야?
유저 중에서 뒤로 뛰는 건, 강기찬 밖에 못 보았지만, 강기찬이 아닐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호기심이 증폭되어갔다.
[주찬혁] 어쨌든 강기찬하고 같은 스킬인 건 분명하지.
다른 건 다 부정해도 이것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게 있기에.
[나문식] 맞아, 뒤로 뛰는데 안 넘어지고 있잖아.
바로 안정적인 균형감각.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뒤로 뛰는데 앞으로 뛰는 것 같은 균형감각을 자랑했다.
속도와 균형감각, 둘 다 놓치지 않는 스킬!
정말 탐이 났다.
동시에 희망이 생겼다.
저 스킬이 고유 스킬이 아니라는 것!
예전에 강기찬만 저 스킬을 쓰지 않았나.
어언 10년, 그리고 대격변 이후의 10년까지.
제삼자가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단 한 명만, 한 번밖에 얻을 수 없는‘고유 스킬’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보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고유 스킬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도 얻을 수 있다!
… 라고 착각들 하는 중이었다.
다 틀렸다.
저거? 고유 스킬은커녕 스킬조차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따라 하려고 하면 저들도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자동 옵션’이었으니까.
* * *
레전드스토리에는 자동과 수동…
그리고 반자동 옵션이 있다.
자동 옵션에는‘자동사냥, 자동이동, 자동충전’ 등등이 있다.
시스템이 알아서 몸을 움직여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강점은 이것이었다.
레전드스토리에서 로그아웃을 했을 때, 자고 있을 때도 자동사냥을 통해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그렇기에 매달 일정 금액을 내야만 했다.
그런데도 모두가 흔쾌히 돈을 질렀다.
대다수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지 않았으니까.
가상현실 접속 기기는 당시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그걸 사서 하는 자들인데 자동 옵션 월정액?
평소 하던 소비 축에도 못 끼었다.
반면, 강기찬은 아니었다.
레전드스토리에 처음 접속했을 때가 9살이었다.
고아인 데다 일할 수도 없는 나이.
돈이 없을 수밖에.
그런 까닭에 고물상에서‘고철’ 가상현실 접속 기기를 구해서 직접 고치지 않았나.
물론, 가상현실 접속 기기와 비교하자면 자동 옵션은 많이 저렴한 편이었다. 문제는 그래봤자 강기찬의 기준에선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쌌다는 거지만.
… 수동 옵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남들이 자동 옵션 쓰는 게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돈 내줄 테니 자동 옵션 쓰라고 해도 사양했을 것이다.
왜냐고?
그 시절의 강기찬은 게임을 즐겼다.
순수하게 걷고 뛰고 뒹구는 게 좋았다.
그런 그에게 있어 자동 옵션이란, ‘굳이 돈을 들여서 재미를 빼앗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걷고 뛰는 게 익숙해질 무렵.
그러니까 남들보다 잘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을 무렵엔 자동 옵션을 쓰는 자들이 부러웠었다.
레전드스토리에 접속하지 않아도 자신보다 레벨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떤 사건으로 인해 부럽지 않게 되었다.
강기찬이 30레벨일 때였다.
그때 깨달았다.
레전드스토리는 수동 유저, 그러니까‘무과금러’를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과금러를 역차별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