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96화 (96/151)

96화

주은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맹인검객이 암살하러 왔을 때보다 더.

그땐 위기가 닥쳤지만, 위협을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건 위기가 안 닥쳤음에도 충격이었다.

희망이 무너졌으니까.

몇 달간 대마법사로 전직할 수가 없다니? 대마법사만 육성하면 청용 등을 견제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 원흉이 코앞에 있었다.

“네가 하인스를 죽였다고?”

“그렇다니까.”

강기찬이 NPC하인스를 죽여서 부활 대기 상태란다.

일명, ‘유체이탈 - 사망자의 시점’

NPC하인스가 유령이라 현실에 어떤 영향력도 못 미치는 상태. 대마법사 전직도 못 시켜준다는 의미다.

“아, 아니지? 장난친 거라고 해줘.”

이 자의 말만 믿을 수는 없다.

사실 여부는 모른다.

그렇지만, 장난친 거라는 대답을 듣고팠다.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건 이 자의 말뿐이니까.

하나, 강기찬은 고개를 저었다.

“장난은 무슨, 진지한데.”

“말이 안 되잖아!”

단순한 현실부정이 아니다.

이 자가 NPC하인스를 죽였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네가 NPC하인스를 죽일 급이 돼?”

“되니까 죽였지.”

“고객센터에 확인해본다?”

“그러던지.”

주은은‘레전드스토리 고객센터’에 문의를 남겼다.

정말 NPC하인스가 사망했는지에 대해서.

한편, 강기찬이 바깥을 쳐다보았다.

“슬슬 이동하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어디로?”

“그건 네가 정해야지.”

“집으로.”

“그래라.”

“너도 따라와?”

“아니, 그럴 것까지야. 저 애들만 추가로 붙여둘게.”

“아, 아니. 너도 와.”

“뭐?”

“내가 저 몬스터만 믿고 어떻게 안심해?”

“저 몬스터만 믿어도 돼. 내가 따라가는 건 의미 없어. 나 물몸이라니까?”

“어쨌든 저 몬스터를 조종하는 건 너잖아? 혹시 모르니까, 따라와.”

“추가 요금 붙어.”

“괜찮아.”

‘낼 돈도 없는 게…….’

강기찬은 서비스라는 마음으로 따라가 주기로 했다.

적당히 안전하다는 확신을 준 뒤에 떠나면 되니까.

‘간 김에 비싼 밥이나 얻어먹자.’

두 사람은 카페를 벗어났다.

꽤 멀리 떨어졌음에도 주은은 계속 뒤를 의식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강기찬이 물었다.

“그렇게 불안하냐?”

“그래, 안 그렇겠냐?”

“맹인검객이 적대관계로 설정되어있어서 맵에 표식이 뜬다며?”

“그래도… 언제 갑자기 나타날지는 모르니까.”

“내 애들이 아직 잘 막아주고 있어.”

“휴… 어! 잠깐… 너?!”

주은이 강기찬을 휙 돌아보았다.

“야, 그러면 너……!”

“?”

“하인스가 몇 달간 이 세계에 못 오는 거 알면서도‘대마법사의 증표’하고‘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팔았다는 거네……!”

“어, 왜? 그럴 수도 있지. 못 쓰는 걸 준 것도 아니고 나중에 쓸 수 있잖아?”

“내가 당장 급한 거 알았잖아! 말이라도 해주지!”

“나도 돈이 급했어. 말해주면 안 살 수도 있는데 굳이?”

“이 사기꾼!”

“사돈 남말하네? 사기 쌤쌤이야.”

“결과적으로 나는 사기 안 쳤잖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사기 못 친 거지. 안 친 거냐?”

“개새…….”

“그러게 왜 나한테 들켜서는…….”

주은이 이를 갈았다.

이에 강기찬이 경고했다.

“야, 다 좋은데, 때리지는 마라. 때리면 나 죽어. 한 방 뜰 거야.”

“아……!”

강기찬의 경고에 주은은 올린 손을 내렸다.

자신보다‘연약한’ 경호원(?)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 *

“들어와.”

주은의 저택은 으리으리했다.

여느 부잣집처럼 대문을 지나니 잔디가 깔려 있고‘도로’ 수준의 진입로가 있었다. 길을 따라 몇백 미터를 더 들어가고 나서야 저 멀리 하얀 건물이 보였다.

대학교 건물로 오해할 정도로……. 크고 넓고… 탑인 줄 알 정도로 높았다.

‘경석 집안보다 더하네…….’

하긴, 경석 집안은 200위 길드다.

주은은 4위 길드고.

‘대마법사의 증표’를 3천억 원에,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1조 원에 분할납부하기로 했다.

게다가 하루 1억의 경호비까지…….

주은의 재력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창밖을 내다보다 강기찬이 물었다.

“혼자 살아?”

“시녀들이랑 집사도 있어. 아! 요리사랑 청소부 아줌마도…….”

“음…….”

강기찬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말한 의도가 빗나갔기에.

“가족은 없냐고 물은 건데…….”

“아, 없어. 고아야.”

주은이 곧이곧대로 듣는 경향이 있지 싶었다.

경석도 그랬었던 걸 보면…….

‘잘 사는 사람은 다 이렇구나… 남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돌려 말하기를 할 필요도 없으니까, 직설화법을 쓰고 들을 때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만간 자신도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을 테지만,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기에, 저런 성격을 가지진 못할 것이다.

“너는?”

주은이 물었다.

“나도.”

강기찬도 고아였다.

주은이 물었다.

“… 라면 먹을래?”

“라면?”

“왜 싫어?”

“아니, 여긴 좀 맛있는 거 없나?”

“나는 항상 그런 것만 먹어서, 입에 물려. 1년에 대여섯 번 정도는 라면 먹어줘야지.”

“아, 뭐 네가 먹고 싶은 거로 해.”

먹는 거로 고집 피울 건 없었다.

집주인 마음이지.

그래도 좀 씁쓸했다.

‘누구는 5일 동안 라면만 먹은 적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그리고 다리 고치느라 전재산 탕진했을 때.

형편이 어려울 땐 라면이 주식이었다.

당연히 거부감부터 드는 음식.

대격변 이후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 중이었다.

반면, 이 여자는 그 반대였다.

하도 비싸고 귀한, 맛난 음식만 먹다 보니 오히려‘별식’으로 라면을 먹는단다.

‘나도 다리만 이렇지 않았어도…….’

10년 전, 대격변.

다리만 괜찮았어도‘라면만 5일 먹어야 하는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회귀 이후의 내 삶에선 그런 적은 없다고 자서전에 쓰겠네…….’

1만 레벨이 된다고 바로 회귀하진 않을 거다.

하나, 언젠가 회귀하더라도 라면은 안 먹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도…….

“넌 다른 거 먹을래? 그래도 돼.”

“어, 나는 네가 평소에 먹던 거 먹어보고 싶은데?”

“좋아.”

끼-이이익!

고급 외제차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승차감이 워낙 좋아서 기분 좋게 내릴 수 있었다.

저택으로 들어서자 주은의 고용인들이 줄지어 나와 대기 중이었다.

대략 50명… 아니 그 이상인가?

집사들이 허리 굽혀 환영 인사를 전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잘들 있었어? 별일은 없고.”

“예.”

“옆에 분은?”

“손님, 귀한 분이니까, 잘 모셔야 해. 제일 큰 방으로 드려.”

“알겠습니다. 식사 준비는 되었습니다.”

주은이 전동 킥보드를 내밀었다.

“집 안이 좀 넓어서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이거 타고 다녀.”

“그, 그래?”

“너도 이거 타고 쫓아와.”

“너는?”

“나는 직접 뛰는 게 더 빨라. 내가 암살자 순위가 1등이거든.”

“암살자 순위가 1등이라…….”

강기찬은 입맛이 썼다.

또 다리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다리만 이렇지 않았어도 암살자 순위 1등은 주은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테니까.

주은이 땅을 박차고 쏘아졌다.

강기찬도‘거의’ 동시에 뛰었다.

[헤이스트]

[스피드업]

[슬라이드 스텝]

[마찰 저항]

[넘어짐 방지]

.

.

각종 이동속도 항상 버프를 걸고선,

[대시]

[부스터]

--- 급발진했다.

여기까진 주은 또한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것들.

아니, 주은은 추가로 더 많은 버프를 걸었을 터.

누구든 따라잡기 버거웠다.

그런데,

‘?’

주은이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그때쯤이었다.

후방에서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틀어졌기에.

고개를 돌리는 찰나,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강기찬.

“!”

주은이 멈추자 강기찬도 멈춰 섰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뭐해? 안내해.”

“너 뭐야? 어떻게 날 따라잡… 아니, 제쳤냐고?!”

주은의 의문은 자연스러웠다.

국내에선 청용 외엔 자신을 제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한국 유저협회 회장, 나병건은 논외고.

무엇보다,

“너 네크로맨서잖아!”

“어.”

네크로맨서가 자신을 제쳤다는 게 충격이었다.

물론 네크로맨서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네크로맨서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동속도가 빠를 수 없었다.

네크로맨서의‘하위호환’인‘테이머’도 그랬기에.

마법사, 궁수, 네크로맨서까지…….

본신의 힘으로 싸우지 않는 직업의 공통점이었다.

이동속도가 느린 것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가 있지?”

주은은 강기찬에게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여겼다. ’

네크로맨서로 암살자 1위보다 빠를 수 있는 비법?

만약 그 정보도 판다면 살 의향은 있었다.

그럴 돈이 없는 게 문제지.

그래도 찔러는 본다.

“… 가르쳐 줘.”

“응, 못 가르쳐 줘.”

“역시 무언가 있구나.”

주은의 추측이 맞았다.

강기찬만의 비법이 있었다.

강기찬이 대답했다.

“너 돈도 없잖아.”

“돈 아니면 못 가르쳐줘?”

“아니, 돈 있어도 못 가르쳐줘.”

“왜? 너 돈에 환장한 거 아니야?”

“맞긴 맞는데…….”

강기찬은 생각했다.

‘내 노하우까지 팔 정도로 돈에 궁핍한 건 아니니까.’

VIP 캐시 상점 입장료는 다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마법사의 증표 판매액 : 300,000,000,000원]

[‘질문비’ : 4,000,000원]

[VIP 캐시 상점 입장료 : 949,004,000,000 / 1,000,000,000,000원]

테스트서버에 첫 접속 후, 오늘로 5일째.

초단기간에 9,490억여 원을 벌었다.

남은 510억여 원쯤이야… 오래 걸리지 않을 터.

그리고 1조 원 내고 0원부터 시작해도 괜찮았다.

VIP 캐시 상점이 없어도 돈 왕창 벌 수 있다.

이젠 VIP 캐시 상점까지 있으니…….

따라서 앞으로도 돈 때문에‘최고급 노하우’를 팔 일은 없을 것이다.

장담한다.

‘돈 때문에 노하우를 파는 건,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이면 충분하지.’

사실,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 즉‘초저화질을 통한 어둠 속을 꿰뚫는 방법’을 판 이유는 간단했다.

실전에선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나 쓸모 있지, 현실에선 그냥 어두우면 불 밝히면 되잖아.’

초저화질로 어둠만 걷히면 모를까, 상대의 무기나 스킬도 안 보일 우려가 있다.

반면, ‘최고급 노하우’는 자신보다 무려 3천 레벨이 더 높은 주은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이동기’ 한정이었지만, 레벨만 따라잡으면‘공격기’측면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 쩝…….”

주은도 땡강 부린다고 될 게 아님을 알아서 별말 안 했다.

강기찬을 홀릴 만한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현듯 입맛이 썼다.

‘에휴, 무언가 손해 본 기분이란 말이지.’

‘대마법사의 증표’와‘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산 것.

잘한 일이다.

NPC하인스가 사망해 차질이 생겼지만, 부활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니.

그런데 왜일까, 이 불길함은?

그때였다.

띠링!

NPC하인스가 사망했는지에 대해서 문의를 남기지 않았나.

고객센터에서 답변이 왔다.

답변을 읽어내려가는 주은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