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무슨 개소리?
강기찬은 어이가 없었다.
백령과 맹인검객이 멀찍이서 경호 중이지 않나.
그런데 저들이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고?
주은은 정반대로 착각하고 있다.
이해는 갔다.
그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모르니 착각할 수밖에.
또 의심할 법한 상황이니까.
‘백령은 몰라도 맹인검객이 누군가의 뒤를 밟는다? 그건 곧 암살하겠다는 전조증상이지. 착각할 만해.’
‘그나저나 이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분명 백령과 맹인검객은 거리 두기를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리다니.
‘과연 한국 랭킹 4위는 4위인가?’
한편, 주은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 저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저와 대화하는 척하는 게 좋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끼면 백령과 맹인검객이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 네…….”
강기찬은 굳이 오해를 풀려 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하게 말한다 한들, 믿을지도 의문이고. 그렇게까지 수고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오해를 풀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해 푸는 건 오히려 손해지.’
오해를 풀려면 자신과 백령 & 맹인검객의 관계부터 이실직고해야 했다. 비밀이라면 비밀인데 유출되어서 좋을 거 하나 없었다.
또한, 기껏 얼굴과 몸을 꽁꽁 싸매고 온 게 헛짓거리가 될 테니.
‘착각하게 놔두자.’
어차피 백령 & 맹인검객은 자신이 오라고 하지 않는 한, 안 온다. 강기찬과 둘의 관계가 들킬 리 만무.
주은과는 이렇게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거래를 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그러한 생각에 잠긴 건 강기찬만이 아니었다.
주은도 빠르게 두뇌 회전을 하는 중이었다.
‘백령과 맹인검객은 대체 여기 왜 온 거지?’
실은, 강기찬에게 거짓말했다.
백령과 맹인검객이 멀리서 감시 중인 거야 맞다.
하지만, 저들의 목적은 몰랐다.
강기찬에게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거라고 했지만, 실상은,
‘역시… 내 목숨을 노리는 게 맞겠지?’
강기찬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거라고 보았다.
‘그게 맞지, 판매자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강기찬이 본인을 신규유저라고 소개했다.
물론 대마법사의 증표도 있고‘대마법사가 되는 방법’도 아는, 인간이긴 했다.
하지만, 정황상 백령과 맹인검객은 강기찬의 가치에 대해 모른다. 아니, 알아도 그게 우선순위는 아닐 터.
그만한 정황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용.’
청용이 저 둘을 보냈다 여겼기에.
청용이 백호 길드를 흡수해 통합하지 않았나.
다음은 주작길드와 현무길드일 터.
즉, 맹인검객을 고용해 자신을 암살하라 했을 터.
백령은, 청용에게 투항하고 밑으로 들어갔다고 보았다.
‘맹인검객으로도 될걸, 백령까지 둘이나 보낸 건 현기현도 있다는 걸 알았다는 거군.’
맹인검객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백령까지 동원한 까닭?
현무길드장 현기현까지 동시에 제거하기 위함이리라.
제아무리 맹인검객이라도 혼자서 떨어져 있는 둘을 동시에 제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을 테니.
‘비열한 자식, 정정당당하게 전면전으로 대결할 것이지 치사하게 암살을 하려 하다니…….’
돌이켜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긴, 백호 길드도 ‘길드석’만 깨뜨려 무너뜨렸다지? 얼마나 길드전이 자신이 없었으면. 1위답지 못한 짓만 골라서 하는 건지…….’
그러고 보면,
‘하… 누굴 탓하랴, 내가 알아서 덫에 빠진 거지.’
사실, 이런 환경을 제공한 건 본인들이었다.
청용 처지에선 동시에 두 길드를 상대해야 했을 터. 부득이하게 전력을 나눠야 해서 곤란했을 것이다.
한데, 자신과 현기현이 자진해서 부하들을 다 떼어놓고 시내로 나왔으니, 절호의 기회로 보일 수밖에.
‘근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정보가 샌 거지? 휴가까지 내고, 부하들에게 일절 말 안 하고 은밀하게 움직인 건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나중에, 어디서, 누구에게서 정보가 새어나간 건지 파악해야겠네. 누구든지 걸리면 가만두지 않는다!’
상념을 털어내고 강기찬을 쳐다보았다.
‘그쪽에겐 미안하게 됐네.’
강기찬에게‘백령 & 맹인검객이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거짓말한 이유?
강기찬이‘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너무 비싸게 팔려고 하지 않았나.
10조 원.
물론 향후 가치 창출을 고려하면 저렴하다.
하나, 그만한 돈을 지급하면 재정적으로 너무 위태로워질 터.
그런 까닭에 없는 위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 위험에서 구해주겠다는 명분으로‘공짜’로‘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게끔.
그런데 더 욕심이 생겼다.
‘대마법사의 증표도 공짜로 챙겨야겠다. 목숨이 걸린 문젠데 공짜로 안 넘기고 배기겠어? 신규유저 주제에?’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도덕이고 인성이고 다 내팽개쳐버렸다.
그때였다.
“백령과 맹인검객이 제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신 거죠?”
강기찬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두 분 다 랭커 아닙니까, 특히 맹인검객은 세계적인 암살자인데… 미행을 해도 완벽했을 겁니다. 그걸 당신이 꿰뚫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강기찬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주은은…
‘이걸 솔직하게 알려줘야 해, 말아야 해?’
깊이 고민했다.
앞으로의 관계를 따지자면 의문을 해소해주는 게 나았다.
의심하고 있지 않나.
‘어차피 지금은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알아내지는 못해. 살려주는 대가로 받기로 했으니까, 공짜로 정보를 알아내려면 내가 이자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해…….’
한 치의 의혹이 생기면 나중에 못 볼지도 몰랐다.
그래서 솔직하게 알려주기로 했다.
신뢰도 심을 겸.
“아무래도 제 정체부터 밝혀야겠군요. 저는 주은입니다.”
“아, 그래요?”
강기찬의 무미건조한 음성에 주은이 놀랐다.
예상했던 반응과는 너무 달라서.
‘… 별로 안 놀라네? 아… 내 이름만으로는 내가 주작길드장인지 단박에 알지 못한 건가? 뭐, 괜찮아.’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서 얼굴을 공개하기엔 보는 눈이 많고… 그러니 제 신원보증은 이걸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은이 테이블 위에 제 신분증을 얹고선 쭉 밀었다.
“전 이런 사람입니다.”
강기찬은 주은의 신분증을 보고도 무덤덤했다.
진작 주은인 걸 알았고, 주은도 주은인 걸 밝혔는데 신분증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 이 사실을 모르는 주은으로선 맥이 빠졌다.
“… 별로 안 놀라시는군요?”
“아까 이름을 밝히셨을 때 놀랐습니다.”
그때도 안 놀랐으면서…….
주은이 말했다.
“제가 어떻게 백령과 맹인검객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저와 그 두 사람은 적대 길드와 적대관계로 설정되어있습니다. 그럴 때 맵에 표식이 뜨죠.”
“아, 그래서…….”
“네…….”
“그런데 저들이 왜 저를 노릴까요? 저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데…….”
“대마법사의 증표 냄새를 맡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백령은 지금 도망자 신세인 것 같고, 맹인검객은 원래 돈에 미친 자입니다. 그 둘에게 대마법사의 증표는 너무 매력적인 아이템인 거죠. 그것도 신규유저가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아아… 어… 의심해서 그런 건 아닌데, 솔직히 못 믿겠습니다.”
“네?”
“백령과 맹인검객이 근처에 있는지만이라도 알 수 없을까요? 아까 그 표식이라도 보여주실 수 있는지…….”
“아, 아, 네.”
주은은 생각했다.
‘아주 호구는 아닌가 보네.’
하긴, 자신 같아도 말만으로는 믿지 못했을 거다.
사소한 것도 아니고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공짜로 가르쳐주는 대가인데.
그런 의미에서 맵을 공개해주었다.
그곳엔 정말 백령 & 맹인검객, 두 사람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건 진짜였구나… 꽤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잘하네.’
강기찬은 이 여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괘씸한 건 여전했지만.
‘근데 웃기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지라 주은이 너무 같잖았다.
‘장난질도 이쯤 해야겠네.’
강기찬은 연기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건 주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대마법사의 증표부터 주시죠.”
다소 낮은 어조로 말했다.
이에, 강기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예? 왜 돈은 안 꺼내시나요? 동시에 주고받죠?”
“설마 생명의 은인이 될 사람한테 돈을 달라 이겁니까?”
목숨 살려주는 대가로 대마법사의 증표를 그냥 달라 이거다.
할인해달라는 거면 이해라도 하지…….
“좀 너무한데?”
“예?”
주은이 약간 당혹스러워했다.
강기찬의 말투가 바뀌었으니.
강기찬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쪽도 백령과 맹인검객의 상대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뭐요?”
“누가 누굴 살려준다는 건지 모르겠네.”
“대마법사의 증표 공짜로 주기 아까워서 그러나 본대… 그쪽이 기댈 데는 저밖에 없잖아요. 지금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살아야죠!”
강기찬이 풀썩 웃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지.”
“?”
“백령 & 맹인검객이 내가 아니라 당신한테 볼일이 있는 거 같지, 왜?”
“!”
강기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발 행동에, 주은도 덩달아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자, 잠깐! 이러면 위험한…….”
“한번 확인해보면 되지. 나도 내 목숨 걸어보는 거니까. 그쪽도 그쪽 목숨 걸어봐.”
“잠깐!”
강기찬이 나가면서,
[강기찬] 카페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닐 건데, 둘 다 가만히 있어.
백령 & 맹인검객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이는 주은이 맵에서 백령 & 맹인검객이 이동하는지 확인하는 걸 대비해선 한 지시였다.
자신이 이동했음에도 저들이 이동하지 않는다면 표적은 주은으로 확정 짓는 거나 다름없기에.
“…….”
주은은 카페 밖으로 나가 멀어지는 강기찬을 보았다.
동시에 맵에서 백령 & 맹인검객이 이동하는지도 확인했다.
직후,
[주은] 당신 말이 맞아요. 돌아오세요. 기존에 제시했던 값에 줄 테니…, 우선 거래부터 끝내죠.
강기찬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백령 & 맹인검객이 적어도 강기찬을 노리는 건 아니라는 게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강기찬에게 안 알려줘도 길어야 며칠 내에 알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강기찬에게 진실을 알린 것.
지금 꼬리를 말지 않으면‘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은커녕 대마법사의 증표도 얻지 못할 테니까.
강기찬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 주은의 맞은 편에 앉았다.
주은이 강기찬을 노려보았다.
‘하… 이 사람, 눈치가 빨라…….’
대마법사의 증표도 공짜로 받고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도 공짜로 알아내려고 했다.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둘 다 제값을 치르게 생겼다.
스으윽…….
주은이 강기찬에게 수표를 건넸다.
강기찬은 주은에게 대마법사의 증표를 넘겼다.
주은이 말했다.
“이제… 대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파시죠?”
“아뇨.”
강기찬이 주은에게 말했다.
“거기에 앞서… 정신적 피해 보상 및 위자료부터 받아야겠는데요?”
주은에게 참된 교육을 해줄 예정이었다.
자신에게 사기를 치면 인생이 어떻게 파탄 날 수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