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현무 & 주작길드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대마법사의 증표만 있다면 대마법사를 탄생시킬 수 있을 터.
그러면 청룡길드장 청용도 현무 & 주작길드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희망이 가득했다.
위기가 닥치자마자 생긴 기회?
과연 이 상황이 우연일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현무 길드장, 현기현이 의문을 표했다.
“근데… 네가 다 알아보겠지만…….”
“뭐-어? 도대체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건데?”
“이거… 사기 아니야? 대마법사의 증표라니?”
주작 길드장, 주은이 코웃음을 쳤다.
“걱정도 팔자다. 영상통화로 아이템 확인창 띄워줬어. 그건 조작 못 하잖아. 게임 시스템이라서.”
“그렇기는 하지만…….”
“왜? 뭐가 더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잖아. 대마법사의 증표가 존재하다니? 그게 소장용이야? 아니잖아? 일회용이잖아!”
타당한 지적이었다.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통과하면 대마법사의 증표를‘하나’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마저도 NPC하인스에게 제출하면 끝이다. 되돌려받을 수 없다.
“근데 어떻게 해야 여분이 생길 수 있을까?”
“딱 하나의 경우밖에 없지.”
“?”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통과했음에도 대마법사로 전직하지 않는 것. 그러면 여분이 생길 수 있지.”
“그 경우밖에 없긴 하지.”
“문제는 왜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통과해놓고선 대마법사로 전직하지 않고 팔려고 하느냐인데…….”
대마법사 전직 시련이 쉬우면 말도 안 한다.
숱한 대마법사 지망생들이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통과한 이는 딱 한 명, 앤드류뿐이다.
그 정도 난이도의‘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통과했음에도‘왜’ 대마법사로 전직하지 않은 걸까?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치르는 목적이 오로지 대마법사의 증표를 팔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대마법사로 전직하는 게 아니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대마법사의 증표를 얻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그 별을 따서 판매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기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판매액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한두 달만 사냥해도 대마법사의 증표 값은 건지지…….”
“돈만 벌면 말을 안 하지,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 인기에 명예까지도 따라오는데?”
“그걸 다 마다한다고?”
“미친놈인가?”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부자인가?”
“아니, 부자면 더더욱 안 팔고 대마법사로 전직하지.”
“거지인가?”
“거지 쪽이 가깝겠지. 머리 나쁜 거지일 거야. 근시안적인…….”
“진짜 딱 당장 이익만 보고 팔려는 건가 보네…….”
“그만큼 급전이 필요한가 보지.”
“하긴, 그 이유밖에 없지.”
“얼마나 급했으면…….”
“판매자가 누군데?”
현기현의 뾰족한 물음에,
“나도 몰라.”
주은이 곧장 대답했다.
“영상통화에서도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해놓았고, 아이디도 가린 익명이라서…….”
현기현의 눈매가 변했다.
“신원을 숨긴다고? 어째 수상한데?”
“대마법사의 증표를 파는 건데 신원을 숨길 수도 있지. 그게 아니더라도 대개 숨기는데…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의심이 조금 가셨어.”
“음?”
주은이 약간 머뭇거리며 말했다.
“… 혹시나 하고 직거래 요청을 했는데…….”
“…했는데?”
“바로 만나자던 대?”
“그래?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어.”
“무슨 속셈이지? 자신이야 사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
“모르지…….”
이윽고 잠시간의 침묵.
그 정적을 깬 것은,
“아!”
현기현이었다.
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맞네!”
“뭐가?”
“그래, 그것밖에 없어.”
“뭐냐니까!”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거.”
하긴 여기서 백날 떠들어봐야 한 번 물어보는 것만 못 했다.
* * *
약속장소.
강기찬은 새로 산 일회용 후드티를 입었다.
또한, 복면과 선글라스까지 썼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경석보고 판매자인 걸 감추라 했듯, 본인 역시 신원을 감출 요량이었다.
대마법사의 증표를 팔았다는 사실.
그리고 대마법사의 증표를 보유했었다는 사실.
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공개되는 순간, 전세계가 시끄러워질 테니까.
‘눈까지 가렸는데 나인 걸 어떻게 알 거야.’
‘사냥’을 한다면 눈은 가릴 수 없겠지만, 지금은 사냥하러 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 덕분에 완벽하게 정체를 감출 수 있게 되었다.
‘깔끔하게 대마법사의 증표만 팔고 오면 되는 거야.’
오늘은 별일 없길 바랐다.
그리고 그럴 확률이 높았다.
상대방이 대마법사의 증표를 구매할 여력이 있는지도 검증이 끝난 상태.
서로 신뢰를 주고받았기에 이제와서 거래가 틀어질 확률도 극히 저조하다.
단 하나의 엇나갈 가능성은…….
‘강탈하기 위해서 공격해올 경우인데…….’
돈이 있음에도 굳이 돈을 아끼고자(?) 대마법사의 증표를 노릴 경우다. 무력으로 강탈하려 들 수도 있지 않나.
그러니까 돈은 유인책이고 본래 강탈로 대마법사의 증표를 뺏으려 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봤자… 소용없을 테지만.’
강기찬은 상대가 누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본인도 그랬고 뒤를 따라오는 이들 때문에 더더욱.
백령과 맹인 검객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외출하러 간다고 하자 굳이 따라오겠다고 했다. 경호해서 불의의 사태가 일어날 시, 지켜준다나 뭐라나…….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싸우러 가는 거 아니라고 말렸는데도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대신, 거리 두기를 지시했다.
또한, 얼굴과 몸을 꽁꽁 가리기도.
일거수일투족이 파파라치에 의해 찍히는 자들이다.
괜히 동행한다는 게 들켜서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여러 경로로 돌고 돌아 파파라치를 따돌린 뒤, 도중에 합류해서 미행하듯 거리를 두고선 따라오고 있는 것.
게다가 100미터 이내로 접근금지 처분을 내렸다.
맵핵으로 보아 거리 두기를 잘하고 있지 싶었다.
‘이쯤인가?’
거래 장소에 다다랐음을 자각했다.
거래 장소는 일부러 인파가 북적이는 곳을 지정했다.
쓸데없는 짓을 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물론 이렇게 해도 일을 저지를 사람은 하겠지만.
‘어디 있지?’
서로 입고 온 옷의 특징을 알려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찾을 수야 있겠지만, 이 인파에 금방 걸릴 일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강기찬은 달랐다.
금방 예비 구매자를 찾을 수 있지 싶었다.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을 활성화했습니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 봅니다.]
‘저기 있네.’
하늘의 시야에서 쭉 내려다보다가‘예비 구매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했다. 직후, 빠르게 다가갔다. 등 뒤에다가 대뜸 말을 걸었다.
“저기요.”
‘예비 구매자’가 휙 뒤돌아섰다.
“예?”
“증표…….”
“아.”
예비 구매자와 판매자, 오직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이로써 양측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사람도… 얼굴과 몸을 가렸네.’
하긴, 대마법사의 증표를 구매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려서 좋을 거 하나 없다.
막말로 판매자 측에서 유포할 수도 있고.
또 판매해놓고선 사람을 시켜 도로 빼앗아올 수도 있고. 여러모로 구매자도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오… 이 사람… 그 사람이네…….’
강기찬은‘예비 구매자’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맵핵에 이름이 떴으니까.
놀랍게도 낯익은 이름이었다.
‘주은… 주작길드장.’
그리고 그 근처에 현무 길드장, 현기현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강기찬이 아닌 일반인의 시선에선 절대 동행인으로 보지 못할 정도로 간격을 띄워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기찬은,
‘같이 온 건가?’
현기현이 주작길드장의 동행인일 가능성을 크게 점쳤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3, 4위 길드의 길드장이 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저 바쁜 양반들이?
아닐 것이다.
‘음…….’
다른 이였다면 긴장감만 증폭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3, 4위가 거래 상대이니까.
그렇지만,
‘이러니까 안심이 되네.’
강기찬은 되레 안심되었다.
이 거래가 무사히 완료될 거 같아서.
‘미치지 않고서야 강탈을 시도하지 않겠지.’
돈도 어중간하게 있는 자들이나 아끼려고 강탈하려 들 터. 이들은 돈이 많고 명예도 있다.
저들도 거래가 무사히 완료되길 바랄 것이다.
‘이제 거래해볼까?’
그러던 그때였다.
“괜찮으시면 카페에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주은이 뜻밖의 요청을 건넸다.
“왜 그러시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흠… 네, 좋습니다.”
강기찬도 궁금하긴 했다.
다른 이라면 경계했을 테지만, 주은이니까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저럴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주은과 함께 카페에 들어갔다. 간단하게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주은이 물었다.
“제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질문 몇 개만 대답해주실 수 있나요?”
“예? 제가 좀 바빠서.”
“질문 하나당 100만 원 드리지요.”
“좋습니다, 하지요.”
강기찬은 흔쾌히 수락했다.
남들이 들으면 놀랄 재산을 번 그였지만, 여전히 100만 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특히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100만 원은…….
어떤 질문을 하길래 이러나 싶기도 하고.
이윽고 주은이 질문을 시작했다.
“대마법사의 증표를 판매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 돈이요.”
“단지 그것뿐입니까?”
강기찬이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주은이 200만 원을 건넸다.
“예. 단지 돈 때문입니다.”
“근데 그건 대마법사가 되면 해결될 문제일 텐데…….”
“질문입니까?”
“아.”
그제야 눈치챈 주은이 100만 원을 건네며 물었다.
“돈이야 대마법사가 되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요?”
“당장 급전이 필요해서. 대마법사가 되고 난 뒤면 늦습니다.”
“직접 구하신 겁니까?”
강기찬이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주은이 반사적으로 100만 원을 건네며 재차 물었다.
“대마법사의 증표는 직접 구하신 겁니까?”
“그렇죠.”
주은이 알아서 100만 원을 내밀었다.
“그럼, 지금 직업은?”
“비밀입니다.”
“… 쉬이 말씀하기 어렵겠지요.”
상대방의 직업을 묻지도, 밝히지도 않는 게 유저끼리 암묵적인 규칙이다.
주은은 그 점을 상기했다.
이 자가 신규유저라도 그 정도는 숙지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아니, 오히려 신규유저이기에 자신을 더 경계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혹시 신규유저입니까?”
“네.”
강기찬이 100만 원을 챙기며 대답했다.
주은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 그냥 당장 이익만 보려 하는 머리 나쁜 거지였구나.’
마지막 질문.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어떻게 통과하셨습니까?”
대마법사 앤드류는 밝히지 않았던 내용이다.
하지만, 이 자라면 쉽게 대답하지 않을까?
강기찬이 즉각 대답하지 않자,
“좋습니다. 1천만 원 드리지요.”
주은이‘질문비’를 올렸다.
이에 강기찬이 대답했다.
“비밀입니다.”
“얼마를 불러도요?”
“10조 원.”
“… 진심인가요?”
강기찬이 진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이것도 많이 할인해서 부른 건데. 대마법사가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후…….”
주은이 한숨 쉬더니 진지하게 제안했다.
“그럼, 제가 당신 목숨 구해드릴 테니 그걸로 퉁치는 게 어떻습니까?”
“예?”
강기찬이 의아해하자, 주은이 다시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제 얘기를 듣고 고개를 돌리거나 일어서지도 마시고요.”
“네…, 빨리 말씀해주시죠.”
“백호 길드장 백령과 암살의 신 맹인검객이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