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 *
강기찬이‘라이프 배슬’을 파괴 안 한 이유?
NPC나크로서와 거래하려고.
“… 나를 살려주겠다고?”
NPC나크로서가 다소 느릿한 어조로 물었다.
비참하지만, 강기찬이 자신을 살려주는 게 맞았다.
강기찬이 라이프 배슬을 파괴하는 즉시 죽을 테니.
강기찬이 답했다.
“그래. 살려줄게.”
“그러면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되길 포기하겠다는 건가?”
“아니.”
“하지만, 나를 죽여야지만,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는데?”
NPC나크로서도 강기찬이 받은 퀘스트를 알았다.
그랬기에 강기찬의 의중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NPC나크로서를 살리면서도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되겠다?
둘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러겠다고 한다.
강기찬이 제안했다.
“널 살려줄 테니까,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되는 방법을 알려줘.”
“… 어? 그게 무슨 말…….”
NPC나크로서가 느릿하게 물었고 강기찬이 바로 대답했다.
“너는 어떻게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되었지? 나도 그 방법을 쓰면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못 되나?”
“아, 아아…….”
NPC나크로서는 이제야 강기찬의 의중을 헤아렸다.
“퀘스트 클리어로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하지 않고, 내가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방법으로 전직하겠다?”
“그래.”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아했다.
“왜?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강기찬은 지름길 두고‘빙 돌아서 가겠다.’ 선언한 거다.
NPC나크로서에겐 호재였지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기찬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게 더 이득이니까.”
“이득?”
“퀘스트 클리어로 전직하면 편하고 좋지…….”
“그래… 그런데?”
“그다음은?”
“그다음?”
“나는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처음이야.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NPC나크로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기찬이 이어 말했다.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그래, 난 아니고말고…….”
NPC나크로서는 말끝을 흐렸다.
강기찬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네가 나한테 알려주면 되지.”
“뭐?”
“전설의 네크로맨서 육성 방법, 어떤 스탯을 찍어야 하는지, 스킬트리부터 괜찮은 무기, 장비, 그리고 각종 팁과 노하우까지.”
NPC나크로서의 레벨은 9,999, 만렙이다.
거기다 이 세계에서 유일한 전설의 네크로맨서다.
“산전수전 다 겪은‘좋은 스승’이 있는데 굳이 혼자 성장해야 하나?”
강기찬 혼자 성장하는 것?
그가 유일한 전설의 네크로맨서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NPC나크로서가 있지 않나.
그에게 배우면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터.
죽여서 사이 나빠지는 것보단 살려서 상부상조하는 길이 낫다고 본 것이다.
NPC나크로서가 이해한 바를 읊었다.
“그러니까, 나를 살려주는 대가로 너를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시켜주고 키워달라?”
강기찬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네. 물론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전제하에서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기찬은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었다.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방법이 이 퀘스트 하나만 있지 않고 더 있다고. NPC나크로서는‘이 퀘스트’로 전직하지 않았을 테니.
“다른 전직법이 있지?”
“그래.”
“나도 그 방법으로 전직하는 게 가능하지?”
“그래… 어렵긴 한데…….”
“어려운 건 상관없어. 뭐가 되었든 해낼 자신이 있어서. 그리고 어려워야 해냈을 때 보람이 있지.”
“…….”
NPC나크로서는 강기찬의 허세라 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말했다.
“좋다. 거래를 받아들이지.”
살 수만 있다면 마다할 것 없다.
강기찬이 흡족해했다.
“기한은,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고 9,999레벨 찍을 때까지.”
라이프 배슬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통보했다.
“그때까지는 라이프 배슬은 내 동료가 보관해둘 거야.”
“동료?”
“그래.”
“왜… 네가 보관하지 않고?”
“네가 헛짓거리할 수도 있으니까.”
강기찬은 만약을 대비했다.
NPC나크로서도 용사를 죽이면 아이템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을 터. 만약, 라이프 배슬을 노리고 죽이려 들면 곤란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서 다른 이에게 맡긴다고 해두는 것이다. 배신 확률을 0%에 수렴하게 될 테니까.
“동료에게… 내가 주기적으로 연락하지 않으면 라이프 배슬을 파괴하라고 하려고.”
“철두철미하구먼.”
“네가 나보다 강하니까.”
선의의 상호협력관계가 아니다.
강기찬이 NPC나크로서의 명줄을 쥐고 있는 상황.
동시에 NPC나크로서는 언제든지 강기찬을 죽일 수 있다.
그렇기에 드는 보험이었다.
“내가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고 9,999레벨 찍으면 라이프 배슬을 줄게. 그럼 너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거야.”
“알았다. 지금 네 레벨은 몇이지?”
“네크로맨서 레벨은 7,105다.”
“나쁘지는 않군. 9,000레벨이 되면‘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아니, 난 1만 레벨을 찍고 전직할 거야.”
“뭐? 왜?”
“1만 레벨을 찍어야 할 이유가 있거든.”
“응? 1만 레벨? 9,999레벨이 아니고?”
“그래.”
“무슨 수로 1만 레벨을 올린다는 거지?”
올리는 게 힘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올리고 싶어도 못 올려서 하는 말이었다.
NPC나크로서가 9,999레벨이 된 지, 수만 년이 지났다.
아무리 경험치를 쌓아도 레벨은 더 오르지 않았다.
9,999레벨이 만렙이니까.
“혹시 1만 레벨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나?”
“아직은…….”
“아직은?”
“근데 될 수 있을 것 같아.”
강기찬도 아직 1만 레벨이 되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 믿었다.
첫날 받은 퀘스트 조건이 1만 레벨 찍는 거다.
불가능하면 그런 조건을 달았을 리가 없었다.
한편,
‘왜일까?’
NPC나크로서는 약간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 자라면 진짜 1만 레벨이 되는 방법을 알 것 같은 건…….’
늘 1만 레벨이 되는 건 망상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강기찬 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다.
1만 레벨이 되는 법을 알게 될 거 같달까?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근거도 없이…….
단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1만 레벨 좀 되자.’
현재 만렙이라면 누구나 품을 만한 희망이었다.
그 기대를 강기찬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야.”
“뭐?”
“너 1만 레벨 되는 방법 알면 나도 가르쳐주라.”
“나도 아직 모른다니까?”
“만약에 알게 되면 말이다.”
“너 열심히 하는 거 봐서.”
“좋다.”
강기찬이 NPC나크로서에게 말했다.
“말 나온 김에 나랑 파티나 맺자.”
“왜?”
“내가 자고 있을 때도 열심히 사냥해서 경험치 갖다 바치라고.”
“… 알았다.”
염치없는 요구였지만, 따를 수밖에. 그게 강기찬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다려 봐.”
강기찬은 경석과의 파티를 끊었다.
그 자리에 NPC나크로서가 넣을 거다.
[강기찬님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파티 신청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파티가 되었습니다.]
네크로맨서로 로그인 중인 GM미르.
전설의 네크로맨서, NPC나크로서.
최고로 효율적인 파티의 탄생이었다.
“아, 나한테 줄 퀘스트 없냐?”
“응?”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달라고.”
“뭐?”
NPC나크로서가 당황했다.
잠시 이해를 하는 시간을 거친 뒤,
“너 양아치냐?”
욕부터 날렸다.
강기찬이 태연히 반박했다.
“손해 보는 사람이 없는데 왜 양아치야?”
“그런 요구하는 용사가 있단 소리는 처음이다.”
“모든 일에는 다 처음이 있는 법이지.”
“…….”
“어때? 하면 서로 좋잖아.”
“맞는 말이군.”
그렇게 강기찬은 또 퀘스트 클리어 처리당했다.
그 결과.
[+ 150레벨]
[+ 5,500만 코인]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강기찬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나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다. 열심히 사냥해.”
“… 알았다.”
곧장 강기찬이 사라졌다.
남은 NPC나크로서는 약간 지친 기색이었다.
출근 전까지만 해도 이럴 줄 몰랐으니까.
한데, 좀 여운이 남았다. 강기찬과의 만남 말이다.
차근차근 좀 전을 회상해나갔다.
‘강기찬… 대단한 존재다. 나 같았으면 라이프 배슬을 얻자마자 바로 나를 죽였을 거야, 곧장 전직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강기찬은 나를 바로 안 죽이고 오히려 이용하려 했고, 성공했어.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는 아주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다니…….’
비참한 상황이다.
한데 곱씹을수록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나보다 약한데 나를 부려먹네… 천하의 나도 약할 때 하지 못한 일을 저 녀석이 해내다니…….’
그 당시엔 경황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확실히 비범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야말로 진정한 승리지. 강자라 자부하던 나도 그 영역에 발을 못 디뎠는데, 그 녀석은…….’
강기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레전드스토리 테스트 서버에서 로그아웃합니다.]
[지구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강기찬이 귀환하자마자,
[경석] 야! 뭐야?
경석으로부터 귓속말이 날아왔다.
[강기찬] 왜? 무슨 일 있어?
[경석] 나 왜 파티 끊겼는데? 이거 오류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강기찬] 오류 아닌데? 내가 파티 끊었어.
[경석] 왜? 내 사냥속도가 너무 느려?
[강기찬] 아니.
[경석] 나 잠 줄이고 더 열심히 할 테니까, 파티 다시 해주면 안 되냐?
강기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리 질척거리지?’
물어보았더니 경석이 이유를 밝혔다.
[경석] 나 다시 미르님의 밑에서 일해야 하잖아.
[강기찬] 그게 왜?
[경석] … 미르님한테 비밀로 해줄 거지?
[강기찬] 어.
[경석] 나 미르님 밑에서 일하는 거 너무 싫어. 너무 부려먹는다고! 사람대접도 안 해줘!
[강기찬] …….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파티 끊으면 도로 미르님 밑에서 일해야 하니까. 그것보다는 사냥이 낫다 이거지.’
경석의 심정이 공감이 갔다.
누구 밑에서 일하는 거다.
그것도 가장 신분이 높고 성격은 더러운…….
반면, 사냥은 자유롭다.
누구의 간섭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대마법사라 순수하게 사냥을 즐길 수도 있을 터.
무엇보다 일할 동기가 확고하다.
강기찬을 1만 레벨을 찍게 하면‘자유’니까.
스스로 자유를 되찾아가는 데서 성취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보람도 뭣도 없는 노예 생활로 돌아가라니 반발이 심할 수밖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효율성만 따졌을 때, NPC나크로서가 더 낫다.
레벨과 직업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니까.
[강기찬] 미르님에겐 내가 잘 말씀드려볼게.
[경석] 다른 일이라도 시켜주면 안 돼? 미르님에게 돌아가는 것만 아니면 나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제발, 부탁할게.
경석이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어지간히 GM미르님의 밑에서 일하기 싫나 보네.’
직장인들이 육아 돌보는 것보다 직장에서 일하는 게 나은 게 이런 심리일까?
[강기찬] 다른 일이라…….
경석에게 시킬 다른 일, 마침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귀찮았는데 잘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