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 * *
‘처음’ NPC나크로서가 절망의 협곡에 넘어왔을 무렵.
강기찬은 맵핵을 보았다.
‘NPC나크로서를 표시하는 점’을 누르면 대상의 이름과 레벨, 직업, 그리고 대략적인 정보가 뜨지 않나.
[이름] NPC나크로서
[성별] 불특정.
[나이] 393,943
[레벨] 9,999
[직업] 흑마법사 & 전설의 네크로맨서.
[종족] 리치
이때, NPC나크로서가 리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리치라면 라이프 배슬도 있겠지.’
라이프 배슬이 있는 한, 한 번 죽여서‘처치 판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희망을 걸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정말 한 번 처치로 끝나지 않았고.
결국, NPC나크로서 사망 판정을 받게 하기 위해선 라이프 배슬을 파괴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러려면 라이프 배슬이 보관되어있는 위치를 아는 게 우선이었다.
[강기찬] 라이프 배슬을 찾고 있다.
강기찬이 권속들에게 메세지를 보내다.
저들은 NPC네크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자 소환한 몬스터를 죽여 일으킨 권속들이다. 살아생전 있던 곳으로 보내 세력을 통합하고 장악하라고 하지 않았나.
현재 레전드 대륙 각지에 퍼져있다.
드디어 저들의 정보력을 활용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강기찬] 라이프 배슬이 어떻게 생겼냐면…….
권속들에게 라이프 배슬의 생김새에 대해 묘사를 했다.
라이프 배슬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찾고자 하는 라이프 배슬엔 한가지‘특징’이 있었다.
[강기찬] 보랏빛 연기가 올라오는 라이프 배슬을 찾아라.
라이프 배슬에서 보랏빛 연기가 올라오는 것.
리치가 막 부활했다는 방증이었다.
‘찾을 수 있을까?’
생각난 김에 수색을 명했긴 했지만, 기대치가 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몬스터들이 총동원되어도 될까 말까다.
하물며 훨씬 적은 수가 수색할 테니.
원하는‘라이프 배슬’을 찾을 가능성?
지극히 낮을 터.
‘그래도 시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혼자서 찾는 것과 비교를 불허할 터.
그나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커진 것.
거기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작지만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고.
그때였다.
[권속, 고블린 킹이 주인에게 대화를 요청합니다.]
고블린 킹은 모든 고블린들의 우두머리다.
여태껏 잠잠했다가 이제와서 대화를 요청한다는 것은?
‘설마…….’
기대치가 약간 더 올라갔다.
설레는 마음을 담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승낙.”
[권속, 고블린 킹의 대화 요청을 승낙합니다.]
- 고블, 고블고블!
네크로맨서의 레벨이 7,105에 달해 권속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말이야?”
희소식이 들려왔다.
‘보랏빛 연기가 올라오는 라이프 배슬을 찾았다니!’
물론 아직 확신은 금물이었다.
동시에 확신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라이프 배슬에서 보랏빛 연기가 올라오는 게 드물 테니까.
리치가 개체 수가 많은 몬스터가 아니지 않나.
희귀하다.
하물며 최근에 사망한 적이 있는 리치라?
더더욱 희귀할 터.
NPC나크로서의 라이프 배슬일 확률이 높았다.
강기찬은 고블린 서식지로 향했다.
* * *
NPC나크로서는 고블린 서식지를 지나오면서,
‘희한하네.’
위화감을 느꼈다.
대체 몇십만 년 전이던가?
그 정도의 아주 오래전 기억이긴 하나,
‘원래 이랬었나?’
이곳의 고블린들이 영 부자연스러웠다.
‘뭔가 조직적이고 체계가 잡혀있다고 해야 하나?’
고블린들은 개체 수가 아주 많기로 유명했다.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있어 전쟁도 활발하고.
이곳은 특히 치열했다.
그런 까닭에 외지인의 접근이 드물었고.
그랬기에‘라이프 배슬 저장소’로 이곳을 택한 거다.
그런데,
‘통합한 건가?’
고블린들이‘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사소한‘분쟁’도 안 하고 있다.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변화’의 바람이 불었을까?
사소할지라도 그냥 넘어가기엔 찝찝했다.
낯선 변화란 커다란 위험으로 다가오니까.
‘물론, 고블린이 통합해봐야 버러지 집단에서 벗어나진 못하지만…….’
순전히 고블린들이 변해서가 아니다.
하필이면 자신이‘라이프 배슬 저장소’로 지정한 곳에 서식하는 고블린들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라이프 배슬을 놔두기에 불안정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겠군.’
그런 까닭에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고블린 움막, 시장을 쭉 둘러보다가 확신을 내렸다.
‘통합되었구나!’
부족을 상징하는 깃발이 하나의 문양이 되었다.
이것만 봐도 충분했다.
고블린들이 하나로 뭉쳤다!
‘그간 안 그러다가 어떻게? 아니 못 그랬다고 보아야 맞겠지. 어쩌다가?’
적어도 천 개 이상의 부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 것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인간도 쉬이 하지 못할 일을 한 고블린이라?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다음, 이렇게 통일을 한 이유, 통일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고 싶었다.
하나, 지금은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기에.
‘고블린 킹을 권속으로 삼자.’
고블린 킹을 권속으로 삼기로 했다.
권속으로 삼으면 말이 통하기에.
직후, 고블린 킹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있을 법한 장소를 발견했다.
딱 봐도 마을 중앙에 가장 웅장한 저택이 있으니.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고블린 병사들도 있었고.
다가가자 약간 의아스러운 게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저건 뭐지? 창도 아니고, 칼도 아니야…….’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저게 무기가 맞는 것인지도 의구심이 들었고.
여러모로 생소한 물건이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좀 더 걸어가자,
타탓, 타타타탓.
고블린 병사들이 다가와 창을 겨누었다.
- 고블!
“뭐라는 거야?! 비켜라.”
- 고블!
길을 가로막을 줄 예상했던바.
권속을 불러냈다.
트리플 헤드 오우거들이었다.
“한 마리로도 충분하지, 자! 쓸어라.”
- 오우- 오우- 거-어!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돌진했다.
고블린 병사들을 향해서.
그런데도,
“오호, 겁을 안 먹네?”
고블린 병사들의 겁먹지 않았다.
되레, 적을 향한 적개심을 표출하듯 이를 갈고 있었다.
NPC나크로서는 저들이 가소로웠다.
“네까짓 벌레들이 반항을… 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그때였다.
“!”
고블린 창병들이 갑자기 물러서고 다른 고블린
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 수만 해도 족히 수백, 그 이상이었다. 그들이 NPC나크로서와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둘러쌌다.
‘뭐지? 무슨 병력이 이렇게 많아?’
통일한 부족의 평시 보초병치고는 과도하게 많은 수였다.
마치 강한 적이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나.
특히, 저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아까 본‘생소한 물건’이 있었다.
‘그것’을 자신과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향해 겨누고선.
… 방사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화염이 뿜어져 나와 이들을 덮쳤다.
[사망했습니다.]
[라이프 배슬 저장소에서 부활합니다.]
[남은 라이프가 1 차감됩니다.]
[남은 라이프 : 9]
* * *
외딴 동굴.
펑-하는 소음과 함께 NPC나크로서가 나타났다.
라이프 배슬 저장소에서 부활한 것이다.
“아니, 방금 그건 또 뭐야? 뭐 그런 무기가…….”
무기가 아닌 줄 알았던 게, 사실 무기였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고블린‘전원’이 그걸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하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무기로 통일을 했는지는.
‘그런 게 있으니까 통일을 했지.’
돌이켜 보면 그거야말로 마도공학의 정수였다.
‘생각할수록 탐 나네.’
더더욱 고블린 킹을 권속으로 삼고 싶어졌다. 그리하면 그 마도공학 무기도 다 독차지할 수 있을 테니.
‘그 용사 자식도 죽일 수 있을 거고…….’
약간 후회도 했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을 할걸.’
낯선 것에 너무 주의하지 않았다.
그 대가로 사망한 거라 보아도 되었다.
‘교훈을 되새겼으니 그걸로 됐어. 그 무기에 정면 대응하기엔 무리다. 몰래 잠입해서 딱 고블린 킹만 죽인다.’
어차피 고블린도 우두머리만 잡으면 그 밑의 것들을 알아서 설설 길 터. 고블린 킹을 권속으로 삼으면 되지 싶었다.
‘괜한 정면돌파는 심신만 고달파지는 거야. 고블린 킹을 복속시키고 나를 죽였던 놈들은 짓밟아줘야겠네. 감히 나를 죽여?’
저벅.
NPC나크로서가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였다.
“왔어?”
동굴 안쪽 어두컴컴한 곳에서 울린 소리.
돌아보자 빛이 생기며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강기찬이었다.
그를 본 NPC나크로서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왜… 내가 못 올 곳에라도 왔나?”
“…….”
강기찬의 물음에,
NPC나크로서는 이내 최대한 표정 관리를 했다.
여기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거지,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보이면 곤란하기에.
‘아직 라이프 배슬은 무사하다. 내가 안 죽은 게 그 증거야…….’
용사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의 일치라 보았다.
침착하게 대응했다.
“궁금할 수도 있지 않나?”
“하긴, 궁금할 수도 있지.”
“말해 봐라. 내 뒤를 밟은 거냐?”
“뒤져서 사라져놓고선 어떻게 뒤를 밟냐?”
“…….”
NPC나크로서는 강기찬의 뺨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여기서 싸우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라이프 배슬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강기찬은 아까의 물음에 답했다.
“여긴 내 구역이거든. 그래서 온 거야.”
온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외딴 동굴’에 있던 고블린과‘위치 바꾸기’를 통해 왔다. 굳이 이것까지 알리지는 않았다.
“뭐? 여기가 구역이라고?”
“그렇지.”
강기찬이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밖에, 애들도 내 권속들이야.”
“!”
“애들한테 다 들었어. 너… 방금 타죽었다며? 조심 좀 하지. 화염방사기 맛이 어땠어?”
“… 됐고! 그럼, 지금 만남은… 우연이라는 건가?”
강기찬이 동굴을 훑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우리 만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모르지. 그건 중요치 않다. 가던 길이나 가라. 특별히 살려줄 테니.”
강기찬이 쪼갰다.
“나한테 죽어놓고선 누구보고 살려준대?”
“아직도 모르겠나? 나는 불사신이다. 너는 절대 나를 죽일 수 없…….”
“염병하고 있네.”
“뭐-어?”
강기찬이 인벤토리에서 라이프 배슬을 꺼냈다.
“이게 네 라이프 배슬이지?”
“!”
“그… 그걸 어떻게 찾았지?”
“네가 리치인 걸 알았으니까, 라이프 배슬은 고블린이 여기 있다고 말해주던걸.”
대략의 위치는 고블린이…….
정확한 위치는 맵핵을 보고 알았다.
NPC나크로서가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그걸 파괴하지 않고 있었던 건 왜지?”
강기찬의 목적이‘라이프 배슬 파괴’인 거야 자명한 사실. 그런데도 발견하고도 파괴하지 않고 지금껏 있었다?
“나한테 용건이 있는 건가?”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고 보았다.
“맞아.”
강기찬이 시인했고.
“뭐냐면…….”
그의 말을 들은 NPC나크로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 든 생각은,
‘도라이.’
이 세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