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절망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NPC나크로서는‘절망의 협곡’으로 넘어가자마자 놀랐다.
자연스레 쉰 들숨-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오는 물!
통증도 통증이지만, 숨이 막혔다.
- 절망의 협곡에 물이 왜 있지?
- 물에 빠졌지만, 숨이 왜 막히지?
원인?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어서 여길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돌아서 포탈로 발을 디디면서 쳐다보는데,
‘엉?’
동공이 흔들렸다.
‘어디? 어디?’
포탈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조금 더 오른쪽에 있었던가?
아니면 왼쪽에 있었나?
없다, 없어!
고개를 돌려봐도 어디에도 포탈이 없다.
‘뭐, 뭔…….’
겨우 몇 초 앞을 봤을 뿐이다.
그 몇 초 포탈을 등지고 있었다고 그사이에 포탈이 없어질 게 뭐람?
입장하자마자 사라지는 포탈인 걸까?
레전드스토리 본사는 그런 말 안 했는데?
절망의 협곡에 물이 있다고도 안 했다.
애초에 물에 빠져도 숨이 안 막힌다고 했고.
뭐가 되었든… 태평하게 있을 여유는 없었다.
‘고, 공간이동.’
다행히 공간이동 주문서가 있었다.
레전드스토리 본사에서 신입사원이라 준 거다. 이걸 쓰면 레전드스토리 본사 입구로 공간이동한다.
그때였다.
우르르- 콰-아아아앙!
번개가 내리치더니 물 전체가 하얗게 번쩍했다.
보통 감전사를 당해야 하나, 전혀 충격이 없었다.
자신보다 레벨 낮은 자의 공격인 걸까?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찰나였긴 하나, 딴 데 정신이 홀린 걸 자책했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번개 줄기가 눈 깜빡할 사이에 자신을 덮쳤다.
‘… 역시…….’
이번에도 이렇다 할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의미 없는 짓거리네.’
공간이동 주문서를 꺼내려 했다.
그런데…….
‘어?!’
공간이동 주문서‘아이콘’ 아래에 무언가 보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이건 뭐…….’
웬 노란색 새대가리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게 아닌가.
그것도 자신의 배에서 튀어나온 채로.
- 써언?
… 울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새가‘자신의 배를 뚫고 나왔는데도’ 아프지 않다는 것 정도.
‘아차!’
황급히 공간이동 주문서를 꺼냈다.
그런데,
‘씨블!’
… 공간이동 주문서가 젖어있었다.
‘무슨 주문서가 젖었어? 방수코팅이 되어 있을 텐데?’
물속에서 숨이 막히는 것 하며, 공간이동 주문서가 젖는 것 하며, 이 물이 특수한 성질을 지녔지 싶었다.
혹시나 하고 공간이동 주문서를 찢어보았으나 아무 일이 없었다. 젖으면서 효력을 잃은 것이리라.
‘망할… 즉각 탈출하는 건 포기다.’
우선 숨부터 돌려야 했다.
‘이러다가 진짜 익사하겠다. 나와라-! 수룡!’
바다의 제왕, 수룡을 소환했다.
‘생명의 숨결을 써줘! 얼른!’
수룡이 NPC나크로서와 마주 보고선 날숨을 훅 내뱉었다. 콧구멍에서 여러 거품이 나와 NPC나크로서를 감쌌다. 물방울에 들어간 모양새가 되었다.
그 안에는 산소가 공급되었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웁!”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
그렇게 몇 초간 호흡하고 나서야 비로소,
‘살 것 같다…….’
안정을 되찾았다.
직후 취한 행동은 자신의 배에 끼인 새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넌 뭐냐?”
- 썬?
“이름이 썬이야?”
- 써어어언!
“내 몸에서 나가줄래?”
- 써어어!
“싫다고?”
- 써어어!
“좋다고?”
- 써어어!
“뭐라는 거야? 하… 미치겠네.”
처음엔 이 새를 죽일까, 했다.
그런데 무턱대고 죽이기엔 꺼림칙했다. 배를 뚫고 자리 잡아서 괜히 죽였다가 자신도 피해를 볼까 봐.
‘일단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으니…….’
해결책을 찾기 전까진 새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이 새도 자신을 어찌하진 않는 것 같으니.
한숨 쉬면서 뒤돌아보았다.
여전히 포탈이 없었다.
역시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이로써 하나는 확정되었다.
‘들어온 길로 나갈 수 없게 되었네.’
절망의 협곡에서 나가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나가서 레전드스토리 본사에 들러 이 사태에 대해 상의를 해볼 요량이었다.‘용사’가 오기 전에 말이다.
또 다른 포탈을 찾고선 수룡의 머리맡에 올라탔다.
그러고선 손짓했다.
‘저기로 가자!’
그와 동시였다.
“!”
또 포탈이 사라졌다.
이번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누군가 개수작을 부리는 거구나.’
처음엔, 우연, 버그, 등등 여러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다 소거하고 하나 남았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방해.
‘대체 왜?’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를 가두려고?’
공식적인 출구 두 곳이 모두 막혔다.
자신을 가두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어디, 어디 있지?’
NPC나크로서는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찾았다.
이 짓거리를 하는 자가 근처에 있을 수도 있기에.
이내 발견했다.
‘저기!’
수면 위, 그보다 훨씬 더 위, 암벽에 걸터앉아있는 존재들을.
‘한 명이 아니잖아?’
몇 명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 더 많은 권속을 불러낼 수 있기에.
‘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지.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어떤 권속을 불러낼지 빠르게 판단했다.
[권속, 심해의 괴어를 소환했습니다.]
[권속, 심해의 괴어를 소환했습니다.]
[권속, 심해의 괴어를 소환했습니다.]
.
.
“가라!”
NPC나크로서는 수백 마리의 심해의 괴어를 위로 올려보냈다. 그런 다음 자신의 곁을 지키는 권속도 불러내려 했다.
그때였다.
“으읍!”
갑자기 심장이 아팠다.
가슴을 움켜쥐며 고개를 약간 내리니… 새가 있던 자리에 새는 온데간데없고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누, 누구-우… 흐어어어억!”
강기찬이었다.
그가 다짜고짜 NPC나크로서의 심장을 찔렀다.
NPC나크로서가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넘어졌다.
강기찬의 싱거운 전략이었다.
전설의 네크로맨서도 권속이 강한 거지 본인이 강한 게 아니다. 즉, 이렇게 본체를 노리면 그만이라고 본 것이다.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 하인스.
그를 처치할 때도 이 방법을 썼지 않나.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없으리라.
NPC나크로서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강기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져가는 NPC나크로서의 흔적을 구경했다.
‘끝인가?’
이제 사망 소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만 뜨면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10초가 지날 때까지 NPC나크로서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이미 시체도 소멸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강기찬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 * *
외딴 동굴.
펑-하는 소음이 나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NPC나크로서였다.
그는 한숨부터 쉬었다.
눈앞의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선.
[사망했습니다.]
[라이프 배슬 저장소에서 부활합니다.]
[남은 라이프가 1 차감됩니다.]
[남은 라이프 : 10]
사실, 그는‘리치’였다.
죽기 직전, 영원한 생명을 갖고자 흑마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라이프 배슬에 담았다.
그 대가로 평범한 인간의 삶을 포기해야 했지만, 불사의 몸은 지녔다… 고 여겼다.
그런데, 어떤 오류가 있어서인지 실패했다.
어정쩡한 라이프 배슬만 손에 넣게 되었다.
본래 라이프 배슬은 죽어도 계속 부활할 수 있어야 했다. 깨지거나 파괴당하지 않는 한은…….
그런데 자신의 라이프 배슬은 부활횟수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다가 기어이 두 자릿수까지 오게 된 것.
그때부턴 초조해졌다.
그런 까닭에 레전드스토리 본사에 취직하길 고대했던 것.
레전드스토리 본사의 사원이 되면‘다쳐도 아프지 않고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지니게 된다고 했으니.
그러나,
‘뭐지? 내가 죽다니……?’
… 죽어버렸다.
자신이 죽었다는 게 못 믿겼다.
물론 물에 빠져도 숨이 막힌다는 것에서, 저 법칙이 깨진 거지만, 설마하니‘불사의 몸’까지 아니게 될 줄이야.
벌떡.
일어서며‘라이프 배슬’의‘남은 라이프’를 확인했다.
[남은 라이프 : 10]
‘망할… 이제 10번 남았잖아.’
앞으로 10번 죽으면 영원히 죽는다.
‘어떡하지?’
누군가 자신을 노리는 게 명확해졌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만약 목적이 진정한 죽음이라면?
살해시도는 이번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절망의 협곡이 내 근무지인지 알고 있으면 어쩌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잠깐, 내 근무지도 알고, 출근 첫날, 내 목숨을 노렸다고?’
상대의 정체.
이제 슬슬 감이 잡혔다.
얼굴도 보지 않았나.
‘레전드 대륙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용사?’
한 명뿐인 그 용사의 목적이 자신을 처치하는 거라고 했다. 이제야 그림이 맞아떨어졌다.
물론 여러 의문은 있었다.
우연히 왔다가 자신을 마주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자신이 그날 절망의 협곡에 가는 걸 안 것 같았고. 무엇보다 그 물이니 포탈 제거니, 다 그자의 소행 같았다.
그렇다면,
‘꽤 위험한 용사네.’
상대를 위험인물로 지정해야 했다.
‘하…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다 겪다니.’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생각했었다.
자신이 죽을 리는 없다고.
상대는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되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즉, 전설의 네크로맨서보다 아랫급인 네크로맨서일 터.
급 하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나, 막상 겪어보니 생각을 고쳐야 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네.’
전설의 네크로맨서의 취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할 터. 그러지 않으면 똑같은 불상사를 되풀이할 뿐이다.
‘하… 근데 전쟁터를 내가 정할 수가 없으니. 곤란하네. 다시 절망의 협곡으로 돌아가야 하니. 상대도 그걸 알고 있을 거고. 그래서 미리 그곳을 장악해서 제 입맛대로 개조해놓은 건가…….’
불리한 조건은 어쩔 수 없다.
여하튼 결판은 지어야 할 터.
다른 것도 그렇지만,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겁먹어서 출근 첫날에 퇴사할 수는 없었다.
명색이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그때였다.
- 고블?
“…….”
웬 고블린 몇 마리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아, 여기 고블린 서식지였지?’
새삼 라이프 배슬 저장소가 고블린 서식지인 걸 기억했다. 안 죽은 지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던 것.
‘역시 여길 라이프 배슬 저장소로 해두길 잘했지.’
리치들의 일생일대 고민.
라이프 배슬 저장소를 어디로 할까?
NPC나크로서는 이곳‘고블린 서식지’로 정했다.
이유는 하나.
허접하니까.
‘제 목숨보다 귀한 걸 설마 여기 보관할 줄 알았겠어?’
그 누구도 라이프 배슬 저장소가 이곳일지 모를 것이다.
“이것들이 감히 어딜 어슬렁거리고 있어?”
그가 고블린을 하나를 발로 차며,
“퉤!”
기분 나쁘다는 듯 침을 뱉으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를 하면서,
“권속으로 만들어줄 가치도 없는 버러지 같은 것들,”
여전히 고블린 몇몇이 라이프 배슬 곁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블린은 라이프 배슬을 어찌하지 못하니까.
이동시키기도, 그렇다고 제거할 수도 없다.
몇 초 후.
[강기찬] 라이프 배슬을 찾고 있다.
고블린들의 뇌리에‘주인’의 명령이 떨어졌다.